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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지존
  • 작성일 2025-06-30
  • 조회수 711

 삼촌이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셨다.

 그해 여름 방학은 시름에 잠긴 아버지를 따라 삼촌의 집으로 향했다. 유족은 떠난 가족의 흔적을 모아 오는 막중한 임무를 띤다고, 칙칙한 옷을 입히던 가정부 아주머니는 그랬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은 삼촌의 물건을 정리하는 침울한 유품 원정으로 대체되었다.

 그곳까지는 차 안에서 질릴 때까지 졸고도 더 있어야 하는 먼 길이었다. 이전에 나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정작 삼촌네를 찾아가게 된 날 나는 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는 옆태가 이미 독한 슬픔으로 젖어 있어서, 금방이라도 울어 버리겠다 싶은 불안감이 차를 모는 내내 공기를 꽉꽉 눌렀다.

 삼촌은 과묵한 남자였다.

 행동은 조용하고, 딱딱했고, 기분은 읽히는 법이 없었다. 만사 관심을 두지 않는 무심한 인상이었다. 감정이 굳은 근육으로부터 자유로운지도 의문이었다. 닫힌 채로 메말라 있는 삼촌의 입은 그런 궁금증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눈. 삼촌이 죽은 지금 괜히 무안해지는 감상이지만, 어둠으로 뒤덮인 그 눈에 스치는 순간마다 살갗을 걷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간의 눈이라면 자연히 서리는 정기가 깊숙이 가라앉아 있었다.

 묘한 인간의 표본이라 해도 좋았다. 아버지에게는 그런 삼촌이 참 존경스러운 형이었던 듯했다. 정확히는 이복형이지만, 둘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 있어 관계의 출발선에 지나지 않았다. 삼촌도 나름 아버지를 아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 대의 복잡한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여태 친분을 유지한 사이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끔 아버지가 삼촌의 미소를 옅게나마 자아내는 신비를 목격했다. 삼촌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쓸쓸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떨어져 지내느라 삼촌이 형 노릇을 할 시간이 적었다고는 해도, 아버지에게는 따뜻한 인상을 남긴 일화들이 있을 터였다. 단지 그건 삼촌에 대해 내가 느낄 몫이 아닐 뿐이었다.

 그날 오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촌의 집에 발을 디뎠다.

 도착한 교외의 주택은 정갈하지만 단조로웠다. 주변의 생명이라고는 이파리를 죄다 잃은 비리비리한 나무가 다였고, 정면으로는 일직선 도로가 조용히 펼쳐져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나 보고 말 지루한 풍경, 하얀 몸을 하고 옅은 햇살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삼촌의 집은 세상으로부터 은신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위치 선정이 묘한 삼촌다웠다.

 실내로 거침없이 들어서는 아버지를 나는 조심스레 뒤따랐다. 현관문 너머 일자로 곧게 뻗은 복도 끝에는 맨들맨들한 계단이 보였다. 마른 공기가 온 집안에 감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생활감이 증발한 집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계획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거실로 직행했고, 뒷모습을 끔벅끔벅 바라보던 나는 무심코 2층으로 올라갔다. 분업 정신이라도 발동한 걸까. 목적지는 삼촌의 서재였다. 삼촌이 읽은 책이나 사용한 만년필이 있으면 챙기고 싶었다.

 서재 안쪽 벽은 창문이 넓게 나 있었고, 계단보다도 맨들맨들한 책상이 앞에 놓여 있었다. 책상에는 8mm 캠코더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요즘 시대에 드문 물건이라 신기해하며 전원을 켰다.

고물의 기적을 부린 캠코더는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했다. 나는 영상이 세 개 저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호기심을 머금고 재생시켰다. 삼촌의 기록이 흐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영상은 바다가 찍혀 있었다. 지역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닷물만 들어찬 모습이었다. 화면은 세월의 흔적인지 묘하게 붉은 기가 잡혀 있었다. 화질도 나빠서 녹이 슨 안개가 낀 양 뿌얬다. 싸늘한 바다, 인적 없고 온기 없고, 흐린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날의 바다였다. 파도가 거칠게 울렸다. 그러다 끝난 싱거운 영상이었다.

 두 번째 영상으로 넘어갔다. 한 소녀가 나왔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나와는 면식이 없는 얼굴이었다. 풀어헤친 흑발에 회색 눈, 커다란 고리 귀걸이가 이따금 볼에 부딪히며 반짝였다. 아마 내 또래가 아닐까?

바깥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붉은 기도 뿌연 화질도 영상의 싱그러운 기운에 스며들지 못했다. 하늘이 하늘색인 드문 날, 맑은 하루를 배경으로 소녀는 푸른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웃으며 재잘거리고 있었다. 입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바람 소리가 컸다. 여기서 무슨 이야기가 펼쳐지는지 들을 순 없었지만, 소녀는 캠코더 쪽으로 미소에 손짓을 곁들여 즐겁게 말을 건넸다. 희미하게 한마디가 들렸다. ‘오우미’. 삼촌의 성이다. 촬영자는 삼촌이 확실해 보였다. 영상은 뚝 끊겼다.

 세 번째 영상은 무얼 찍었는지 알아보기 까다로웠다. 구멍? 첫인상은 막연히 그랬지만, 정체를 추리해 보면 어느 굴을 비추고 있는 듯했다. 나를 납득시키는 가설은 그랬다. 미세한 잡음조차 잡히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터널처럼 붉게 일그러진 굴이 파여 있었고 이름 모를 어둠이 그 안에 고여 있었다. 곳곳에서 자란 덩어리가 불규칙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음, 동물이 오간 흔적은 전혀 없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색과 축축하고 진득한 그늘이, 흔들리는 캠코더 렌즈를 통해 기묘하게 얽혀 있었다. 삼촌이 정적 속에서 이걸 찍고 있었다는 생각이 섬뜩하게 기어 왔다.

 영상은 아주 짧았다. 7초는 됐을까.

 시청을 마쳤지만 담겨 있는 의도는 불분명하기만 해, 몇 분을 멍하니 서 있었다. 뇌도 멈추다시피 했지만 근육이 얼어 버린 상태였다. 그러다 근육을 감싼 얼음이 순식간에 깨지면서 헤프게 주춤거렸고, 그만 허공에 발을 차며 주저앉고 말았다.

 주저앉은 반동으로 책장 아래에서 도로록 굴러 나온 것이 있었다. 얼얼한 허리를 부여잡으며 발견한 그 물체는 흰 바탕에 넓은 면적의 검은 원이 칠해진 작은 구슬이었다. 조명에 갖다 대어 자세히 살필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집어 올릴 엄두가 나질 않았다. 만지지 말라는 강한 직감이 충동 따위 생기기도 전 해치웠다.

 저 구슬과 같은 공간에 있기가, 혼자 있기가 퍼뜩 무서워진 나는 허겁지겁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서 엄숙히 사진을 정리하던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위층에 캠코더가 있었어요.”

 구슬은 구태여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를 마주하고 나니 막무가내로 겁에 질렸던 방금의 나 자신에게 호들갑 판정을 내릴 수 있었다.

 아버지는 무미건조한 어조로 나중에 보겠다고만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별로 신경 쓰지 않자 나는 괜히 더 신경이 쓰여서 질문했다. “영상이 있길래 틀어 봤어요. 삼촌이랑 친해 보이는 여자애가 나왔어요. 그 애는 삼촌이 돌아가신 걸 알고 있을까요?”

 아버지가 얼굴을 드셨다. “여자애?”

 그저 갸웃하셨다.

 “큰 귀걸이를 하고 있었어요. 저랑 비슷한 나이였고요.” 나는 조각조각 열심히 설명했다. 애석하게도 아버지의 낯에는 물음표가 짙어질 따름이었다. “머리가 까맣고, 예뻤어요.”

 “거기서 삼촌을 부르던데요.”

 내 노력이 쌓일수록 아버지는 더 아리송한 눈치가 되셨다.

 누굴까? 그 애는.

 바다는 왜, 굴은 어떻게 찍혀 있었을까?

 …그 구슬은 뭐였을까?

 문득 삼촌의 눈이 아른거렸다. 왠지 꺼림칙해졌다. 어서 차로 돌아가고 싶었다.

***

 “삼촌, 기억나니?” 아버지는 그렇게 대뜸 화제를 꺼내셨다.

 삼촌이라, 삼촌의 죽음도 이제 몇 년 된 일이다. 당시만 해도 작고 물렀던 나는 어느새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인생에서 지나간 사건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차를 음미하던 아버지가 삼촌의 존재를 의식 표면에 소환한 순간 8mm 캠코더는 내 머리 위로 추락했다.

 “기억하죠, 같이 유품 정리하러 갔잖아요.”

 무엇 하나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집의 경직된 전경과 하얀 벽에 갇힌 개인의 고요한 자취, 영상의 형태로 남고 노출된 기억의 편린이 모두 당연하다는 양 밀려들었다. 산뜻하게 꾸민 아들의 대답을 듣고 아버지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셨다.

 “내가 당시에… 형님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했지.”

 삼촌은 병사했다고 들었다. 어딘가 미심쩍다고 느끼기는 했다. 호흡도 정신력으로 태엽을 감아서 할 법한 기계 같은 삼촌이, 평범하게 병에 걸리고, 투병을 하며 시들시들 저물다가 끝내 평범하게 사망했다는 흐름이 어색했다.

 “...실은 진짜 사인이 따로 있는 건가요?”

 아버지는 즉답하지 않으셨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씀하시는 분답게 이을 말을 가다듬고 계셨다. 충분히 헤아릴 부분이었고 배울 점이라고도 여겼지만 나는 망할 분위기를 못 이겨 아버지를 재촉해야 했다.

 “혹시… 자살?” 삼촌이 죽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닌가, 하는 기묘한 수준의 확신을 나는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진중하고 묵직한 시선은 긍정을 내포했다.

 “형님은 약을 잔뜩 삼키셨어. 그런데……” 아버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무겁게 젖어가는 침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이키, 오늘에야 말해 주지만 형님은 오래전 오른쪽 눈을 잃으셨단다.”

 “형님은 어렸을 적부터 계속, 자기 눈에 어떤 여자애가 있다고 하셨지. 환각에 시달리셨던 걸 거야.”

 “그러다… 한쪽 눈을 끄집어내셨어.”

 “의안을 착용한 뒤로는 잠잠해지셨다고 여겼는데, 결국 환각의 충동을 못 이기신 거지.”

 까마득한 눈의 어둠을 둘러싼 미지가 참으로 허망하게 풀리는 사연이었다. 빛이 닿지 않는 삼촌의 눈은 지독히 부자연스러울 만도 한 셈이었다.

“발견된 형님에게서는……”

“…빠져 있었거든, 의안이.”

 내 안의 시간이 깜빡 멈추었다. 영상으로 휘감긴 머릿속을 스치는 동그란 기억이 있었다. 기억이 영상보다도 선명했다.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뭔가 끔찍한 것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영상을 봤다고 했지? 여자애가 나오는.”

 그 붉고 뿌옇고 평화로운 세계 속의 소녀.

 “그 후에 확인했단다, 네가 말한 캠코더.” 아버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담컨대 영상 같은 건 없었어.”

 나는 허상을 보았다.

 삼촌은 그 허상에 삼켜졌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영상의 붉은 굴이 마치 눈구멍, 아니 눈알이 빠져나간 그 뒷면 같다는 것을, 밖에서 안쪽을 향해 찍힌 듯한 시점이라는 것을— 잠깐, 정말 잠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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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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