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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나열들 속에서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4-26
  • 조회수 163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

-사르트르


나무위키에 적힌 한 문장. 나는 사르트르가 실제로 했는지 알 수도 없는 그 말을 보고

작은 노란 메모지에 그 문구를 그대로 적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썼던 나의 최후의 의지였다.

순간, 순간의 나열들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1월, 2월, 3월 점점 상처들이 무뎌져가고, 의지는 흐려졌다.


내 방에 메모지는 단 9개이다. 가장 가운데에는 앞서 말했던 사르트르가 말했는지도 알 수 없는 문구,

그 아래에는 국어 기출분석 방법, 1년째 까먹고 있는 등차수열, 등비수열 합공식, 현대시 분석법, 수학 공부법, 영어 공부법 등등이 있다.

1월에 나름대로 마음을 다 잡고 했던 일들이 이제는 별로 무의미 해보인다. 의지는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린다.


평소에 가던 카페에서 나는 주로 공부를 했는데, 예전에는 5시간 연속으로 앉아도 괜찮았던 곳이 이제는 1시간만 앉아도 지옥 같다.

슬슬 의지도 바닥나는 시점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는 탓일까. 얼어붙은 마음은 녹아내리지만 차가웠던 머리는 점점 아파만 온다.

4월엔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시험 공부를 하느라 너무나 바쁘기도 했지만 평소 그것을 완화해주던 글쓰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고3에게 글쓰기 사치가 맞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결국 끊을 수 없는 유튜브 쇼츠와 같은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주로 글을 새벽 2시에서 3시에 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이전에는 내가 할 일을 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정언명령이다.

그것들을 내버려둔채 글을 쓰러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고3이면 그정도 고통은 필요하다. 사실 2시 이후에도 공부를 하는 것이 맞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다르게 보내보력 한다. 적어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인식하고자 오늘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새벽 감성에 때론 이상한 글이 나오기도 하지만 나의 새벽을 책임졌던 그동안의 소설과 수필들은 여전히 내 노트북에 차곡차곡 쌓여 

따뜻한 도서관의 책장을 가득 메운 것만 같다. 피곤함에 젖은 그 글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감히 누가 평가를 한다고 할 지라도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던 간에 그 글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나의 실패의 바탕이 되었던, 성공에 바탕이 되었던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공부를 뽑아보자면 윤리 과목들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생활과 윤리 내신을 준비하다보면 사상가들의 모순이 꽤 많이 발견된다. 특히 칸트. 칸트의 모순을 나열해 보자면 정말

A4 몇 장 분량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이건 칸트의 다른 이야기까지 파고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이성과 선의지가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칸트가 말하는 인간의 기준은 서양에 사는 백인 기준이다.(칸트는 동양인과 흑인은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 칸트는 인간의 목적으로 대우하면서도 수단으로 여길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가끔 장난으로 칸트가 싸이코패스가 아니냐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글을 쭉 쓰면서 나는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 본다. 오랜만에 쓴 글이라 약간 무의미한 언어의 나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저 순간 순간의 나열을 잘 정리한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든다. 순간 순간의 나열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삶은 정말 별것없다. 우리는 순간에 집착을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갈 것이라, 혹은 

무언가 평생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고 무명한다. 무명은 집착을 만들고 집착은 탐진치라는 삼독을 만든다. 삼독은 결국 우리가 죽을 때

윤회라는 고통을 선사한다. 윤회 또한 고통이다. 일체개고, 즉 삶은 고통이기 때문이다. 처음 인터넷에서 자등명 법등명이란 단어를 듣고

불교에 관심을 가졌을 때, 숫타니파타를 무작정 사서 읽어보았을 때의 짜릿함. 생각해보면 나는 그 순간 순간을 나도 모르게 의미있게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면서도 결국 길을 잃었다.

마치 김소월의 <가는 길>에 나오는 화자처럼 열십자복판에 서있다고 해야 할까. 하루 하루의 방향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또 길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실된 삶의 태도이다. 스피노자는 인과의 필연성을 깨달으라고 했다. 환경이나 다른 모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다. 그리고 인과는 필연적이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인을 바꿔야 한다.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말이다.  


처음 스피노자의 사상을 접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정말 많은 외부의 탓, 자기기만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던 것을 어머니가 학원을 늦게 보내준 탓, 집안에 내 제대로된 방과 책상이 없었던 탓 등

나의 책임을 타인과 환경에 던져버리곤 했다. 무의미한 삶의 순간, 순간을 나열했다.


지나간 잃어버린 시간들을 지나, 앞으로의 순간을 붙잡을 것이다. 멱살이라도 흔들며

흘러가지 못하도록 내 순간, 순간을 새로운 물감으로 물들읽 것이다.

지금도 빠르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 마치 계곡물이 내 발 아래를 지나는 것만 같다.

물을 잡을 수 없다. 그러나 물과 함께 내가 흘러갈 수는 있다.

노자의 상선약수처럼 그대로 흘러가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진인의 삶이고, 비로소 물아일체이니까.




노스텔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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