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 소설가 지망생의 일일
- 작성자 이바
- 작성일 200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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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부제: 소설가 지망생의 日日)
0.
어김없이 눈을 떴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하고도 늘 얼마 쯤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굳이 정신을 차리지 않아도,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도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쯤은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2교시. 그놈의 소설이란 걸 쓰느라 역시나 밤을 거의 새웠다. 그러므로 아침은 늘 힘들다. 나는 수업을 들으려 정신을 또렷이 해보지만, 여전히 멍-하다. 잠이 오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멍-. 내 하루의 시작은 늘, 멍-
1.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알고 있는가? 그게 바로 내 얘기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우리 얘기다. 갑자기 천재라니,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묻는다면 나도 달리 할 말은 없다. 그것은 1 더하기 1이 왜 2냐는 물음만큼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천재였고, 한 날 한시에 박제를 당해버렸다. 이 천재나 박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미와는 달라서, 우리는 움직일 수도 있었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말 할 수도 있었고 웃을 수도 있었다. 만, 그것이 박제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가? 에 그러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굳이 풀어서 설명을 해보자면
우리의 겨드랑이에는 저마다의 날개가 달려 있었다. 새들이 종마다 날개의 모양이 다른 것처럼 우리가 가진 날개도 저마다의 개성이 있었다. 검고 붉은, 마치 박쥐나 악마의 그것 같은 날개가 있었는가 하면, 새하얀 깃털로 이루어진, 마치 천사의 그것 같은 날개도 있었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을 지닌 날개도 있었고, 우중충한 잿빛의 날개도 있었다. 한 마디로 천차만별이었다는 얘기이다. 나는 마치 거위나 오리의 그것 같은, 체육 시간마다 입는 하얀 면T의 겨드랑이 부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누런색이 감도는 하얀 날개를 갖고 있었는데, 어쨌든.
날개가 있으면 뭐하냐고.
나와 나의 동갑, 들의 고입과 동시에 ‘청소년 비행 방지법’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비행(非行)이 아닌 비행(飛行). 한 마디로 날지 말라는 얘기였다.
날지 못한다, 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갑갑한 일이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늦잠을 잔다. 등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본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한다. 나는 날개를 펼치고 학교를 향해 비행한다. 다행히도 늦기 전에 학교에 도착한다. 하지만, 비행을 했다는 이유로 법에 걸려 수업도 못 받으며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갑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날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는 날개를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조차 제재를 받았다. 우리는 우리의 날개를 교복 안으로 숨겨 놓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외향 상으로 보기엔 별 다를 것이 없어졌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던 이들에게 날개를 비좁은 교복 안으로 우겨 넣고 하루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밀폐된 교실 안에서 버틴다는 것은 너무도 힘겨운 일이었다. 다들 숨 막혀 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테두리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딱 그 높이까지만, 우리는 날아오를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만, 선생들도 눈 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철조망이라고 해봐야 그 높이는 2m 남짓한 정도였고, 전교생이 모두들 몰려드는 탓에 옥상은 쉬는 시간만 되면 늘 복작복작했다. 여전히, 갑갑했다.
이른바 ‘청비법’이 제정된 뒤 어느 정도가 지나자, 아이들은 날 수 있는 (말하자면) 비밀 장소를 하나 발굴해냈다. 그것은 바로, 야자 시간에 근처 초등학교 뒤편으로 가서 비행을 하는 것이었다. 저녁 시간의 초등학교는 텅 비어있었고, 그렇기에 학교 옥상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게 날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것을 ‘야간자율비행’이라고 불렀다- 그 장소를 누군가가 발견한 뒤 며칠이 지나자, 대부분, 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아이들은 야자시간만 되면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기에 야자 시간의 교실은 늘 텅 텅 비어있기 일쑤였다. 주민 신고라도 들어오지 않는 한 선생들은 역시나 눈 감아 주는 분위기였다. 나는 야자 시간, 교실에 홀로 남을 때마다 교복을 벗어 날개를 펼쳐놓고 소설을 쓰곤 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마음껏 날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소설을 쓰는 것은 내게 또 다른 비행이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소설이라는 것은 아마 내 날개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자유로운 비행과 신선한 공기, 같은 것들을 선사해줬지만 때로는 나를 추락시키기도 했고, 그러므로 아팠고 또 다쳤다. 날지 못할 상황에서는 지독히 나를 숨 막히게도 했다.
소설이란 날개를 달고 비행을 하면서 나는 자유롭기도 많이 자유로웠고 행복도 많이 다쳤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한 마디로, 다사다난했단 얘기이다. 뭐, 다사다난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별 것 아닌 일들이지만. 조금 얘기해보자면
나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소설의 첫 시작은 다음과 같다.
‘나는 기뻐서 슬펐다. 슬퍼서 기뻤다. 기뻐서 슬펐고 슬퍼서 기뻤다. 슬퍼서 기뻤고 기뻐서 슬펐다. 즐겁다가 화가 났다. 화를 내다 즐거워졌다. 화를 내다가 즐거워했고 즐거워하다보니 화가 났다. 사랑하다보니 증오를 하게 되었다. 증오하다보니 사랑스러웠다. 증오해서 사랑했고 사랑해서 증오했다……’
소설을 쓰는 틈틈이 내게 보여주지 않겠니? 라고 했던 학교 문예부 담당 선생은 이 소설을 보여주자, 고개를 갸우뚱 한 채 내게 말했다.
“이건 뭐……. 네가 이상이라도 되냐? 나 참.”
마침 딴 생각을 하느라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는
“많이 이상해요?” 라고 대답했다.
“이상한 걸 알긴 아는구나.”
내가 기존 문학인의 이름을 가지고 그들을 조롱(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한 것은 이 경우에서 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박민규가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고 하면 나는 ‘신동엽의 있다 없다’라는 오락 프로에 출연한 박민규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대형서점의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소설 열풍 어쩌고, 마음의 양식 어쩌고 하는 성우의 내레이션이 그 위에 깔린다. 김영하, 김중혁, 천명관, 김연수, 박성원, 김애란, 이기호…… 등등 국내 소설가들의 이름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던 카메라가 어느 부분에서 멈춰 선다. ‘박민규’ 거대한 신동엽탈을 쓴 방송국 직원(아마 새로운 연예인을 섭외하기에는 제작비가 부족했으리라)이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을 뽑아든다. 아니, 이런 제목의 소설책이이? 성우는 우스꽝스럽게 말한다. 짝퉁 신동엽은 소설책을 펴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이것 좀 보라, 는 손짓을 하며 책날개 앞에 있는 박민규의 사진을 보여준다. 치렁치렁 레게머리에 덥수룩한 수염, YMCA 어린이 수영반에 다니는 조카에게 빌려 썼을 법한 물안경까지. 아니, 이런 외모의 소설가가아? 성우는 또다시 예의 그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말을 한다. 박민규의 사진을 보며 놀라워하고 또 의아해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끝으로 방송의 배경은 스튜디오로 옮겨진다. MC 신동엽의 부추김으로 패널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코요테의 김종민씨, 저런 소설가가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에, 왜냐하면…… 그래, 저 같은 사람도 방송에 잘 나오잖습니까! 박민규의 실존 여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웃겨야 한다는 임무를 완수한 패널들은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이쯤 했으면 방송 분량 되겠지, 신동엽은 슬슬 정리를 시작한다. 자, 그럼 이제 마음을 정하신 것 같군요. 자, 이제 결정의 순간입니다… 아, 이건 다른 프로지. 어쨌든. 괴상한 옷차림에 레게 머리를 한 소설가가, 있다? 없다? 있다! 그리고 박민규는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수줍어하며 인터뷰에 응하는 박민규의 모습을 잠시 내보낸 뒤, 다음 주 예고를 하며 프로그램이 끝난다. 방송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는 신동엽창작상을 드립니다.
고작해야 이따위 생각밖에 못하는, 이런 내가 소설가가 될 수 있을까. 선생님들께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는 못 할망정 감히 말장난이나 하려 들다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인 내게는 정말이지
고민, 또 고민이었다. 난 소설가이기 이전에 인간부터 되어야 하는 건가. 나 주제에, 소설은 무슨 소설.
하는 식의 자책감이 들 때마다 나는 이른바 ‘야간자율비행’을 하러 갔다. 마찬가지로 자유를 갈망하는 전교생들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비행을 하다보면, 어느 샌가 나의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다. 자유로 가득 찬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한참 땀을 흘린 뒤마다, 나는 초등학교 옥상 난간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고는 했다. ‘청비법’ 덕분에, 학교 건물 이상의 하늘은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는 별도 없었다. 내 마음에도 자유와는 다른 종류의 공허가 찾아왔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딱 봐도 텅 비었지?
2.
늘 그렇듯이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갔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모르는 채로, 심지어는 쥐도 새도 모르는 채로 법 하나가 새로 생겼다. 그 과정은 쥐도 새도 몰랐지만, 그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뉴스, 신문 등에서는 이 소식을 목청 높여 잘도 떠벌렸고,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저마다의 의견을 피력하며 역시나 목청을 높였다. 그 법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여보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청소년은 날개를 없애야 한다.’
숨기고 다니는 것도 억울한데, 없애라니? 이 법에 가장 많은 반발을 한 것은 물론 청소년들이었다. 아이들은 분노했고, 나 또한 분노했다. 즉, 우리는 분노했다. 분노한 것은 우리 뿐 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 또한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즉, 우리들은 분노했다. 역시나 인터넷을 통해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국 각 시․도 교육청 앞에서 데모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고 날짜가 정해졌다. 고 나는 전해 들었다. 누가 정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시간에 맞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교육청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데모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날개 제거식’을 하자는 의견을 내었지만, 날개 제거하기 싫어서 데모를 하는 건데 제거를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하고 싶으면 너나 해라, 등등에 묻혀 금세 사그라졌다. 대신 우리는 비행식(飛行式)을 하기로 했다.
분노로 가득 찬 우리들은 그동안 쌓였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교육청 건물을 향해 하나같이 날아올랐다. 그동안 좁디좁은 공간에서만 비행을 해야 했던 아이들은 저공비행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닿을 듯 말 듯, 닿을 듯 말 듯. 형형색색의 날개들이 교육청 건물을 가렸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이곳저곳에서 터졌다. 지나가던 자동차들은 멈춰선 채 이 장관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들과 뒤섞여 비행을 하는 와중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글로 옮길 수 있을지 따위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이 수많은 아이들의 비행에도, 법을 개정하라는 내용의 플랜카드와 함성에도 교육청 건물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모든 문과 창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별 소득 없는 비행을 계속 하다가, 기자들의 기삿거리만 제공해 주다가, 몇 분 뒤 경찰들이 몰려오자 하나같이 날개를 접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굳게 닫혀 있던 교육청의 문만큼이나, 그 법은 그대로 고집스럽게 시행되었다.
별 다를 것 없던 어느 아침, 평소에는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학생부 선생들이 별 다르게도 보이지 않았다. 어쩐 일인가, 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아이들은 1교시 수업 도중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늘 그렇듯이 지겹고 또 지루한 수업이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 교실 앞뒷문을 열고 학생부 선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커다란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평하게 수업을 진행하던 선생도 교탁 밑에서 똑같이 생긴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말로만 듣던 ‘날개를 없애는 약’이었다. 우리는 뉴스와 인터넷에서, 정부가 그것을 각 시․도 교육청에 배급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설마, 설마 했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을 우리는 그때서야 뼛속 깊이 느꼈다. 설마, 설마.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그 약을 맞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고, 당연하게도 선생들은 억지로 주사바늘을 꽂으려 들었다. 아이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창문을 깨고 피를 흘리며 교실 밖으로 날아 간 누군가를 시작으로 하나같이 비행을 시작했다. 우리 반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교실들의 창문이 깨어졌고 운동장 위 하늘은 곧 도망자들로 가득 찼다. 수업을 듣다 잠 든 나머지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녀석의 뒤통수에 선생이 주사기를 꽂는 것을, 나는 날개를 펼쳐 창문을 통과하다 스쳐보게 되었다(나중에 생긴 일이지만, 그 녀석은 나중 기말고사에서 전교 순위권 내에 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선생들도 날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날개는 대부분 늙어 깃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야위고 퇴화되어 있었고, 심지어는 썩어 문드러진 것도 있었기에, 그들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우리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 날아다녀봤자 눈에 띄기만 할 거라는 누군가의 말에, 하나하나 씩 각자의 집으로 향해 갔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집은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학교에 있을 때는 그렇게도 빨리 오고 싶던 집이었는데, 막상 오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었다. 주사를 맞던 그 녀석의 마지막 표정이 자꾸 떠올라 날 심란하게 했다. 나는 쓰다말고 두었던 소설을 떠올렸다. 달력을 보니 내가 참가하려던 청소년문학상의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나는 연습장을 펴고 어떻게 내용을 이어갈 지 구상하기 시작했다. 만, 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여전히 그녀석의 표정만이 떠올랐다.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내 앞에 펼쳐진 백지는 여전히 텅 빈 채로 텅 비어 있었다. 어지럽기만 한 내 머릿속과는 달리
이렇게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이렇게.
그 어지러움 속에서도 나는 설핏 잠들었나 보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여전히 밝은 것을 보니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진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끄러운 소리는 초인종 소리였다. 내가 잠에서 반쯤 깨어 현관문으로 가는 도중에도 초인종은 계속 시끄럽게 울려댔다. 시끄러운 소리는, 초인종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집에 있는 것 다 안다며 어서 문을 열라고.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깼다. 현관문으로 가던 발을 멈추고 인터폰 화면으로 누가 있는지를 보았다. 화면 안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 두 명과 나의 담임선생이 있었다. 경찰관 한 명은 여전히 계속해서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초조한지 큼지막한 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담임선생은 어떤 명단을 들고는 무언가를 끼적이고 있었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발소리를 죽이고 베란다로 나가 창밖을 보았다. 창문 안 하늘에서는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날개를 펴 도망을 치고 있었고, 등에 인공 날개를 단 경찰관들이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인공 날개란 것은 언뜻 봐도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경찰관들의 비행은 절도가 있었고 기계적이었다. 아이들은 금세 붙잡혀서는 땅으로 끌려 내려갔다. 내가 어쩔 줄을 몰라 심장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현관 쪽에서 자물쇠를 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급한 대로 숨을 곳을 찾았다. 날개를 최대한으로 접고 안방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곧 문이 열리는 소리와, 사람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헤집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혹시나 나를 발견할까, 두려워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모락모락 의문들이 피어났다.
대체, 날개가 무엇이기에? 하늘을 난다는 것이, 각자 자신만의 날개를 가진다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입힌단 말인가? 우리가 하늘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이 그렇게도 불만이란 말인가?
답은 찾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담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분명 이 놈도 집에 왔을 텐데…….”
“그렇다면 분명 창문으로 도주했겠죠. 친구네 집에라도 간 것 아닙니까?”
“아니 아니, 얘가 평소 봤을 때 그럴 만큼 친한 친구가 없을 텐데……. 아무래도 영 찝찝해요. 조금만 더 찾아보죠.”
“아, 빨리 빨리 다음 집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혹시 끝인가, 싶었던 나는 또다시, 여전히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들의 발소리가 재차 조급해졌다. 평소에도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으로 욕을 얻어먹던 담임은, 역시나 이곳저곳 별 곳까지 다 뒤져 보더니 결국,
침대 밑에서 떨고 있던 나와 눈을 마주쳤다. 담임은 눈동자가 똥그래지더니, 급히 경찰관들을 불렀다.
“여기 있어요! 여기! 그것 봐요 내가 있을 거라니깐.”
네 개의 발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아-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들이 나를 끌고 온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교실에는 반의 4분의 3 정도 되는 아이들이 제자리에 앉아 있었고, 앞뒷문과 교탁과 맨 뒤쪽에 각각 한명씩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었다. 창밖에서 날개를 펼치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경찰관도 두어 명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처참했다.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얼굴 여기저기 멍들고 터진 아이들도 있었고, 어떻게 다쳤는지 다리나 팔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교복 상의가 찢어져 반쯤 부러진 날개를 드러내고 있기도 했다. 반복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아까 전 주사기를 맞은 녀석이 하나가 아니었던지, 두 세 자리를 빼고는 모두가 제자리에 들어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담임과 또 선생 한명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 둘은 역시나 커다란 주사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게 다 너희를 위한 일이다.”
담임은 이 한마디 말만을 하고는, 1분단 맨 앞의 아이부터 차례로 뒤통수에 주사기를 박아 넣었다. 담임과 함께 들어왔던 선생은 4분단 맨 앞의 아이부터. 이제 모든 게 끝인가, 라는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교실 뒤에 서 있던 경찰관이 맨 뒤의 아이에게 주사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마치 기계가 하는 일인 양, 정해진 양을, 또박또박. 주사기 안의 약물이 아이들에게 주입되었다. 아이들은 역시나 괴로워했다. 물론 앞으로 비행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정신적인 괴로움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육체적인 고통이 더 먼저인 듯 했다. 주사를 맞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거품을 물었고 몸을 뒤틀었고 쓰러지기도 했으며, 어떤 녀석들은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날개를 잃는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그 괴로움을 앞둔, 아직 차례가 오지 않은 아이들은 벌써부터 벌벌 떨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미칠 듯이, 두려웠다. 하지만 더 이상은 도망칠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 쯤 차례가 돌았을 쯤, 어떤 녀석이
“씹팔! 다 좆 까!”
라고 소리치며 날개를 펼치고 창문 쪽으로 솟았다.
날개를 잃고 기절한 아이들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곧바로 경찰관들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녀석은 금세 제압당해 교실 뒤쪽으로 끌려갔다. “다들 앞에 봐!” 퍽, 퍽, 퍽. 잠시 소란이 일었던 교실에는 또 다시 침묵이 찾아왔고, 그 위로 아이들의 두려움이 감돌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3.
어김없이 눈을 떴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하고도 늘 얼마쯤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굳이 정신을 차리지 않아도,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아도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쯤은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나의 아침은 여전히, 여전히 멍-하다. 잠이 오는 것도 아니면서, 멍-. 내 하루의 시작은 늘 멍-. 날개를 잃은 뒤로는, 더욱 더 멍-
날개를 잃은 뒤로 달라진 점(야자 시간의 교실이 꽉 차게 되었다거나, 이제는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대신 담배를 피러 가기 시작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것들을 제외하고)이 있다면, 바로 내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쓸 수가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써지지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백지만 보면 내 손은 움직이지 않았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갑갑했고, 갑갑했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그저 그렇게, 내가 참가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청소년문학상들의 마감일들이 지나갔고, 내가 사 놓았던 연습장들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역시나 그저 그런 날들이 지나가던 중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학교 교복으로 가득 찬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던 중, 어쩐 일인지 영감이 떠올랐다. 번뜩. 실로 오랜만의 영감이었다. 혹시나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허겁지겁, 먼지가 꽤 쌓인 연습장을 펴들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의 비행이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 채, 엄마의 일찍 자라는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지금까지 주려 있던 백지들을 채워 내려갔다. 나의 머릿속에는 연필과 종이가 스치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단편 소설 하나를 다 쓰고 난 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반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갔다. 옷을 벗고 샤워 부스로 들어가려는데, 무언가 낯설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질감, 이라기엔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 문득 걸음을 멈추고 거울을 바라봤다.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딱히 달라진 점은 없었다. 얼굴도 그대로 팔다리도 그대로 배도 그대로 가슴도 그대로 다행히도 성기도 그대로 제자리에 달려있었다. 다만,
나의 겨드랑이엔 조그만 날개가 돋아 있었다. 나는 날개에 힘을 주어 보았다. 기껏해야 반 뼘 정도밖에 안될 그것은,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였다. 예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크기여서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애를 쓰는 듯 했다. 나는 허겁지겁 화장실에서 나와 베란다로 달려 나갔다. 텅 빈 하늘 저 너머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청량한 새벽공기가 폐 속으로 가득 찼다. 행복감에 도취되어 눈을 감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저 공활한 하늘을 향해 이제 다시 날아오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또다시 숨을 깊게 들이쉬며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나의 작은 날개는, 그러나 이젠 나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저 혼자 아등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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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탈락꾸러기^^
폭
내가 하는 한줄평: 대체 , 어째서, 이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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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큐피드다. 사랑의 신(神). 내가 서울에 처음 나타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직전의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고, 나는 지하철 안이었다. 정말이지 뜬금없이 나는 지하철 칸 한가운데에 서있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다 나를 향해 있었다. 그 시선은, 신과 같이 자신들보다 높은 존재를 우러러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제우스가 또 다시 바람을 피워 애를 달고 들어왔을 때 헤라가 그를 보는 것과 같은, 한심하고 열등한 존재를 바라보는 듯한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그 시선들의 이유를 알 수 없어 그저 주변만 둘러보고 서있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비명 소리를 질렀다. 경찰관은 다시 한 번 이름을 물었다. 큐…… 피드. 내가 도착한 곳은 강남역 근처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기록대로라면 내가 사는 곳은 이 오피스텔의 404호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비실 앞을 지나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4층으로 갔다. 404호 앞에 서서 자물쇠를 내려다봤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여는 문이었는데, 난 역시 자연스럽게 네 자리의 숫자를 입력했다. 이 모든 행동들이 새로운 경험이라기보다는, 늘 겪던 일상이어서 더 이상 경험으로 다가오지 않는 일처럼 여겨졌다.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 이동은 대중교통을 통해 한다. 집 안을 다 둘러 본 나는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침대로 가서 드러누웠다. 양복이 깔려 구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형광등 불빛이 눈부셨고,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서울에 오기 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러 신들, 여러 인간들과 겪었던 굵직한 사건들만이 떠오를 뿐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사건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침대에 누워 몸을 뒤척였지만 머리만 지끈지끈 아프고 별 수확은 없었다. 문득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을 끄고, 그 문제를 내일 생각해보기로 했다. 신으로 태어나 살아오면서, 또 수많은 사랑들을 보아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조급해진다고 해서 좋을 것은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목록에 적힌 대상들이 사랑을 품게 만들다 한 가지 발견한 것은, 서울에서는 사람 아닌 것이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작업 대상 목록에 사물의 이름이 적혀져 있어 당황했던 적도 있고, 이국적인(물론 한국의 기준에서) 이름이 적혀 있어 찾아가 보면 동물이나 게임 캐릭터가 그 대상이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적도 있다. 방 안에는, 아무튼 그 대상의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색이 누렇게 변한 런닝셔츠를 입고, 끝이 쭈글쭈글해진 반바지를 입고, 허리를 잔뜩 굽힌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돌아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 이바
- 2008-11-28
화장실 안에도 악취가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똥을 누면서도 나는 내 똥냄새보다 그 악취를 더 강하게 느꼈다. 이곳을 가득 메운 악취에 비하면 내가 눈 똥의 냄새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할 때도 그 악취는 가시지 않았다. 샤워기를 통해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에서도, 샴푸와 바디클렌저에서도 악취가 났다. 이곳을 가득 메운 악취를 생각하면, 몸을 씻는다는 건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는데 수건에도 악취가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몸을 다 닦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문 안이나 문 밖이나 악취가 가득한 건 마찬가지였다. 악취가 아파트 건물만의 문제일 거라는 내 예상은 빗나간 것이었다. 아파트 건물을 나서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역시 악취였다. 사방 곳곳에 그 악취가 가득 차 있었다. 어차피 모든 곳이 악취로 가득했으므로 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남아있던 잠기운들은 걷기 시작하자 서서히 가셨다. 나는 그제야 그 악취의 정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각 중에 후각세포가 적응을 가장 빨리 한다는데, 그래서 시간이 좀만 지나도 느끼던 냄새를 못 느낀다는데, 여전히 내 콧구멍 안으로 들어와 내 속을 역겹게 하고 있는 악취에 대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악취를 전혀 맡고 있지 못한 듯했다. 이 악취를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악취를 맡고 있는데 그저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 콧구멍으로 들어오는 악취가 너무 또렷하고 지독하게 느껴지는 것이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맡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경우를 생각하면 정말 다른 사람들은 맡지 못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세상을 가득 채운 악취 따위는 맡고 있지 못한 듯한 평범한 표정으로 평범한 걸음걸이로 일상을 시작하고 있었다. 낙엽을 쓸고 있던 경비원이 그랬고,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중년의 남자가 그랬고,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걸어가던 재수생이 그랬고, 다른 학교 것이긴 하지만 나처럼 교복을 입고 있던 학생이 그랬다.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한 그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계속 걸어갔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나 역시 버스 안에 실린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이 공간 안에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심한, 지독한 악취가 났다.
- 이바
- 2008-08-31
버스를 탄다. 교통카드를 갖다 대자 기계는 “학생입니다” 비명을 지른다. 나보다 먼저 탄 사람들로 가득 들어차 있는 버스 안을 보니 비명을 지르고 싶어진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내 뒤로 버스를 탄 사람들에게 밀려 더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간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용케도 손잡이를 잡는다. 잠시 휘청댄다. 하지만 내가 버스에서 내려서 가게 되는 곳은 학교이다. 이 버스보다 몇 배는 더 큰 건물 안에, 이 버스가 태우고 있는 사람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간 말이다. 나는 이 버스 안의 숨막힘과 무관심과 북적댐이 싫어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지만, 결국 내가 향하게 되는 곳에서는 더 큰 규모의 숨막힘과 무관심과 북적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엄마, 신문 어디 있어?” “왜?” 환기가 제대로 안 돼 냄새가 고약한 안방 화장실로 가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냄새 때문에 어서 씻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다 씻고 나와서 보니 시간이 촉박했다. 형은 화장실에서 나와 밥을 먹고 있었다. 형이 있는 것을 보자 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부랴부랴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으로 급히 걸어갔다. 버스를 타고, 밀려들어가고, 손잡이를 잡자 머릿속에 두 글자가 떠올랐다. 그건 바로 지하철역 앞에 비치되어 있는 무료신문들이었다. 옳거니!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무료신문을 한 부 집어 들었다. “무료신문?” 종이 울렸다. 나는 신문을 접어서 가방에 집어놓으려 했다. 그런데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빠르게 가던 한 애가 내 손의 무료신문을 보더니, 정확하게는 무료신문 1면의 영화 광고를 보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학기 첫날부터 모르는 애와 말을 한 최초의 일이었다. 무료신문을 가져간 그 애는 제자리로 가서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나는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을 하면서 내 신경을 전부 그쪽으로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애는 친구가 많은 모양이었다. 영화 광고를 보며 다른 애들과 영화 얘기를 했고, 만화를 보면서 다른 애들과 함께 웃었고, 여자 연예인 인터뷰를 보며 다른 애들에게 농담을 했다. 무언가를 보고서는 아무 말도 없이 크게 웃기만 했다(아마 ‘성토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애 주위에 있던 몇몇 다른 애들은 서로 먼저 무료신문을 보겠다고 했고, 그러다가는 내 얘기가 나왔다(이 시점에서 나는 귀를 더 쫑긋 세웠다). “야, 내가 먼저 볼 거야.” 무료신문을 돌려주면서 그 애는 ‘고맙다’고 말했고, 나는 ‘응? 아, 응…….’ 이라고 대답했다. 그 날 나는 누군가와 말을 텄다는 사실이 기뻐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엎드린 채 그 기억을 계속 곱씹었다. 집에 갈 때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물론
- 이바
- 2008-08-24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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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정현수는 정말이지! 니가 책 내면 꼭 사고 추천해주고 그럴 거야 대단한 친구~^^
와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우와~ 정말 대단해요!! 술술 읽히고 근사한 소설이에요^ㅁ^// 님이 쓰신 소설 잘 보고 있답니다ㅋ
여백의 미랄까요 ㅋㅋ 내리 두 편 읽었네요 재밌었어요 다음편 갑니다 ㅋㅋ .... 아아 신동엽 창작상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셋중에서 이게 제일 마음에 드는데(슈퍼루키를 잇는 내 마스터피쓰라고 생각) 리플과 조회수는 제일 뒤쳐지다니......., 눈물 나네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