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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 작성자 멜론소다
  • 작성일 2019-01-28
  • 조회수 757

그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막 글을 익혔을 무렵. 그의 아비는 그에게 종이 한 다발을 건넸다. 글에 친숙해야 한다는 교육방침 탓이었다. 그는 붓을 들어 자신의 일상을 문자로 그려냈다. 일기, 그것이 그에게 있어 첫 문학이었다.

 

그의 작은 손에 잡힌 붓은 종이 위에 제 솜씨를 맘껏 뽐내었다. 그의 붓 밑에선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며. 잘못하여 혼난 일조차 반성하겠다는 의지와 엮어져 훌륭한 일기로 변했다.

 

그가 아직 앳된 소년일 때. 그의 일기는 이미 책 세 권 분량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그의 세상은 글이었고, 그의 하루는 소설이며, 그의 삶은 책이나 마찬가지였다.

 

일기 속에서 그는 홀로 주인공이었다. 그의 삶, 그의 이야기, 거짓 하나 없는 참된 이야기. 그의 시점에서 쓰인, 그만이 주인공인, 그는 일기를 자신의 소설이라 부르곤 했다.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의 소설은 그의 일기였다.

 

그가 철이 들었을 때.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양에 온몸이 까맣게 물드는 전염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에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삼아 가볍게 넘겼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사는 마을은 산골의 작은 마을이었으니. 그는 붓을 먹물에 적셔 종이에 소문을 적어냈다. 이상한 소문 탓에 어린아이들, 자신조차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소설의 기승전결 중 전(轉)으로 일기의 방향은 나아가고 있었다.

 

벼루에 닿은 옷이 까맣게 적셔졌다. 그는 팔에 먹이 묻어 흑으로 물든 것도 모른 채 연적을 들었다. 마침 연적의 물로 먹을 갈 참이었다.

 

그가 막 어른이 되었을 때. 한양에 돌았다는 전염병이 그의 마을에 퍼져나갔다. 새까맣게 물들어진 채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꿋꿋이 일기를 썼다. 누가 죽었고 어떻게 전염되는지. 소문이 사실이었다며 씁쓸하게 웃곤 그는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추측과 진실이 붓의 먹물로 종이에 새겨졌다. 그의 칠흑같이 까만 눈의 빛깔이 그의 몸에 퍼져나가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결(結), 그의 일기의 마침표는 어느 저녁. 먹물을 머금은 붓처럼 그가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졌을 때였다. 그는 가빠오는 숨을 붙잡고 붓을 들었다. 일기, 소설, 조금은 이를지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의 마지막. 먹물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툭, 그의 까만 손이 붓을 쥔 채 바닥과 부딪혔다. 짧았던 그의 이야기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멜론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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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론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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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론소다
  •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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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론소다
  •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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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형

    안녕하세요, 멜론소다 님. "죽는 순간까지 붓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인물의 일기는 인물의 삶을 언제까지나 자신의 페이지 속에 보관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의 일기장은 한 권의 두꺼운 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일기장은 그 인물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한 증언이자, 인물이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들이 기록되어 있는 인물 자체이지요. 한 권의 책 속에서 "그"의 삶은 "이야기"가 됩니다. 붓을 놓지 않는 행위는 사소하지만 숭고한 행위일 수 있어요. 잘 읽었어요. 지금은 소설이 간추려 전개되고, 인물의 모습이 추상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붓을 놓지 않는 사람" 정도로요. 여기서 한 템포를 넘어서기 위해선 "간추려 전개"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물을 정말로 살아 있는,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보세요. 일기에 대한 욕망, 퍼진 전염병이라는 절망과 그럼에도 붓을 놓지 않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 보세요. 공간과 사건, 그리고 인물의 디테일과 시선, 기억들이 더 필요합니다. 다음 소설도 기다릴게요.

    • 2019-02-07 01:39:06
    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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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멜론소다

      평 감사합니다~ :D

      • 2019-02-08 15:40:45
      멜론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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