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을 대출해 드립니다
- 작성자 n2snack
- 작성일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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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우울하신가요? 너무너무 깔리고 숨이 막혀서,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나요?
그럴 땐 저희 기분 은행에서 좋은 기분, 기쁨을 대출해 보세요!
술, 마약 따위로 얻는 인위적인 쾌락과는 격이 다른, 순도 100%의 기쁨과 정신적인 환희를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독 걱정은 NO! 감정은 마약이 아닙니다. 약간의 의지만 가지고 계신다면, 금단 증세가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재이용률 0.2%가 증명하는 비중독성! 안심하고 빌리셔도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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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분 대출 신청하러 연락 주셨나요?
네네, 맞아요. 대출밖에 없죠. 애초에 명색이 은행인데 예금 서비스조차 없다니, 좀 이상하긴 해요. 무슨 대부업자도 아니고요.
직원이란 사람이 어째 이리 말하냐고요? 말 그대로 직원이니까요. 말단직이라, 고객님처럼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이상한 건 이상한 거죠, 뭐.
⋯아무튼, 기분을 대출하러 오셨다니, 힘든 일이 많으신가 봐요.
그런데 이거, 그리 현명한 선택이 되진 않으실 거라고, 미리 말씀드릴게요.
경고 맞아요. 걱정되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당장은 좋겠죠. 보통 사람이 느끼는 10년 치의 기쁨을 1년 동안 압축해서 느끼는데, 어느 누가 싫다고 징징대겠어요?
그 하루하루가 고양감과 만족의 연속인데요.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딱 1년이 끝나잖아요? 그때부턴 지옥이에요.
강산이 뒤바뀔 시간의 기쁨을 쓴 만큼, 불쾌함과 우울이 밀려오거든요. 네네, 그게 ‘상환’ 과정이에요.
기간도 무조건 10년 만기 분할 상환이라, 조기 상환 같은 건 불가능해요.
아마 곤란한 상황도 겪을 거예요. 꽤 많이.
혼자 얼굴 찌푸리고 있으면 난감해지는 순간들 있잖아요? 간만에 모든 식구가 모인 생일 파티에서라던가, 직장에서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요.
꼭 그럴 때 더 기분이 나빠지더라구요. 오히려 평상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편이고요. 아마 원기옥이라도 모아서 한 번에 좆같게 만드는 식인가봐요. 더 빨리 무너지라고.
어째 경험해 본 말투 같다고요? 맞아요. 저도 고객 중 한 명이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상담 노예, 아니 직원으로 잡혀있는 신세지만요.
왜 끌려갔냐구요? 저는 운이 나쁜 편에 속했어요. 상환을 시작한 지 8년 즈음 되었나? 그동안 중요한 미팅 때마다 찡그리고 다닌 덕분에 10년을 다닌 직장도 잘리고, 남자친구랑도 헤어졌거든요. 하필 그 10년 동안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이 죄다 튀어나와버리니⋯ 저도 지지리 복이 없었죠.
말 그대로 망했지요. 너무 버티기 힘들어서, 그냥 상환을 포기했어요. 그랬더니 짠, 이렇게 붙잡혀서 대출 문의 콜이나 받고 있네요.
빠져나갈 방법도 없어요. 나가려고 해도 문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랄까요. 분명 눈에 보이는데 말이지요. 감정도 조작할 수 있으니, 이렇게 기초적인 인지 능력을 상실시키는 건 훨씬 쉽겠죠.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건 왜 안 막는 지 의문이네요. 제가 손님을 말리면 그치들 입장에선 손해잖아요, 안 그런가요?
으흠, 너무 조용하신 거 아녜요? 하긴, 대출받으러 전화한 직원이 도장 찍지 말라고 설교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으시겠죠.
이렇게 말씀드려도 대출을 진행하겠다고 하신다면, 막지는 않을게요. 조언은 가능하지만, 결정을 막는 건 직원의 역할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요.
광고 내용이 사기냐구요? 아뇨, 적어도 거짓은 없어요. 요즘 광고 규정이 얼마나 엄격한데요. 중요 골자를 아예 포함하지 않았을 뿐이죠.
중독성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상환’을 버텨내신 다른 고객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시는 대출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지막으로 결정하시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세요.
이 기분, 정말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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