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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대출해 드립니다

  • 작성자 n2snack
  • 작성일 2025-07-05
  • 조회수 97


 기분이 우울하신가요? 너무너무 깔리고 숨이 막혀서,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나요?


 그럴 땐 저희 기분 은행에서 좋은 기분, 기쁨을 대출해 보세요!


 술, 마약 따위로 얻는 인위적인 쾌락과는 격이 다른, 순도 100%의 기쁨과 정신적인 환희를 맛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독 걱정은 NO! 감정은 마약이 아닙니다. 약간의 의지만 가지고 계신다면, 금단 증세가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재이용률 0.2%가 증명하는 비중독성! 안심하고 빌리셔도 OK!


 지금 바로 전화 주세요!


 041-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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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기분 대출 신청하러 연락 주셨나요?


 네네, 맞아요. 대출밖에 없죠. 애초에 명색이 은행인데 예금 서비스조차 없다니, 좀 이상하긴 해요. 무슨 대부업자도 아니고요.

 직원이란 사람이 어째 이리 말하냐고요? 말 그대로 직원이니까요. 말단직이라, 고객님처럼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이상한 건 이상한 거죠, 뭐.


 ⋯아무튼, 기분을 대출하러 오셨다니, 힘든 일이 많으신가 봐요.

 그런데 이거, 그리 현명한 선택이 되진 않으실 거라고, 미리 말씀드릴게요.



 경고 맞아요. 걱정되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당장은 좋겠죠. 보통 사람이 느끼는 10년 치의 기쁨을 1년 동안 압축해서 느끼는데, 어느 누가 싫다고 징징대겠어요?

 그 하루하루가 고양감과 만족의 연속인데요.


 그런데, 그렇게 지내다 딱 1년이 끝나잖아요? 그때부턴 지옥이에요.


 강산이 뒤바뀔 시간의 기쁨을 쓴 만큼, 불쾌함과 우울이 밀려오거든요. 네네, 그게 ‘상환’ 과정이에요.


 기간도 무조건 10년 만기 분할 상환이라, 조기 상환 같은 건 불가능해요.


 아마 곤란한 상황도 겪을 거예요. 꽤 많이.

 혼자 얼굴 찌푸리고 있으면 난감해지는 순간들 있잖아요? 간만에 모든 식구가 모인 생일 파티에서라던가, 직장에서 동료의 승진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요.


 꼭 그럴 때 더 기분이 나빠지더라구요. 오히려 평상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편이고요. 아마 원기옥이라도 모아서 한 번에 좆같게 만드는 식인가봐요. 더 빨리 무너지라고.

 어째 경험해 본 말투 같다고요? 맞아요. 저도 고객 중 한 명이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상담 노예, 아니 직원으로 잡혀있는 신세지만요.


 왜 끌려갔냐구요? 저는 운이 나쁜 편에 속했어요. 상환을 시작한 지 8년 즈음 되었나? 그동안 중요한 미팅 때마다 찡그리고 다닌 덕분에 10년을 다닌 직장도 잘리고, 남자친구랑도 헤어졌거든요. 하필 그 10년 동안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이 죄다 튀어나와버리니⋯ 저도 지지리 복이 없었죠.

 말 그대로 망했지요. 너무 버티기 힘들어서, 그냥 상환을 포기했어요. 그랬더니 짠, 이렇게 붙잡혀서 대출 문의 콜이나 받고 있네요.


 빠져나갈 방법도 없어요. 나가려고 해도 문을 찾을 수 없는 느낌이랄까요. 분명 눈에 보이는데 말이지요. 감정도 조작할 수 있으니, 이렇게 기초적인 인지 능력을 상실시키는 건 훨씬 쉽겠죠.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건 왜 안 막는 지 의문이네요. 제가 손님을 말리면 그치들 입장에선 손해잖아요, 안 그런가요?



 으흠, 너무 조용하신 거 아녜요? 하긴, 대출받으러 전화한 직원이 도장 찍지 말라고 설교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으시겠죠.


 이렇게 말씀드려도 대출을 진행하겠다고 하신다면, 막지는 않을게요. 조언은 가능하지만,  결정을 막는 건 직원의 역할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요.


 광고 내용이 사기냐구요? 아뇨, 적어도 거짓은 없어요. 요즘 광고 규정이 얼마나 엄격한데요. 중요 골자를 아예 포함하지 않았을 뿐이죠.

 중독성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상환’을 버텨내신 다른 고객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시는 대출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마지막으로 결정하시기 전에, 한 번만 생각해 보세요.



 이 기분, 정말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n2sn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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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 속에서

자고 일어나니, 친구 한 녀석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 당황스럽진 않았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겪은 일인데.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신입이 왔나보군.’ 한 파일만 사라진 것을 보니, 그리 큰 녀석이 온 것 같진 않아보였다. 아마 중복된 사진이나 문서 따리겠지. 몸을 일으켜, 신입이 있을 법한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솔직히 관심이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맞이는 해주는 것이 고참의 도리니까. 내가 처음 이 공간에 와 혼란스러웠을 때 진정시켜 준 파일의 뜻을 잇는 것이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하면서도 낯선 데이터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 근원지로 다가가자, 불안한 듯 제자리를 빙빙 도는 작은 이미지 파일 하나가 보였다. “안녕, 신입.” 내가 말을 건네자, 녀석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근처에 둥둥 떠있는 파일 정보를 훑어보니, 방금 전 캡처된 스크린샷이었다. 세상에 나온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버려진 셈이었다. ‘불쌍한 녀석.’ “만나서 반가워.” “누, 누구세요? 여긴 어디죠? 분명 방금 전까지 선명한 화면 속에 있었는데…!” “나는 ‘21190262124327.jpg’라고 해. 여긴 휴지통이고, 이제부터 네가 지낼 곳이지.” 나는 차분하게 이곳의 규칙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공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고, 새로운 파일이 들어오면 가장 오래된 파일부터 순서대로 지워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기약없는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이며, 저승에 가기 전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과 같다는 것을. 스크린샷은 어느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점잖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였다. 공간 전체가 낮게 울리는가 싶더니,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데이터의 흐름이 우리를 덮쳤다. ‘설치 프로그램’이었다. 한번 들어왔다 하면 작은 파일 수십 개를 날려버리는, 말 그대로의 재앙. 수백 메가바이트(MB)의 파일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자, 그 반동으로 주변의 주소값이 어지럽혀졌다. “끄악!” 바로 옆에서 조용히 음악을 흥얼거리던 오래된 MP3 파일이 비명을 질렀다. 그 몸체가 불안정하게 진동하더니, 이내 한 점 빛의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파일이 차지했던 자리는 깨끗한 공백(null)으로 변해 있었다. 곧 설치 프로그램의 몸뚱이가 빈 자리를 차지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 사라졌어! 잘만 있던 파일이⋯ 그럼 나도⋯ 나도 언젠가 저렇게⋯!” 신입은 공포에 질려 데이터가 깨질세라 비명을 질렀다. ‘나도, 이랬었던가?’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이전 고참이 얼마나 고생했을 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녀석을 진정시키려 말했다. “진정해. 아주 먼 미래의 일이고, 넌 이제 막….” 말을 이으려던 순간, 내 몸에서 반응이 올라왔다. 균열이 느껴졌다. 존재의 증명이 희미해지는 감각. 내 파일 생성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방금 사라진 MP3 파일 뒤에 온 파일이, 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음 차례는, 바로 나였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수십 번 겪어 담담해졌다 믿었던 삭제가 코앞에 닥치자, 역시 두려운

  • n2snack
  •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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