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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기장

  • 작성자 밍맹
  • 작성일 2025-07-05
  • 조회수 499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2025년 7월 7일 (월)

죽기로 했다.

정확히는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다 말고머릿속에서 딱그런 문장이 흘러나왔다.

이쯤이면 됐지.”

그리고 너무 이상하게마음이 편안했다.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도버텨야 한다는 책임감도 그 순간엔 아무 소용 없었다그냥끝을 생각하는 내가 이상하게도 나를 제일 이해해주는 사람 같았다.

서랍을 열고 메모지들을 꺼냈다예전 일기아무 말도 안 하고 접어둔 편지,

'도와달라'는 말 대신 종이에만 적어두었던 문장들.

누군가 볼까 무서워서 숨겼던 말들.

이제는 보여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나는 거기 없을 테니까.

사실은 며칠 전부터 학교 책상도 정리했다.

필통은 필요한 것만 남기고공책은 깨끗한 쪽만 남겨두었다.

민서가 물었다.

너 왜 갑자기 정리 중이야전학 가?”

나는 웃으면서

그냥 요즘덜어내는 게 좋더라” 했고 민서는 금세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다행이었다.

아무도 진심으로 묻지 않아서.


2025년 7월 8일 (화)

요즘은 이상하리만치 잠을 안 자도 멀쩡했다.

밤새 핸드폰만 보고 음악 듣고예전 사진을 뒤적여도 아침이 오면 별로 힘들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 말이 머릿속을 자주 맴돌았다.

그러면 모든 게 버틸 만해졌다.

SNS 프로필 글도 바꿨다.

예전엔 그냥 웃긴 글귀였는데

며칠 전부터는

"생각은 깊어지고말은 줄어든다"

라는 문장을 적어놨다.

좋아요는 몇 개 달렸고,

댓글로 누군가가 말했다.

무슨 감성 터졌냐ㅋㅋ

나는 그 말에

그냥 요즘 그런가 봐라고 답했다.


2025년 7월 9일 (수)

오늘 친구에게 치마를 빌려줬다.

진짜 마음에 들던 건데 괜찮다고더는 잘 안 입는다고 했다.

사실은 그 옷을 내가 다시 입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급식도 며칠째 남김없이 다 먹고 있다.

식판 싹 비우는 내가 신기했는지 옆자리 애가 물었다.

너 입맛 돌아왔어?”

나는 요즘은 잘 먹혀.”라고 말했다.

마지막이라서.

그냥 다 먹고 가고 싶었다.

정수기 앞에 서 있다가 괜히 눈물이 났다.

무슨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혼자 마시다 말고 울었다.

누가 다가오면 얼른 눈을 닦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요즘 눈이 좀 시려.”

이젠 그런 핑계도 익숙하다.


2025년 7월 10일 (목)

오늘은 또 담임 선생님이 상담을 하자고 불렀다.

무슨 일 있는지 물었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뇨그냥 요즘 생각이 많아서요.”

그리고 끝.

선생님도 바빠 보였고 나는 더 말할 용기도 없었다.

정말로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내가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말을 믿는 척했을 뿐인데.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는 대충 정해놨다.

아침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날 거고,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천천히 옷을 입을 거다.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 나갈 거고,

문 앞에 짧은 메모 하나 남겨둘 거다.

긴 말은 쓰지 않을 거다.

아무리 길게 써도

그 마음은 다 닿지 않을 걸 아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

그 한 마디를

누군가가 내게 했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그 질문,

누구 하나 진심으로 묻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좀 아프다.


2025년 7월 11일 (금)

아침이 되었다.

햇빛이 내 방 벽에 천천히 올라앉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어제보다도 더 천천히.

이게 마지막이니까,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엄마는 아직 주무시고 있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고,

식탁 위엔 어제 먹다 남은 반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고

물 한 컵을 꺼내 마셨다.

컵을 내려놓고,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몸이 가볍고

마음은 더 가벼웠다.

더 이상 울리지 않는 머리,

멍하니 웅웅대지 않는 가슴.

마침내조용했다.

현관 앞에 메모를 한 장 붙여뒀다.

엄마아침엔 일찍 나가건강해.’

그 말이 전부였다.

길게 쓰면 아무리 써도 모자랄 것 같아서

차라리 짧게 남겼다.

엄마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아마 다 알게 될 거니까.

가방은 메지 않았다.

휴대폰은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비밀번호는 메모장에 남겼고,

내가 남긴 사진들과 메일음악도

그 속에 함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방을 둘러봤다.

모든 게 너무 깨끗했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처럼.

누군가 살다가 떠난 흔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잠시 자리를 비운 것처럼.

벽에 걸린 시계가 6시 1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왔다.

하늘이 맑았다.

바람이 가볍게 옷자락을 건드렸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진짜 괜찮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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