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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변성룡

  • 작성자 지존
  • 작성일 2025-09-28
  • 조회수 685

 하늘은 생의 높이, 바다는 생의 깊이.

 자연에 풀어 말하면 높고 깊음도 잴 말이 있고 삶은 푸르른 형체를 얻는 것이었다.


 아마 갑진년의 이야기였다. 바닷길을 통해 명으로 사신을 가던 행렬이 있었다.


 바다의 그날 변덕은 물너울을 탄 사행단에게 온후한 은덕이었다. 눈 닿는 데까지 자르르한 대해는 하늘보다도 평온했고, 만경장파를 아우르며 뻐끔일 포말은 천공을 지키는 행운行雲보다도 잠잠했다. 굳은 얼굴의 사공까지 수면의 부드러운 일렁임을 즐길 수 있는 한때였다.


 노곤한 조천사 일행을 싣고 수평선을 몇 번이나 가르며 나아가던 배는 눈앞에 불쑥 솟은 해도에서 멈추었다. 뭍에서 몸을 풀고자 잠시 닻을 내린 이들은 모래톱과 수풀로 이루어진 작은 땅의 거죽을 체감했다.


 제법 오래 머무른 뒤였다. 이색의 수목과 연안 천해상의 조화로 원기가 난 사행단은 마저 이동할 채비를 마쳤다. 종사관은 축추근한 목화에서 펄을 털었고, 사공이 가라앉힌 닻을 거두어들였다.


 이변의 신호탄이었다.


 시작은 한 줄기 낯설고 스산한 바람이었다. 불어온 방향은 섬 안쪽이었다. 특별히 의식할 규모의 실체성은 아직이었다. 그러나 흐름의 강도가 거친 실타래 격으로 부상하더니, 이내 줄기줄기 찢어지고 뻗어 나가 선체를 휘감는 번듯한 위협이 되었다. 적재한 짐이 요란하게 부대꼈다. 일행은 공통된 불길한 예감으로 눈빛만 교환하기 바빴다.


 노련한 사공은 굳기도 잠시, 서둘러 배를 물리려 들었다. 하지만 분주한 대처를 섬은 읽은 양 매서운 바람을 새끼줄과 같이 꼬았다. 수 셀 수 없는 맹풍 가닥을 삭도해 탄생한 회오리가 휘두른 도끼날의 양상으로 날아오자 돛은 울부짖을 따름이었다. 나아가기는커녕 금방이라도 뒤집힐 처지였다.


 선체가 휘청거리는 틈에 격랑이 일어나 배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순하던 물결은 배를 앞으로 밀지는 못할망정 뒤엎겠다는 기세로 사납게 뱅뱅 맴돌았다. 이 지경의 해안은 소용돌이치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마치 배곯은 섬이 숨을 불어넣어 바다를 어지럽히고 제물을 받아 가려는 듯했다.


 순식간에 무력해진 사행단은 그저 어안이 막혀 있었다. 그러자 사공은,


 “필시, 배 안에 용왕이 가지려는 물건이 있는 까닭입니다. 앞서서 공양하면 무사하겠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 위태로워집니다.”


라고 비장하게 말을 꺼냈다.


 미신도 위기 속에서는 실학이라고 삼사신三使臣의 귀중품까지 명에 진상할 방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건을 내던지고 변화를 살폈지만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에 사공이 서둘러 나머지 지식을 보탰다.


 “그렇다면 잡으려는 인간이 있어서 이럴 겝니다.”


 사행단은 일행을 한 명씩 섬에 내려놓는 방식으로 사공의 가설을 시험했다. 정사의 주도로 차례차례 하선해 보았으나 아무 차이가 없어 전원 배로 복귀했고, 마지막으로 역관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가 배를 뜨기 무섭게 주위가 조용해지는 게 아닌가.


 이윽고 여럿이 입을 모아 말하였다.


 “안타깝게 되었다지만은 어쩌겠는가?”


 그들은 역관이 소지했던 행장을 꺼내 건넸고, 식량도 잔뜩 내려놓았다. 결국 두고 떠나기 위함이었다.


 그곳은 원래 누구도 살지 않는 빈 섬으로, 짐승조차 없이 울창하게 우거진 녹음 덩어리 한 점이었다. 막막한 환경에 홀로 남은 역관은 작두를 들었다. 굵직한 나뭇가지를 잘라 급한 대로 토대를 세우고 찢은 포대로 지붕을 이었다. 엉성한 집 한 채를 얽은 그가 밤이 되어 마련한 잠자리에 누웠는데, ‘쉬이익’ 하는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레 내다본 곳에는 바닷가를 꾸물텅 누비는 거대한 이무기가 있었다. 몸뚱이가 집채만 하고 수십 길이나 되는 녀석은 섬의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한참 후 내려왔다. 푸릇푸릇한 비늘을 뒤척이며 ‘쉬익, 쉬익’ 내는 농밀한 괴성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역관의 심장을 조였다.


 이무기는 이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 나타났다. 가고 오는 길도 정확히 일치하여 조금도 이탈하는 법이 없었다.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었던 역관은 다시금 작두를 들었다. 대나무를 깎아 끄트머리를 뾰족하게 다듬은 수백 그루를 해안에 심었다. 노정을 드리우도록 촘촘하게 꽂은 채 생물의 출현을 기다렸다.


 그날 밤도 여지없이 이무기는 바다에서 나왔다. 다니던 경로를 취하던 중 얼마 전진하는가 싶더니 딱 멈추어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엎어진 상태로 꼼짝 않는 녀석을 명일의 해 아래에서야 접근해 확인했다. 속이 터져 사력을 다한 모습이었다. 역시 줄줄이 늘어선 대나무 못을 지나가다가 가슴부터 배까지 찢겨 버린 모양이었다.


 며칠을 넘기자 뜨거운 태양이 섬을 무두질했다. 이무기는 썩어 문드러져 온 섬을 요동치게 하는 악취로 범벅이 되었다. 역관은 부란한 이무기를 해체해 고약한 고기를 바다로 던졌다. 덩치 탓에 안 그래도 오래 걸릴 작업을 악취의 방해까지 업고 하려니 영영 쓰러질 맛이었다. 생물이 형체를 잃을 즈음 주검이 있던 자리 밑을 보니 크기가 제각각인 명주明珠가 널려 있었다. 이무기의 비늘을 닮은 청색으로 양이 두 섬 남짓이나 되었다. 역관은 갈대로 가마니 두 개를 짰다. 구슬을 채워 넣은 다음 반반한 조약돌을 주우려 해변을 수색했다. 구슬 위를 모은 조약돌로 덮자 속은 보이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 같은 사신의 선단이 섬을 방문했다. 무사히 생존한 역관을 목격한 조천사들은 놀라운 마음에 환성을 지르며 섬에 배를 대고 그를 맞았다. 자연스럽게 가마니를 옮겨 싣는 역관에게 누군가 궁금증으로 물었다.


 “무엇이오, 이게?”

 “직접 주워서 모은 조약돌인데 내가 몹시 아낀다오. 실어주기 바라오, 짐이라고는 이것뿐이오.”


 그가 무탈히 살아 있다는 사실로 족한 일행은 따지는 대신 흔쾌히 가마니를 실었다. 아무도 명주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사히 돌아온 역관은 명주를 팔아 치웠다. 일부는 나라 안에, 일부는 왜관倭館에 팔았다. 대단한 가치가 매겨지어 구슬은 수십만 금의 돈으로 바뀌었다. 역관은 마침내 거부가 되기에 이르렀다......


 무인도에서 이무기를 잡아 부자가 된 역관의 배 아픈 일화 정도였다면 감사할 노릇이다. 과연 귀로에서 명주의 정체를 알아차린 이는 전무했다. 물론 역관도 무지의 일부를 맡고 있었다. 일개 역관에게 영물, 혹은 요물의 알을 분별할 능력은 결여되어 있던 것이었다.


 이무기의, 알.

 조선 각지에서, 이에 더해 퍼져 나간 외지에서, 일제히 부화한.


 하늘은 생의 높이, 바다는 생의 깊이. 이무기는 바로 그 사이를 사는 존재다. 수행의 삶으로 바다의 깊이를 얻고, 승천해 용이 되어 하늘의 높이를 얻는다. 이무기의 몸은 길고 푸르러, 물결이 뻗어 오르는 순간을 닮아 있다. 대해의 밑창에서 탄생을, 대공의 천장에서 재탄생을 영위하는 이치이다.


  위를 향하는 것은 이무기의 본능이다. 깊이를 깨우쳐야 높이를 감당할 수 있기에 이무기는 바다에서 자라난다. 다른 환경은 가당치 않다. 일례로, 육지가 근원 되는 이무기의 사정은 다르다. 지면은 생명을 품되 생명에게 깊이를 품으라 하지 않는다.


 깊이를 모르는 것의 높이는 허공의 무게에 무너져 내린다. 이런 이무기는 결국 추락하여 물결 같은 몸을 땅에 묻을 운명이다.

『어변성룡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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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에요

    선생님 진짜 글 너무 잘 쓰십미다,,,특히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삽입 문장이 너무 좋네요

    • 2025-11-21 15:21:20
    별무리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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