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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가 지옥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1-16
  • 조회수 1,643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 일로 친가에서는 아빠를 미운 오리 새끼로 본 것인지 아빠가 실업자가 된 이후 발길이 멈췄다. 그래서 난 친가 식구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가 주지 않았던 사랑을 엄마, 아빠가 체워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우리 동네 아저씨,아주머니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20명도 되지 않는 교실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며 그 속의 몸이 아프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나는 모범생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내가 준 사랑이 하늘에게 다았는지 하늘도 우리를 도왔다. 아빠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성공했고 3학년 때는 동생 희돌이도 태어났다. 매일,매일이 천국이었다.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천국으로 살던 어느 날 우리집 집 전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넘어에는 고압적이고 우아한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준이니? 나 네 친할머니 영선이야." 나는 너무 당황했다. 내 심정이 얼굴로 나왔는지 엄마는 내게 달려와 전화기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희준아 방에 들어가 있어."라고 말하셨다. 나는 엄마 말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 국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큰 목소리 때문에 난 국어 공부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연수가 망가졌을까? 갑자기 내 심장이 벌렁 벌렁 뛰기 시작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또한 간뇌가 망가졌는지 식은 흘렀으며 대뇌는 판단을 하지 못했고 중뇌가 고장났는지 눈이 감겼으며 소뇌가 마비 되었는지 내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여 쓰러졌다. 눈 앞은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순백의 천장이 보였고 그 옆에서 들려오는 삐 삐 삐 기계음 그리고 엄마의 눈물의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래 내 몸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내 옆에서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난 그런 엄마를 소리 없이 보고 있었다. 이런 엄마의 사과는 받아드릴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난 인정했다. 그 날 저녁 엄마와 아빠가 통화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 달에 있을 친할머니라는 사람의 생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의 큰 소리가 내 중추 신경계를 마비 시킬번 했지만 항생제 때문인 것일까? 나는 잠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4학년 말 쯤 우리 가족은 친할머니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엄마는 싫어하는 눈치였고 아빠는 좋아하는 눈치였다. 난 할머니 집에 가기 싫어하는 엄마도 가기를 좋아하는 아빠도 모두 이해 할 수 있었다. 왜냐 가족이니까 그럴 것이다. 싸웠으니까 그럴 것이다. 난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생일잔치에 가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빠의 엄마, 나의 할머니니 할 수 없이 갔다. 그래서 그런지 막 즐거워 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었다. 싫어하면 아빠가 상처 받으니까. 동생은 할머니에 대하여 좋은 추억만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난 너무 싫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우리를 마중 나오셨다. 할아버지도 함께 마중 나왔다. 그리고 "어서와 희준아, 희돌아 그리고 내 새끼들."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안아 버렸다. 나는 안아 버린 팔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내 할머니니까. 엄마도 언제 오기 싫었는지 모를 만큼 환한 가식의 미소를 보여줬다. 나도 엄마처럼 가식의 미소를 뛰어줬다. 그 때 동생 희돌이는 불편했나 보다. 막 찡찡 울어댔다. 그러자 할머니는 "좋은 날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분노했지만 아무도 이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그냥 넘어갔다. 할머니 생신 상에는 많은 음식들이 올라왔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잡채,홍어무침, 보쌈등이 올라와 있었다. 너무 맛이 없었다. 달고, 짜고, 맵고 너무 자극적이었다. 이는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것보다 싱겁게 먹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음식에 말을 붙이지 않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할 수 없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척 해야만 했다. 이를 보고 나와 가족들이 맛있게 먹었다 생각했는지 집에 갈 때 음식을 여러가지 싸 주셨다. 또한 나에게 십만원이라는 큰 돈을 주며 "넌 공부를 잘해서 꼭 1등만 해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에 가는 길 아빠는 "너무 행복했다."라며 눈치 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네가 좋았으면 됬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우리에게 "그 무당 말이랑 다르잖아 내가 ㅇ 들어간 사람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잖아.우리 다시 합가하자." 그러자 엄마는 "네 아들 그 사람들 때문에 죽을뻔했어! 그리고 네 엄마는 널  버렸어." 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이라 외췄다.  그러자 무음의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조용히 우리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가서도 아빠의 합가 타령은 계속 되었다. 아마도 망해서 못받았던 사랑을 지금이라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엄마는 이런 아빠의 행동에 진저리가 나간 것 같았다. 결국 엄마가 나에게 "희준아 넌 할머니 어떻게 생각해?" 난 이 질문에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역질문했다.  그러자 엄마는 "잘 모르겠어.희준이에게는 할머니고 아빠에게는 엄마니까."  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때문에 지금의 내 신경계가 탄생했지만 희돌이에게는 이것을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아." 그러더니 엄마는 인자하고 따뜻한 진실의 미소를 뛰었다.


 5학년이 되고 지금까지 지낸 작고 아담한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할머니가 있는 차갑고 매서운 도시 마을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니 드디어 할머니의 만행이 시작 되었다. 살면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네 년 팔자에 백호살이 들어서 내 아들이 실업자가 됬던거야! 그래도 우리 아들 팔자가 괜찮아서 너랑 네 자식들이 사는거야."라고 나와 동생이 듣는 앞에서 말했다. 엄마는 화가 엄청 났지만 계속 참고 나에게 나중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또한 나는 할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억압을 받기 시작했다. 친구를 함부로 만날 수 없었고 음식 하나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이런것을 아빠에게 엄마와 내가 말하면 아빠는"참아, 노인네가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우리를 피했다. 이 상황을 회피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엄마의 화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나로부터 발생했다. 나만의 비행기를 만들어 여러 손님을 만들어 비행기에 탑승 시키는 비행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현실에서 벗어나 세상을 만드는 캡틴 즉 글을 쓰는 작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이를 할머니가 본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않고 지금 글을 써? 넌 박사나 교수 아니면 판사가 되야지!"라고 화를 냈다.  나는 "할머니 저는 글로 하늘을 만들고 승객도 만들고 그들을 목적지인 결말에 도착 시키는 캡틴이 될거에요. 하늘에 있는 저는 땅에 발 붙이라는 할머니의 말은 안들려요!"라고 처음으로 내 의사를 말했고 대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역시 정신병자 아들이야. 망상증에 빠졌구나."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내 몸은 이상 행동을 보였다. 식은 땀이 막 흐르고 심장이 막 뛰고 숨이 안 쉬어졌다. 뇌가 마비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본 엄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애 한태 무슨 말 짓거린거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야! 이 정신병자야! 어디서 내 고막을 부쉴라고 해! 이 살인자야!" 라고 말하고 엄마는 "희준이 죽이는 당신이 진짜 살인마야!"라며 소리쳤다. 난 결국 이 소리들 때문에 신경계가 부셔졌다. 마비 됬다.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는 엄마의 "희준아,희준아"부르는 소리와 할머니의 "정신도 약한 놈"이라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흰 백색의 공간이었다. 그 곳에는 그동안 내가 그렸던 비행기 탑승객들이 있었다. 백발의 노인,안경을 쓴 여인,학생,다방 아줌마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들이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 라고 말해 줬다. 말을 듣고 난 뛰었다. 내 비행기 안을 막 뛰었다. 그러면서 여러 신경들을 부셨다. 고통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뇌에 도착했다. 하지만 뇌는 부시지 않았다.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위해서 살고 싶었다. 엄마의 누명을 벗고 내 비행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고 싶고 동생 얼굴도 한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난 작고 가녀린 신경을 자극했다. 할머니와 떨어지고 싶어서 자극했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석을 지나 하늘을 향해 몸을 던졌다.


 땅에 도착하니 병원이었다. 그 옆에는 유일한 나의 가족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잡고 울었다. 엄마는 우는 나를 보고 "엄마가 미안해. 내가 그 때 너와 함께 도망갔어야 했는데.네가 상처 받았을 때 도망 갔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엄마를 안아 주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엄마는 이런 나를 걱정했다.


이 기침은 1달이 지나도 머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우리 집안에 백호살 낀 년이 들어와서 망하게 생겼네 둘째 놈이나 믿어야지.장손 어찌 저 년의 피를 받은 것인지."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이런 말에 분노했지만 그래도 참았다.나는 나만의 하늘을 비행 하면서 버텼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안쓰러웠는지 나를 대리고 어린시절 신경계 마비로 다녔던 정신과를 갔다. 병원에서는 날 기침 틱이라 말했다.또한 어릴적 있었던 불안이 더 커졌고 우울증까지 왔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항우울제와 아빌라파이 5mg짜리를 먹게 되었고 저녁에는 캡배이와 아빌라파이 5mg짜리를 먹게 되었다. 이를 본 할머니는 "저런 것도 손주라고 쯔쯔 밖에 보여주기 민망하네 배는 볼록 나오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니 참."라고 말했다. 더 이상 할머니의 언행에 난 참지 못했다. 나도 내 정신줄을 잡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내려오는 분노가 그대로 밖에 표출 되어 할머니에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자 엄마가 나에게 다가와 "희준아,희돌이 대리고 방에 들어가 있어." 라고 말했다. 난 엄마의 말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쨍그랑, 쨍그랑 문 밖에서는 물건 던지는 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지는 소리,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아빠의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내 신경계가 일을 못할 것 같았다. 불안해 미칠것 같았다. 정신을 잃을번 할 때 동생 희돌이의 울음소리가 내 고막을 거칠 때 난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 나에서 이 일을 끝내지 않으면 희돌이에게도 이 악순환이 대물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희돌이를 달랬다. 진정으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고 싶었다. 기침이 더 나왔지만 이 순간 만큼은 실신이 되는 한이 있어도 정신을 차려야만했다. 그게 나와 엄마 그리고 희돌이를 위한 길이니까.


 한 두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희돌이를 대리고 이모집으로 갔다. 1년간 지옥 같았던 생활이 정리 되었다. 이모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이제 선택은 네 아빠에게 달렸어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희준아." 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긴장이 풀렸는지 기절을 했다. 


 깨어난 이후에도 내 기침은 더 심해졌다. 큰 소리가 두렵고 기침 때문에 18일 남은 학교 생활을 쉬게 되었다. 아빠의 선택은 우리였다. 아빠는 자신을 버렸던 할머니,할아버지와 다시 벽을 치고 살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로 6학년 시작 전 가게 되었다. 가끔 집 전화로 발신자 표시가 되지 않은 번호가 걸려온다. 그 전화는 돈이 없다고 아들을 버리고 돈 있다고 아들이라 하는 엄마, 며느리에게 정신병자,살인자라 말하는 시모, 그리고 손주에게 별볼 것 없는 놈이라 말하는 할머니일 것이다. 이렇게 전화가 오는 날이면 기침이 더 나온다. 그래서 난 내 맘을 진정시킬 수 있는 나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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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죽었다. 어쩌면 어제, 아니면 내일. 우린 한 마리 인어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시니어 전시는 인생과 시가 들어갈 거 같아요. 이 주제로 시 쓰기 활동하겠습니다. 담당자님. 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물방울이 된 우리. -P.S:송희찬- *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데.”금순 어머니는 오늘도 시를 쓰다가 의문이 들었나 보다. 그녀는 교실 안을 꽉 채우는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본인들의 인생과 이야기가 담긴 문학이 과연 젊은 사람들이나 대중에게 먹힐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나는 숨을 참으며 그녀의 뒤로 갔다. 그녀의 흰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글자로 쓰인 어머니의 시가 있겠지. 나는 그 시를 들여다보려고 다가갔지만, 그녀는 팔로 자신의 시를 가렸다. 금순 어머니의 두 눈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나를 째려봤다.“선상님, 그리다가 심장마비 와서 뒤져 불겄어요.”“아니, 어머니 왜 이렇게 놀라세요. 기침 때문에 알잖아요. 가까이 오는 거.”“나이 먹은 년이 웬 시에요. 뒈져불 때가 됐으니까 주책 부리는 거쟈 뭐.”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들쳐 보이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저 품 안에 숨기며 나와 다른 어르신들의 시선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어머니의 홀쭉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독이려고 했다. 그때 목소리 크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정자 어머니가 막 이야기를 꺼냈다.“언니야, 우리가 늙었나? 학생아, 우리 언니야 너무 예삐지?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당연하죠, 어르신.”나는 나를 학생이라 부르는 정자 어머니의 말에 공감을 해줬다. 그래야만이 금순 어머니가 자신을 들춰내고 우리 앞에 자신을 보여줄 것 같아서. 내 말에 정자 어머니는 기분이 좋았는지 김용임의 <나이야 가라>를 계속 불렀다. 그러자 교실 안의 어르신들은 모두 똑같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크게. 나는 그들의 흥바람을 잠깐이라도 진정시켜야 했다. 여러 번 콜록거리고 손바닥을 두세 번 내리쳤다. 그러나 그들의 불완전한 음정과 화음 앞에서 내 소리는 작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금순 어머니는 입을 다시며 바라만 봤다. 그녀와 나 둘 사이에는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주변 어르신들의 화음은 쨍할 뿐이었다. 그 쨍한 분위기와 정적을 깬 것은 금순 어머니의 한 소리 같은 잔소리였다. 어머니는 입을 쩝쩝 다시며 큰 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염병, 날 덥다고 상온에 너무 오래 있었나벼 정자야.”그녀는 코를 한 손으로 막고 다른 한 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불쾌하다는 말에 간접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정자 어머니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입에서 퍼져나오는 음정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이는 금순 어머니도 비슷하겠지. 나는 그들의 불편함과 수업의 진행을 위해 그녀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하지만 내가 걸어가는 시간조차 금순 어머니에게는 시끄러웠나 보다. 그녀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으이 셨어. 선상님 우리 정자 몸 때기 청소

  • 송희찬
  • 2026-05-31
초봄에서 초혼으로

내가 나를 쓰기로 했던, 봄이 다가올수록. 나무는 자라고 그늘은 깊어졌다. 큰 나무 밑에 작은 뿌리들은 그늘이 깊어질수록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내 이름을 세 번 부르고, 나를 떠나보낸다. 봄이 깊어질수록 작아지는, 그늘에서, 자란 나무들. 멀리 돌아가 살아내려고 한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인간은 인간을 떠나는 거처럼. 내 이름을 내가 세 번 부른다. “통희탄, 송희탄, 송희찬.” 나는 아무 말 없이 베여갔다. 희연은 아무 말 없이 상처 났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글에 송희찬을 불러드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야. 나를 닮은 송희연과 우린 그렇게 믿었다. 우리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우리 꼭 살아내자. 쏟아내자.” 너의 입학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의 졸업식이 진행되기 전부터, 우린 봄을 이겨낼 준비를 했다. * 센서등이 혼자 깜빡거린다. “아, 봄바람이 또 바람맞아 왔나.” 뜻도 없고 재미도 없는 농담을 허공에다 이야기했다. 혼자 있게 되면 혼잣말이 익숙해지고, 자주 나온다던데. 상대가 없는 말은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혼잣말할 때면, 청자는 단 한 사람도 아닌 허공이라는 것에 가끔은 민망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혼자 말하고 있으면, 생각은 정리되는 거 같아서 기분은 좋지만, 생각보다 생각을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희연이 딱 와서 장난치면 좋을 텐데. 희연이 등교한 뒤부터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봄에 시작을 알리듯 봄을 끝내려고 늦게 내렸다. 이러다가 며칠 전에 핀 목련까지 다 떨어져 버리면 어떻게 하지. 목련이 저물면 봄도 같이 지는 것 같은데. 희연이 늦게 끝나는 목요일이라, 나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숏츠를 넘기다가 가끔은 이런 내 모습이 민망해 방에 들어가 짧은 단상들을 엮어 버린다. 그래야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거 같아서. 내 모습을 내가 모를 때가 가장 좋은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생각할수록 지금의 모습이 가장 잘 보였다. 침묵이 작은 방 하나를 맴돌 때, 나는 책상과 의자 사이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을 깬 것은 밖의 봄비처럼 잔잔하지만, 침묵 속에서 우렁찬 전화벨 소리였다. 올 사람이 없는데. 아이들과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엄마, 아빠는 일이 바쁠 시간이고, 담임이었던, 사람이 전화 올 일은 더욱더 없으니까. 그때 단 한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귀와 눈가에 맺혔다. 바다. 그것도 거센 제주 바다에서 태어나 물질로 익혀진 날카로운 목소리. 제주 용순 할망. 친할머니가 떠올랐다. 빗소리와 파도 소리가 겹쳐 들렸다. 그렇다. 전화 속에는 친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저장된 용순 할망이 있었다.“희찬아, 엄마는 점심은 차려주고 갔나?”그녀의 첫마디는 엄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도. 그러면, 나는 형식적으로 현실만 말했다.“네, 차려주고 갔어요.”감정도 없이 소리로만 그녀에게 답했다. 나 역시 오늘도. 뼈 없는 물의 언어를 그녀에게 뱉었다. 엄마가 그냥 나갔으면 그녀가 엄마를 잡아 먹으려고 했겠지. * 센서등이 깜빡였다.

  • 송희찬
  • 2026-03-20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사무치다

병상에서 일어나면 다시 좋아하는 옷을 입고자주 가던 극장에도 가자고 했다그러나 내 병의 예후를 살피면그런 비유는 이제 내 몫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내 말들은 완전히 망가진 머리에서 나오는 언어였으며말을 뱉거나 삼킬 때마다얼굴의 한 부분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소리를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고눈이 오는 날에는 눈밭에 발이 빠지면서살고 싶다겨울이 오고 싶다 여기까지 내가 삼킨 말 조각을 하나뿐인 나의 언니가 모국어로 옮긴 것이다 -나하늘 中 오랜만에 귀퉁이 마을로 돌아가는데. 썩은 나무의 껍질같이 눈이 내린다. 잠바 주머니 속 거슬리는 것이, 있다. 영수증처럼 까칠까칠한 촉감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촉감이 결코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혹시 내 피부 일부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이상한 망상도 해봤다. 당연히 종이겠지만, 긴장하는 마음으로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펼쳤다. 이라는 시의 일부만 적혀 있었다. 이런 구절을 쓴 적이 없는데. 언제부터 여기에 들어와 있지? 언제부터인가 피부와 같은 재질의 쪽지가 눈만 내리면 내 주머니에 생겼다. 모두 시의 일부 같은데. 정확히 그 내용이 뭔지 몰라서, 나는 학교 운동장을 여러 번 돌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학교의 망령이나, 시인이 쓰던 종이나 팬의 일부에서 태어난 도깨비들이 나에게 이런 장난을 치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들에게 쉽게 다가가거나 물어보지는 않았다. 도깨비나 같은 반을 쓰는 학우들 모두에게. 내가 목각 도깨비 제도를 반대하는 목각 도깨비 터에 살던 도깨비나 그 터를 지키는 무당으로 보일 거 같아서. 귀문은 령과 무당 그리고 인간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여서. 허나 어느 하나에 속하더라도 무당은 귀신만 보는 나를 악신 들린 가짜 무당이라 칭할 거고, 아이들은 귀신 보는 아이에겐 쉽게 말을 걸지 못 할 거다. 급식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무당들의 모임에도 끼지 않으니까. 귀문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자 또 상당한 부분에서 배척에 대한 아쉬움 혹은 외로움이다. 그래도 그 외로움과 아쉬움을 가지고 세상을 나아가는 거라고 만신이었던, 할머니는 이야기하지만. 나는 무당이 아니다. 굳이 외로움과 아쉬움을 짊어지면서, 외로움과 아쉬움을 치료하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나는 무당이 아니고, 그저 귀문. 도깨비와 유령과 소통할 수 있는 귀문이자 가물일 뿐이기에. 귀퉁이 마을 귀퉁이 산이 빛나고 있다. 오늘도 몇몇 사람들이 기억 속 상처를 합벅적으로 심고 있다. 목각 도깨비 터인 귀퉁이 산에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하고도 약한 상처를 목각 도깨비에 집어 넣고 가장 산에 심었다. 옛날부터 귀퉁이 산은 무당들이 기도하러 갔던 곳인데. 그 영향 때문인지, 만신이었던 할머니는 다른 산은 올라도 귀퉁이 산은 웬만한 깡따구가 아닌 이상 들어가지 말고, 그저 귀문으로, 도깨비의 기운이 약한 가장 초등학교에서 빌고 또 빌라고 했다. 비는 주체나 신은 고르지 말고, 그저 하나의 영혼이 하나의 영혼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바라보라고 했는데. 가장 초등학교

  • 송희찬
  • 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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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운

    안녕하세요, 송희찬님. 이제껏 희찬 님께서 올려주신 글 중에서 서술의 비중이 가장 컸던 것 같죠? 대사 대신 상황 묘사와 감정 서술로 내용을 이어가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쓰실 수 있네요! 유독 내밀하고 온도가 높은 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작가가 선명하게 보이는 듯해서 애정이 갔습니다. 소설을 나만의 캐릭터를 태우고 목적지까지 데려가는 비행이라고 표현해주신것도 좋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2023-12-03 22:54:30
    김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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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김병운 멘토님, 안녕하세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서술의 비중이 늘었다니 기쁘네요. 이 소설은 제 이야기가 한 20-30% 정도 된 소설 입니다. 12월에 올릴 소설 또한 저의 이야기가 25-40% 정도 될 것 같아요. 이번에도 서술에 초점을 두고 그 때의 감정과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하겠습니다.^^

      • 2023-12-02 21:08:56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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