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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 작성자 임세헌
  • 작성일 2025-08-01
  • 조회수 480

음악이 울려퍼졌다두 번째 전화기가 울렸다나는 서둘러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다전화기를 들었다.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시는군요.

모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나는 뒤를 돌아보았다턴테이블 위에 빌리 홀리데이의 LP가 돌아가고 있었다여자는 어떻게 알았을까너 누구야라고 내가 말하기 전에 여자는 자신의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텔레폰>이라는 곳으로 오라는 전언이었다서둘러 오지 않는다면 신고해버릴 거라는 말도 함께였다나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고 <텔레폰>으로 향했다.

<텔레폰>은 카페였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가의 지하에 있었다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갈 때마다 긴장감이 커졌다마지막 계단에서 내려와 문을 열려 할 때도망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나는 문을 열었다문은 열리지 않았다대신 문 안에서 누군가 ‘빌리’ 하고 말했다빌리?, 빌리 홀리데이를 말하는 것 일까나는 ‘홀리데이라고 했다.

환영합니다.

안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나를 맞았다나는 어리둥절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텔레폰>은 카페로 위장해 있었지만 사면이 책으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이었다한 사람이 다가왔다아마 ‘빌리라 한 사람인 것 같았다나는 빌리의 안내에 따라 중심을 기준으로 원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들은 자신이 종이책 비밀 결사라고 했다국가가 종이책 생산을 금지한 지도 서른 해가 되긴 했다종이책이 나무를 베어 환경파괴의 원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몇몇은 그것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우민화 정책의 일환이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런 반론은 이북을 읽으면 된다에 쉽게 반박되었다결국 종이책은 불법이 되었다그리고 이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민화는 시작되었다그 끝은 일종의 독재였다.

나는 목사였다목회 중에 신도들이 아이패드를 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짜증났다그러다 야동을 보고 있는 것을 본 후로 성경책을 나눠주었다하지만 낡았다고 받지 않았다핑계였지만 그럴듯한 핑계였다가장 최근 것이 서른 해 전의 것이라 당연히 낡을 수 밖에 없었다결국 불법임을 감수하고 종이로 성경을 만들어 그들에게 나눠주었다왜 이렇게 새 거예요라는 물음에는 관리를 잘 했다고 둘러대었다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어서 라고도 했고그런데 그들이 내가 종이책을 몰래 거래하던 두 번째 전화기로 전화를 건 것이다빌리 홀리데이는 도청하고 있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골 때리군.

그들은 대부분 작가였다현대문학상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도 있었고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심지어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위원도 있었다그가 나이가 제일 많았다아마 백 살이 넘을 것이다독재 정권에서 작가로 살아서인지 도청과 관련해서도 해박했다그런데 날 도청해?

전 왜 부르신 거죠라고 내가 묻자 그들은 종교 쪽 사람도 한 명 필요하지 않을까해서 불렀다고 했다무슨 일을 할 거냐?, 라고 내가 묻자 그들은 쿠데타를 할 것이라고 했다쿠데타역시 작가들이 시와 소설만 읽다보니 미쳤군그럼 난 뭘 할까요?, 묻자 기도를 해 주거나 나중에 국민적 지지가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어달라고 했다역시 언더독 서사는 이래서 위험해약자가 이길 줄 안다니깐.

작가들은 나에게 쿠데타 계획을 설명했다계획은 허무맹랑한 공상 이었다첫 단계인 <텔레폰점령( <텔레폰>이 이 주변에 처음 생긴 카페고 ‘텔레폰이기 때문에 안티-종이책안티-지성안티-도덕을 상징한다고 했다그래서 돈을 모아 인수한 후 도서관으로 바꾸었다고인수를 하는 것이 쿠데타냐 물었지만 중요한 건 상징이란다)부터 군대 장악대통령 납치까지 있었다농담처럼그것은 곳곳에 허점이 많았다뭘 할 것이다만 있었지 어떻게 할 것이다,는 부재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지했다놀랍도록 진지했다그들이 써 놓은 혁명 선언의 초고를 보자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다그들은 진정으로 세상을 좋게 바꾸고 싶어 했다자기들이 왜 쿠데타를 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읽을 땐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감화되는 것이 느껴졌다또한 그들은 많은 연구를 했다벽돌 같은 책을 여러 권 쌓아놓고 하루 종일 사회와 정치에 대해 토론했다엄벌주의에 관해철인통치에 대해제왕적 대통령제의 허점에 대해등을 토론 한 속기록이 책 3권 분량이었다그들이 세계 각국을 분석한 보고서를 볼 때는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았다고조선의 정치체제부터 줄루 왕국의 정치체제심지어 마이크로 네이션인 헛리버 공국의 사례까지 정리되어 있었다화려한 문체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보고서를 뛰어넘었다한 문장한 문장의 독보적인 사유는 경이로웠다

어때요우리가 다 갈아엎고 새로 만드는 세상은 좋지 않겠습니까?

빌리가 담배를 피며 나에게 물었다. <텔레폰>의 작가들은 대부분 담배를 폈다아니면 대마초 일수도그런데 <텔레폰>은 지하에 있어 환기가 잘 되지 않았다그래서 <텔레폰>은 항상 연기가 자욱했다또한 그들은 양주를 박스 채로 한 곳에 쌓아두고 마셨다심지어 대한민국 예술원 종신위원까지도그들의 동력은 술과 담배에서 나오는 것일까긴 탁자에 둘러앉아 담배(혹은 대마초)를 피고 술을 마시고 두꺼운 책을 이리저리 읽으며 토론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좋을 것 같네요근데 쿠데타를 할려면 이런 건 안해야죠.”

나는 빌리의 담배를 뺐어서 재떨이에 비벼 껐다빌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쿠데타는 언제 할 겁니까?”

모르겠어요쿠데타를 하곤 싶은데 생각하긴 싫네요.”

그럼 쿠데타 계획은 누가 세운 거에요?”

그건 작가들이 저한테 떠넘겨서 제가 썼어요근데 저도 생각하기 싫어서 챗 지피티한테 써달라고 했는데요.”

어쩌면 그들은 쿠데타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그 이후가 그들의 관심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작가들답게 재미는 있었다소설로 나오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긴 했다하지만 내 인생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순 없었다난 문을 나섰다작가들답게 인도주의적으로 보내주었다코에 흰 솜을 대어 마취하는 클리셰는 없었다대신 그들은 구시렁거렸다사학자도 가고기자도 가고목사는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똑같은 처지 아닌가?

며칠 후 헌금이 줄어 고민하고 있었다교회 재정이 어려워졌다눈 감고 겸직도 알아보았다.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해결책은 아니었다해결을 위해선 신도가 고령화 되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도가 없었다무교가 늘어나는 추세에 젊은 신자를 늘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또한 대부분의 종교가 정치와 영합한 가운데 노년층마저 발길이 뜸해졌다우리들 대부분은 선전기관이 된 지 오래였다나도 쿠데타를 하고 싶네나도 작가들과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았다그래서 나도 그들처럼 양주를 꺼내 마셨다마시다 보니 고민이 사라지고 행복해 지는 것 같았다오랜만에 담배도 피우려 할 때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경찰인가 싶어 나는 조심조심 확인했다다행히 경찰이 아니었다빌리였다멍이 얼굴에 가득한 빌리였다문을 열어주자 빌리는 터덜터덜 걸어 들어왔다나를 보며 주절주절 말을 시작했다역시 이야기꾼이었다.

요지는 정부에서 그들을 찾아내어 잡아갔고 그 과정에서 많이들 다쳤다는 것이다예상했던 결과지만 빌리를 통해 전해 들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그들이 고독한 투쟁을 한 것 같았다왠지 작가들에게 공감한 것 같기도 했다약간 찡했다나 역시 정부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한 방 먹이긴 했어요저항은 했어요?

그게 저항을 하긴 했는데 의미 없었어요.

나는 당장 핸드폰으로 뉴스를 찾아보았다쿠데타라는 자극적인 소재였지만 기사는 3건에 불과했다그 중 하나를 눌러 보았다경찰들(특공대가 아니라 야광조끼를 입은 평범한 경찰이었다) <텔레폰>으로 들어가 작가들을 빼내고 있었다대부분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경찰들에게 손쉽게 제압당했다대신 그들의 앙상하거나 아니면 살이 뒤룩뒤룩 찐 몸이 드러났다뉴스는 경찰이 빌리를 찾는다고 하며 끝났다.

나에게 강한 지적의 욕구가 생겼다나는 빌리에게 아쉬움과 호통을 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말했다.

당신들그러게 운동 부족인 사람들이 많더라당신도 평소에 운동 좀 하고 살 좀 빼지시간 없으면 조깅이라도 하지 작가들아.

임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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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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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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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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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01 00: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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