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기원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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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원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기원이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에. 정신을 지탱하고 있을 기원의 뿌리는 살아 있어야 하며, 그는 악착같이 목련을 견뎌내야 한다. 그런 기원의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서, 내 장래는 항상 장례를 준비해야 했다. 기원이 가지고 있던, 근래 기억부터 서서히 목련에게 잠식당하고 있기에. 한세월을 버틴 나무가 여러 바람으로 조금씩 나이테가 깎여 갔다.
3월은 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다. 오전에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신입생들과 서서히 봉우리를 피려는 목련을 보면, 봄 같기는 한데. 강원도 산간 지방은 5월까지 눈이 내린다고 한다. 눈과 봄은 잘 어울리지 않지만, 강원도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집의 창문은 밖에서부터 서서히 하얗게 얼어갔다. 벚꽃이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벚꽃은 아니다. 차갑고, 시린 알갱이들이 서서히 그곳에 서려 간다. 눈이 올 것 같아. 목련이 기원의 몸에서 깨어난 이후로 봄엔 눈이 자주 내렸는데. 오늘도 내리고 있다. 기원과 함께 바라보는 거리는 투명하다. 아무것도 우리 앞에 없는 것 같지만, 투명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불안정함 그런 것이, 목련이 기원의 몸을 사로잡는 주된 시간으로 만들었다. 기원은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정신이 더 오락가락한다. 그럴 때 그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때 쓴다. 기원의 입가에 보이는 주름과 할아버지인 기원의 미소에는 왠지 모르는 불안함이 숨어 있었다.
“할아버지, 저기 눈이야. 예쁘지?”
“어, 빨리 공장 가서 눈 치워야겠다.”
“할아버지, 우리 공장 팔았잖아.”
기원. 할아버지. 그는 복강경 수술을 받기 전까지, 붙들고 살았던 고천 공업단지에 자신이 만든 뿌리를 아직도 들고 오지 못했나 보다. 그의 계절은 아직도 2024년도 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목련은 아직 꽃을 다 피우지 못했나 보네.
할아버지는 약한 힘만 줄 수 있는 몸으로 나를 약하게 미셨다. 그의 힘에 나는 밀려 나가지는 않았다. 그가 쥐고 있는 힘은 이 정도뿐이었다. 내가 다리에 힘을 쥐고 버티면 밀려 나가지 않는 정도. 할아버진 나를 치고도 나를 쳤는지도 모른다. 무감각했다. 제 피부가 까진 것도, 제 나이가 여든이 가까워지는 것도. 나이를 먹을수록 피부를 포함한 신경세포는 고통을 빠르게 알아차리지 못하다던데. 그가 딱 그렇다. 할아버지는 목적도 지각도 없이 본능에만 충실했다. 그저 짜증이 나면 연초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등으로 제 몸을 망가트렸다. 지금도 봐라. 공장을 팔았다는, 그리고 공장이 팔렸다는 소식에 또 담배를 찾는 것. 제 주머니를 뒤지고, 담뱃갑을 뒤지고. 그러나, 그의 어딘가에도 담배 한 개비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 새벽에 할머니가 사 준 담배를 모두 다 피운 것이다. 할아버지는 혀를 차며, 나와 동생이 같이 자는 중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하나, 하나 오를 때마다, 힘이 뺏길 것 같은 다리로. 계단을 향해 올라갔다. 나나 동생이 모아둔 돈을 찾으려고 그렇겠지. 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나를 바라보든, 이상하게 보든. 그곳은 내 방이기에, 나는 내 방으로 향하는 척했다.
복층에 다 달았을 때, 할아버지는 동생의 저금통에 있는 1,000원 지폐 세 장을 잡으셨다. 애상과 다른 것이 하나가 없었다.
“할아버지, 우리 대장 학교 갔어도. 우리 대장 저금통 건들면, 대장 지랄 나요.”
“쉿.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내가 과자 먹고 싶어서 그래.”
“무슨 과자? 구름과자? 집에 널린 게 군것질인데. 오늘 많이 피셨어. 그만 드셔요.”
“아잇. 뭘 많이 펴. 하나도 못 폈는데.”
그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세상에서는 이게 진짜겠지. 그러나, 비밀이라고 했으면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밑에 있던, 할머니를 포함해 옆집 502호, 501호 이웃들도 다 들은 것 같았다. 이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삐걱거리는 관절과 함께 삐걱대는 계단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아주 큰 목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분노였다.
“야! 이 영감이 미쳤나. 얘기 돈을 왜 훔쳐. 얼마 훔쳤어.”
“훔치긴 뭘 훔쳐. 공장에서 일하고 3,000원 넣어 줄 거야.”
“야, 3,000원으로 뭐 사게. 담배? 너 쪽 팔리지도 않냐? 슈퍼에서 이 돈으로 누가 담배 줘.”
“김 사장이 주겠지. 뭐.”
“아이고, 하나님. 제가 그렇게 기도하고 기부하고 착하게 살았는데. 저놈은 왜 벌서 노망이 왔나요. 정신만 가져가지 말고 영혼도 좀.”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선을 넘으셨다. 신에게 뭐, 정신이랑 기억도 떠났으니까 장례를 치르는 게 낫다고? 물론, 할아버지의 행동이 정상일 때보다 버거운 것은 맞다. 사람 말 안 듣고, 무대꼬로 집을 나가니. 그러나, 할머니의 기도를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계단은 삐걱거렸다. 목련에게 잠식된 그의 일부의 자존심도 조금씩 우울감으로 저물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또 어디론가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목련이 그를 덮치면서 기원 주변에는 살던 사람들이 예민해졌고, 경계가 늘었으며, 집 안에서 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는 것만 할 수 있었다. 나무를 찾는 것보다 나무가 다시 나무로 돌아오길 바라는 것처럼.
할머니 복장뼈 주변을 약한 힘으로 여러 번 두드렸다. 아파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아픔과 슬픔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쪽팔림과 원망이 그녀의 얼굴에서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본인은 아주 열심히 기도하고 기부하고 찬양하고 찬송했는데, 신보다 더 강해지고 있는 사탄·마귀가 우리 가족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이. 본인의 아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가고, 본인보다 잘 살았던, 오 여사가 한순간에 망했어도 행복하게 사는 것과 대비되어 보였기에.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집을 나간 순간부터 늘 앉아서 기도했다. 두 손을 모으는 게 아닌, 복장 치는 것으로. 그의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거나, 혼도 같이 신 옆에 데려가 달라고 죄를 짓는 기도를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쉽게 죽지도 치매 판정이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인지 기능 장애. 신은 우리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고, 더 옆에 있고 싶다는 목련의 바람만 들어줬다. 한 시간, 하루, 일 년. 할아버지의 행동은 반복됐다. 그래도, 20분 넘게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면, 할머니는 내게 그를 데리고 오라 시킨다. 오늘도, 할머니는 찬 봄바람을 맞고 돌아올 할아버지를 위해 커피믹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할아버지가 입을 수 있는 두툼한 낡은 패딩을 나에게 줬다.
“아가, 미안한데. 할아버지 데리고 영원이 데리러 갈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우리 송 대장 데리러 가야겠네요.”
“조심히 다녀와.”
그녀는 내 손에 꾸깃꾸깃한 종이 몇 장을 줬다. 10,000원이었다. 영원이 먹을 것과 함께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거 하나 사주라는 뜻이었다.
*
할아버지는 대부분 우리 빌라 1층에 망해버린, 정육식당 앞에 앉아 있다. 그곳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있어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잊지 않는다고. 오늘도 자신만 아는 자신만의 노력을 앉아서 하고 있다. 근데, 너무 얇은 옷 입고 나온 거 같은데. 너무 추우면 목련뿐 아니라 몸체인 할아버지까지 얼어 버릴 텐데.
“할아버지, 영원이 데리러 갑시다. 잠바 입으셔요.”
“벌써, 영원이 데리러 갈 시간이냐? 왠지 춥더라. 내가 갈게. 별사탕으로 가면 되는 거지?”
“할아버지, 영원이 벌써 초등학생이에요. 저랑 같이 가요.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면 돼요.”
할아버지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그의 손이 바닥의 먼지로 더러워졌고, 그는 그런 그의 손을 내가 준 본인의 낡은 패딩에다 털었다.
“내 손 잡으시지.”
“아니야, 이렇게 흙먼지 가지고 노는 게 좋아.”
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그와 함께 영원이가 있는 학교로 향했다. 기원은 그런 나를 머쓱하게 바라보며, 바람을 맞는 손을 떨며 흥얼거렸다. 바람 역시 그에게는 그리움이자, 다시 함께하고픈 놀이인 것 같았다.
단둘이 이렇게 걸어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어쩌면, 기원이 구석으로 밀려나고, 목련이 그의 중앙으로 자리 잡은 뒤로는 처음인 것 같다. 불안함과 정적만 흘렀다. 그저 재빨리 영원이에게로 가고 싶은데. 가는 길은 도보로 5분이었지만, 둘만 걷는 5분은 생각보다 길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목련은 어느 순간 어디에서의 기원을 기억하고 있을까. 목련을 처음 봤던, 그의 맹장 수술 때였나?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5분을 걷는 거보다 궁금한 걸 알아내는 게 덜 어색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 이제 걷는 거 좀 괜찮으셔?”
“아이, 몰라. 죽어라 일 못하는 게 아프지. 아프면 좀 어때. 설마 죽기라도 하겠냐.”
“그래, 근데 심심하진 않으셔?”
“담아야 할 게 너무 많아. 다 피우고 몸에 다 담고 싶은데. 돈이 없네.”
“이번 생에 받은 거 너무 많지 않아?”
“받은 걸, 다 담아내고 싶은데. 왜 이리 빨리 크냐. 어제만 해도 너 학교 다녔는데. 언제 대학 같냐.”
“응, 그렇게 빨리 컸어. 나도, 영원이도, 아빠도 암튼 영원이한테 가자.”
이 말을 끝으로, 우린 영원이한테 걸어갔고, 찬 바람을 얼굴로 맞았다. 지금 가지고 있는 기억은 좋았던 거 빼고, 다 목련이 다 가져가 버렸구나. 지금 할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2024년도 이전까지의 기원. 그마저도 맹장 수술 당시 병원 앞에 하얗게 피었던 목련에게 서서히 갉아 먹히고 있었다.
*
2024년도, 초봄. 할아버지가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시절. 그 당시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그해 목련이 저물어 갈 때쯤 자퇴했는데. 할아버지가 일만 하셨을 때 입학해서, 할아버지의 기억이 갉아 먹힐 때, 자퇴해서 그런지, 할아버진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고, 지방의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왜 지방으로 왔는지. 어째서 내가 1년 넘게 그와 할머니 곁에 머물러야 했는지. 이런 건 상관없었다. 차라리 그가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또 일하러 나간다고, 난리를 칠 게 뻔하니. 나는 그가 목련이든지 기원이든지 할아버지도 가늠하기 어려웠을 때의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낸 적 없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모두 이걸 바라고 있을 테니.
저기 멀리서 우리 집 대장 송영원이 뛰어 내려오고 있다. 붉은 모자를 입고 내리막에서 구를 듯 떨어지고 있다. 그런 영원이의 모습에 할아버지 입가에는 은은한 표정이 햇빛에 맞았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춰서 떨어지는 그를 받아 내려고 했다. 떨어져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할아버지, 조심해. 그러다가, 또 터지면 우리 골치 아파.”
“이런 걸로, 또 터지지는 않는다.”
그는 무뚝뚝하게 혹은 봉우리 사이에 숨어서 휘청이는 꽃잎같이 목련은 덤덤하지만, 피어나려는 의지를 돋보였다. 기원이 망가지면, 자신이 기원의 전체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를 일으켰다. 그는 툴툴거렸지만, 이런 대접이 싫지는 않은지, 그저 나와 영원이를 번갈아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우리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영원이는 덥석 할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할아버지의 두 팔이 영원이를 감쌌다. 말려야 하는데. 영원과 할아버지는 아픔을 무시하고 그저 웃었다. 둘이 춥지 않을까? 그래도 웃는 모습이 우는 모습보다는 좋아. 그들은 몇 분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거리를 걷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바라보며, 과하다고 생각하겠지.
학교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학교 근처 절에 있던, 작은 목련들이 흩날렸고, 귀에서 이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이명은 멈출 생각하지 않네. 학교에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만 들려오면, 귀는 민감하게 받아드린다. 아직 나는 이 사건에 대해서 이겨내지 못했구나. 계속 들려오는 얇고 긴 “삐_” 소리. 나도 모르게 나는 눈시울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책가방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면서, 영원이의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장난치지 마. 어서, 일어나. 우리 집 가자.”
할아버지가 몸을 쭈그리셨다. 이명인가? 아님, 고통? 어쩌면 목련이 기원을 완전히 잡아 먹었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영원의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할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그는 제 이빨을 깨물며, 웃음인지 울음인지를 참고 있었다. 이명과 망상 사이의 미묘한 무엇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일단 저기 슈퍼까지만 걸어 봐요.”
나는 할아버지가 놓은 영원이의 책가방을 들고, 한 손에는 기원. 한 손에는 영원과 그의 가방을 짊어지고 단골 슈퍼로 걸어갔다.
슈퍼에 거의 다 왔을 때, 할아버지는 내 손을 놓으셨다. 이제, 좀 진정된 것 같은데. 우리 세 명은 할머니가 준 10,000원을 가지고 영원이의 간식거리와 할아버지의 담배를 사려고 했다. 이렇게 담배를 사려고 했던, 할아버지에게 슈퍼 사장님은 할아버지와 우리에게 오지랖을 부렸다.
“아이고, 영감님. 담배 그만 피라고, 권사님이 안 그러세요?”
“아니, 내가 피긴 뭘 많이 펴. 한 여사가 말하디?”
“아이, 걱정되시니까. 송 집사님 걱정되니까. 한 권사님이 그런 거지.”
“양 사장, 우리 마누라 하는 말 더 거짓말이야. 기억이 깜빡깜빡해. 나 오늘 한 대도 안 폈어.”
편의점 사장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는 어색한 미소로 나를 바라봤다. 진짜냐고 묻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아직, 자기한테 목련이 없다고. 목련은 기원이 없다고 생각해서 일어나는 평소 같은 일이다. 이런 내 눈빛과 표정을 그녀는 읽었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영원이, 형. 9,900원이야. 영감님, 다음에는 담배 말고, 다른 거 팔아주세요.”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편의점을 나왔다. 한 봄에 눈발 같은 꽃비가 쏟아져 내렸다.
*
집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전을 부치고 있었다. 머리에 좋은 서리태로 만든 두부를 갈아 참치와 얇게 다진 미나리를 부친 전이었다. 역시 오늘도, 그녀의 손은 많이 크다. 일인 일전이 아닌, 일인 세 개의 전을 먹어야 했다. 영원이는 할머니가 부친 전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할아버지는 그런 영원이가 귀여운지 의자에 앉아 웃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모습에 전은 점차 차가워졌다. 음식이 차가워지면, 음식을 만든 사람이 속상할 텐데.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크게 소리쳤다.
“야. 어여 앉아 전이나 먹어. 오늘 전 맛있게 부쳐진 것 같다. 겉 봐라. 맛나 보이지?”
“아휴, 근데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하셨어.”
“이렇게 먹어야, 저 늙은 인간 정신 돌아오지.”
이 말을 끝내고, 그녀는 마지막 남은 전을 부치고, 시원한 아이스 믹스와 함께 우리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먹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많이, 그리고 크게 먹으라고 손짓했다. 목련에게 잠식되어가고 있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똥십은 표정 같았다. 그래, 음식이 약인 거지. 그러나, 전의 맛은 그 어떤 전보다 맛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역꾸역 그녀가 만든 약을 먹었다.
간신히, 전을 다 해치우고, 영원이는 할아버지와 놀려고, 베드민턴 채를 가지고 복층으로 올라갔다.
“할아버지, 계단 쪽에서 하지 마시고, 영원이한테 너무 쿵쾅거리지 말라고 해주세요. 여기 방음 잘 안돼.”
할아버지에게 이 말을 전해줬는데, 할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파여 있었다. 그녀는 나를 부르고, 진지하고, 투명한 이야기를 했다.
“아가, 할머니 당분간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해도 될까? 할아버지랑 영원이 오전에 부탁하려고.”
“아니, 갑자기 왜?”
“너도 대학 가야하고, 저 영감이 남긴 빚도 어느 정도 청산해야지.”
“근데, 내가 대학 가면, 할아버지는?”
“음, 저놈. 데리고 보건소 가서, 치매 검사받고, 내가 돌보면 나라에서 인정해줘. 활동으로.”
“근데, 선망인지 인지장애인지, 치맨지 확정은 없지 않아? 엄마한테도 물어봐.”
할머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현재 할아버지에게 들러붙은, 그날의 목련이 치매라는 확률은 높지만, 판정까지는 쉽지 않기에. 그녀는 입술만 떨었다. 집안을 휘감는 것은, 영원이 뛰어노는 소리뿐.
“일단, 엄마 오면 이야기하고, 아빠 와서 한 번 더 이야기하자. 대학 가서, 내가 알바해도 되는 거고.”
“할머닌, 네가 대학이라도 대학처럼 생활했으면 좋겠어.”
할머니는 나를 보지 않고 조용히 내뱉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의자를 집어넣고. 영원이와 할아버지가 있는 복층으로 올라갔다. 점차 얼굴에 물이 맺혀 갔지만, 흐르지는 않았다.
*
목련이 할아버지를 갉아 먹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사주며, 현실이며 그와 관련된 장례를 치렀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수술이 있기 전까지, 난방도 잘 들어오지 않는, 컨테이너 건물에서 텔레비전을 봤다. 혹시나, 급하게 정비가 필요한, 화물차가 공장에 올 수 있으니까. 그날은 레미콘 한 대가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비록, 오일이었지만.
그러나, 화물차는 그의 전성기만큼 들어오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카센터가 늘어났고, 외제 차나 새로움을 정비하지 못하면 쉽게 도태되는데. 할아버지가 지회장이었던, 의왕시 자동차 공업사 지회는 나날이 갈수록 회원 수가 줄어들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지회 금은 항상 부족해졌고, 총무에게 줄 돈을 모으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회를 유지해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난리를 쳤지. 그래서, 그가 그때 남은 것은 공장을 샀을 때의 은행 대출금과 코로나를 견딜 기력뿐이었다. 그러니, 몇 년 만에 들어온 정비가 얼마나 반갑겠어. 그날 할아버지는 두 시간 정도 찬 바람을 맞으며, 오일을 가르셨다. 그게 할아버지가 했던, 그가 끝마칠 수 있었던, 마지막 정비였다. 정비가 끝나고 공장 위층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계단에서 쿵!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계단에 쓰러졌다. 그의 시선이 점차 흐릿해졌고, 이를 본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이끌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그게 그날 전부였고, 나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의 마지막은 결국 그해 작년의 나처럼 어딘가로 떨어질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나의 명줄은 비교적 짧다고 유명한 무당이 말했다고 한다. 우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만나야 하며, 액땜해도, 고비만 넘길 뿐 죽어야 할 만큼의 기억은 저승으로 가버린다고 했다. 우리 집이 점쟁이 말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학원에서 기절했던 것과 과도한 이명과 여럿 잔병치래 부상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것을 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해 입춘을 넘기고, 오이도에 있는 그 무당집에 같이 가봤다.
그는 *박수무당이지만, 여자 동자신을 모셔서 그런지, 그는 꽃도령 같았다. 그런 그가 눈이 뒤집히고, 사탕을 빨고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크게 인상을 썼다.
“야, 전쟁통에서 어렵게도 살아남았구나. 네 형이 너 보고 있어. 삼재구나. 목련 잎 피는 계절을 조심해라. 욕심 놓지 않으면, 네 형이 널 가지거나, 목숨이 건너갈 줄 알아. 기원아.”
그는 할아버지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예지를 쐇 부쳤다. 할아버지에겐 형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 그의 말은 못 믿었는데, 그의 표정과 눈깔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 이렇게 된 게 다, 목련이 펴서 그래.
그런 박수의 말처럼 할아버지는 맹장 수술을 강행했고, 결국 선망과 치매 사이에 서 있게 됐다. 이런 기원을 영원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기원을 잡도리시키는 것처럼 움직이게 했다. 계단을 오를수록 할아버지의 헐떡임과 영원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레이저 광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영원이가 할아버지에게 장난감 총을 쏘기 시작했다. 기원이 이 소리를 들으면, 목련 때문에 힘들어할 텐데. 역시나 기원은 영원에게 “쏘지 마세요. 우리 아기 쏘지 마세요.” 응얼거리며 외쳤다. 하지만, 영원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이용하여, 순수하게 그를 쐈다. 기원이 몸을 움튼다. 이제야, 인지한 거니? 그의 영혼이 서서히 누군가의 영혼이었을 목련에게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을.
*
빠르게 기원에게 달려갔다. 기원의 땀구멍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누군가를 향한 우리로서 해석하지 못하는 언어들이 나왔다. 그런 그의 모습과 반대로, 영원은 계속 총소리를 내고 있었다.
“야! 송영원. 그만하라.”
영원에게 잔소리하고 싶었지만, 잔소리를 마칠 수는 없었다. 장난감 총에서 나오는 불빛이 우리를 향해 감싸고 있기에. 영원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자신이 지은 일을 아는 듯이. 할 수 없이 잔소리 대신, 명령을 내렸다. 할머니를 불렀다. 할아버지가 이상하다고.
그때부터 목련이 그를 숙주로 삼은 것 같다. 기원은 나를 한 번 쓱 바라보더니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내 무릎을 잡았다. 마치 어린아이 혹은 나를 붙잡는 과거처럼. 목련은 생각보다 많이 멍들어 있었고, 주름과 손금은 까칠까칠한, 반면 속은 부드럽고 말캉한 피부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영원은 내 손만 꽉 잡았고, 얼마 뒤 할아버지는 토를 하고 쓰러졌다.
“이 멍청한 영감아, 누가 죽으라고 했니? 일어나.”
할머니의 외침에도 할아버지는 목련과 기원을 품은 채 구급차에 올라탔다. 할머니도 올라탔다. 이제, 엄마, 아빠한테 전화하고 영원과 함께 그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겁을 많이 먹은 영원이부터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라 판단하여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영원아, 네 잘못 아니야. 우선, 형아가 엄마, 아빠한테 전화할게.”
영원의 눈가에 고인 선홍색을 따라 진정시켰고, 엄마한테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하고, 엄마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
그 누구도 없이 영원과 단둘이 있는 시간은 오랜만이다. 정적만이 흘렀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어색했나?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지만, 하기 쉽지 않았다. 이건 그도 똑같겠지.
“어이, 요즘 학교에선 뭐하냐? 요즘도 그림 그리냐?”
침묵을 억지로라도 깨기 위해 물어봤다. 그러나 영원은 답하지 않고, 코만 훌쩍였다. 커서는 처음으로 마주하는 기원의 모습이 당황스럽고 어색했을 것이다. 난 그의 구랫나루 주변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영원, 진정해. 우리 엄마 기다릴 동안 뭐할까? 그림 그릴까?”
그러자 그는 뜬 것 같지 않은 눈을 뜨며 어리숙한 발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냥, 앉아 있어. 나 그림 싫어. 형아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내 그림 싫어하잖아. 보여줄라고 했는데. 다 떠났어.”
“아니, 내가 네 그림 언제 싫어했어. 그리고 난 여기 있잖아.”
“아까, 총에다가 그린 거 보여주려고 했는데, 형아가 화냈잖아.”
그렇다. 그는 장난감 총에 그린 그림과 함께 멋진 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가 단순히 노는 것이 누군가에겐 밀려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알려주지 못했다. 그저 우리도 그처럼 그를 우리 주변에서 밀려나게 할 뿐이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다음 그에게 패딩을 입혔다. 봄날의 추위에서 제 몸을 지킬 수 있게. 나는 그를 감싸고,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다행히도, 영원이는 금방 잊을 거야. 오늘의 기억을. 목련이 침식해 왔던, 나처럼. 하나의 기억과 악몽은 살기 위해 묻어져 버리니까. 밀려 나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더 공장으로 향하고 싶었던, 기원과 그 학교 주변을 매번 돌고 돌았던, 나. 그리고 매일 살기 위해 뛰어다니는 여러 사람 모두. 그를 감싸 안으며 여러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매일 밤 들려왔다. “나가라.” 고등학교 담임의 목소리다, 이걸 이겨내려고 매일 할머니와 영원이를 데리러 간 거고, 오후마다 하교하는 중고등학생 틈을 향해 거슬러 올라갔다. 이것도, 일종의 목련이자, 그때 내 몸이 느꼈던 감각을 버리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귓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학교의 모든 수업을 방해했다. 트림과 딸꾹질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소리가 위산과 함께 내 내부에서 퍼져갔다. 내 몸에서만 들리는 줄 알았는데. 이 소리는 내 외부까지 퍼져갔고 이는 곧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행위다. 그래서인지 학교 주변 냄새와 종소리만 들리면 위액이 조금씩 목 위를 태우는 느낌을 날이 지날수록 더 받는다. 그래서 한 자퇴이긴 한데, 무뚝뚝한 선생님의 표정과 말투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때, 햇살이 참 밝았고, 학교 종소리는 여느 날처럼 맑았는데. 그런 풍경과 다르게 내 내부 장기는 곪아갔는데. 자퇴하고 난 다음에 할아버지가 그렇게 됐다. 참 누구와 짠 것처럼.
할아버지가 기원과 목련의 기억이 오가면서부터 그를 보고 있는 할머니와 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조심히 담고, 내 상황도 정리하고 싶었지만, 노쇠하고 최근 기억이 사라져가는 한 노인에게 화를 내지 않고, 조곤조곤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엄마에게도, 현존하는 인물 중 그와 가장 오래 산 할머니 역시 그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글로 나를 정리할 힘과 나를 분해하고 정리하면서 들쳐 보이는 나의 역류를 간담하는 것 역시 몸과 마음 모두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를 요양원에 보내려고도 생각했지만, 요양원도 쉽게 늘 수 있는 처지도 안됐다. 그는 최소한 가족 얼굴과 기억 능력 제외 일상생활은 가능은 하니까. 치매 진단도 떨어지지 못했기에. 그래서, 글도 멈추고 대학 진학도 잠시 멈췄는데. 기원은 오늘도 점점 기원이었던 자신을 목련에게 먹히고, 가장 기억하기 싫은 기억만 이제 남아 있겠지.
*
보험계약을 막 끝내고 온 엄마가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우리를 한 번 꽉 안아주고, 얼굴을 마주 봤다.
“얘들아, 괜찮아?”
그녀의 다정다감하면서 떨리는 목소리에 영원이는 엄마의 품을 더 꽉 조였다. 나랑 있었어도, 오늘 같은 상황이 무서웠을 거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고 엄마의 동공은 살짝 흔들렸다. 안 좋은 소식은 아니겠지.
“엄마, 아빠는 뭐래?”
“아빠, 회사에서 급하게 왔어. 할아버지 소식 듣고.”
“많이 안 좋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 다행히 링거 좀 맞고, 검사 조금만 받고 모시러 갈 거야. 너도 나갈 준비해.”
“응”
나는 내 방에 들어가 옷을 꺼내다가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낡고, 더러워진 하모니카였다. 우리 집에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이 있었나?
하모니카를 보니 쓰임을 다 한지 상당히 되어 보였다. 이거 영원이가 어느 구석에서 꺼냈을 것 같은데. 그러나, 이를 본 영원은 이걸 한참 동안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영원이에게 이런 하모니카를 사줬던가? 그에게 물었다.
“이거, 할아버지가 옛날에 나 줬어. 근데 더러워서 못 불었지만.”
그의 말을 들어볼 때, 이 낡은 하모니카는 할아버지의 것이라는 소리인데. 일단,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하모니카를 의자에다 둔 뒤 패딩을 입었다. 잊힌 것은 잊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나와 엄마는 준비가 끝난 뒤, 재빨리 신발을 신었지만, 영원이는 늦장을 부렸다. 내가 의자에 잘 놔둔 하모니카를 꾸역꾸역 집어 들었다. 진짜로. 그래도, 기원이 이걸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기뻐할 것 같으면서도 더 괴로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영원의 똥고집. 정확히는 할아버지가 찾고 있던 것이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우리가 밀어내면 안될 것 같았다. 그런 모습에 엄마는 영원이와 눈 맞추며 당부했다.
“이거 가져가서 할아버지 보여는 주는데. 병원에서 불면 안 된다.”
“내가, 바보야? 나 보여주기만 할 건데. 엄마랑 형안 걱정쟁이.”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짙게 꼈다. 그러나, 우린 밀려가고 있다. 그를 향해. 하지만, 결코 밀려나는 것은 아니라고, 영원의 미소가 말한다. 그래, 기원이 좋아할 거야. 설령 기억이 나지 않아서 뿌리치더라도, 목련이 그의 밀려 나간 기억만 남기진 않겠지. 웃으니까.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할아버지에게 가는 거리는 꽤 멀었다. 그의 차트가 있는 병원이 수원이 아닌 안양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아빠와 엄마도 웃었다. 기원이 목련에게 완전히 잠식당했어도, 완전한 잠식은 없을 거라 믿었기에. 그럼에도 그들의 눈동자는 순수하고 무던한 영원의 눈동자와 달리 흔들렸다.
웃음소리 사이로 불쾌한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이 불었다. 그는 먼지를 다 들이켜 마셨을 텐데. 영원이 헛기침했다.
“그러니까, 불지 말라니까.”
그는 혼이 났지만, 결코 혼에 몸을 담지는 않았고, 그저 노래만 불렀다. 어린 것이 뭘 안다고. 할아버지가 지금 이렇게 된 게 제 탓은 아닌데. 뭐.
*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의 팔을 꽉 잡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저 둘이 저렇게 손잡고 있는 걸 얼마 만에 본 거냐. 그러나, 할머니의 표정도 할아버지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기원과 할머니의 입술은 계속 움직였고, 뭔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원이 형이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아, 여보. 우리 형 죽은 거야?”
“입이나 다물어요. 당신이 기원이고, 당신 형은 목련이니까.”
“아무튼, 어디 있는지 알아요?”
“입 다물고, 저기 얘들 왔는데 집에 가요.”
“안돼, 돈 벌어야 하는데. 우리 기원이 형도 찾고, 우리 손주들 맛있는 것도 먹여야 하는데.”
“돈을 어떻게 벌어. 그리고 네 형. 그러니까, 기원은 어딘가에서 쉬고 있을 거야.”
그제야, 그들은 입을 다물었고, 영원이 목련에게 잠식된 기원.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꽉 안았다. 할아버진 한쪽 손으로 할머니를 잡고 넓게 펴지지도 않는 품에 영원이를 품었다. 그러고는 영원이가 하모니카를 강하게 불었다.
할아버지는 영원이가 가지고 있는 하모니카를 보고 할머니의 손을 놓으셨다. 그러고는 본래 목련이었던, 할아버지이자 기원은, 본래 기원이 있을 것 같은 하모니카에 데고 속삭였다.
“기원이 형, 여기서 우린 안 밀리고 있어. 형도 그렇지?
그의 말 한마디에, 목련이 서서히 그와 함께 개화하기 시작했다. 기원이 가리고 있던 기원의 장례가 하모니카의 울음으로 낡아갔다. 정리되지 못한 채, 피어날 뿐.
*박수-남자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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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죽었다. 어쩌면 어제, 아니면 내일. 우린 한 마리 인어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시니어 전시는 인생과 시가 들어갈 거 같아요. 이 주제로 시 쓰기 활동하겠습니다. 담당자님. 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물방울이 된 우리. -P.S:송희찬- *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데.”금순 어머니는 오늘도 시를 쓰다가 의문이 들었나 보다. 그녀는 교실 안을 꽉 채우는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본인들의 인생과 이야기가 담긴 문학이 과연 젊은 사람들이나 대중에게 먹힐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는 숨을 참으며 그녀의 뒤로 갔다. 그녀의 흰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자로 쓰인 어머니의 시가 있겠지. 나는 그 시를 들여다보려고 다가갔지만, 그녀는 팔로 자신의 시를 가렸다. 금순 어머니의 두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나를 째려봤다.“선상님, 그리다가 심장마비 와서 뒤져 불겄어요.”“아니, 어머니 왜 이렇게 놀라세요. 기침 때문에 알잖아요. 가까이 오는 거.”“나이 먹은 년이 웬 시에요. 뒈져불 때가 됐으니까 주책 부리는 거쟈 뭐.”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들쳐 보이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품 안에 숨기며 나와 다른 어르신들의 시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머니의 홀쭉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독이려고 했다. 그때 목소리 크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정자 어머니가 막 이야기를 꺼냈다.“언니야, 우리가 늙었나? 학생아, 우리 언니야 너무 예삐지?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당연하죠, 어르신.”나는 나를 학생이라 부르는 정자 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해줬다. 그래야만이 금순 어머니가 자신을 들춰내고 우리 앞에 자신을 보여줄 것 같아서. 내 말에 정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았는지 김용임의 <나이야 가라>를 계속 불렀다. 그러자 교실 안의 어르신들은 모두 똑같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크게. 나는 그들의 흥바람을 잠깐이라도 진정시켜야 했다. 여러 번 콜록거리고 손바닥을 두세 번 내리쳤다. 그러나 그들의 불완전한 음정과 화음 앞에서 내 소리는 작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금순 어머니는 입을 다시며 바라만 봤다. 그녀와 나 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주변 어르신들의 화음은 쨍할 뿐이었다. 그 쨍한 분위기와 정적을 깬 것은 금순 어머니의 한 소리 같은 잔소리였다. 어머니는 입을 쩝쩝 다시며 큰 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염병, 날 덥다고 상온에 너무 오래 있었나벼 정자야.”그녀는 코를 한 손으로 막고 다른 한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불쾌하다는 말에 간접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정자 어머니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입에서 퍼져나오는 음정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이는 금순 어머니도 비슷하겠지. 나는 그들의 불편함과 수업의 진행을 위해 그녀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시간조차 금순 어머니에게는 시끄러웠나 보다. 그녀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으이 셨어. 선상님 우리 정자 몸 때기 청소
- 송희찬
- 2026-05-31
내가 나를 쓰기로 했던, 봄이 다가올수록. 나무는 자라고 그늘은 깊어졌다. 큰 나무 밑에 작은 뿌리들은 그늘이 깊어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내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나를 떠나보낸다. 봄이 깊어질수록 작아지는, 그늘에서, 자란 나무들. 멀리 돌아가 살아내려고 한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인간은 인간을 떠나는 거처럼. 내 이름을 내가 세 번 부른다. “통희탄, 송희탄, 송희찬.” 나는 아무 말 없이 베여갔다. 희연은 아무 말 없이 상처 났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글에 송희찬을 불러드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야. 나를 닮은 송희연과 우린 그렇게 믿었다. 우리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 꼭 살아내자. 쏟아내자.” 너의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의 졸업식이 진행되기 전부터, 우린 봄을 이겨낼 준비를 했다. * 센서등이 혼자 깜빡거린다. “아, 봄바람이 또 바람맞아 왔나.” 뜻도 없고 재미도 없는 농담을 허공에다 이야기했다. 혼자 있게 되면 혼잣말이 익숙해지고, 자주 나온다던데. 상대가 없는 말은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혼잣말할 때면, 청자는 단 한 사람도 아닌 허공이라는 것에 가끔은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 말하고 있으면, 생각은 정리되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지만, 생각보다 생각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희연이 딱 와서 장난치면 좋을 텐데. 희연이 등교한 뒤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에 시작을 알리듯 봄을 끝내려고 늦게 내렸다. 이러다가 며칠 전에 핀 목련까지 다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목련이 저물면 봄도 같이 지는 것 같은데. 희연이 늦게 끝나는 목요일이라, 나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숏츠를 넘기다가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이 민망해 방에 들어가 짧은 단상들을 엮어 버린다. 그래야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거 같아서. 내 모습을 내가 모를 때가 가장 좋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생각할수록 지금의 모습이 가장 잘 보였다. 침묵이 작은 방 하나를 맴돌 때,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밖의 봄비처럼 잔잔하지만, 침묵 속에서 우렁찬 전화벨 소리였다. 올 사람이 없는데. 아이들과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엄마, 아빠는 일이 바쁠 시간이고, 담임이었던, 사람이 전화 올 일은 더욱더 없으니까. 그때 단 한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귀와 눈가에 맺혔다. 바다. 그것도 거센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물질로 익혀진 날카로운 목소리. 제주 용순 할망.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겹쳐 들렸다. 그렇다. 전화 속에는 친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용순 할망이 있었다.“희찬아, 엄마는 점심은 차려주고 갔나?”그녀의 첫마디는 엄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도. 그러면, 나는 형식적으로 현실만 말했다.“네, 차려주고 갔어요.”감정도 없이 소리로만 그녀에게 답했다. 나 역시 오늘도. 뼈 없는 물의 언어를 그녀에게 뱉었다. 엄마가 그냥 나갔으면 그녀가 엄마를 잡아 먹으려고 했겠지. * 센서등이 깜빡였다.
- 송희찬
- 2026-03-20
병상에서 일어나면 다시 좋아하는 옷을 입고자주 가던 극장에도 가자고 했다그러나 내 병의 예후를 살피면그런 비유는 이제 내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말들은 완전히 망가진 머리에서 나오는 언어였으며말을 뱉거나 삼킬 때마다얼굴의 한 부분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소리를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고눈이 오는 날에는 눈밭에 발이 빠지면서살고 싶다겨울이 오고 싶다 여기까지 내가 삼킨 말 조각을 하나뿐인 나의 언니가 모국어로 옮긴 것이다 -나하늘 中 오랜만에 귀퉁이 마을로 돌아가는데. 썩은 나무의 껍질같이 눈이 내린다. 잠바 주머니 속 거슬리는 것이, 있다. 영수증처럼 까칠까칠한 촉감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촉감이 결코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혹시 내 피부 일부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이상한 망상도 해봤다. 당연히 종이겠지만, 긴장하는 마음으로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펼쳤다. 이라는 시의 일부만 적혀 있었다. 이런 구절을 쓴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여기에 들어와 있지? 언제부터인가 피부와 같은 재질의 쪽지가 눈만 내리면 내 주머니에 생겼다. 모두 시의 일부 같은데. 정확히 그 내용이 뭔지 몰라서, 나는 학교 운동장을 여러 번 돌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학교의 망령이나, 시인이 쓰던 종이나 팬의 일부에서 태어난 도깨비들이 나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들에게 쉽게 다가가거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도깨비나 같은 반을 쓰는 학우들 모두에게. 내가 목각 도깨비 제도를 반대하는 목각 도깨비 터에 살던 도깨비나 그 터를 지키는 무당으로 보일 거 같아서. 귀문은 령과 무당 그리고 인간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여서. 허나 어느 하나에 속하더라도 무당은 귀신만 보는 나를 악신 들린 가짜 무당이라 칭할 거고, 아이들은 귀신 보는 아이에겐 쉽게 말을 걸지 못 할 거다. 급식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무당들의 모임에도 끼지 않으니까. 귀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자 또 상당한 부분에서 배척에 대한 아쉬움 혹은 외로움이다. 그래도 그 외로움과 아쉬움을 가지고 세상을 나아가는 거라고 만신이었던, 할머니는 이야기하지만. 나는 무당이 아니다. 굳이 외로움과 아쉬움을 짊어지면서, 외로움과 아쉬움을 치료하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나는 무당이 아니고, 그저 귀문. 도깨비와 유령과 소통할 수 있는 귀문이자 가물일 뿐이기에. 귀퉁이 마을 귀퉁이 산이 빛나고 있다. 오늘도 몇몇 사람들이 기억 속 상처를 합벅적으로 심고 있다. 목각 도깨비 터인 귀퉁이 산에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하고도 약한 상처를 목각 도깨비에 집어 넣고 가장 산에 심었다. 옛날부터 귀퉁이 산은 무당들이 기도하러 갔던 곳인데. 그 영향 때문인지, 만신이었던 할머니는 다른 산은 올라도 귀퉁이 산은 웬만한 깡따구가 아닌 이상 들어가지 말고, 그저 귀문으로, 도깨비의 기운이 약한 가장 초등학교에서 빌고 또 빌라고 했다. 비는 주체나 신은 고르지 말고, 그저 하나의 영혼이 하나의 영혼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바라보라고 했는데. 가장 초등학교
- 송희찬
- 2026-02-25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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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혹시 형님은 글을 따로 써놓으시는건가요? 긴 분량이 되게 자주 나오네요
@선 혁 맞아요~^^ 글틴에 올리기 전, 한글, 블로그{비공개로}, 노트에다 쓰고 복붙하고 있어요. {몇 년 전까지는 글틴 켜서 썼는데, 글이 많이 날아갔어서...{그당시엔 로그인 연장이 없었다는 사실...}}
흐헤 저도 빨리 소설을 내보고 싶네요~!
@선 혁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