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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

  • 작성자 2sk
  • 작성일 2010-08-23
  • 조회수 204

 

 그녀는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녀도 무언가를 쫓고 있는 것 같았다. 교복을 입은 그녀는 치마가 찢어질 정도로 달렸다. 좁은 골목 사이로 뛰었다. 풍경이 물을 흘린 수채화 그림처럼 빠르게 번졌다. 드디어 그 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고인 빗물이 종아리에 튀었다. 살색 스타킹에 흙탕물이 튀면 분명 미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비릿한 고등어 냄새에 코 끝이 찡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살 냄새 사이를 비집었다. 살과 살의 마찰이 있었다. 씨발! 뭐야! 그녀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얇은 눈들이 쏟아졌다. 거친 욕설이 그녀의 등 뒤로 난무했다. 그녀의 단발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가슴 언저리가 아릿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녀의 가슴이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그녀는 제 집 앞에 도착해서야 빠르게 휘젓던 다리를 멈추었다. 초인종을 눌렀다. 살갗이 쓸려 여러 군데가 아려왔다. 현관문이 열리자 엄마의 질문이 쏟아졌다. 뭐야? 얼굴이 왜 이래! 누가 때렸어? 왜 그래? 말 좀 해봐. 연희야! 무슨 일이야? 응?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대었다.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을 감았다. 그녀는 혼자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모른다.

 

 

 

“연희 씨는 왜 필리핀으로 갔어요? 특별히 이유라도 있으세요? ”

“ 네? 아, 네. 고 2 때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요. 휴양 겸 영어 배우러 갔어요.”

“ 지금은 괜찮으세요?”

“ 아, 네.”

“ 건강에는 말이죠. 홍삼이 효과가…”

 

 

 남자의 말은 끊이지 않는다. 남자는 아이스커피를 연신 들이킨다. 그의 입술은 튀김을 먹은 것처럼 번들거렸다. 연희는 남자를 쳐다보며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린다. 연희는 조신하게 빨대를 집게 손가락으로 잡는다. 그리고 입술을 갖다 대어 마신다. 남자는 자기만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는지 행동을 멈춘다.

 

“ 연희 씨는 좋아하는 음식이 어떻게 되세요?”

“ 가리는 건 딱히 없어요.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고.”

“ 아, 그러시구나.”

 

 

 

퉁퉁하게 생긴 남자는 친구의 조언을 생각해본다. 말이 끊기면 안 돼! 여자는 어색한 남자를 싫어해.

 

“ 저는 조개 구이를 가장 좋아해요. 그래서 옛날에는 꿈이 바닷가에서 생선 팔고 조개구이 집을 하는 거였는데 말이죠. 그걸 엄마한테 말하니까 엄마가…”

 

 

 그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한다. 테이블에 그의 액체가 남아있다. 연희는 그것을 심드렁하게 바라본다. 그는 땀이 나는 것을 느낀다. 이마에 주륵 주륵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는다. 좀 덥네요. 그는 손수건까지 꺼내어 땀을 훔치다가 이마에서 때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제 손톱을 보다가 갑작스러운 정적에 그를 보았다.

 

 

“연희 씨는 학창시절 때 꿈이 어떻게 되세요?”

“ 학창 시절 때요? …. 잘 모르겠어요.”

“ 그래요? 저는 조개구이 하겠다고 하기 전에 친구랑…”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것은 연희에게 기억을 되돌리게 만들었다. 어디서 언제 했던 말이지? 제 목소리가 머리에서 반복되었다. 고장난 카세트에서 반복되는 테이프 같았다. 화면은 깨진 유리조각 같았다. 그래. 그 날의 기억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산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거세게 장마가 내렸다. 장마가 드디어 멈추던 날이었다. 치지지지직. 음성은 주파수를 못 맞춘 라디오 같았다. 교복을 입은 제가 보였다. 주위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흐릿하게 보였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이것은 너무도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기억이다.

 

 

 

 

‘잘 모르겠어요.’

 

“ 잘 모르겠어요.”

“ 그래? 정말 미진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 네.”

“ 그래.”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사실 알고 있을 때가 많지만, 뱉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곧 나에게 해가 된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똑똑한 언니와 멍청한 동생 사이에 낀 나이기 때문에. 김 연희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사실이다. 모른다는 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답을 너무 잘 알고 있다거나 잘못된 답을 알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된다. 그런 거다. 앞에 나서는 사람은 욕을 먹는다. 뒤쳐진 사람도 욕을 먹는다. 중간에 있으면 그럴 일은 없다. 공포영화에서도 귀신은 맨 앞이나 맨 뒤만 잡아간다. 적당함. 중간. 그것들이 제일 안전하다. 나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엄마, 아빠보다 똑똑해서 매일 싸우는 언니. 엄마, 아빠보다 너무 멍청해서 꾸중 듣는 동생. 난 그것의 타협점을 찾아 평화롭게 지낸다.

 

 반장을 찾는 반장 엄마의 얼굴은 뭉크의 절규 그림 같았다. 고것은 분명 도망친 것이 분명하다. 학교에 나오면 맞을 게 뻔하니까. 모르겠다는 대답에 아줌마는 마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답해줘서 고맙다. 뼈다귀 같은 손에 소름이 끼쳤다. 미진이 일기에 나만이 자신의 말에 대답해준다고 썼다한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꾸벅 인사를 한 뒤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교무실 앞이 시끄러웠다. 선생님이 출석부로 최민규를 때렸다.

 

“ 이 새끼가! 다 알고 있다니까? 니가 이미진이 괴롭힌 거 다 알아. 임마! ”

“ 어떻게 아시는데요? 직접 보셨어요? 보지도 못 했으면서 때리시는 거에요? 이거 교육청에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예? 씨발. 보지도 못 했으면서 지랄이야.”

“ 뭐? 씨발? 지랄? 교육청?”

 

 

 체육 선생님의 눈이 번뜩 빛났다. 나는 빠르게 그들을 지나쳤다. 내가 이미진의 말에 대답했던 이유는 저 놈들이랑 한 편이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최민규 앞에서 대답하진 않았다. 그랬다간 나도 이미진과 같은 신세가 될게 뻔하니까. 나는 일진도 모범생도 아니다. 저번에 이미진 편을 들어줬다가 전학 간 부반장이 생각났다. 그는 최민규와 꽤 친한 편이었다. 얼굴도, 성격도. 평균 이상이라 인기도 꽤 있었다. 그런 그가 막지도 못하고 맞을 줄은 몰랐다. 의자로, 대걸레로. 더럽게 엉키던 피. 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 때의 숨 막히던 고요함은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실내화를 신발장에 우악스럽게 넣었다. 신발에 내 발도 구겨 넣었다. 학교를 나가자마자 소란스러웠다. 흙먼지가 날아다녔다. 싸움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정문은 공사 중인데! 반장 엄마 때문에 늦게 까지 남은 게 잘못이었다. 아! 먼지 속 여자애는. 이미진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담장 뒤로 숨었다. 저기에 잘못 끼었다가는 나 까지 맞는다. 학교로 돌아가야 했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곳엔 이미진의 엄마가 있었다. 이 장면을 보고 그녀에게 모른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 내가. 너, 다시 얼굴 안 보게 해달라고 그랬어? 안 그랬어?”

“ 미안해. 용규야. 나 그래서 학교 안 나왔잖아…. 어? 난.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 이사 가면 될 거 아니야? 어?”

“ 우리 집이 이사 갈 형편이 안 돼. 용규야. 너도 알잖아.”

“ 내가 알 바 아니고. 우리 형 지금 불려갔어. 어쩔래? 어?”

 

 

 

 

 최용규. 최민규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유명했다. 일 년 전, 주차장 싸움 때문에 더 유명해졌지만. 그와 같이 다니는 애들은 안 봐도 뻔했다.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미진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문을 잠근 듯하다. 누군가가 저것을 막아야한다. 나는 귀를 막았다. 손가락 사이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마! 하지마! 절박한 비명소리. 둔탁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속으로 초를 세었다. 일초. 이초. 삼초. 사초. 나는 101초 까지 세고는 다시 일초로 돌아갔다. 그 다음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백 일초. 백 일초. 일초. 이초. 삼초. 그것이 20번 쯤 반복 되었을 때 주위가 조용해졌다. 퉷. 침 뱉는 소리가 났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담장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벌써 어디론가 간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피가 없었다. 이미진은 머리를 잡고 웅크려있었다. 놀랍게도. 그녀의 한쪽 다리는 뒤틀려 있었다. 무릎을 굽히는 게 아니라. 무릎 바깥 쪽으로 다리가 뒤틀려 있었다. 이미진은 부은 눈을 조그맣게 떴다. 나를 바라보았다. 죽은 생선 같았다. 그녀의 입술은 바들 바들 떨렸다. 그리고 나에게 입모양으로 말을 했다. 짜증나게도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 살려줘.’

 

 

 

 나는 분식집 문을 두드렸다.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계속 두드렸다. 하지만 문은 너무도 견고했으며 단단했다. 그 때 학교 담장 위로 갈색 머리가 보였다.

최민규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체육 표정 봤냐? 쩔어.”

“ 어. 존나. 개코 원숭이 같더라.”

 

 나는 이미진을 보았다. 발 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녀는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미진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제발. 그럴 거야. 그녀는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금요일 하루 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문을 따고 들어왔을 때는 자는 척 했다. 엄마는 내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엄마의 얼굴이었다. 나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엄마가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볼지 말이다. 언니도, 동생도 내가 걱정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밤마다 이상한 악몽에 시달렸다. 토요일날 낮잠을 자다가, 최민규에게 맞는 꿈을 꾸었다. 최민규 뒤에는 이미진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계속 바들거렸다. 토요일 밤에는 벌거벗은 나를 보는 꿈을 꾸었다. 나의 몸은 너무도 왜소하고 생경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작은 짐승 같았다. 허리를 굽혀 등뼈가 다 드러났다. 나에게 이와 함께 적의를 드러냈다. 흉폭했다. 나는 그것을 피해 도망쳤다. 일어났을 때 나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울음은 금방 그쳤다. 일요일 날.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나는 커피를 7잔 마셨다. 하지만, 나는 결국 잠이 들었다. 그 날의 꿈은 그저 암흑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소리들이 들려서 귀를 막았다. 아침에 나는 안도하고 두려워했다. 학교에 가기 싫었다. 하지만, 빨리 직면할수록 좋았다. 나는 그저 모른 척하면 되는 것이었다.

 

 

 학교는 너무도 조용했다. 나는 이방인을 펴놓고 보았다. 읽지 않았다. 그저 볼 뿐이다. 애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왔다. 안녕!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점점 들어왔다. 하지만, 최민규와 이미진은 들어오지 않았다. 앞부터 수근 수근 거리던 얘기들이 점점 커졌다.

 

“ 최민규 강제 전학 갔대.”

“ 진짜? 이미진도?”

“ 어. 우리 아빠가 말해줬어. ”

“ 맞다. 니네 아빠 선생님이시지?”

“ 이미진 다리 병신 됐대.”

“ 헐. 다리 병신? ”

“ 야. 목소리 줄여. 그게 금요일 날 이미진이 학교…”

 

 

 학교 근처인 자신의 집에 왔다가 만난 거겠지. 최용규를. 그리곤. 아. 그들의 소리는 주위를 의식하곤 점점 줄어들었다. 그들의 얘기 때문에 조용했던 교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여러 무리의 얘기 속에서 그들의 이름이 나왔다. 내 탓이 아니다. 그건. 그저. 최민규와 최용규 탓이었다. 누구든 그 상황에선 아무 일도 하지 못 했을 거다. 그리고 난 그녀를 돕기 위해 분식집 문도 두드렸다. 그래. 그래. 누군가 내 탓이 아니라고 말 해줬으면 좋겠다. 다행이었다. 그들이 내 눈 앞에서 사라져서. 나는 이 일을 잊을 것이다. 영원히. 손이 바들 바들 떨렸다. 나는 책상을 힘껏 잡았다. 형광등이 너무 밝았다.

 

 

 

 

 

 

 

 

 

“ 연희 씨. 버스 정류장 까지 데려다 줄게요.”

“ 아, 괜찮아요.”

“ 에이. 아니에요. 여자 분이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

“ 괜찮은데….”

 

 

 연희는 푸스스 웃었다. 바람이 살랑이듯 웃는 그녀였다. 그는 연희의 옆에 서서 걸었다. 그는 예감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얘기를 계속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연희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그는 연희 앞에 서서 계속 웃었다. 연희는 그의 벨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친 얼굴이었다. 옆에 앉은 남자는 DMB로 뉴스를 보고 있다.

 

- 오늘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김양이 이양을 때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원인은 이양이 김양을 봤다는 이유였습니다. 자세한 소식 박성식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박성식 기자?

- 박성식 기자입니다. 오늘 대구에서…

 

 

“ 요즘 애들은 무서워요. 어린 것들이 벌써 주먹맛을 알아가지곤. 나중에 조폭이나 중국 집 배달부가 될 겁니다, 아마. 연희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저요? 저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는 연희를 알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연희도 자신은 알 수 없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연희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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