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버스를 기다리며 O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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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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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두워 길 옆에 약간의 풀밭이 있다는 것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종소리가 어지러이 울리는 걸 보아하니 소때가 있는 모양이다. 산길을 20분 쯤 걸어서 겨우 작은 마을 하나에 다다랐다. 보름달이 밝았는지 몇몇은 눕지도 않고 멀뚱히 서서 종소리를 울렸다. 나는 폰의 후레쉬를 반대쪽으로 돌리고 그들을 지나쳐갔다. 얌전한 젖소들마저 무서운 밤이다. 물론 전깃줄이 쳐져있을 테지만, 보이질 않으니 무서운 건 매한가지다. 단정하게 깔린 아스팔트를 밟으며 더 큰 마을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아무리 유럽의 지붕이라지만, 밤이 깊으니 나름 청계산 자락에서 산행을 가던 날들이 생각났다. 이역만리 떨어진 이국도 여름밤은 똑같이 포근하다. 어느새 흙길에 들어섰다. 다시 꺼내서 지도를 찾았다. 다시 보니 버스정류장은 방금 지났던 그 마을에 있었다.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칸톤 베른의 코놀핑엔 옆에 있는 작은 마을 우르셀렌. 마을 안에는 집이 많아봤자 서른 채 정도였다. 지도를 따라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곳으로 갔지만 정류장 표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버스가 유턴을 할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어보였다. 그리하여 옆의 큰 도로 쪽으로 걸어가 뭐가 있는지 찾았다. 가까이 가니 높게 안내판이 하나 서있었다. 찾던 버스이름이 그 위에 적혀있다. 나는 술 때문인지 잔뜩 부어오른듯한 간을 만지면서 도로옆 가드라인에 앉았다. 한두 대의 차들과 어느 멋드러진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만 이-삼분에 한대씩 달려지나갔다. 버스 시간표를 몇번이나 확인 했는지 모른다. 물론 버스를 놓친다고 미아가 되거나 노숙을 해야되는 건 아니겠지만, 구두차림에 장장 세시간은 걸어가야할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자리에 앉은 채로 밀랍인형처럼 건조하게 지나가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조금도 피곤하진 않았다. 멀리 코놀핑엔에선 한시 15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버스시간은 1시 43분. 새벽버스 인지 다음 버스는 없고 그 버스를 놓치면 5시 첫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했다. 가끔씩 눕곤 했던 고향의 아스팔트가 그리워졌다. 오래되면 깨어지고 갈라지기도 했던…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빨갛게, 하얗게 그려넣은 표시들과 새로 깐 차선들과, 새벽이 되면 노란불만 깜밖이던 우리네의 새벽을 떠올렸다.
둘다 내가 모르는 사람 냄새가 난다.
이그노라무스 엣 이그노라비무스.
버스가 온다.
이곳에선 밤에도 신기루가 보인다.
대치동의 버스로 아마 그렇게 달리지 않았을까.
그 버스도 천천히 감속하더니 이내 멈춰버린다. 나는 한적한 자리들 속에서 맨 뒷자리를 찾아 앉았다. 작업복을 입은 한두명의 사람들과, 영어를 쓰는 여행객과, 한 흑인이 전부였다.
벤츠들이 빠져나가고 밤공기에 식어가는 대치동의 아스팔트에 누워있는 나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늙을 엔진을 굴려가며 언덕을 오르는 이름 없는 버스를 말이다. 내가 소들 옆을 지날 때 산더미같이 쌓인 대치동의 쓰레기들을 치우는 그림자들을 내려놓고 떠나는 버스를, 노회찬에게조차 이름 불리지못한 그 버스를 말이다.
아름다운 스위스에도 사람이 살고
내가 여전히 모르는 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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