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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레네- 평화

  • 작성자 푸르딩딩
  • 작성일 2012-11-02
  • 조회수 672

irene 이레네 - 평화

  새까만 그을음만이 가득한 병실. 죽음만이 자리하는 이곳에서 한 소녀가 피로 얼룩진 침상에 올라가 침대위에서 서서히 스러져 가는 친구의 생명을 지켜보며 서글피 울고 있었다. 그녀와 죽어가는 친구를 바라보는 소위 의사와 간호사란 작자들의 눈길에는 침대를 하나 비울 수 있다는 기쁨과 안도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울고 있는 소녀를 방관만 한 채로.

 

 

  소녀의 친구는 자신의 잘려진 팔을 보면서. 그 팔을 통해 빠져나가는 생명의 기운을 느끼면서도 소녀와 같이 울지 않았다. 그저, 그저 가만히 소녀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뱉을 뿐이었다.

  “괜히 울지 마. 리는 우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나도 예쁘지 않단 말이야.”

  울음을 달래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결국 목 놓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목 놓아 울어버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몸을,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버린 폭탄을, 더 나아가 전쟁을 원망 하면서 겉으로는 그저 작게 미소 지었다.

 

 

  한참을 말없이 얼마나 있었을까.

  “리…….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줄 수 있어?”

  그의 말을 들은 소녀는 눈물이 고인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응! 말만해 모든지 들어줄게.”

  그녀의 조금 오버하는 듯 하는 태도에 그는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잠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이 순간만큼은 전쟁의 아픔도, 폭탄과 함께 사라진 한쪽 팔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 영양제를 빙자한. 의사가 놓아 준 치사량에 달하는 모르핀 때문인지는 몰라도 모든 고통은 사라진 채 행복감만이 그를 가득 채웠다.

  곧 죽을 거라는 생각. 그 때문에 그는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리, 내가 죽은 후 나를 화장한 뼛가루를 놀이공원에 데려가 줘.”

  “놀이공원?”

  “응. 전쟁이 끝나면 같이 가기로 했었던 그 곳 말이야.”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그의 말에 소녀는 그를 바라보며 또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사실 소녀도 알고 있었다. 그는 곧 죽을 거란 것을. 이 전쟁 중에 이렇게 다쳐 버린 그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녀는 믿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힘껏 저으며 소리쳤다.

  “전쟁이 끝나면 가기로 했잖아! 너는 꼭 다 나을 수 있어.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응?”

  남은 한 쪽 팔을 힘껏 잡으며 소녀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절대 놓지 않겠노라고. 이 팔 뿐만 아니라 그의 목숨까지 죽음이 가져가게 두지 않을 거라는 듯이 소녀는 그의 팔을 꽉 잡았다.

  하지만 전쟁 중의 병실 안. 다친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간호사들의 수다, 사람들의 대화들로 꽉 찬 병실은 그들의 말소리를 조용히 집어 삼켰다. 그 소음을 빌어 소년은 나지막하게 소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걸.”

  말을 마친 소년은 한참 뒤, 그녀의 품 안에서 얇은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식어갔다.

  병실은 한 소년의 영혼과 숨을, 한 소녀의 울음소리와 한을 조용히, 조용히 집어 삼켰고. 소년의 시신은 하얀 침대에 실려 어딘가로 이송되어져 갔다.

 

  일가친척도, 부모님도 알 수 없는 소년의 유일한 친구인 소녀는 그의 보호자나 마찬가지인 까닭에, 그를 화장하는 광경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친구가 관에 넣어져 활활 타오르는 겁화 속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았다.

  그런 소녀를 화장사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휘휘 돌리며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한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그 손을 잡았다. 순간, 화장사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오르더니, 그 투박한 입에서 말이 나왔다.

  “이것 말고, 돈 말이야, 돈. 돈 없어?”

  그의 말을 듣고 소녀는 머리에 뭔가를 맞은 듯.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놈의 세상은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소녀는 생각했다. 멍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사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보는 소녀를 화장사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멋쩍게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래, 너 같은 꼬마에게 뭘 바라겠냐.”

  말을 마친 화장사는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손을 내밀었고, 한명도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저 돈을 줬을 뿐 이었다. 소녀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그저, 친구를 태우고 있는 불 속을 쳐다보면서 가느다란 눈물 한 줄기를 흘렸다.

  한참 뒤, 소년을 태우고 남은 재와 소년의 뼈를 화장사가 거칠게 꺼냈다. 화장사는 소년을 곁눈질로 한번 바라보더니 통속에 소년의 뼈를 대충 집어넣고 갈기 시작했다.

  「까드득- 까드드득- 까득- 까드드드득-」

  소년의 뼈 가는 소리가 소녀의 귀를 울렸다. 이 화장사의 얼굴에 아까와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소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지, 화장사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저기요! 지금 제 친구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죠!”

  “뼈 갈고 있잖아. 그럼, 친구 뼈 안갈 거 야?”

  화장사의 태연한 태도에 소녀는 말을 잃었다. 기가 막혀도 이런 경우가 없었다. 단지 돈 몇 푼 때문에 이렇게 구는 화장사를 보며 소녀는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카락을 다 뽑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갈게요. 그냥.”

  소녀는 소년의 뼈를 갈면서 울었다. 소년의 죽음이 서러웠고, 죽어서도 돈이 없어 이렇게 화장되는 소년이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소년에게 이렇게 해 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미워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하아.’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유골함을 보며 소녀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란 없었기에. 죽어 이 안에 담겨있는 그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발걸음은 어딘가에 있을 놀이공원을 향하고 있었다.

  딱딱한 회색 벽돌로 이루어진 병원에게서 멀어지며 그녀는 생각했다. 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그랬을지 모를 간호사들의 소름 끼치는 미소와 의사의 그, 그 끔찍한 주사를 놓던 손길을. 그 주사를 놓으며 ‘제법 괜찮은 영양제를 구했습니다.’라고 하던 거짓말 까지도.

  어느새 점으로 변해가는 병원을 뒤로한 채 소녀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병원을 떠나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소녀는 한 표지판을 보고 가던 발길을 멈췄다.

  표지판은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던 것 같지만 다 벗겨져 있었고, 녹물이 흘렀다. 또한 한 쪽 다리는 폭탄에 맞아 부러진 듯 한쪽 다리만으로 겨우 버텨 서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힘없이 한쪽 다리만으로 서 있는 표지판을 한번 찬찬히 보던 소녀는 한 손을 표지판을 향해 뻗어, 그 녹이 슨 부분을 천천히 만져 보았다. 차가움, 소녀는 죽어가던 그가 생각나 괜히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내 눈을 감고 아무 장애물도 없는 그 평원을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루르네 마을 1km →』

  마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잠시나마 쉴 곳이 생겼다는 기쁨 탓일까.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에 안은 작은 함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그 함에게 말을 걸 듯 하던 소녀는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얼마 안 가 표지판에 적힌 대로 마을이 나오려는지 건물의 형태가 모여 있는 것을 소녀는 볼 수 있었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소녀의 마음을 더욱 급해져 가는 듯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소녀의 얼굴은 살짝, 활기를 띄었다.

  조금 더 걷자 마을의 입구가 보이며 이 황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푸르른 나무 두 그루가 마을의 입구의 양 쪽에 서서 환영하듯 서 있었다.

  작은 마을의 소박한 분위기를 대변하듯 나무 두 그루로부터 시작하여 펼쳐진 나무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걸어갔다. 흙에서 전해지는 포근한 느낌이 소녀의 맘을 가득 매우며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듯해서, 소녀는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소녀는 계속 걷다가 마을 중앙의 집 앞에 웬 여인이 조리개로 밭에 물을 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 물어 보았다.

  “저기……. 혹시 물 한잔만 주실 수 있나요?”

  여인은 잠시 소녀를 쳐다보더니 집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여인을 한 손에 중간 사이즈의 물병을 들고 나타나 소녀에게 내밀었다. 소녀는 잠시 물병을 바라보다 여인의 얼굴을 보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소녀는 입을 열어 감사인사를 하며 물을 마셨다. 오랜-소녀의 기준으로- 여행으로 인해 기진맥진한 소녀는 물을 정신없이 삼켰고, 여인은 그녀가 매우 힘든 나날을 보냈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손으로 물을 마시고 한 손으로 작은 함을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소녀를, 여인은 쳐다보다 말을 걸었다.

  “그 함,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소중한 것 인가보네요.”

  소녀는 여인의 질문에 물병을 입에서 떼고,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제게 있어 목숨과 같은 거 에요. 친구의 유품이 들어있는 상자거든요.”

  여인은 소녀의 대답에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

  “매우 피곤해 보이는데, 집에서 잠시 쉬었다 가지 않을래요?”

  소녀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다가, 확실히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여인은 그녀를 집 안으로 인도했다.

  “집이 굉장히 좋네요.”

  소녀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인의 집은 외부에서 보던 것보다 더욱 넓었고,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춰져 있었다. 여인은 좋아하는 그녀를 보며 웃으며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를 침대에 앉히고는 주방으로 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제가 초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가만있지 말고 저기 목욕실이 있으니 가서 좀 씻어요.”

  여인의 말에 소녀는 고맙다는 듯이 작게 웃고는 목욕실로 들어갔다. 소녀의 웃음을 바라보며 여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더니 소녀와 비슷한 작은 웃음을 지었다.

 

 

  소녀는 그 여인의 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렀다.

  가야할 길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지만 이런 편안한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여겼기에, 소녀는 편안한 마음으로 푹 쉴 수 있었다. 따스한 여인의 미소 때문이었을까, 이때까지 걸어 온 길이 황량한 평원이었기 때문일까. 소녀는 일주일 간 편안히 쉬면서 지친 마음과 심신을 달랠 수 있었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그 동안 여러 가지로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머물다 가시지는.”

  소녀도 더 머물며 쉬고 싶었지만 마음을 억눌렀다. 자신이 쉬면 쉴수록 더욱 더 쉬고 싶어질 거라고, 영영 소년을 놀이공원에 데려다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소녀의 확실한 거절에 여인은 조금 풀이 죽은 듯 하는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목표로 하는 곳에 잘 가길 바랄게요.”

  풀이 죽은 여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소녀는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드리고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길을 가려던 찰나, 소녀는 뭔가 생각난 듯 몸을 돌리더니 여인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혹시 놀이공원이 어디 있는 지 아시나요?”

  소녀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 소녀가 작고 투박해 보이는 갈색 함을 조심스레 가슴에 품고 놀이공원 매표소 앞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소녀의 앞에 놀이 기구만이 남은 채 인기척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놀이공원은 입구를 쩍 벌린 채 소녀를 반기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이지만 놀이공원에 도착 했다는 것에 의미를 둔 채, 소녀는 상처투성이가 된 채 붕대로 감싸인 발을 조심스레 털고,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자신도 그 옆에 앉으며 말했다.

  “다 왔어. 여기가 네가 원하던 놀이공원이야.”

  소녀는 입구를 앞에 두고 들어가지 않은 채, 나무 옆에 홀로 서 있는 벤치-놀이공원이 번성했을 적에는 입구에서 서 있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둔 게 분명한-에서 마을을 떠나올 때, 여인이 먹으면서 가라고 싸준 육포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물었다.

  소녀는 육포를 씹으며 생각했다. ‘육포가 맛있어-’ 라고. 하나를 다 씹어 먹자 또 하나를 입에 물고 우물거렸다. 한참을 육포를 씹던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 놀이공원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먼저, 소녀는 이 놀이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한손에 함을 들고 일어나 놀이공원의 입구로 향했다.

  한 낮이라서 그런지, 놀이공원은 그런대로 본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한 때 크게 번성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황폐한 모습만을 가진 채. 소녀를 반기는 여러 가지 현판들부터 시작하여, 바람만이 타고 노는 회전목마와, 이끼가 잔뜩 낀 여러 가지 이름 모를 놀이기구들. 그리고 공중을 가로질러 넓게 뻗어있는 롤러코스터. 전쟁으로 인해서 버려진 놀이공원은 과거로의 향수를 상징하는 듯 했다.

  “이 놀이공원이, 우리가 진짜 찾는 그곳이 맞는 걸까?”

  소녀는 꿈을 꾸듯 말했다. 그들의 상상 속의 놀이공원은 항상 웃음만이, 항상 기쁨만이 가득 찬 그런 곳 이었기에. 상상과는 너무 다른, 괴리감 속에서 소녀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소녀는 고민했다. 소년을 진짜 이런 곳에 놔둬도 되는 것인가. 소녀는 놀이공원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어딘가에 있을, 소년과 꼭 맞는 안식처를 찾기 위해서.

 

 

  소녀는놀이공원을돌아다니던중붉은,아주붉은꽃밭을찾았다.붉은꽃은너무나아름다웠다.소녀는그곳이소년에게꼭맞는곳이라고생각했다.그리고소년을그곳에뿌리고자신도그곳에누웠다.잠시쉬었다가는것이라면상관없을것이라고생각했다.소녀는잠이들었다.소녀는아주황홀한,아주멋진꿈을꾸었다.소녀는그꿈에서잃어버린엄마와,아빠와,전쟁이없는평화로운세상을보았다.마지막으로소년을만났다.소년은아주밝게,정말아주밝게웃고있었다.소년은웃으면서말했다.자신은행복하다고,그러니까너도행복해지라고.그러니까소녀는말했다.보고싶다고,정말로다시보고싶다고.꿈에서깨어났을때소녀는웃었다.꿈에도그리던,꿈에나와서행복하다고말했던소년이자신의눈앞에서밝게웃고있었기때문이다.소년은웃었다.소녀도웃었다.너무행복했다.소녀는황홀감에취해서,자신의눈앞에있는소년이믿기지가않아서,더듬어보았다.더듬어졌다.소녀는소년을꼭안았다.소년은따뜻했다.자신의눈앞에있는소년이너무따뜻해서소녀는울었다.너무서글픈마음에소녀는울었다.소녀는현실임에도불구하고느껴지는소년에너무나행복했다.

 

  붉은꽃이웃음을짓는다.붉은꽃이자신에게뿌려진소년의잔해를집어삼킨다.그를복사해내어소녀에게돌려보낸다.소녀를웃게만든다.소녀가행복해하는모습을보며붉은꽃은소녀를안았다.자신의품에꼬옥안았다.소녀는붉은꽃에자신이망가져가는줄도모르고,행복에취해잠이들었다.

 

 

 

  “헤르, 이런 곳도 정찰해 봐야하는 거야?”

  “상부에서 그러라는데 우리 같은 말단군인이 어쩌겠어. 까라면 까고, 쏘라면 쏴야지.”

  짜증이 났다. 이런 버려지고 허름한 놀이공원까지 근무를 서야한다니. 이놈의 전쟁이 빨리 끝나버려야지.

  내 동료인 빅터도 내 말에 동감하는 듯. 총을 들고 나를 졸졸 따라왔다.

  한 밤중의 놀이공원은 굉장히 을씨년스러웠다. 이런 곳에도 이 빌어먹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겠지.

  나는 앞을 향해 총을 겨누며 조심히, 그리고 서서히 전진했다. 사방이 붉은 꽃으로 가득했다. 이런 밤중에 붉은 꽃이라니.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하긴, 이런 곳이라면 적군이 숨어있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 상부에서도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는 뜻이겠지- 라고 애써 합리화를 해봐도 솟구치는 짜증에 괜히 땅을 ‘탁!’ 소리가 나게 찼다.

  “헤르, 저기 봐봐. 뭔가 있지않……?! 으아악!”

  ‘탕! 탕!’

  무언가가 빅터를 덮쳤다. 놀란 나머지 나는, 그 물체를 확인할 새도 없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그 물체는 총에 맞았다. 그런데도 그 물체는 빅터를 놓지 않았다. 내가 그 물체를 떼어내려고 빅터에게 다가갈 때, 빅터가 내게 말했다.

  “잠깐만, 나한테 붙은 이거 여자애야!”

  “뭐? 여자애라고?”

  빅터의 말에 놀라 야전용 손전등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곧 이어, 불이 켜지며 그 물체를 비췄고, 나는 그 물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 그것은 소녀였다. 그 소녀는 다 닳아 헤진 옷을 입고, 발이 다 부르터진 채로 빅터에게 붙어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레네……, 이레네……. 헤에, 역시 날 버리지 않았어. 이레네…….”

  “재수가 없으려니!”

  빅터는 그 여자애를 떼어냈다. 여자애는 땅에 내동댕이쳐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빅터도 나도, 왠지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어서, 그냥 진영에 돌아가기로 했다. 뭐, 이 정도면 놀이공원 정찰도 거의 마친 샘 아닌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평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아이 한명도 처리를 했고 말이야.

  “빅터, 가서 술이나 마시자고.”

  “그러게,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낫겠지?”

  “그런데, 아까 개 좀 미친 것 같지 않았어? 갑자기 달려들다니 말이야.”

  “딱 보면 몰라? 아까 우리가 지나온 길. 양귀비 꽃밭이었잖아, 분명 환각이나 봤겠지. 그래도 정말 오싹해 죽는 줄 알았다고. 저게 적군이었으면 난 바로 죽었을 거야.”

  아까 그곳이 양귀비 꽃밭이란 것을 빅터의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양귀비 꽃밭인 줄 알았다면 몇 송이 좀 꺾어올 것을. 아편이나 제조해서 동료들한테 팔아넘기면 얻는 돈이 얼만데…….

  “그런데, 좀 마음에 걸린다.”

  “에이, 신경 쓰지 마! 전쟁인데 뭐 어때. 한 두 사람 죽을 수도 있는 거지.”

 

 

End

푸르딩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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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르딩딩
  • 2013-11-17
달동네의 겨울, 그 아침

 달동네에서 맞이한 겨울,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눈은 너무 아름다웠다.   “눈이 오네…….”   이곳에 온 지도 1년이 다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듯, 눈은 새하얗게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새벽 4시 30분,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너무 일찍 일어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아서 결국 세수를 하고 마당과 길거리를 쓸어 보기로 했다. 왜, 막 소설에 보면 나오지 않는가. 소박한 동네에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쓸어주는 어른들. 흉내나마 내보기로 하고 빨개진 볼을 목도리로 감싸며 츄리닝만 입은 채, 대문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으로 나오면 나를 맞아주는 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달동네의 골목길, 생각보다 많이 쌓여있는 눈들이 신기해 발로 밟아보니 발이 푹푹, 꽤나 깊게 들어간다. 따뜻한 남쪽, 여수가 고향이라서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 걸 보기 어려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많은 눈들을 그냥 쓸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수에서 만약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면, 그것도 그날이 휴일이라면, 사람들은 무척이나 좋아하겠지? 나는 집에 들어가 빗자루를 다시 창고 속에다가 넣고 대신 양동이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고 우리 집 대문 앞에 쌓인 눈부터 양동이에 담기 시작하는 나. 새벽이라 망정이지 눈을 보기 쉬운 서울에서, 그것도 다 큰 어른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을까-. 괜한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혼자서 헤헤거리며 양동이에 담은 눈을 우리 집 마당에 그대로 뒤집어엎었다. 원통형의 눈 기둥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 신기했다. 눈이 아무리 많이 와도 그저 몇cm 쌓이는 여수에서 이렇게 신나는 것을 할 수 있었을까. 몇 번을 반복하니 단상처럼 변하는 눈덩이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걸로 뭘 만들어 볼까. 양동이로 눈을 퍼 담기 시작한지 몇 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눈을 치워주려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나는 골목길에 있는 눈을 양동이로 신나게 떠 마당으로 운반해 눈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뭐, 골목길에 있는 눈이 치워진다는 결론은 어쨌거나 도출되긴 하지만, 사람들이 이걸 본다면 굉장히 잉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당에 만들려고 생각했던 눈사람을 다 만들고 나니 어느새 5시 30분쯤이 되었다.   “너무 멋진 거 같은데?”   내 머리 만큼 오는 눈사람을 보니, 얼굴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누구든 이 눈사람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사진으로 남겨놔야지-하며 집 안에 들어가 휴대폰을 가지고 나왔다.   “눈사람 아저씨, 찍습니다! 웃으세요!” “여기보세요- 찰칵!”   내 말에 뒤이어, 휴대폰에서 효과음이 나며 눈사람을 찍는다. 나뭇가지로 눈과 입을 만들고, 양동이로 모자를 씌우고, 내 목도리까지 감아 준 진짜 눈사람. 왠지 한 시간이 아깝지 않게 흘러간 것 같아서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눈사람도 만들고, 골목길에 눈도 어느 정도 치우고.   “꼬끼오-”   시골에

  • 푸르딩딩
  • 2013-08-18
공복

  그 날도 남자는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알코올이 대뇌를 잠식하면서 보이는 온 세상에 그의 기억에 심하게 어긋나 있었다. 남자는 한 전봇대 앞에 멈춰섰다.   얼큰하게 취한 얼굴로 전봇대에 소변을 갈기고, 한 손에 너절한 소주병을 든 채, 비틀비틀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사람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다만, 자기들의 손에 들린 빵을, 고기를,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씹고 있을 뿐.   이미 기후변화와 여러 가지 지진이나 화산활동 등. 이상 현상을 제외하고도 뉴스에서는 지구의 멸망을 떠들어 대고 있었다. 브라운 관 속에 양복을 입고 있는 기자는 열심히 떠들어 대면서, 화면은 사람들이 거리의, 식탁 위의, 식당에서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먹고 있는 모습을 클로즈 업 시켜주며 지구 멸망의 전조라고 소리쳤다.   남자는 암울한 내용만 계속 반복되는 TV를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렸다. 긴 밤에 이어지는 침묵. 남자는 주위를 집 안을 둘러보았다. 도둑이라도 왔다 간 듯, 이리 저리 젖혀져 있는 서랍장들, 꺼내어 져 있는 갖은 모든 것들이, 황폐한 집안에 남은 남자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탐식의 병’에 자기를 포함한 몇몇 사람만 걸리지 않았음을. 시작은 어느 나라였는지 몰랐으나, 그것은 퍼져 나갔고,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은 탐식에 억눌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남자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장사가 호황이라 좋아하던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뉘우쳤다.   사실, 남자의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먹지 않았다. 그저 처음에는 약간의 식욕의 증가였던 것이 이렇게 폭식으로까지 변한지 약 한 주 째, 남자는 하루하루가 공포였다.   자신의 가족이 무엇을 먹고 있을까,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떠나가 버린 자신의 가족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남자는 벌게진 얼굴로 겉과는 다르게 하나도 취하지 않은 자신의 뇌를 탓하며 한 손에 들고 있던 소주병을 계속해서 들이켰다. 그리고 정적.   남자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부스스한 머리를 한 손으로 헤집으며, 소파에서 일어나 바닥에 앉았다. 아픈 머리가 더욱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아침 해만 내리쬐는 바깥을 쳐다보았다. 아파트 17층, 하늘과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이곳에서 신에게 우리 가족의 안부를 물으면 대답해주시려나, 생각하며 남자는 베란다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원래 이 시간대쯤이면 우리 딸은 학교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내는 소박하지만 손맛이 담겨있는 된장국을 꺼내오면서 웃음 지었겠지.”   혼자인 것이 새삼, 강하게 느껴지는 지 남자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꾹- 꾹-

  • 푸르딩딩
  • 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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