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igfried*
- 작성자 눈금실린더
- 작성일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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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212
솔직히 말해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며 즐거워했던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저학년 때에도 (지금 보면 극의 대본에 가까운) 소설을 썼던 기억은 있지만, 어떤 당위성-교훈적인 메세지를 주어야 한다는-에 잡혀서 썼던 것만 같다. 개과천선, 권선징악의 플롯으로만 이루어진 이야기들. 지금도 그러한 생각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이지만,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하다. 큰 수의 덧셈, 뺄셈 같은 걸 배울 나이에 어째서 그런 마음을 가졌는가...
그래서인지 도형의 부피를 구할 나이 즈음엔, 메세지보다는 정서에 초점을 두는 작품을 좋아했었다. 그때 한참 '에세이'가 잘 나가던 시기이기도 했고 말이다.
청소년 소설에서 벗어나 어른들이 읽는 걸 읽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시기의 나는 중학교에 들어서자마자 1984, 비행운, 민음사의 젊은 작가 단편들... 같은 걸 찾아 읽었으니까.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대출하려 하자 중학생에겐 꽤 잔인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오기가 생겨 더 빌려 읽었던 기억도 있다.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에서 벗어나,
사랑하고 우울하고 가끔은 현실에 고달픈 이야기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중1 때는 소설을, 중2 때는 시를 읽으며 보냈다.
어쩌면 책에 빗대어 가며 지금 나는 얼마만큼 어른들을 닮았나, 고민해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3이 되자 나는 고입에 바빠졌다. 집 근처 일반고를 진학하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레 도서관을 가는 빈도도 줄었다. 책을 읽으면 재미없는 아이처럼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글을 읽고 쓰는 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이 바빴다.
*
그렇다면, 그 '바쁜 마음'으로 들어간 고등학교에서는 어땠을까?
당연히 똑같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청학동 서당에 다니는 학생처럼 머리를 질끈 묶고, '3년간 죽었다 생각하고 살아야지.'라는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첫날 자기소개를 할 때도 경계와 비슷한 긴장을 했다.
도서관에 들러 '소년이 온다'를 대출했을 때도 그랬다. '이 책은 유명하고 국어 실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전처럼 문학을 즐기기보다는 '공부', '입시'에 마음이 전적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 애'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수필을 3번 썼는데 모든 수필에 개근하고 있는 '그 애'...)
그 애가 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굉장히 깊고 진정성 있어서, 나도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다시 문학을 즐기고, 읽고, 쓰는 삶. 사랑하고, 우울하고, 가끔 현실에 고달픈 그런 삶.
그 때 좋아하게 된 작품이 '두근두근 내 인생'과 '숲의 소실점을 향해' 이다. 이 두 작품은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사랑과 우울의 관념으로 살아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
서두에서 말했듯, 글을 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 글에서 내가 사랑과 우울을 중요시한다는 건 지나간 시간을 통해 충분히 알게 되었지만, 요즈음은 어떤 글을 써도 훌륭한 작품들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완성도로 써내게 되는 것 같아 의욕이 잘 생기지 않는다. ('내 글 구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도 우울도 이제는 온통 모르겠는 것들뿐이어서, 사랑하고 싶다가도 우울해지고 우울한가 싶다가도 사랑을 하고 있다.
계속해서 읽고 쓰는 것을 임시적인 해결방안으로 두고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It's a loopWhat would you recommend I do?The other side of the loop is a l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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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에게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되고 싶은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나를 떠나가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나는 그 알 수 없는 강박에 의해, 일상을 불편으로 소화한다. 차라리 누군가 내게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해 주면, 이 채워지지 않는 갈망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다시 말해, 나를 나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 따위는 의미를 잃는다. 따라서 나는 떠나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깨달을 것이다. 사막에서 비가 내린다 한들 다시 뙤약볕이 드리우듯,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들이 생긴다 해도 다른 이들은 또 나를 떠나간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같다. 난 그 해결책으로 '갈증 없애기'를 택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의 '갈증'이 '의미가 없다'라고 증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주변의 인물들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거의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 갈증을 놓지 않은 이유이자, 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아무래도 나는 그것을 위선 혹은 연민으로 생각하나 보다. 다시 돌아가서,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는 좀 더 세부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첫째, 천성 나쁜 사람이라서, 모두가 지향하고 있는 좋은 사람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 주장이 옳다면, 세상에는 완벽히 좋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좋은 동시에 나쁜 사람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나 좋음과 나쁨의 정도는 어디서부터 오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인기(人氣)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의 차이가 있다. 대부분이 싫어하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다수가 착하다고 예찬하는 사람도 존재하며, 이것은 각 개인의 좋은과 나쁨의 비율이 다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둘째, 처음부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꽤나 극단적으로 보이는 주장이다. 하지만, 위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인기(人氣)라는 속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에게는 각각 불공평 삶이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나쁜 사람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좋은 사람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몇몇은 후자의 말에 반발할 것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인기(人氣) 얻은 이들, 예컨대 아이돌이나 연예인 말이다. 나는 그런 피나는 노력을 해서, 잘 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 노력이 그대를 무대로 이끌어주었다면, 그대는 속되게 말해 '될놈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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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눈금실린더님. 예전에 고3 생활을 시작하며 써주신 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험 생활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이어가고 계신가요? 글쓰기를 향한 열망과 낙담이 이번 글에도 잘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사랑'이 크지 않다면 이토록 자주 '우울'할 일도 없겠죠? 눈금실린너 님에게 머무는 이 사랑과 우울을 소중히 가꿔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당장의 성장과 성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건 글쓰기로 인해 파생된 여러 감정의 온도를 잘 살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야말로 마음이 식어버리면 잘 되지 않는 일 같기도 하거든요. 요즘 눈금실린더님에게 찾아온 여러 감정들이 이후에 쓰게 될 다른 글들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frank ocean - seigfri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