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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Summer, Winter & Fall

  • 작성자 트로이메라이
  • 작성일 2009-05-15
  • 조회수 471

쇼파 밑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목덜미를 훑자, 간지럽다는 듯 고개를 움츠린다. 흰 와이셔츠의 깃 사이로 가려진 붉은색 자국이 눈에 띈다. 현는 손을 들어 그 자국을 가린다. 흰 목덜미와 흰 와이셔츠와 흰 손등, 매끄러운 손톱과 가느다란 손목이 욕정을 자극한다.

 

"너 때문에 밖에도 못 나가고 이게 뭐야···"
"그냥 집에 있어. 날씨도 덥잖아."
"답답하단 말이야. 나가고 싶어."

 

누구맘대로? 장난스럽게 말하자 진짜 싫단 말야! 하며 품안을 벗어난다. 학습 능력이 부족한건지, 일부러 도발하는건지. 꼭 너는 나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들어. 고의던, 아니던, 가끔 정말 짜증이 날 정도야.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가려는 발목을 잡아 채 넘어트리자 딱딱한 바닥에 부딪치고는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아파?"
"당연히 아프지!!!"
"난 더 아파."

 

비가 오는지 조용하던 창문이 탕탕거리는 소리를 낸다. 포기했는지 순순히 몸을 맡기고 있는 현이 밑에서 시끄러워··· 하고 읊조린다. 기운이 빠진 몸뚱아리와 마음에서 흥이 푹 식어버려 서늘하다. 현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짧은 머리카락과 뚱한 입모양과 커다란 눈이 덩어리 째로 가슴에 칼처럼 박힌다. 나랑 너무 같은 얼굴. 닮아서 짜증나는 얼굴.

 

"너 성형할래."
"성형은 갑자기 왜?"
"나랑 똑같아서 짜증나."
"···넌 맨날 짜증난데."

 

다시금 조용해진 집안은 거세진 빗소리에 잠겨 눅눅하다. 꼭 바다에 잠겨있는 것 처럼 온 갖 습기로 가득하다. 폐부까지 가득찬 물방울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TV에서 장마의 시작을 알린다. 7월, 그 지겨운 장마.

 

"···진아."
"어."
"우리 우도 갈까?"
"우도는 왜."
"연리지 보러."

 

너 결혼 하면, 우리 이제 만날 시간도 없잖아. 나도 취업 준비 해야 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현의 고개가 푹 꺾인다. 집안은 이제 어둠이 내려앉아 현의 흰 목덜미도 흰 와이셔츠도 보이지 않는다. 째깍이는 시계가 뻐꾹,뻐꾹, 하면서 12번을 운다.
 
"12시다. 그만 자러 가."
"진아······"
"자러 가라고."

 

어둠 속에 잠긴 인영이 우울하게 일어난다. 터덜터덜 움직인다. 습기로 땀이 배어있는 발바닥이 바닥과 맞붙었다 떨어지면서 찍찍, 하고 끔찍한 소리를 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가 있던 자리만이 새하얗게 빛난다. 흰 장미가 잘 어울리는 너. 언젠가 너에게 장미꽃을 안겨주리라 다짐 했었는데.

핸드폰 액정에서 불빛이 반짝인다.

 

[ 결혼 축하해.
               -이 현 ]

 

"너를 죽여 버리고 싶어."

 

그런데 네가 죽으면 나도 죽잖아.

나는 너를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해 이렇게 운다. 거실 한복판에서, 냉기가 올라오는 골방같은 넓은 거실에서 나는 혼자 슬픔에 뒹군다. 따뜻한 방안의 침대에서 울음에 잠길 너의 몫까지, 나는 울부 짖는다. 울어라. 발버둥쳐라.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층의 건물에서 뛰어 내려 보아라. 너의 시체에 남은건 벗겨져 나간 손톱 뿐과 연인의 눈물 뿐일 터.

 


.
.
.

 


 아침에 일어나서 직접 너의 옷을 골라준다. 오늘은 짙푸른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흰 와이쳐츠와, 보라색과 분홍색이 조화를 이룬 넥타이다. 직접 너에게 넥타이를 매어준다. 너는 잠잠하다. 접힌 카라도 빼주고, 엉클어진 너의 머리칼도 정돈해준다. 나랑 같지만, 나와 다르다.
 사랑하는 너의 얼굴은, 나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작게 웃으며 멋지다, 하고 진심을 담은 공치례를 날려도 너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오늘 아침은 고요하다. 너무 고요해서, 나뭇잎이 내려앉을 것만 같다.

 

 "아침 차릴게, 먹고 가."
 "어."

 

 너를 위해 요리한다, 서투른 손길로 칼에 배이고, 불에 데여도 나는 괜찮았다. 내 다 탄 밥도, 짜게 졸아든 된장찌게도 먹어주는 너를 사랑했다.
 언제나 너에게 좋은걸 주고 싶고, 예쁜 것만 보여주고, 맛있는 것만 먹게 해주고 싶었는데 생각 처럼 그게 참 쉽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나의 최선만을 다해왔다. 따끈하게 데워진 공기에 밥을 채운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에 불을 줄이고 후라이팬에 기름일 적당량 붓고는 달군다. 평범하다. 평범한건 잊혀지지 않는다더라. 그러니 나와 함께한 평범한 이 행복을, 소소한 일상을 잊지 말아라.

 

 "이 현"
 "응?"
" 찌게 넘친다."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다급히 불을 껐지만 그래도 이미 뚝배기에서 소량의 국물이 넘쳐있었다. 마지막까지 나는 사고를 치나보다. 매일 저지르는 한 가지씩의 실수 또한 너와 나의 일상이다. 내 비명사이로 들러리처럼 섞이는 너의 한숨도 우리의 일상 속 존재하던 것이다.
 나는 그래서 눈물을 감춘다. 어색함의 슬픔을 민망이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밥상을 차린다. 너는 그 짧은 시간이 지루한지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다. 흰 와이셔츠 뒤로 의자에 걸려있는 까만 양복이 보인다. 오늘 새벽에 내가 너를 위해 직접 다린 옷이다. 나의 한숨과 눈물이 뜨거운 다리미의 열기에 승화되어 버린 옷이다. 그래서 너는 그걸 차마 입지 못하고 걸어둔다.

 

 "진아."
 "응."
 "맛있어?"
 "그저 그래."

 

 나도 요리 잘했으면 좋겠어……진이 눈을 들고 나를 쳐다본다. 형수님은 요리 잘하시지? 좋겠네, 맛있는거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해. 속없이 웃자 진은 속없이 입을 다문다. 짧은 대화끝에 다시 부엌은 고요라는 단어로 가득찬다. 초록빛의 햇살이 식탁위로 내려 앉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신발장에 선 너에게 마지막으로 손끝을 가져다 댄다. 내 더러운 손끝이 너에게 물들어 조금이라도 깨끗해 지길 바란다. 그런 고집에 너의 이상없는 넥타이를 한번 더 고쳐매준다. 옷깃도 억지로 헝클어트려 다시 다듬어 본다. 그런 내 손을 너는 가만히 저지한다. 나와 같으면서 다른 얼굴을 눈물 범벅이 되어 올려다본다.
나는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지마, 그런 여자한테 가지마, 가지말아 줘. 너 혼자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무엇으로 숨을 내쉬어, 내 탯줄은 너였는데, 아직 나는 너를 떠날 수가 없는데. 너 없이 나는 무엇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니. 나의 눈이 었잖아, 나의 손이었잖아, 내 다리였잖아. 너랑 내 심장은 반쪽뿐이잖아. 서로 하나씩 나뉘어 가졌잖아. 서로 같이 있어야 완전하잖아. 네가 그랬잖아, 나는 너는 서로의 심장에 의존해 태어난 거 랬잖아……!!

 울고 있는 내 볼을 너는 쓰다듬는다. 그러나 벌려진 나의 입술에 너는 입맞추지 않는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너의 차가운 손가락과 만나 서로의 기운을 잃어버리고 스며든다. 마치 나를 잃어버리고 너를 잃어버리는 거 같다.


 우리는 결국 저주 받은 쌍둥이. 서로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결핍체. 사람들은 연리지를 보면서, 아름다운 나무라고 그러지. 감동적이라고, 연인들처럼 사랑스럽다고.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야, 다들 몰라서 하는 말이야. 연리지는 사실, 기형이야. 평범한게 아니라, 돌연변이라고. 원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세상의 돌연변이!!!


 너는 떠나간다. 까만색 SM7을 끌고 사라진다. 너는 너의 그녀에게 가겠지, 흰색의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너를 기다리는 그녀를 만나러 가겠지. 나는 가지 않을거야, 진아. 사랑하는 나의 반신아. 너를 위해서, 너에게 빌렸던 영혼을, 심장을 돌려줄게.


.
.
.


그날도 약간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었다. 그 이른 아침은 적어도 그랬었다. 예식장에 도착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나는 오늘은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막연하게, 평범해야고 한다고만 생각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받으며 흰색의 드레스를 입은 사랑하는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입장 할 때도, 나에게는 오늘은 그저 소소한 일상이었다. 백금으로 테두리가 둘러진 반지를 끼워줄 때 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왜, 어째서, 나는 그런 나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와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도중에도, 나는 얇은 플립의 휴대폰을 매만지며 물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눈치를 주며 채근한다.

 

 "오늘 진이씨 이상해요. 왜 자꾸 정신을 딴 데 팔아요?"
 "미안."

 

 미안하다면서 또 정신팔고, 도데체 왜 자꾸 휴대폰만 봐요?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휴대폰이 아내인 줄 알겠네. 그 조그마한 투덜거림에 너털웃음 지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제야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 어깨에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댄다.

 

 "그런데 도련님은 안왔네요."

 

 그 호칭에 몸이 움찔, 굳어진다.

 마지막이지만 평소와 같이 지냈던 그 평범함. 그 고요했던 아침, 여전히 맛없던 너의 요리. 내 옷을 골라주던 너의 자상한 손길. 고집스레 내 옷깃을 쥐고 놓지 않던 너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오늘이 평범하다고 생각 하는 걸까. 너만큼 나도 참 고집세지. 자조적으로 미소짓는다.

 

 "오늘 아무래도 못 올거 같다고 그랬었잖아."
 "그래도 왔으면 했는데… 부캐 던져주려구요."

 

 사람들이 깜짝 놀랄걸요, 난 아직도 진이씨랑 도련님 구별 못하잖아요. 깔깔거리는 그녀를 흘낏 본다. 그러고 보면 너도 참 나쁜 여자야, 한지수. 그, 화사해 보이는 미소 속에 많은 걸 가두고 있잖아. 나도 하마터면 모를 뻔 했었지. 그 올라간 입꼬리가, 깊은 눈속에 숨겨진 생각을.

 

 


 "지금…이게 뭐에요? 하, 당신들 이게, 지금 무슨 짓인줄 알아?"

 

 "어쩐지, 몰랐어 이 진, 진이씨.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그것도 자신의 쌍둥이 동생!

 

 더웠던 거실이 금방 식어 버린다. 싸늘하게 공기가 내려 앉는다. 땀으로 끈적했던 몸이 찬 현실에 맞부빋쳐 소름 돋는다. 현는 아무 말이 없다.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오직 소리를 내는건 한지수 그녀 뿐. 광기어린, 조소어린 현실의 미소가 울려퍼진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참한 이 행각의 말로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신을 거부하는 우리들의 운명은, 결국 이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였다.

 

 

 


 나는 겁쟁이지, 그렇지 현아. 나를 사랑한다는 그녀를 품에 안으면서 나는 너에게 되묻는다. 지수의 분홍색 메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이 내 등을 파고 들 때, 나는 배덕하게도 너를 생각한다. 우리들의 보금자리였던 그 조그마한 구석에 놔두고 온 너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늘어트린 너의 두 팔과, 흰 손목과 가느다란 손가락을 생각한다. 너의 눈물을 머금었던 내 손가락을 질투한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은 남자다.


그러니 너는 그만 이런 나를 잊어라. 서로의 갈라진 심장을 이젠 너에게 돌려줄테니, 너는 다시 사랑을 하고, 이런 나는 그냥 웃으며 살아가고……이게 눈물나게 아름다운 우리의 운명이다.

 


.
.
.

 


벌써 까마득한 옛날인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시간이란 게 만들어 낸 망각이겠지. 고개를 떨치고 생각해봐도 우리가 울고 웃고 떠들었던 건 불과 몇 달 전의 이야기인데. 사람의 기억이란 게 이렇게 우습다. 인간의 감정이란 게 이렇게 하찮다.

 

네가 떠난 곳의 추억을 정리하다, 문득 더웁하게 먼지 내려앉은 너를 보았다. 너의 추억을 보았다.


주름 잡힌 색 바랜 커튼과, 마른 장미꽃잎과, 바닥이 드러난 푸른빛의 향수병.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이라는 제목의 이름 모를 가수의 낡은 레코드판. 새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낡음의 일색이다. 마치 우리의 모습과 같은 흐릿한 빛이다. 나는 박스 안에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을 느낀다. 그건 이제 진정으로 너를 잊겠다는 뜻인지라, 다시 조용히 울고 만다.


나는 이제야 너를 위로한다. 온몸으로 너를 사랑한다며 껴안는다. 그러나 너는 간 곳 없다.

 

“현아.”

 

“현아.”

 

나는 이제야 너를 부르며 그리워 할 수 있게 되었다.

 

 

 

.
.
.

 

“현아.”

 

“현아.”


말끝을 늘여서 부르는 모양새가 꼭 누구와 닮아서 출국 시간을 나타내는 공항의 커다란 전광판을 바라보던 눈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새하얗고 통통한 얼굴의 상문이가 뒤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그 얼굴에 겹쳐져 나타나는 뿌연 영상에 눈을 몇 번 문질렀다.

 

"상문아."
"현아, 진짜 가는 거야?"

 

진짜 가니까 여기 있지. 동그란 눈매가 금세 축 쳐진 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매일 자신을 조르르 따라다니던 귀여운 놈. 쓰고 있던 헤드폰을 벗고 몇 번인가 상문의 동그란 머리를 토닥거리자 그제야 조금 웃고 있다.

 

한국…몇 년 만에 가는 것일까. 그 곳, 나의 모국. 그와 함께 한 추억만으로 뒤덮인 그 공간은 아직도 그대로일까. 내가 사랑하던 너의 바람 냄새 나는 방은 그대로일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는 연한 하늘빛의 커튼과, 체리 빛 원목 탁자와, 침대, 옷장. 5년은 족히 쓰는 걸로 기억하는 중고 커피 메이커. 내가 23살 생일선물로 사줬던 손때가 탄 우윳빛 머그컵. 그 옆에 놓인 건 써서 마시지도 않으면서 네 옆에 찰싹 붙어 있으려고 찔끔찔끔 쓴 맛을 간간히 느끼며 향만을 킁킁 들이키던 초콜릿 색 머그컵. 한동안 바람이 잘 들어오는 그 방에서 네 곁에 앉아있으면 너는 어깨를 빌려주곤 하였지.
우리는 누구보다 열렬히 사랑했었다. 한 여름날 내리 쬐는 햇살마냥 뜨겁게, 속삭이듯 부는 여름의 바람처럼 나의, 우리의 결점을 지워내며 그렇게 사랑했다. 나는 그래서 이 뜨거운 감정이 지나도 서늘히 서로의 손을 잡고 유유히 걸을 수 있는 가을 하늘같은 사랑이 올 거라 믿었다. 어려서 어리석었다.

 

'그 때' 나는 도망치듯 유학이란 것을 선택했다. 자살보다 더 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와 같은 나라에, 같은 하늘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 마저 거부한 그것은, 나로 써는 죽음보다 더 한 영혼의 엇갈림이었다. 부모님에게만 조용히 말씀드린 그 사실은 나중에야 그에게 전해졌다더라. 살고 있던 집,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나왔는데 화났을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오전만 해도 흐릿했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어 있다. 하늘의 구름이 푸른색 추억으로 반짝인다.

 

"현아."
"응?"
"그런데 한국엔 왜 가는 거야?"

 

상문이 물어온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애인이야?"
"아니."
“그럼?"
“정인(情人).”
"애인이나 정인이나, 같은 뜻이잖아."
"글쎄……."

 

그는 내게 있어서 부모님도, 가족도 아니야. 좀 더 특별한 존재지.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애인이라는 그런 달콤한 표현을 쓰기 힘들어, 상문아. 정인은, 말 그대로 정인이지. 가슴에 품고만 있는 사람. 감히 말 못하는 사람. 더없이 애틋하고 그리운 사람.

 

"해어졌어?"
"그런 셈이네."
"근데 못 잊은 거야?"
"응."

"그럼 새로 사랑하면 되잖아!"

 

아하하, 그 어린아이 같은 말에 나는 그냥 웃으며 상문의 머리를 매만진다. 이 머나먼 타국에 와서 내가 이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너라는 존재가 잊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네가 부러워. 너는 내가 어른스럽다고 부러워 하지만 나는 어린아이 같은 그런 네가 부럽다. 세상의 더러움 하나 모르고 깨끗한 것만 바라볼 수 있는 네가 질투가 난다.

 

“다른 사랑 할 틈이 어디 있어, 그 사람만 사랑 하는 거도 벅찬걸.”

 

매일 그를 생각하면 하루 24시간이 24초 같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멈추면 지구는 멸망한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래도 지구가 멈췄으면 좋겠어. 흐르지 않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그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기억하고 다시 잊고, 나는 영원히 그랬으면 좋겠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입 꼬리만 슬쩍 올려 웃으며 헤드폰을 다시 썼다. 출국 게이트에서 시끄럽게 안내 방송을 한다. 나는 상문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등을 돌아 걸었다. 왼손에 묵직하게 끌리는 캐리어도 발걸음을 잡지 않았고, 상문이도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웃었으니 너도 웃겠지, 지난 3년간 정말 고마웠어. 널 사랑하지는 않지만 좋아해.

 

처음 해본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게 점차 자라났다. 마치 봄이 다가오는 들판에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그 사랑은 점차 불처럼 변해갔다, 마치 한 여름날 태양이 내리쬐는 격정적인 햇볕처럼 뜨겁게.
그렇게 너무 여름인체로 지낸 걸까, 채 모르게 찾아온 겨울에 우리는 맥없이 고개 저었다. 아직도 나는 그게 후회가 된다. 내 짧은 인생에서 가장 눈물 나는 후회로, 피를 토할 거 같은 아픔으로 나는 그 겨울을 떠난 것을 꼽겠다. 이내 추억처럼 바래버린 우리 사랑이 태어 난 것 마냥 후회가 된다.

 

우리의 사랑은,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이제 지겨운 겨울의 눈보라가 끝나고 다시 가을이 옵니다. 그리고 그 가을이 끝나면 다시 봄이 찾아오겠지요.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keep the world in time spinning around like a ball Never to unwind…"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은 때가 이르면 세상을 공처럼 주위를 맴돌게 합니다. 결코 풀려지지 않아요…….

 

 다시 겨울이 올 지라도 나는 두렵지 않아. 움켜진 손안의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 바람에 풍경처럼 팔랑거린다.내딛는 현의 발걸음은 가을의 하늘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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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글이네요,

'동성연애'라는 것을 주제로 썼습니다.

강한 압력을 주기위해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을 추가했는데, 많은 거부감 없으셨으면 좋겠어요.

트로이메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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