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르티를 찾아서
- 작성자 부사령관이반
- 작성일 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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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해방터는 과연 무엇인가? 몇 개인가? 아니, 있기는 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해방터를 찾아 정보가 범람하는 바닷가를 쥐 잡듯 뒤지지만 그곳에서는 찾지 못한다. 아마 당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곳에서 해방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찾아나선다는 것도 주체로서가 아니라 객체로서 살아가는 우리,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거나 담배연기만을 자욱하게 뿜어내는 우리가 유일하게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해방터는 어디서 찾을까?
과연 당신은 호세 마르티를 만나 보았는가? 아니면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보았는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스파르타쿠스, 장폴 마라, 올리버 크롬웰, 파리 코뮌의 시민들, 네스트로 마흐노, 블라디미르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마오쩌둥, 여운형, 토마 상카라, 아우구스토 산디노,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자파타, 호치민, 전태일, 프라찬다, 곤살로를 만나 보았는가?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은 혁명가와 혁명가가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다시 말하자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사람과 삶을 객체로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래, 그렇지. 나를 비롯하여 거의 모든 현대인은 혁명가가 아니다.
무엇이 사람을 혁명가로 만드는가? 공감? 분노? 용기? 무모함? 반추? 어쩌면 혁명가를 만드는 이러한 것들은 현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 아닐까? 그런 것 같다. 현대에서 공감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순수한 분노도 찾기 어렵다. 용기도, 무모함도 찾기 어렵다. 반추는 더욱 찾기 어렵다. 68혁명은 어디까지나 글로 남았다. 모두가 자그마한 모니터에 코를 박고 지하철에 콩나물처럼 서서 하루를 보내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해방터를 찾아나서려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나는 호세 마르티를 찾아서 여행을 떠났다. 이 모든 일은 십이월 어느 추운 겨울날, 단 하루만에 이루어졌다.
침대 위에서 전자담배를 끽연하면 연기가 다시 내 얼굴 위로 내려앉는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은 사람의 얼굴 위에 드리우는 담요와 같다. 고로 무기력하게 내려앉은 나도 죽은 사람과 진배없던 것이었다. 물고기는 평생 파닥거리며 살다 죽는다. 이 사실에 다다를 때쯤 내가 그 물고기보다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건 내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객체적으로 내 인생을 받아들인 결과에 불과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에스엔에스의 별 시덥잖은 농에도 실실 웃어보았다. 나는 이런 일상만 살아가며 일종의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을 속세의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냐면, 아아! 우울증이라 부른다. 나는 과연 그런 삶을 살고만 있던 것이다. 아니, 사실은 조울증이다. 왜냐하면 의사라는 그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고 난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병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기란 좀 버거웠다.
문득 계좌에 담긴 돈의 양을 가늠해본다. 아무래도 저번 달 월세를 어제 냈으니 주머니 사정은 조금 가벼울 것이다. 아마 한 오만 원 정도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래놓고 충격적인 광경을 보기 싫어서 확인은 안 했다. 일단은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진짜 죽을 것 같아서 외투를 걸치고 문 밖으로 나섰다.
약 십삼분 동안 나는 담배만 피워댔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게 현기증을 줄 수 있었다. 한 개비만 피우는 데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의 위안은 얻을 수 없었다. 이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나는 바깥으로 나와도 별 다를 바 없는 사람인 것이었다.
그런데 어디 놀 친구가 있나? 나는 좀처럼 얼굴을 떠올릴 수 없었다. 한때 결혼 직전까지 갔던 한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이내 나는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나에게 한 말.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끝이야, 이제.”
그래서 그녀는 부를 수 없었다.
이제 누구를 불러야 한단 말인가? 나는 대학 동기들을 떠올려 보았다. 다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 뿐이었다. 어떤 친구는 코가 납작했고, 어떤 친구는 이마가 너무 넓었다. 나는 이름보다 얼굴의 특징을 더 기억하는 듯 하다. 그리고 이름과 얼굴을 연관지어 기억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는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과 대표의 얼굴을 겨우 기억해냈다. 살집이 다 얼굴로 간 듯한 얼굴, 초롱초롱한 눈. 그 친구와의 마지막 대화는.
“씨발! 다시는 돈 꿔 달라고 말하기만 해봐. 내가 눈을 파 줄 테다!”
저런, 이 친구는 부를 수 없었다.
가만, 술 친구로 같이 글을 쓰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해보았다一어라라, 나 글 쓰던 사람이었지. 그렇다고 해서 현재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여하튼 이번에도 나는 그 친구와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를 떠올려보았다. 생각을 서류 헤집듯 헤집어서 꺼낸 기억에 근거하면, 별 말 안 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만난 것도 나름 최근이었다. 10월 작가 정기모임을 끝내고 헤어지기 전에 한 잔 걸쳤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 이름이 가물가물했다. 별 상관은 없었다. 그냥 김형이라 부르면 되는 거였다. 하여간 나는 김형을 조금 더 생각해보고 전화 걸기로 마음먹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정도 많았던 것 같고, 키는 한 백칠십이 센치미터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했다. 얼굴은 큰 눈, 오똑한 코, 좁은 입, 좀 큰 턱. 하긴, 내가 누구 외모를 평가할 정도의 외모가 안 된다. 성격은 온화하고 주변에 인복이 많아서 화도 잘 안 냈다. 하는 일은 아직. 취업 준비하면서 편의점 알바도 하고, 간간히 글도 쓴다고 했었다.
그래서 김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김형 하는 말이-
“야, 이게 얼마만이냐? 청호야, 너 뭐 하고 지냈냐?”
아, 그때 다시 기억해 냈다. 내 이름은 청호, 성은 기억이 안 났다. 나는 될 대로 생겨먹었다. 다들 성격은 좋다고들 했다. 그렇지만 내가 볼 때 나는 인격자나 그 근처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 대한 나머지는 가물가물했다. 아니, 내가 나를 기억 못 하는 것이 말이 되나一나는 생각했다.
각설하고, 나는 김형을 근처 술집으로 불러내었다. 우리는 소주를 각각 한 병씩, 어묵탕과 함께 시켰다. 아무래도 좋았다. 정말 죽을 판 아니면 까무러칠 판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낮술을 하고 다시 귀가할 예정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며 김형과 대화했지만 그의 말도, 나의 말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형식적인 대화를 이어가며 각자의 생각을 반추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나를 탁 때렸다. 그건 김형의 한마디였다.
“우리 지금 대학 나와서 뭐 하는 짓이냐? 너도 나도 취업같은 건 안 되잖아? 넌 요새 뭐 하고 살았냐?”
아, 뭐 하고 살았지-생각해보았다. 시월부터 십이월이 시작되기까지, 즉 초겨울 동안 나는 거의 누워 지냈다. 자느라고 이십사시간을 보내 버린 적도 있었다. 경제 활동은 아버지에게 돈을 축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문득 나는 도진이가 자기 몸을 팔아서 돈을 번다고 고백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는 남성애자 남성과 연락해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밥 벌어 먹는 사람은 아니고, 도서관 알바도 겸직한다고 전에 들었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살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럴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 혹은 객체여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나는 김형에게 진실을 이야기 해 주었다. 내가 거의 한달 반 동안 누워서 지냈노라고 말이다. 김형은 실실 웃더니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작가 정기모임을 하고 폐렴에 걸려서 거의 삼 주 동안 편의점을 못 나갔다고 했다. 그랬더니 사장은 김형을 자르고 새 청년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형은 무직이다. 아, 내용이 업데이트 되었다一나는 생각했다.
김형은 전과 달리 걸걸한 욕설로 그 사장을 묘사했다. 그렇지만 그런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김형을 공감했다는 것이었다. 김형도 나처럼 누워만 지냈나 하면, 물론 아니겠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나는 울기 시작하는 김형을 안아 주었다. 그게 김형에게 위안이 될 것 같았고, 내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느새 초록색 병은 둘에서 넷으로 늘어났고, 김형도 나도 얼굴이 벌개졌다. 우리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이만치 하면 되었다며 또 술을 시키려는 나를 김형은 손사래를 치며 제지했다. 나는 별안간 슬퍼져서 김형이 가고 나면 한 병 더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하튼 우리는 일어섰다.
걸어가는 길에 육교가 있었다. 나는 결단코 그 육교에 가기 싫었다. 하지만 김형을 배웅하려면 그 육교를 건너 신림역까지 가야 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육교를 올랐다. 참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별안간 다시 누군가가 생각이 났다. 한때 결혼 직전까지 갔던 그녀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해연. 나보다 한 살 적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반말을 했다. 내가 오빠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해서 였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학과 교수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열정적으로 응원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만해서 그녀에게 은근히 우쭐대거나 대놓고 무시를 표했다. 얼마나 표독한가? 국문과 중퇴생을 비웃는 사회학과 재학생이라니! 결단코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으로 대했다. 그래, 그렇지. 아마 행복했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나를 미화해냈으리라.
어느 화창한 겨울 날, 그녀와 나는 그녀의 고향인 호남 어딘가로 여행을 떠났었다. 우리는 막차를 놓쳐 내내 꼼짝없이 눈이 펑펑 내린 평야에 있어야만 했다. 추워하는 그녀에게 나는 항상 품 속에 지니던 술병을 건넸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술을 들이켰다. 우리는 새벽, 그 하얀 광야에서 술에 취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날만은 추위도 우리를 피해가는 듯했었다. 참 그리운 순간이다. 발정이 나서 서로를 탐하기보단 서로의 정신을 범하고 싶어 나눈 욕정이란… 둘도 없을 그런 추억을 정액 자국과 함께 남기고 우리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그려내었다. 적어도 그녀가 대학교 내에서 집회를 열지만 않았더라면 그녀와 나의 추억은 현재에도 계속 이어졌을 것이었다. 그녀는 대학의 비리를 참지 못하고 대자보를 붙였고 집회를 조직했다. 그녀는 나보다 열 배는 더 용감했다. 그 대가는 중퇴 강요였다. 그녀는 그것을 이길 힘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으로 주변에 이야기 했었다. 아아, 그녀는 내내 그런 오만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나를 버텨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나의 목표만을 생각했었다. 결국에 그녀는 내 곁을 떠났던 것이다.
갑작스레 저 육교 아래가 너무 아름다워보였다. 나는 김형을 따라가는 것을 잠시 관두고 육교 울타리에 매달려 엉엉 울었다. 다리는 흔들흔들, 바닥은 없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었지만 머리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 김형은 술에 취해서인지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무어라 소리를 질렀지만 그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죽겠다는 생각 말고는 하지 않았다. 이내 김형이 내 팔을 붙잡았다. 생각보다 아팠다. 김형은 급기야 울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눈물을 냈다. 그다지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을 때 경찰이 찾아왔다. 내가 자살하려는 것을 보고 누가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나를 끌어올려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어찌저찌해서 김형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중간과정은 아무리 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차라리 김형과 있었던 때가 나았던 것 같았다. 김형은 적어도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나는 나를 죽이려 했지만 김형은 나를 살리려 했다. 김형은 나보다는 삶을 주체로 사는 사람일 것일테다.
하여튼간에 나는 계획대로 근처 편의점에서 참이슬 빨간뚜껑을 한 병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닥친대도 그 병에 든 소주를 다 마시고 잘 작정이었다. 나는 안주도 없이 소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한잔에 추억을 떠올리는 가식 같은 건 필요도 없었다. 내게는 잊는 것만이 답이었다. 적어도 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새 빈 병이 내 발치로 떨어졌다.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나는 잊겠다는 그 신념도 잊었는지 다시금 삶을 반추하려 노력했다一내 이름은 청호, 나이는 스물다섯 살 조금 넘었다. 아니, 스물 여섯이나 일곱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제길, 여기서부터 까먹다니. 시작부터 글러먹었다. 이건 건너뛰고, 직업은 없다. 어쩌면 작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할 사람도 없고 연애하는 사람도, 할 사람도 없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다. 지병은 없다. 아, 정신병은 있다. 조울증 말이다. 아, 그냥 죽는 것이 낫겠다. 아냐, 죽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스스로라도 이렇게 다그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오늘 죽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그것이 내 잘못인 것은 아니다. 나는 죽을 자유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내 의지와 운명에 반하지도 않는다. 나는 나인 것이다.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다. 나를 제외하면. 그렇지만 내가 나를 죽인다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조금 슬펐다.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일천구백구십구년 십이월 이십오일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나름 좋은 집안환경에서 자랐다. 우리 집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먹고 싶은 것은 언제든 먹을 수 있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런 것들이 늘상 식탁에 올라왔다. 외식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했다. 아버지가 공장 높은 자리에 앉아 계셔서 그렇다고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열살 때까지는 그랬다. 이천구년 아버지는 다니시던 공장에서 해고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노조에 합세해 파업 투쟁을 하셨다. 그리고 얄짤없이 감옥에 가시게 생긴 순간 전 재산을 벌금 내는 데 집중하셨다. 어머니는 나빠진 집안 상황을 비관하며 자살하셨고, 아버지는 술독에 빠져 사셨다. 약 오년 동안은 그랬다. 나는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와 자살하신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시고는 술을 끊으셨다. 이윽고 내가 대학에 가자 아버지는 나를 서울에 둔 채 항만으로 이사하셔서 겨우 나를 지탱하셨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되어버렸다니, 이건 수치다. 아버지는 열심히 싸우시기라도 하셨지, 나는 고작 권태와 취업난 하나 가지고 이렇게 되었다. 아니, 취업난은 아버지의 상황보다 심각하지! 나는 권태에 빠져 나태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력한가? 나는 어째서 삶을 객체로서 살아가는가?
나는 답을 찾고자 계단을 올랐다. 이윽고 옥상 울타리와 붉은 노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옥상 끝자락에 섰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집으로 가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공을 퉁기며 걸어가고 있다. 까막새가 지져귀고 있다. 아아, 이 추운 겨울이 내게는 봄처럼 느껴진다. 발가락에서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온 몸으로 남의 생명이 주는 온기가 퍼진다.
어째一당신의 해방터는 과연 무엇인가? 몇 개인가? 아니, 있기는 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해방터를 찾아 정보가 범람하는 바닷가를 쥐 잡듯 뒤지지만 그곳에서는 찾지 못한다. 아마 당신이 살아가는 그 모든 곳에서 해방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찾아나선다는 것도 주체로서가 아니라 객체로서 살아가는 우리,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거나 담배연기만을 자욱하게 뿜어내는 우리가 유일하게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해방터는 어디서 찾을까?
과연 당신은 호세 마르티를 만나 보았는가?一가만, 나도 만나보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이 옥상에 온 이유가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호세 마르티를 찾아서 이 옥상까지 올라온 것이다. 혁명가라, 나는 결코 혁명가가 아니다. 다시 말해, 나는 주체로 사는 사람이 아니다. 호세 마르티같은 혁명가를 찾는다고 해서 내가 혁명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나다. 나는 나인 것이다.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다. 그렇다면 호세 마르티를 찾아서 올라온 이 옥상도 쓸모가 없는 것일까?
아아, 별안간 나는 깃발을 들었다. 눈앞에 수많은 군중들이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나다. 그렇게 외쳤다. 나는 그들에게 별안간 일장 연설을 했다一무엇이 사람을 혁명가로 만드는가? 공감? 분노? 용기? 무모함? 반추? 어쩌면 혁명가를 만드는 것은 바로 혁명가 자신이 아닐까? 현대에서 진정한 혁명인이란, 바로 그런 자아를 가지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보아라! 나는 나다! 내가 그 혁명가다.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완성시키는, 그럼으로써 무관심한 각각의 객체인 타인들을 서로 주체로 만들어 주는 것이 혁명가다!
내려와서 나는 펜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선언했다.
나는 호세 마르티를 찾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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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
- 2026-07-18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 계절이 바뀌어도 늘 비슷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편이다. 한때는 영화 감독을 꿈꿨으나, 지금은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일을 채워나간다. 시간이 흘러 명함 위에 글자는 바뀔지라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록하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동안 가슴속에 묵혀둔 이야기들을 언젠가 세상에 꺼내놓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은 불판을 닦으며 완벽한 시퀀스의 미장센을 고민하고, 손님들의 대화 속에서 대사의 영감를 얻는다. 그날도 어느 테이블의 이야기에 슬쩍 귀를 기울이던 참이었다. 내 노골적인 시선을 느꼈는지, 한 손님이 불쾌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봤다.“저기요.”컷, 컷. 현실이라는 카메라 감독이 내 무례한 상상력을 급하게 끊어냈다.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자 옷에 배어있는 짙은 고기 냄새가 훅 끼쳐왔다. 평소엔 신경쓰지 않던 고기 냄새지만 이상하게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슬며시 돌리자 남자는 불쾌한 기색 대신 장난기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 아래 유독 하얗고 깨끗한 피부, 그 위로 오똑한 콧날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움직일 때마다 입술과 귀에 걸린 수많은 피어싱이 화려하게 반짝였다. 그는 턱을 비스듬히 괴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왜요. 재밌어서?”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질문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당장이라도 제 머리를 들쑤셔 대답할 말을 찾아내고 싶었다. 석쇠를 쥔 손가락 끝만 한참을 만지락거리다,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죄송합니다. 대화가 영화 대사 같아서 저도 모르게 그만...”“영화 대사?”그는 내 사과보다 영화라는 단어에 호기심이 동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피어싱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아주 옅게 들릴 듯 말듯 귀를 간지럽혔다. 그가 테이블 위로 몸을 조금 더 가깝게 밀착해 오며 나지막이 속삭였다.“그럼 방금 건 무슨 장르인데? 코미디? 아니면 멜로?”사내끼리 무슨 멜로 타령이냐며 그의 일행들이 깔깔 웃어댔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쩔 줄 몰라 그저 입을 앙 다문 채 쭈뼛거릴 뿐이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달아오른 술자리 소음 속으로 흩어지는 동안에도, 남자는 여전히 턱을 괸 채 내 벙찐 표정을 감상하듯 느긋하게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민망한 얼굴로 서 있는 나를 보며 입꼬리를 슬쩍 올리던 그가, 이윽고 소주잔을 매끄러운 손가락으로 가볍게 돌리며 한마디를 더 얹었다.“장르 결정되면 알려줘요. 나중에 그 영화 개봉할 때 보러 가게.”툭 던지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에 일행들이 또다시 짓궃은 야유를 보냈다.“야, 작작 해라. 애 가뜩이나 바쁜데 곤란해하잖아.”그들의 유흥거리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남자는 옆자리 일행이 제지하자, 그제야 픽 웃으며 몸을 뒤로 물렸다. 나는 서둘러 “맛있게 드세요”하는 메뉴얼적인 인사를 남기고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겼다.
- 이자경
- 2026-07-18
문명이 무너진 지 17년하고도 10개월, 지구는 멀쩡합니다. 스러진 것은 문명뿐이었습니다. 인간에게만 도는 전염병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고 죽으면 흐물흐물 뼈가 녹아버리는. 그 잽싼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순식간에요. 잠복기도 몰랐습니다. 검사를 하거나, 예방하는 게 불가능했다나요. 침투력이 강해 근처에 간 의사들 모두가 죽어버렸으니. 바이러스가 맞았을지도 의문입니다. 빠른 사람들은 높은 콘크리트 벽을 짓고, 서로 간의 교류를 줄이고, 방문을 걸어 잠그며, 남은 식량만 뜯어먹으며 점점 줄어가는 찬장 속 내용물을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도시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벽을 기어오르거나, 집이 불타버린 이들이 애타게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는 문명의 발명품인 노이즈 캔슬링에 캔슬되어버렸고요. 시간이 좀 지나선 식량을 챙기러 나온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웠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에게 숨죽여 참치캔 하나와 생수 두 병을 전해주던 아주머니의 말론, 허기에 더 이상 병이 무섭지 않았던 사람들이 무리 지으며 건물들을 부수고 물건들을 가져갔답니다. 뭐, 그래도 그때는 세상이 참 요상터랬죠.죽이면서까지 살려던 사람은 계속 죽였지만 살리려는 사람은 계속 살리고, 그 수도 얼마 차이 나지 않았더라고. 그들은 어떤 힘이 나서 그랬는지 참으로 궁금하더라고. 배가 고파 흙을 파먹으면서도 어린아이에게 빵 하나를 넘기고 가더라고. 전자는 전염병으로 결국 전염병으로, 내부 분열로, 후자는 배가 곯거나 약탈당해 죽었답디다. 보답받은 일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인간은 연약해서 목이 부러지면 어떤 사람에게도 죽음은 찾아오니까요.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점점 줄어갔죠. 두드러지게 선하거나, 용감했던 사람들이. 악하다는 말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아요.*저는 18살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1살을 먹었대요. 인터넷이 뭔지도 들어만 봤죠. 집에 책이 무지막지하게 많았고, 비록 지금은 텅 빈 도시를 유랑하는 중이었지만, 이 도시에도 서점과 도서관은 많았던 게 다행이었어요. 글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망해버린 세상 속에서, 읽어줄 누군가도 없는 글을 계속해서 쓰는 사람들이 한 자 한 자 공들여, 누군가는 휘갈겨, 누군가는 울면서 적어 내려갔을 기록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것들이 외로이 바스라지지 않았으면 하니까. 산 인간을 보기 드문 이 도시에서 “사랑해.”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들 뿐이었으니까요. 그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생의 한 귀퉁이에 앉아 적어 내린, 같은 거라곤 단 하나도 없는 글들의 공통점이라곤, 사랑해, 그것 뿐이었어요. 모두 온몸을 꼬며 사랑한다고, 고요하게 외치고 있었죠. 그가 해준 이야기들이 떠오릅니다. 수백 년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속삭여지던 이야기들을요. 점점 시대에 맞춰 변태하며 아기자기한 모습이 된 동화들. 사랑을 입 밖으로 내는 동화는 드물죠, 아닌가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거기서 끝. 요정 할머니도 착
- 소계인
- 202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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