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커피 Op.3
- 작성자 기능사
- 작성일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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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하게 식은 커피를 반이 약간 넘게 마시다가 조용히 내려놓는다. 꾸르르륵 거리며 내려가더니 이내 위가 쓴맛에 녹아가는 기분이다.
뭐가 잘못되었나?
쓰린 속을 부여잡고 사약이라도 마신 듯 멍하니 등받이에 녹아내릴 듯이 기대 버린다.
설탕을 안 넣어서인가,
에스프레소만 내린 캡슐커피에다 우유를 넣어서 그렇나?
뜨겁게 호호 불며 마실걸 시간 좀 아끼자고 제대로 다 안 내리고 찬 우유를 부어 마셔서 그렇나?
그런들 저런들 무슨 소용인가
무지막지하게 강한 염기의 쓴맛-
무슨 장이 다 녹을 듯한 맛이다.
벌떡 일어서서 식어가는 커피를 버려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는 슬슬 학교 갈 준비를 해야지.
그러나 여전히 배속은 녹아버린 유기물 수프가 꿀렁되는 듯 좀처럼 상쾌히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여기 여차! 하며 가방을 둘러매고선 동생들을 잡아끌고 길을 나선다. 해는 그나저나 마중 나올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붉은빛하나 없는 침울한 아침이란 참...
우산을 폈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이도 비가 살살 내려오는 이 새벽에
눈 몇 덩이들이 바람에 식어간다.
아.
눈이 왔었지.
아 그래,
눈이 왔던 것이다.
이틀 전만 해도 귀찮은 몸을 끌고 나와 내던졌던 그 눈이다.
하아.
눈마저도 식어가는 이 차디찬 새벽에 내 속을 녹일대로 녹여버린 커피마저 기분 나쁘게 무덤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이지 엉덩이가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냅다 찧어버렸다.
내 생일마저 품었던 친애하는 11월에게도 나는 이제 다음을 고해야 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꼭 더 좋은 인간이 되어서 앞에 서겠노라고.
그러나,
해마다 보아왔던 때 묻은 눈들이 괜히 가슴을 찡하게 한다.
얼마나 사랑했던가
내 유년을 다 주고도 사랑할 듯싶었는데...
뚜벅뚜벅 흥겹게 걸어간다.
커피에 녹아내린 것은 차라리 내 장이라기보다 저 눈이었을 것이다.
밟는 것조차도 두려웠던 소년의 눈에 커피를 뿌려대다니
이런 낭패가 있나. 그렇지만 뭐 어쩌겠나.
소복이 쌓여있는 눈 위에 진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묻을 수 조차 없는 나의 시체들을 열심히 발로 쳐내며 걸어간다.
12월의 눈도 사랑해야지.
하지만
첫사랑만큼 사랑하진 못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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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사
-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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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사
- 202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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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능사
-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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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안녕하세요, 기능사님. 커피에 대한 호기심 어린 애정과 눈 쌓인 풍경에 대한 우수어린 감상이 전해지는 글이었습니다. 최근에 기능사님의 일상에 '커피'와 '눈'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 아닐까 싶었고요. 다만 제게는 '커피'와 '눈'이 하나의 글 안에서 긴밀하게 조응하거나 연결되지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커피'는 커피대로 '눈'은 눈대로 존재할달까요. "커피에 녹아내린 것은 차라리 내 장이라기보다 저 눈이었을 것이다. " 같은 문장으로 잇기를 시도해주신 듯한데, 그것이 의도한 만큼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왜 커피와 눈이 하나의 글에서 다뤄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주는 작업이 아마도 이 글의 의미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