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안에 서사
- 작성자 이한
- 작성일 2026-04-29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10
1
언제부턴가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하거나 펜을 들어 공백을 메우다 보면, 그런 행위들이 재구성이라는 명목 하에 변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것이 지속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확증된 답을 내놓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다 보니 결국에는 함묵증을 가진 아이로 취급되어 부당한 다룸을 받거나, 자연스럽게 저의 의견 따위는 맹목적으로 도외시되곤 했습니다
그런 취급이 열두 달을 지나다 보니, 결국에는 저 조차도 스스로에게 그런 진단을 내렸습니다
2
원래 살았던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을 때, 아동기가 다 지나지 않은 저로서는 그런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흥미로 치부되기보단 위압이나 은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전 학교에서 전출되어, 새로운 곳으로 전입되었을 때는 조금의 설렘도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 그곳에서도 저에 대한 취급은 크게 바뀌지 않았던 것 같으니, 그냥 그렇다 하겠습니다. 결정적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저, 흔히들 말하는 소외되는 아이로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구성원들이 했던 배돌림이나, 은따를 시키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아마 당신이 짐작하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고 믿습니다.
3
중학교 2학년, 아직 봄이 여름맞이를 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듯, 봄의 한기가 남아 살갗의 윤곽을 따라 흐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 학기의 설렘이라는 것은 그때 저로서는 생각하지 못했을 때였으니, 감상 따위는 접어두겠습니다.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는 제게 서점을 가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의 저는 기억하기에 학교에서 독서 시간이나 과제를 줄 때면, 한낱 한 페이지조차도 읽는데 딴마음을 품어 정해진 시간 안에 할당량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을 만큼 독서와 담을 쌓았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심정에 불만을 품은 채, 서점에 들러 초연한 태도로 서점 내를 둘러보았는데 ‘베스트셀러’ 라는 표시판을 중심으로 정렬된 책 중 한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나 표지는 아직까지 확고하게 상기할 수 있으나 굳이 서술하진 않겠습니다.
그렇게 홀린 듯 책을 집어들어 그것을 집에 들여놓은 저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그 책을 밤까지 지새우며 그것을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의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저에 대한 환멸이나 도피감이 그런 형태로 발현한 것은 아닌지, 어줍잖게 추측해보고 있습니다
4
그 후 후유증은 폐벽 깊숙이 스며든 채 지속되었습니다. 마치 그을림 마냥 매 순간 숨을 들이쉴 때면 지독한 고뿔에 걸린 것 마냥, 답답하거나 칼칼한 느낌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병마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방황하던 중, 펜을 잡게 되었습니다. 스쳐가는 어른들이 공부 잘 하라며 많은 노트를 선물로 받았으나 공부 따위에는 흥미를 저버린 저였기에, 그 당시에 가장 부유했던 것은 흑연이나 잉크 자국 하나 없는 노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펜을 쥔 저는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응용하여 짧은 산문 하나를 써 내려갔습니다. 당연히 완성된 작품은 엉망이었지만, 글쎄요. 아마 그때의 저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듯 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방탕해하던 저의 삶에 글이라는 이방인이 들어왔습니다
5
책을 통해 구원(혹은 다른 것에 의한 버림) 이후 저는 독서나 글에 매진하였습니다. 나는 글을 못 쓰나 보다. 라며 생각한 적도 있어 오랫동안 글을 안 쓰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그럴 때면 그 서점을 다시 찾아 일종의 이정표가 된 그 표시판을 다시 들여다보거나, 그것을 중점으로 정렬된 책들을 하나씩 펼쳐보며 마음을 되잡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 종이 안에서 한 줄로 이어진 채 작가가 뚫는 대로 검은 선들이 열립을 이루어, 골몰하며 고심하는 작가의 손에서 각자마다의 결말을 맞게 됩니다. 그런 것을 제 삼자의 입장으로서 관조하는 것에 불과한 저로서는 그런 고심이 느껴질 뿐 그것에 대한 연유를 완전히 파악할 순 없습니다. 허나 그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한 동기였기에, 더 나아갈 일종의 이끎이기도 합니다.
3 해가 지난 지금으로서 그렇다 할 성과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글을 쓰다 말고 새벽 즈음 홀로 밤을 지새우며,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듯 예전까지는 아무런 감상도 내놓을 수 없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풍경에 대한 감상을 줄줄이 읆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기에, 저에 삶에 대한 다짐이나 목표 따위를 계속해서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내 책' 을 가진 제가 단상 위에서 지금의 이야기를 풀어주거나, 배움을 나누는 강연을 하는 저를 망상하곤 합니다.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나, 운후한 열기마저 그러모아 매일이 하나의 페이지로서 승화되는 삶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제는 함묵증 따위도 희석된 지 오래고, 그렇다 할 친구들과 분위기에 이끌려 살아가게 된 저는 언제 올지 모르는 그런 날을 바라며 펜 촉으로 공백을 메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이룸을 산문으로서 풀어 쓸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추천 콘텐츠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