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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이라 오해받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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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5-09-29
  • 조회수 570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을 거예요. 정말요. 그저 춤을 추고 싶어요."

 나는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술집 앞을 쭈뼛쭈뼛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깠다. 아무래도 펠트슐뢰센은 레몬 맛 무알콜을 왜 내놓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며 화제를 돌려봐도 곧 다시 내가 춤이라고 어영부영 돌려 말하려 했던 그, 그 무언가로 돌아온다. 그것을 언어로 옮기기는 싫다. 아니, 언어로 옮기려 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오만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봤던 그 인상 속에 담겨 있는 걸로 만족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을 원한다. 너무 멜랑콜리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다. 이 지루한 나라는.

 생각해 보자면 그것을 춤이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기만적이다. 춤은 그 의미 자체로 정격적이고 억압적이다. 배워서 추는 춤이란 의미에서 말이다. 또한 수많은 문학주의자들(나를 포함하여- 또한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이 미학이란 걸 만들어놓고 그것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그것은 절대로 춤이 될 수 없다. 
 그런 사상의 연장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춤을 극도로 (심지어는 유치하고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혐오했고, 또 그에 맞서 나름 시위까지 벌였다(학교 행사에 댄스 동아리가 공연이라도 나오면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돌아앉은 채 끝나기까지 기다렸었다. 이유야 붙이기 나름이겠지만은 그저 그러한 미학이 띄는 우매한 대중성이 역겹다고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내로남불이지만서도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육체적 정숙성에서 탈선했는데, 그것은 1년 전 지금 수학여행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학년이 간 곳은 발리스 칸톤의 베흐비에라는 곳이었는데, 우리의 숙소는 지하에 파티장이랄까, 아무튼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자세히는 다루지 않겠다. 기억도 자세히 나지 않는다. 나는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가장 깊이 인상에 남았던 각편은 내가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연관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아에 대해 단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은 스트레스나 우울에피소드 같은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무아지경도 아니었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더 본능적이고 강렬하며, 이질적인 것이었는데, 다소간의 과장을 보태어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었다. 절대 기쁘거나 황홀하거나 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끝낼 수 없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존성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또한 더 덧붙여 둘 것은, 내가 춘 것은 자주 보이는 리듬 타기 같은 게 아니라, 말하자면 카자크 춤과 수피즘의 혼합이었다). 여하튼 간의 지하 당구대와 탁구대가 붙어있는 스위스식의 옛 된 콘크리트 지하실에 붙어있던 목제 파티룸에서 근 2시간 정도 춤을 추다가 그날 밤에 곧바로 종아리에 쥐가 났다.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춤을 추면 쥐가 나야 한다. 

 쥐가 난 것은 춤을 춘 두 번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처음 춤을 춘 날로부터 근 8개월 뒤, 졸업 파티에서였다. 학교가 작은지라 졸업까진 2년 남은 나도 같이 파티에 갔는데, 춤을 춘 지 15분도 안 되어(다만 시간은 본 적이 없었던 지라 실제로 15분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쥐가 났다. 그때 나는 블루큐라소 와 레몬 첼로를 한 잔씩 하고(그중 하나는 친구와의 트리플 러브샷이었다. 어쩌면 둘 다 였을 지도.) 춤을 췄는데, 실제로 취하지는 않은 걸로 기억한다(다만 내 친구들의 진술을 일관되게 내가 취했었다고 기억한다.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친구 중 하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파티 내내 토하고만 있었다. 한켠에서는 대마와 액상 담배를 하는 친구들이 모여 앉아 있고… 그러나 취하거나 취하지 않거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아니, 인상은 하나도 바뀐 적이 없었다. 나는 춤을 추고 싶다. 

 춤이 금지된 것은 그 역사조차도 알 수 없이 까마득히 오래전의 일이다. 특히나 청소년기에 있어서 말이다. 아니, 춤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되었다. 춤은 그 발전사가 명확하다. 다만 그것은 항상 음주가 붙어 음주가무라거나 하는 식으로 경멸 되어왔다. 흥, 경멸이야 맘껏 하라지. 근데 왜 그것까지 금지되었는가? 사실 생각해 보면 금지되었건 아니건 간에 그저 그것이 가지는 생활양식과의 괴리가 너무 심해졌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요즘 같은 세상에 음악을 크게 틀 수 있고 눈치를 안 볼 수 있는 20평 혹은 그보다 큰 공간을 어떻게 쉽게 만들 수가 있나? 아마 많은 경우에서 그것의 이해에 있어 가장 가까이서 예시로 들만한 것은 재롱일 텐데, 그 때문에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설령 수치스러운 것이라 해도, 그것은 여전히 신체 자유의 가장 직관적인 표상이며 우리는 맘껏 수치스러워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서 술을 뺏어가라!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가 필요하다… 눈치 안 보고 라스푸틴을 출 만한, 혹은… 그래, 춤추는 남들사이에 섞여 숨을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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