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 작성자 솔비
- 작성일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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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솔 비
사람의 인생은 꽃을 닮았다.
누구나 한 번씩 만개하는 시절이 온다.
다만 그 꿈을 꺾어버리면
꽃은 색을 잃고 시들어 버린다.
*
내가 꿈꾸던 인생은 이런게 아니야.
내가 일곱살이던 해였다.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나와 아빠를 떠났다.
굳게 닫히는 문소리,
그 이후로 엄마의 기억은 없다.
아빠는 엄마가 아주아주 먼 곳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같은 어른이 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
아빠는 내가 교사가 되기를 원했다.
안정적인 연봉에 안정적인 노후.
그게 인생에서 최고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
아빠의 인생에서 일탈이란 없었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규칙 한 번 어겨 본 적이 없고
적당히 좋은 직업을 찾아
안정적인 연봉을 받고
안정적인 노후 준비를 했다.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불안정했던 건
아마 엄마 였을 것이다.
*
저 교사는 싫어요 아빠.
처음으로 아빠의 틀을 벗어나 본 말이었다.
교사가 싫으면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사무직을 하렴.
아빠는 안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 이후로 아빠와 내 꿈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
아빠는 내가 아빠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보는 아빠는 그리 선망할 대상이 아니었다.
아빠는 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올라탄 많고 많은 무색무취의 사람들 사이에
아빠는 그저 개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안정적인 직장인 한 명 이었다.
하지만 엄마를 닮은 나는,
무색무취를 끔직이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
나는 적당히 좋은 고등학교를 갔다.
그곳에서 적당히 괜찮은 성적을 받고
적당히 친구를 사귀어
적당한 삶을 살았다.
무색무취를 싫어한다던 나는
무색무취로 열여덟 번의 사계를 보냈다.
*
고등학교 2학년의 첫 날이었다.
각자 본인들 진로를 써서 제출하면 돼.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 할 때마다 폭 들어가는 보조개가 눈에 띄는 담임은
진로를 빨리 정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이 공부할 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몇 번을 강조했다.
담임이 나누어준 프린트에는 희망 진로가 두 가지로 분류 되어있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
내가 원하는 직업:
고민없이 첫 번 째 칸을 채웠다.
교사.
아빠가 그리도 바라는 무색무취의 직업.
두번째 칸에는 뭐라고 적어야 할까.
아빠가 바라는 직업을 써야하나.
아빠의 꿈을 나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걸까.
내가 바라던 직업이 정말 교사였던가.
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 즈음
종이를 꾹꾹 눌러 두번째 칸을 채웠다.
작곡가.
*
어릴 때부터 나는 음악을 좋아했다.
다른 과목엔 별로 관심있지 않던 나는
유난히 음악이 좋았다.
내가 건네고 싶은 말을
아름다운 가사로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꿈을 당당히 말할 용기는 없었고,
아빠가 이를 지지해 주리란 확신은 더더욱 없었다.
휴대폰 속 작곡 앱에는
저장만 된 미완성 곡들이 가득했다.
완성 버튼을 누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 꿈은 이대로 영영 멈추게 될까.
엄마는 그게 싫어서 집을 버린거 아니었나.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무엇이 엄마의 꿈을 짓눌렀던걸까.
*
마지막 자리였던 나는 다른 아이들의 프린트를 걷어 와야 했다.
걷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아이들의 프린트를 보게 되는 건 당연했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원하는 직업이 같았다.
그것들 모두 무색무취의 직업이었지만,
그들은 안정적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고,
그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다 맨 앞 자리 여자애의 프린트를 보게 되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 변호사
내가 원하는 직업: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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