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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작성자 세라
  • 작성일 2006-11-17
  • 조회수 505

 

전쟁과 평화

                                           경주 계림중학교 3/  최 세 라


 시작은 언제나 두근거림으로 다가온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새 학교 교문 안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참 아담하다 !’

 서울에서와 달리 교문 앞은 빵빵거리는 자동차 경적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교문 옆에 서있는 전봇대도 비교적 깨끗했다. 시멘트 담장을 덮은 초록빛 담쟁이 넝쿨을 보니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굵은 바리톤 음성이 나를 돌려 세웠다.

 “거기 여학생! 명찰 어쨌어?”

 노란 선도부 완장을 찬 학생이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올려보며 말했다.

 “난 오늘 전학 왔는데…….”

 그가 사나운 눈으로 나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거칠게 말했다.

 “거짓말 마!”

 나는 어이가 없어 풋! 웃었다.

 그가 눈을 치켜뜨고 나를 째려보았다. 깡마른 체구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빨간 테 안경을 쓰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의 가슴께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니 ‘기대찬’ 이라고 적혀 있다.

 “기, 대, 찬? 흥! 기가찬이 더 어울리겠네. 속고만 살았나? 어떻게 따지기부터 먼저 하니? 정말 기가 찬다.”

 “뭐? 기가차? 그래, 나는 온통 속고만 살았다. 어쩔래?”

 “네 인생도 참 고단한 모양이구나?”

 “뭐? 이게 그냥!”

 그가 대뜸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때, 학생 주임 선생님이 우리를 보고 달려 오셨다.

 “넌 어제 전학 절차 때문에 교무실에 들렀던 학생이구나. 그런데 왜 이러고 있니?”

 나는 대답대신 기대찬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제야 기대찬은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슬금슬금 뒤 돌아 가 버렸다.

 ‘쳇, 첫날부터 이게 뭐야. 재수 없게!’

 나는 덜덜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태연하게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교무실로 와서 수속을 마친 나는 곧바로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 끓는 냄비 속 같은 교실이 금세 조용해졌다.

 “자 어서 들어와라.”

 나는 선생님의 채근을 받고 교실로 들어서서 아이들 앞에 섰다.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이 학생은 서울에서 전학 온 신세은이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전교 일등을 했다는데, 모두들 긴장해야 할 거다.”

 아이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놀랍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신세은! 네 자리는 저기 세 번째 줄 창가다.”

 나는 지정된 자리로 가서 조용히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럼 조용히 아침 자습 하도록 해라. 실장! 네가 할 일 알지?”

 실장에게 대리 역할을 시키고 선생님께서 나가시자, 아이들이 내 곁으로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안녕! 세은아, 반가워 난 미라라고 해.”

 “전교 일등을 했다니 정말 기대된다. 우린 너처럼 혜성같이 나타날 존재를 기다렸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시기와 질투의 대명사라는 여자애들에겐 공부 잘하는 내가 그리 반갑지 만은 아닐 텐데, 뜻밖에도 여자 애들이 내게 호감을 보였다. 그러나 딴죽을 건 애도 없지는 않았다.

 “흥!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쉽게 일등하지 못할걸? 대찬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거든”

 뾰족한 쇳소리를 지른 것은 수숫대처럼 훌쩍 키가 크고 여드름투성이인 남학생이었다. 여학생들이 발끈 떠들고 일어났다.

 “너! 기대찬이 공부 잘하는 거 가지고 여자애들 자꾸 무시 할 거야?”

 “너희 남자 애들이 전반적으로 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

 “기대찬을 제외하면 우리 성적이 너희 성적보다 훨씬 더 좋단 것은 너희도 인정하는 사실 아냐?”

 나는 그제야 여자애들이 왜 나를 반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잠시만! 기대찬 이라고?”

 내가 잠시 머릿속으로 그 이름을 되 뇌이고 있는 순간, 예의 그 굵은 바리톤 음성이 내 옆에서 들려 왔다. 

 “성가신 여자 앤 줄 알았더니 공부 꽤나 했나보지?”

 오! 하느님 이럴 수가!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야! 니가 내 짝이야?”

 그러나 그는 아침과는 달리 제법 너그러워져 있었다.

 “아 그래, 좀 전에 만난 딱따구리로구나. 아침엔 미안했다. 그런데 여자애가 뭐 그렇게 억세냐?”

 “뭐? 너 말 다했어? 넌 여자를 항상 그렇게 만만히 대하니?”

 내가 탁 튀어 오르자, 그는 입속말을 웅얼거리면서 교과서를 꺼내곤 눈길을 박았다. 마치 열심히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처럼.

 ‘좋아, 내가 너를 이겨보겠어. 다시는 나를 만만히 볼 수 없도록!’

나는 속으로 오도독 이를 갈았다.

 그날 이후, 그와 나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 되었다. 그도, 나도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매 수업 시간이 치열한 전쟁의 연속이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쪽지 시험을 치겠다.”

 그런데 그와 나의 점수는 같았지만 선생님은 항상 나를 지적하셨다. 선생님께서는 그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왜 그를 챙기는 것일까? 내가 지적을 당할 때마다 그의 입가에 번지는 보일 듯 말 듯 한 조소와 승리감을 동반한 거만함은 뭘 뜻하는 걸까?

 ‘분명 무언가가 있어. 그게 뭘까? 저 잘난 체 하는 꼴이라니…….’

 나는 석연치 않은 그의 태도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세은아, 이번에도 기대찬과 동점이니?”

 “선생님께서 그러셔도 힘내. 다음엔 저 콧대를 꺾어줘!”

 나는 아이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죽어라 공부를 했고, 기대찬도 지지 않겠다는 듯 교과서에 코를 박고 있었다. 여자 애들과 남자애들은 급기야 나와 그를 중심으로 무리를 지어 다녔고 담임선생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듯하였다.

 "요즘 ‘태극기를 휘날리며’ 라는 영화가 유행이던데, ‘샤프를 휘두르며’ 라는 영화를 찍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구나!”

 이처럼 그와 내가 막상막하의 라이벌 이라는 소문은 이내 온 학교에 파다하게 퍼졌다.

 다른 반 아이들은 복도에서 우리를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점심시간에도 그와 나는 쉬지 않았다.

 “그대 눈빛을 볼 때면 나는…….”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때 말라깽이 종서가 기대찬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 대찬아! 저기 너희 엄마 오셨다.”

 그 순간,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듯 말을 내 뱉었다.

 “에이 참, 왜 또 온 거야!”

 기대찬의 어머니는 교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친 인상을 하고 손에 무언가 들고 있는 40대 초반의 여인이었다. 기대찬이 거칠게 문을 열고 교실 밖으로 나가자 아이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기대찬 말이야, 사춘긴 가봐. 기대찬이 새어머니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대”

 “친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멀리 떠났다나봐.”

 “기대찬은 공부하는 것으로 그 아픔을 견뎌내는 것 같아.”

 ‘어라, 상상외로 힘들게 살고 있나 보네…….’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가도록 알 수 없는 측은지심에 사로잡혀 그에 대한 미운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신세은, 오늘은 네가 상담할 차례다.”

 기대찬이 걷어차고 간 문소리의 여운을 떠올리며  내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아차! 하고 나는 선생님 뒤를 따라 갔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삼학년 학급 아이들의 진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오늘이 내 차례였던 것이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까먹었나 보구나.”

 선생님께서는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꺼내셨다. 내가 제출한 자기 소개서였다.

 “세은아! 가족관계란에 아버지의 이름이 없구나. 혹시 돌아가셨니?”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지만 대답하려니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혼 하셨어요. 아버지께선 하시던 일이 잘 안되어서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러다가 그만 알콜 중독이 되셨고 어머니는 술주정과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이혼하시고 말았지요.”

 “그래? 세은이가 많이 힘들었겠구나.”

 선생님께서 어렵게 입을 떼셨다.

 “그리고, 장래 희망난도 비었는데, 앞으로 진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니? 달리기 선수가 달음질을 할 때 목표지점이 있어야 그곳을 바라보고 달려가지 않겠니?”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저는 허황된 꿈은 꾸지 않겠어요. 어쨌든 죽어라 공부해서 어머니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리라는 결심만은 확실해요.”

 “그럼, 시간을 두고 너의 진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도록 해라.”

 선생님의 동정하는 눈빛이 싫어서 나는 얼른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내가 문을 순간, 누군가가 황급히 몸을 숨기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왠지 불쾌한 느낌이 들어서 쫒아가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대찬과 그 패거리들이 후다닥 몸을 숨기고 있었다.

 ‘뭐야! 비겁하게 남의 상담 내용을 엿들은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리에 피가 몰려들었다.

 “야! 쓸데없는 짓 마. 혼난단 말이야.”

 “들려오는 소리를 막을 필요까진 없잖아?”

 기대찬이 말리고 아이들은 들으려하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나는 폭발하듯 소리쳤지만 너무 화가 나서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는데, 이렇게 들키고 보니 마치 그들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이었다.

“미, 미안, 이건 고의가 아니라…….”

“뭐라고? 고의가 아니라고? 그럼 엿듣지 말고 지나가야 할 거 아냐! 너도 새어머니랑 살잖아. 너나 나나 다른 것도 없는데 니가 무슨 권한으로 남의 비밀을 엿듣는 거야!”

그러나 대답한 것은 그가 아닌 다른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당당했다.

 “큭, 그렇게 따질 시간에 공부나 하지 그래. 아버지도 없고, 앞날도 깜깜한데 어디 하루 24시간 가지고 되겠어?”

아이들이 키득 거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 왔다. 정말 이렇게 까지 화가 난건 처음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너, 사람 이렇게 무시해도 되니?”

 나는 나를 비웃는 그 남학생을 확 밀어버렸다. 휘청거리던 그 애는 균형을 잃고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서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그제야 이를 악물고 참았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엄마 아빠가 이혼 한 게 왜 내 잘못인거야? 어른들이 만든 그들의 운명 때문에 내가 왜 

비난당해야하는 거야? 나는 오늘 일을 그냥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대찬, 두고 봐. 네 콧대를 꼭 꺾어주고 말테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곧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비교적 쉬운 편 이었지만 가끔 애매한 문제도 섞여있었다.

 “으앙, 나 어떻게 해! 수학에서 65점 맞아버렸어.”

 “그래도 넌 정상적으로 체크나 했지. 나는 한 줄 뒤로 써버렸단 말이야.”

 대부분의 아이들은 매일매일 울상을 지으며 시험을 쳤고, 쉬는 시간이면 서로 답을 맞추어보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우리 두 사람의 점수가 궁금하여 물어보았지만 서로의 코앞이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며 채점 하지 않았다. 드디어 3일 동안 치룬 시험이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있잖아, 너희들 몇 점이나 나왔니?”

 “얼른 채점해봐!”

 “알았어, 이제 전부 매겨볼게.”

 그와 나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험지의 답안지를 맞추어 보기 시작했다.

 막상막하였다. 수학에서 내가 한 문제 틀리면 그는 영어에서 한 문제 틀리는 식이었다.

 “우와! 정말 대단해. 여태 대찬이랑 버금가는 실력자는 없었는데!”

 마침내 한 과목만이 남았다. 지금까지의 총점은 같았다. 그와 나는 떨리는 손길로 차근차근 매기기 시작했다. 나와 그, 두 명 다 하나씩 틀렸다. 그 때 한 아이가 지적했다.

 “대찬이가 틀린 건 3점짜리고 신세은이 틀린 건 4점짜리네?”

 딸랑 1점차이로 내가 지다니…….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제법 잘 하는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날 이기긴 힘들걸?”

 그가 거만하게 씩 웃으며 날 쳐다봤다. 처음 교문 앞에서 마주쳤을 때보다도 더 기분이 나빴다. 나는 그에게 톡 쏘아붙였다.

 “끔찍하게 안 어울리는 그 빨간 안경 저리 치워, 이 빨간 안경 앤아!”

 나에게 실망한 듯한 여자애들과 또다시 거만한 표정을 짓던 남자애들 모두 순간 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빨간 안경 앤이래, 빨간 안경…….낄낄…….”

 “대찬이 한 테 딱 맞는 별명인데? 히힛.”

 순간 그의 얼굴이 창피함과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러나 곧 분노에 찬 목소리로 나의 말을 되받아쳤다.

 “너야 말로 오랄로야!”

 아이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오랄로가 뭐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번에도 아이들이 박장대소를 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내가! 두발로 다니는 것을 처음 터득한 허리가 굽고 털이 난 원숭이란 말이야?

 그와 나는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낄낄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뚝 그쳤다.

 “겨우 1점차이로 잘난 체하지마. 두고 봐, 다음번엔 내가 무조건 이길 거야! 알겠니? 이 빨간 안경 앤아!”

 “흥, 두고 보자는 말을 하루 이틀 들어온 줄 알아? 너나 전학 가시지.”

 “야! 오랄로, 더 이상 대찬이에게 심한 말하면 가만 안 있겠어!”

 몇몇 남학생이 날 위협했다.

 “너희들이야 말로 잘난 체 하지 마. 빨간 안경 앤이 이긴 건 사실이지만 겨우 1점 차인데 그걸 가지고 왜 여학생을 무시하니?”

 “너희들이 세은이보다 공부를 더 잘하기라도 하니?”

 나를 째려보던 남학생들은 순식간에 여학생들의 말에 할 말을 잃고 파묻혀 버렸다. 곧 그와 나사이의 싸움은 곧 남자대 여자의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다.

 “수행평가만 치면 D학점밖에 못 받는 주제에 뭘 잘한다고 잘난 체들이야?”

 “그러는 너희들은 농구 할 줄 알아? 체육 수행평가는 우릴 못 따라갈걸?”

 아이들은 양성평등이 무색하게 안간힘을 다해 왁자지껄 말싸움을 했다. 그러는 통에 그와 나는 서로 할 말을 잃고 아이들 사이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말릴 수도 없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기대찬의 눈치를 보았는데 우연히도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피해 버렸지만 그다지 사나운 눈빛은 아니었다.

 “어딜 봐! 오랄로야.”

나는 단번에 그가 조금 어색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순간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이들을 갈라놓았다. 아이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더니 제자리에 앉았다. 나와 그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화가 나서 빨갛게 상기된 그와 나의 얼굴을 선생님께서 보지 못하시길 바랐지만, 선생님은 단번에 사태를 알아채셨다.

“기대찬! 신세은! 교무실로 따라와!”

 화가 난 선생님께서 매우 무서운 목소리로 고함을 치셨다. 선생님을 따라 복도를 걸어가는데 마치 감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말해봐!”

선생님께서는 나와 기대찬을 꿇어앉히더니 문책을 하셨다.

“기대찬이 제가 상담하는 걸 엿들었어요.”

“넌 날 놀렸잖아!”

“남학생이 여학생을 괴롭혀서야 쓰겠니?”

 선생님 앞에서까지 티격태격 싸우는 것을 듣다 못한 선생님께서 소리치셨다.

 “너희들 여기 까지 와서 싸움질이야? 공부만 잘 하면 되는 줄 아니?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야지! 머리만 우수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인간이 사회 나가면 너희들처럼 세상을 선동하고 데모대나 만들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인간이 된다는 걸 몰라? 너희들 같은 인간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이란 말야. 알아듣겠어? 당장 엎드려뻗쳐!”

 선생님은 마치 나라가 어지러운 것이 우리 둘의 탓이라도 된다는 듯이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나와 그는 어쩔 도리 없이 그 자리에서 나란히 엎드려뻗쳤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마와 등은 물론 머리카락 사이사이에까지 땀이 흘렀다. 그동안 시험공부 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 몹시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더 그랬다. 팔이 너무 떨려서 몇 번이나 휘청거리다 넘어졌다. 기대찬의 안경은 아슬아슬하게 귀 끝에 걸쳐져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몇 시간이나 지난 듯 괴로웠다.

“이제 일어나!”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신 선생님은 한층 차분해지고 화난 얼굴이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나는 테이블의 한쪽 모서리를 버팀목 삼아 간신히 일어났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니?  그런 의미에서 내일 까지 이 A4용지 한쪽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반성문을 써오도록 해라.”

“네….”

 나와 그는 볼멘소리로 대답한 후 밖으로 나왔다. 생각 할수록 분했다. 먼저 시비를 건 것도, 나의 상담을 엿들은 것도 그였다. 그런데 도매금으로 벌을 받았다는 사실이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어 속에서 자꾸 욕이 튀어 나올 것 만 같았지만 교무실 앞이라 참았다. 이미 아이들은 다 하교해 버렸기 때문에 나와 그 사이의 침묵이 왠지 어색했다.

 “쳇! 재수 없어!”

 먼저 말을 꺼낸 건 그였다. 나 역시 그냥 있을 순 없었다.

 “이하동문!”

 내 옆에서 걸어가고 있던 그는 앞을 가로막았다. 말싸움으로는 얼마든지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그가 주먹으로 칠까봐 조금 두려웠다.

 “뭐, 뭐야?”

 나는 말을 더듬으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너 말이야, 처음 봤던 날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들켰으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어째서 그 후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 하는 거야? 어째서…….”

 그는 분을 참느라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그런 그가 한심해져서 말했다.

 “내가 당당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니? 자신의 약점이 드러났다는 이유로 자신을 더 감추려고 하는 것은 정말 한심한 짓이야. 나 같으면 절대 날 감추지 않아!”

순간 내 머릿속에 그의 새어머니가 스쳐 지나갔다. 곧 혹시 내가 그의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 정말…….”

그는 내 눈동자를 직시하며 무슨 말을 더 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그대로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흥!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나 부러져 버려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분명히 혼자 중얼거린 말이지만 그도 들은 것이 분명했다.

“너……!”

그 순간, 그의 표정이 놀람으로 변했다. 나도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계단에서 급히 뒤돌아보던 그가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무언가에 세게 부딪치는 듯한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입가에 피를 조금씩 흘리며 다리를 꼭 잡고 있었다. 그는 정신은 들어있었지만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옆에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빨간 테 안경이 부러져 있었다.

“아…….”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나의 고함소리를 듣고 선생님들이 몰려와서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지나가듯이 중얼거린 말인데 현실이 되다니……!

 다음날, 기대찬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의아해했다. 선생님께서 그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영문을 안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오랄로랑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육탄전으로 돌입했나? 안 그러면 왜 계단에서 넘어졌겠어?”

 아이들은 쉽게 나를 의심했다. 어제의 일로 충격을 받았던 나는 내 탓으로 돌리는 아이들 때문에 또 다시 상처받은 기분이었다. 학교를 파할 때까지 친구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왕따 당하는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또 기대찬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했다.

 ‘물론 무심코 해 본 말이었어. 그렇지만……. 나의 악담으로 상처를 입힌 것과 실제로 밀어서 상처를 입히는 것에 별반 차이는 없는 게 아닐까?’

 죄책감이 든 나는 평소처럼 공부하지 않고 쉬는 시간 내내 미안하다는 내용의 낙서만 했다. 부러져 버린 빨간 안경이 생각이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안경점에 들렀다.

 “저어, 아저씨 여기 혹시 기 대찬 이란 학생이 안경을 맞춘 곳인가요?”

 “그래, 기대찬은 우리가게 단골이지. 그런데 왜?”

 “그럼 그 애 안경도수를 아시겠네요?”

 “알다마다.”

 “제가 그 애 안경을 깨뜨렸어요. 새로 사 줘야 할 것 같아서…” 

 아저씨는 곧 전표를 뒤지더니 나를 진열대로 안내했다. 그의 안경을 고르는 내내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한 참이나 진열대를 뒤지다시피 하여 무테안경 하나를 골랐다. 빨간 테 안경을 사면 계속해서 빨간 안경 앤이라고 놀릴 수 있었지만, 그에게는 깔끔한 무테안경이 더욱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거 주세요.”

 나는 몇 년 동안 용돈을 잘게 쪼개어 모아왔던 피 같은 거금을 지불하고 그 안경을 구입했다. 비록 내 통장에 있던 용돈 중 반 이상이 들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대찬이는 학교 인근 초록병원 202호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나면 병문안이라도 가 보렴.”

나는 종례할 때의 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해 가며 겨우 겨우 찾아낸 그의 병실에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가 잠시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마침 아무도 없었기에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어색했다. 그렇지만 그는 곧 심술궂게 집어던지듯 소리쳤다.

“오랄로……. 여긴 왜 왔어?”

 그가 섭섭할 정도로 차갑게 물었다. 늘 싫어하던 빨간 안경이었지만 그거라도 쓰지 않으니 인상이 낯설었다.

“좀…… 어때?”

“보시다시피. 노병은 죽지 않았다. 너! 날 이렇게 묶어놓고 공부 열심히 해서 일 등 한 번 해보려는 속셈이었지?”

“아냐! 그건 절대 아냐. 미안해. 내가 심했어.”

 나는 그의 말이 너무 야박스러워서 쿡 눈물이 솟았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결국 나는 눈물이 나고 말았다.

“이건 내 성의니까 받아줘. 엄청난 거금을 들여서 샀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병 주고 약 주니? 관 둬!”

그는 휙 돌아누우며 눈을 감았다. 나는 괜히 머쓱해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내 지갑이 어디 있지?”

병원 밖으로 나온 나는 그제야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래도 병실에 두고 온 듯 했다.

‘쳇, 다시 들어가면 그 애가 비웃을 텐데…….’

나는 투덜거리며 다시 그의 병실에 들어섰다. 병실에는 아직도 그 외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두고 간 안경을 쥐고 있던 그가 깜짝 놀랐다.

“저어…….지갑을 두고 갔어.”

나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내 지갑을 발견하고 다시 나가려 했다. 그러다가 그의 손에 눈길이 갔다.

“풀어보렴, 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 내가 뜯어줄까?”

내가 한층 부드러운 소리로 권하며. 선물꾸러미를 쥐는 순간, 그가 빼앗듯 꾸러미를 받아 풀어헤쳤다. 무테안경을 본 그는 말을 더듬었다.

“무, 무테……안경?”

“내 나름대로 신경 써서 고른 거야.”

 무테안경이 안 어울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사과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그는 내가 선물한 무테안경을 쓰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았다. 빨간 테 안경을 썼을 때엔 까다로워 보였지만 무테안경을 쓴 그는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빨간 테 안경 쓸 때 보다 더 멋있어. 그럼 나갈게.”

나는 다시 출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잠깐만!”

그 때, 그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그러니까……나도 미안하다고.”

망설이는 듯한 어조로 어렵게 말을 꺼낸 그는 곧 뒷머리를 긁던 손을 내리고 이야기했다.

“사실 상담을 엿들은 것은 다른 애들이 아니라 내가 주도한 거였어. 난 너의 지난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석차 같은 것을 알 수 있을까 해서…. 그랬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서도 몰랐어.”

그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과서만 줄곧 읽는 것이 내 학습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 집은 책 살 정도로 넉넉하지 않아. 처음 봤을 때 화낸 이유도 그거였어. 문제집을 한가득 안고 있는 걸 보고 짜증이 났어. 전부 다 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을 깨고 말했다.

“나도 그 때 너희 새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는 우울한 표정을 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사실 예전의 나는 새 엄마를 어머니라 부를 수 없었어. 진짜 엄마를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나와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네가 당당하게 사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어. 난 오히려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나는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친하게 지내자. 오랄로라고도 하지 않을게. 서로 화내지 말고 웃으면서 지내자. 넌 웃는 게 훨씬 예뻐.”

나는 그의 말에 대답했다.

“이제 빨간 안경 앤이란 별명은 쓸 수가 없게 돼 버렸네. 너한테는 무테가 훨씬 더 어울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서  죽어라 공부할 수 있도록 치료 열심히 받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등을 쳤다. ‘퍽!’하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가 소리를 질렀다.

“아! 등은 왜 때려, 신세은!”

 그는 등을 문지르며 즐거운 엄살을 떨었다. 나는 모든 일이 좋게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 나는 반대쪽 손을 들어 또다시 등을 한 대 쳤다.

“아! 진짜 왜 그래!”

그가 꽥 소리를 질렀다. 나는 침대 모서리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나랑 약속 하나 하자.”

그가 등을 문지르며 뭐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때문에 반 아이들이 싸웠으니까 서로 중재할 수 있도록 하자. 애들은 너나 내 말이라면 잘 들어주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덧붙였다.

“하나 추가. 지나친 경쟁 금지! 경쟁 분위기에 휩쓸리다간 나나 너까지 피곤해지잖아? 그리고 너나 나나 주어진 환경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더 나은 환경을 개척해보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너, 오랜만에 쓸 만한 발언 했다?”

 나는 내 손을 올려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가 다시 학교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야, 대찬이도 무테안경이니까 꽤 준수해보이고 멋진데!”

“세은이도 요즘 따라 점점 더 예뻐지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싸운 뒤 잠시 유행했던 ‘빨간 안경 앤’이나 ‘오랄로’같은 별명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선생님께서는 나와 그에게 또 다른 별명을 붙여 주셨다.

“이제 너희들은 ‘전쟁과 평화’란 영화를 찍어야 할 것 같구나. 미국의 경제학자가 쓴 ‘전쟁과 평화’에서 남자 아이와 여자아이가 모래성을 짓기 위해 영토 분쟁을 하는데, 결국 둘 다 영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결론을 내린단다. 비록 너희들의 생각은 각각 다르지만 서로 이해해 주려고 하니 보기 좋구나.”

한편 나와 기대찬의 중재로 남학생과 여학생 사이의 살벌한 분위기도 점차 부드러워져 갔다.

“우리 같이 노래 부를래? 나가서 배드민턴 칠래?”
서로 몰려다니며 패싸움 분위기였던 과거와 달리 우리 반은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파란 하늘로 훨훨 날아갈래요. 마음만 먹으면 하늘도 날 수 있을 거예요. 그대와 함께라면…….”

아이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그와 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활짝 웃었다.

 

 

세라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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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귀엽다

    • 2006-11-18 01:49:4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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