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작성자 파란색스머프
- 작성일 201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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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침이 7시에 가까워졌다. A는 서둘러 옷을 입었다. 두꺼운 스웨터에 패딩을 걸쳐 입고 선글라스에 목도리와 모자와 장갑까지 빠짐없이 착용한 뒤 긴 부츠를 신고 나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문틈으로 찬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아이가 기척도 없이 튀어나와 재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고사리 같은 손에 제 얼굴보다 몇 배나 큰 서류 가방이 들려있었다. 어서 나오라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A는 집을 나섰다.
싸락눈이 내리는 통에 골목길은 온통 눈 투성이었다. 아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길가에 쌓인 눈을 밟았다. 아이의 얇은 코트에 묻은 눈이 반짝 빛나다 물이 되어 사라졌다. 아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발자국이 깊게 파였다. 골목길 곳곳에 제설을 위해 뿌린 염화칼슘이 무색하게도 눈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A도 살며시 발을 내디뎠다. 눈을 밟는 일은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아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A는 아이의 발자국을 쳐다보며 걷기 시작했다.
A가 근무하는 회사는 번화가 한복판에 있었다. 비슷하게 생긴 고층 건물이 길을 따라 이어졌다. 얼어붙은 도로 위로 차와 사람들이 오갔다. 추운 날씨였지만 사람들의 옷차림은 다양했다. A처럼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드물게 얇은 니트나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밖에 나서는 사람도 보였다. 출근하는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추위가 시작되고 나서 유례없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출산율 때문에 자식이 없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 되었다. 갓 스물을 넘겨 보이는 어린 여자부터 걷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까지 부모의 나이대는 다양했다. 개중엔 두꺼운 옷으로 성별마저 가린 사람도 있었다.
중앙에 있는 전광판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앵커가 끝나지 않는 추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스피커를 통해 추위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귀담아듣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A는 잠시 전광판을 쳐다보다 바닥으로 눈을 돌렸다. 뉴스의 내용은 A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복잡했다. 원인을 알아봤자 변하는 것도 없었다. 여전히 추위는 계속되고 A는 먹고 살기 위해 회사에 가야만 했다. A는 습관처럼 뒤꿈치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의 반만 한 발자국을 본 다음에야, A는 도시가 추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랬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눈에 찍힌 A의 자그마한 발자국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A! 오랜만이야! 요즘 잘 지내? A는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옆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B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짧은 치마에 얇은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마스크나 선글라스 없이 훤히 드러난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정말 정말 오랜만이에요! 살 빠지셨나,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셔요. 엄마는 잘 지내세요. 아이가 화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A는 끼어들지 않고 묵묵히 서서 패딩에 묻은 눈을 만지작댔다. B가 아이를 본 채 회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회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다. 당찬 골드미스인 B는 수많은 사원 중 가장 도드라지는 사람이었다. B는 아이를 데리고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신은 누가 뭐래도 나만의 삶을 살겠다며 주위 사람에게 말하고 다녔다. 어떤 사원은 제 할 말은 죽어도 하고 마는 B를 못마땅해했으나 B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주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A도 B처럼 되기를 원했다. A는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집 안에만 들어서면 아이는 죽은 듯 기척을 감추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그럴 때마다 A는 입고 있던 옷을 아이 방에 가져다 놓고 현관문 앞에서 서성이며 앙상하게 드러난 자신의 팔목 뼈와 문고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문고리를 반쯤 돌리는 데 성공했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거실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아이가 방 안에 있을 때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동네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문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하루를 보내고는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A는 창고에서 사진을 꺼내 들여다보며 혼자 웃고 울었다. A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환히 웃고 있는 아이의 뒤에 A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이는 A를 쏙 빼닮았지만 서로가 주는 느낌마저 비슷하지는 않았다. 똑같이 축 처진 눈꼬리를 가졌지만 A는 음침해 보였고 아이는 귀여운 강아지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다녔다. 모든 게 A와 같지만 달랐다. A의 손에 들린 사진이 천천히 구겨졌다.
A는 사진을 대강 쓸어 담고 창문가로 갔다. 불투명한 유리에 A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쳤다. 얇은 나시 사이로 비친 마른 몸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흐물흐물했다. 자신의 얼굴 뒤로 굳게 닫힌 아이의 방이 보였다. 길게 숨을 내뱉자 창문에 하얀 김이 시렸다. 손가락으로 천천히 창문을 문질렀다. A의 얼굴과 함께 닫힌 아이의 방문이 조금씩 드러났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뭉크의 절규를 닮았다고, A는 문득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B는 제 앞에 없었다. 바닥에 남아있는 발자국만이 B가 걸어간 길을 알려주었다. 안녕. 저번에 알려준 영화 봤어? B 대신 P가 살갑게 말을 걸었다. 얇은 프렌치 코트 아래로 훤히 드러난 맨다리와 짧은 머리 덕에 시원해 보이는 차림이었다. P와 A는 입사 동기였다. 입사 초기부터 이어진 인연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됐다. P는 A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탓에 A와 같이 있을 때면 덥다며 옷을 훌렁 벗어젖히고는 했다. P가 A를 향해 살며시 웃어 보였다. A도 따라 웃었다.
그거 재밌었어요! 주인공 아저씨가 정말 멋졌어요! 엄마도 재밌었대요. 아이가 귀여운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A도 말을 하려 했지만 피부처럼 들러붙은 마스크를 두꺼운 장갑으로 벗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두세 번 더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A는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 A는 자신의 목소리를 떠올려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 대신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A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뒷모습마저 자신과 판박이였다. 내 목소리도 아이처럼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미 외양이 똑같다고 해서 목소리마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의 눈꼬리가 A를 향해 곱게 휘어졌다. 밥은 먹었냐는 P의 질문에 A는 입을 다물고 아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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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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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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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스머프
- 2014-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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