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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Op.20

  • 작성자 기능사
  • 작성일 2025-05-01
  • 조회수 852

동의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으려한다. 우리는 위선자다. 너무나도 위선적이어서, 이제는 그 위선이 소시민적이라는 개소리마저 지껄이며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게다가 거기에 여러가지, 오래되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가져다 붙여다가 가끔씩 글이나 영화로 만들어 판다. 아마도 여러가지 흔히 알고있는 변명거리들이 생각나긴 할거라 짐작한다. 분명 밥을 남기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 혼을 냄에도 사회환원에 대해선 일단 자기 일을 끝낸 뒤에 남의 일을 생각한다면서 여러 사회단체들에 십일조정도의, 혹은 대체로 훨씬 적은 돈을 내고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어른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사실을 굉장히 교과서적이며 동시에 희귀한 중산층의 모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정도의 위안조차도 구매하지 못하고 아마 우리도 그러지는 못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사회적 모범의 틀을 제외하고서는 그닥 제대로된 변명은 개발되지는 않은 듯하다. 끽해봐야 빈곤포르노나 사회적 박탈감 정도일려나. 
위선!위선!위선!! 

굳이 필요없는 곳에 느낌표를 이렇게나 무의미하게 적어 놓아서 미안하다. 오랫동안 묵어왔던 말이라 어떻게든 크게 소리질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적어내어 보았다. 크게 생각을 하진 않지만 독자중에 이처럼 괴팍한 난제에 맞닥뜨린 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항상 이런 생각이 너무나 이단적이며 불문율로서 언급해선 안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떼로 죽어가며,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위선자라는 이름을 새삼스럽게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울린 악역에게 쓴다는게 필자로서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충격을 주었다. 

이쯤 되었을 때 필자는 그대가 그 변명이라 지칭된 해명을 생각하거나 찾아왔기를 바란다. 오, 우리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화사, 혹은 국가를 운영하고 그들에게 원조를 주며 우리의 국제기구는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주고 있다. 수없이 많은 국제기구들(대부분은 당신같이 질문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치료하고 생계를 찾아주고 있으며 그들 또한 종국에는 잘 살게 될 터인데 왜 걱정인가? 우리가 그들처럼 못 사는 거지가 되어서 이 비참한 위선자의 신분을 벗어나길 바라는 건가? 당신이 가서 그들을 구하지 왜 여기 앉아서 이딴 쓸데없는 글이나 쓰고 있는 건가? 또다른 훌륭한 해명이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이정도도 충분히 적당할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기부와 참여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무익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 같다. 그다지 상관없다. 어차피 위선을 고치는 것에는 아직까지는 관심이 없다. 아니, 아직 생각을 하기 싫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혹자는 생각하지 않음의 위험성을 알고 곧바로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요즘 필자가 자주 복용하는 진통제겸 마약이다. 

저 해명이 옳은가? 꽤나 자유시장주의적인데다 국제주의적이다. 이 해명이 쉽게 반박되지 않는다면(비록 꽤나 깔끔한 설명이라 누가 시도를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 공은 아마 지난 수십년간 노력해온 유럽의 엘리트 외교관들에게 돌아가야할 것이다. 

동정심에 겨워서 추진되는(듯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본적이 있는가(말뿐이든 아니든 경제적 수익성을 설명해 주는 곳이 상당히 있다)? 깨끗하고 훌륭해보이는 계획들은 수도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테지만,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듣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흑인이 타겟으로 하는 범죄의 상당수는 흑인이 한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말일 것이다. 그게 약간 핀트가 엇나가지 않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거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 큰 요인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고 동시에 그들을 구하는 것도 같은 사람들이다. 분명 광고에서는 흰 피부의(한국인의 피부는 대체로 백인만큼 하얕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빼빼 마른 아이들을 안고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AK를 들고 도로 변에서 세금을 요구하며 동시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넘어와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것, 유럽인들의 (이제는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위선적인 프로젝트들은 같은 피부색의 가까운 사람들을 원조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은 알기 어렵지 않을까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결국 가치지향적인 논쟁은 이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것을 대답하는 것만큼 복잡한 것도 없으며 필자 또한 몸 편한 밑도 끝도 없는 비판가로 죽어버리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며 데이터가 축적이 되어있는 방법을 소개하지 않는 것 또한 글의 목적에 그다지 부합하지는 않아보인다. 몇가지를 끄적여 보겠다. 
그냥 살아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두번째로는 편한 침대에서의 섹스와 배달이 가능한 수백칼로리의 양질의 음식(대체로 1-2시간의 일을 하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어딘가로 날아가서(굳이 비행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예수가 시킨데로 사람들을 도우면 된다(이 순간이 되면 기독교를 아무리 혐오한다 하더라도 복음서의 내용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인간이 흔하다고는 못하겠지만 당신이 (아마도) 지금 살거나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신축 아파트를 짓고있는, 혹은 짓고 있을 외노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필자가 만난 예시에 근거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굳이 외노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지원 없이는 양복을 입고 오지 않는다)
혹은 톨스토이가 인생의 마지막 수년 동안 열심히 적어놓고 실천한(물론 현대인들은 휴짓조각취급조차 안 할 것이다) 금욕적인 귀농생활을 해도 된다. 그러나 한국의 농토가 쓰레기일 뿐더러(그래도 문명과의 접촉을 최소화 해야되니 비료는 차치해 놓자) 주변 사람들은 사이비를 먼저 의심할 것이며 단순한 귀농은 톨스토이가 역설한 바와 맞지도 않는다. 
이토록 위선적인 문명(혹은 그 문명이 설계해준 라이프 스타일)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톨스토이가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상상했을 때보다 교묘해짐과 동시에 결론적으론 어려워졌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문명은 그대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다소 특별한 이유로 이 모든 것은 꽤나 어리석은, 아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주장이 되었다. 애초에 그 전제, 그 자체가,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위선자라는 게 이제는 우리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맞이할 운명때문에 의미를 잃을 뿐더러 꽤나 드라마틱하게 멋있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구통계학을 개발해 낸뒤로는 처음 맞이하는 일일 것이다. 

몇살까지 살고 싶은가? 아니, 그보다도, 한국에서 죽을 것인가? 잠시만 시간을 내어서 생각해주길 바란다. 악취를 풍기면서 아파트 세대 안에서 널부러진 채 죽어있는 그대의 시체를 말이다. 치우지도 못하고 방치된채 파리들을 배불리 먹이는 그 기아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은 그 몸뚱아리말이다. 노인들을 수용하는 작은, 어쩌면 수많은 주공 아파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 그 단지에서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를 괴롭히는 악취를 풍기며 가히 수개월간, 어쩌면 몇년, 심지어는 완전히 방치되어 그대의 시체는 썩어간다. 물론 그대에게 자녀가 없고, 또 여러가지 불행이 겹쳤을 때에야 상상할 수 있는 협박이다. 그대가 조금 더 일찍 죽는다면 혹여나 우리나라에 들를 역사가가 굳이 공포감을 느낄만한 끔찍한 광경을 자아낼 일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자, 아무튼 여기 그대의 시체가 아마도 식탁을 나가려다가 넘어져 죽은 듯이 널부러진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시시각각 가스로 변환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가득 차버린 기저귀를 찬 채 말이다. 우리가 그 혹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지금 폐지를 주우면서도 근근히 살아는 가는 노인들보다는 나은 죽음을 맞을 거라 꽤나 당연히 믿기는 하지만, 굳이 질문한다면 말이다. 지금의 80대들을 생각해보라. 열심히 살아서 많은 아이를 낳고 나라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든 다음 자살을 하고 있다. 하! 얼마나 훌륭한 국가인가? 우리시대의 여자들은 그들과는 다르게 여성해방주의,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쳐보자. 가부장제는 그 자체로 젠더간의 훌륭한 협력적 약속이고 오직 퇴폐적인 해체주의 풍조 때문에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지피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를 조심히 지켜다보면, 현실은 단순히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저 상호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와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에다 성욕, 로맨스같은 너무 맛이 강해서 역겨워진 향신료를 많이 뿌린 탓이다. 여성을 인간으로서 보면 대화의 상대지만, 이성으로서는 감정적, 성적 만족감이나 여성에게 가정을 요구하려는 욕구를 남성은 아직 참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모두, 사실은 수요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매춘은 발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불법이기 때문에 남성은 비 금전적인 재화로 그 수요를 만족 시켜야만 한다. 더 길게 끌 것이 없으니 빨리 결론을 짓겠다. 어차피 해법따윈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는 어머니보다 아내나 여자친구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언어는 꽤나 극적으로 사멸한 언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런 죽음에게 이정도의 위선이야 딱 알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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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는 말

알고 지냈던 모든 친우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다들 잘 지내십니까? 물론 전할 말이 있어 글을 적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써야 했다고 다짐했던 글이라 그런지 마음이 도저히 다잡아 지지가 않습니다. 사과의 말을 써야 할까 싶으면서도, 사과에 너무 긴 글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느 독일 작가가 롬멜에 관해 쓴 기록에서 읽었었던 것 같은데, 후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찰적인 것이고, 앞으로의 변화를 암시한다는 투의 글을 보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저 바뀌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선언이기도 할 테고, 어쩌면 다소간에 비굴하기도 할 억울함의 호소이기도 할 겁니다. 아무렴 좋습니다. 글을 처음 쓰기로 한 것은, 아마 제 첫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치동의 기억이 선명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스위스에 온 지 얼마 안됐기도 했고, 전 별로 기억나진 않지만 주변 말로는 제가 힘들어했다고 하더라고요. 개의치는 않습니다만, 대치동을 어떻게든 써 보려는 흔적이 글에 드러나긴 합니다. 자아에 도취되는 걸 어느 정도 경계하는 편이니 평가가 박했다곤 하진 않겠습니다만, 근본이 없는 글이었달까요, 이후에 글들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편의를 크게 고려한 좋은 글은 아니었죠. 흉금을 굳이 터놓고 말해야 할까요. 왠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 글을 완성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군요. 제가 받은 가장 큰 충격 중의 하나는, 그 글을 열심히 옹호하던 제 주장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가운데서도 방백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그려낼 수는 없겠지만(카카오톡 기록을 열심히 뒤지면 가능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방백은 얘들이 자기가 하고 싶어서 공부하러 대치동을 가는 게 무슨 문제인가 하는 투로 말을 했습니다. 그때도 그랬듯이 저는 논박을 할 만한 여유도 논지도 의지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기억은 스치는 군요. 제가 대치동을 다닐 때 만난 동기들은 개인적으로 미리 알고 있던 사람을 제하고는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슬프게도 근 1년 반 동안 매일같이 만난, 특히나 방학 때는 근 하루 14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인데도 말입니다. 개중에는 학원에 에어컨 값을 내주러 오는 친구도 있었고(아주 친근한 선생님께서 꽤나 공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인용할 만 하다 생각합니다) 저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친구는 물론 국가적인 차원의 인재도 있었죠. 저도 그중에 한 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인상적인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10시부터 12시까지, 하루 14시간,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굉장히 인도적인 삶의 형태 중의 하나로 꼽을 만하죠. 물론 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었고 학원 옆에 있는 국밥에 의존하며 나름 편하게 버텼습니다. 지금 그 생활을 하라면 일주일도 못 가 탈이 나겠지만요. 제가 지금까지도 두려워하는 일은 이윽고 영재고 입학 시험기간에 났습니다. 뭐, 어쩔 수 없이 운이 나쁘다고 밖엔 못 하겠죠. 1차 서류에서 떨어진 동기가 한명 있었습니다. 공부를 못했다면야 상관이야 했겠습니까,

  • 기능사
  •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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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ed
    최고에요

    기능사님이 외치신 3번의 위선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늦었더라도 댓글 남기고 갑니다.

    • 2025-07-06 19:55:47
    Ted 최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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