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퇴적
- 작성자 미빈
- 작성일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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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누군가는 쇼팽을 쳤고 누군가는 리스트를 쳤다. 검은 정장과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학생들의 손끝은 지나치게 매끄러워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앉아 핫 팩만 쥐고 있었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 틈에 섞인 중학교 1학년의 취미생.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이 둔해질 때까지 같은 소절을 반복했고, 틀린 부분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다시 눌렀다. 하지만 어떤 노력은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을 어린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왼손 약지 아래 안쪽 관절에 이상한 것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연습 도중 손바닥 안쪽이 약간 부풀어 오른 것 같다가도 금세 잊어버릴 정도의 감각. 말랑했을 때는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손가락을 굽힐 때 아주 잠깐 이물감이 스치는 정도였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몸이라는 것은 원래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픈 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혹시라도 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며칠 동안의 연습량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방치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 매일같이 건반을 누르며 같은 부위를 접고 펴는 동안 그 작은 덩어리는 손 안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결절종은 물렁한 침묵으로 시작해 결국 뼈처럼 굳어 갔다. 손가락을 쥐었다 펼 때마다 안쪽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관절 사이를 밀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건반을 누르는 도중 유난히 이질적인 압박감이 느껴져 손을 뒤집어 보았고, 그제야 나는 거기에 무엇인가 자라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오래 방치한 감정이 어느 순간 형태를 얻듯이. 몸 안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개 소리 없이 커진다. 통증조차 늦게 도착한다.
대회는 예상대로 끝났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도 더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 대회에서는 모두가 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중고등부가 한데 묶여 있었고,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높은 상은 입시생들이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들은 매일 몇 시간씩 인생을 저울 위에 올려두는 사람들이었고, 또 누구보다도 절박했으며······ 나는 그저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는 애였으니까. 억울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억울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이미 가장 필사적인 자기방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괜찮을 때는 굳이 괜찮다고 되뇌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손부터 보게 되었다. 트로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손의 딱딱한 돌기였다. 대회를 위해 미뤄둔 것.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남은 것은 성적표 같은 상장과 더 단단해진 결절종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노력이라는 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그 시간을 대학 합격증으로 환전하고, 누군가는 근육과 기술로 바꾸고, 또 누군가는 손 안에 혹처럼 남겨 둔다. 마치 몸이 기억을 대신 저장하기라도 하듯이.
결국 수술을 했다. 하루 입원으로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마취한 손목 아래로 감각이 흐릿하게 끊겨 나간 채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하필 내 손이었을까?
피아노를 직업으로 삼을 사람도 아니었다. 죽도록 연습한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간절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시간을 들여 노력하지 않았나? 어째서 내 손에는 이런 것이 남았을까. 노력은 언제나 아름다운 결과로 환원된다고 믿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종종 이상한 부산물만 남긴다. 몸 어딘가가 굳거나, 마음속 어떤 부분이 닳거나, 오래 접힌 자리만 희게 바래 간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왼손을 내려다본다. 결절종은 떼어냈지만 그 자리에 얇은 흉터가 남았다. 손금을 비껴 가로지르는 작은 선 하나. 남들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흔적이지만 나는 안다. 손가락을 오래 굽히고 있다 보면 안쪽이 뻐근해지는 감각도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다. 또한 약지-새끼 사이가 오른손에 비해 미세하게 잘 펴지지 않는다. 몸은 한번 생긴 것을 완전히 잊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도려낸 것들조차 이전에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은 끝까지 남겨 둔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노력이라는 것을 너무 곧게 믿었던 것 같다. 오래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형태를 얻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남는 것은 꼭 결과만이 아니다. 누군가는 상장을 가지고 돌아가고, 누군가는 다음 입시를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손 안에 작은 혹 하나를 키운다. 노력은 이상할 만큼 공평하지 않아서, 들인 시간과 남겨지는 흔적의 모양이 서로 전혀 닮아 있지 않을 때가 많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그 결절종이 정말 피아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원래 언젠가 생길 것이 우연히 그 시기에 자라난 것뿐이었을까. 이제 와서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한동안 그것을 모르는 척했고, 끝내 수술대 위에서 떼어냈고, 그 자리에 작은 흉터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뿐이다.
아마 노력이라는 것도 비슷한 종류의 것인지 모른다. 애쓴 만큼 정확히 무엇이 남는지는 끝까지 알 수 없고, 어떤 시간들은 아무 의미 없이 몸 어딘가만 조금 변형시켜 놓는다. 그래도 사람은 그 시절을 전혀 없던 일처럼 지우지는 못해서 가끔 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괜히 한 번씩 그 자리를 문질러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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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오랫동안 합창단을 다니고, 돈이 없어 예고 진학을 포기했을 때,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마음을 글로 꺼내 놓는 과정은 마구잡이고, 감정적이고,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서 달리다 넘어지는 것처럼 엉성했는데, 미빈 님은 어떻게 이렇게 바르고 진솔하고 좋은 글을 쓰셨을까요? 읽으면서 공감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글이 수준 높아 감탄하기도 했네요. 그 당시 저는, 내가 노력하고 시간을 쏟은 것들이 저 뒤에 남겨졌다고 느껴지면, 그 사랑이 또 다른 형태로 한 바퀴 크게 돌아 다시 내게로 온다고 믿으며 버텼어요. 미빈님, 미빈님이 쌓으신 좋아하는 마음과 사랑들은 어떤 형태로든 꼭 다시 돌아올 거예요. 그렇게 끝까지 노력하고 사랑했던 마음은 정말 있었으니까요. 있어서, 미빈님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노력할 줄 아는, 인생을 근사하게 가꿀 수 있는 마음을 아는 사람으로 키웠으니까요. 저는... 감정에 대한 위로밖에 전해 드릴 수 없네요. 그러나 미빈님의 수필을 읽으며 독자로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공감하고 위로받게 되어 이렇게 댓글 남겨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방백 칭찬과 위로를 포함한 장문의 댓글을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댓글이 달릴 줄 몰랐어요. 방백 님과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평소에 글틴을 둘러보며 방백 님의 글을 좋아해왔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제 글을 좋게 읽어 주셨다는 말이 정말 기쁘네요! 돌이켜 보면 제가 이 글을 이제서야 쓰게 된(쓸 수 있게 된) 이유는, 예전 같았으면 견디기 어려웠을 결과들을 이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더 이상 절망하거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보니 다소 건조하고 부정적으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었는데요 ㅎㅎ,,, 글을 쓰던 당시의 마음은 담담한 쪽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말씀해 주신 “그 시간들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노력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웠다”는 부분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적었다시피 저는 그 시절의 노력이 언제나 원하는 결과물로 남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데요, 그 문장을 읽고 나니 그 사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남겨진 것이 꼭 성장이나 합격증 같은 형태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들이 결국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들려주신 합창단과 예고 이야기에서 그 시절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분명 좋아하는 마음과 애쓴 시간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가지 더 감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문장을 남에게 건네줄 수 있는 방백 님이라면 그 시절의 사랑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태는 달라졌어도 지금의 따뜻한 글과 시간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 주시고, 제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히려 저도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