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하루들의 계속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6-05-25
- 좋아요 0
- 댓글수 3
- 조회수 140
5월 초부터 바빴다. 할 일을 미루고 미뤄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야 움직이는 것이 천성인지라 내 1년은 자주 지루하다가 자주 바쁘다. 5월은 바쁜 달이었다.
5월내로 대회에 제출할 소설을 마감해야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타자 속도가 빠른 편임에도 소설은 잘 써지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과 손가락의 움직임이 자꾸만 엇나가는 느낌. 가끔씩 그런 날이 있다. 영 소설이 손에 안 붙는 날. 난 두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끙끙대다가, 그러니까 휴대폰을 수시로 만지작거리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읽을 책을 손으로 들고.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건 일일과제다.
우리 동네에 이런 도서관이 있음은 큰 행운이다. 비록 오르막을 꽤 올라야하지만 4층짜리 도서관은 부족하지 않은 서적과 많은 의자를 가지고 있다. 평일에는 보통 3층의 열림배움터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2층의 문적원에서 주로 독서를 한다. 둘 다 안 할 때도 많지만.
그날은 아마 김멜라의 단편을 읽었던 것 같다. 6인석 테이블이 네 개가 있었고 사람은 여섯 명이 채 안 됐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왼편엔 서가였고 오른편은 창가였다. 도서관 옆에는 두 개의 중학교와 하나의 고등학교가 나란히 배열돼 있었는데, 창가로는 한 중학교의 운동장이 훤히 보였다. 근처 학교 중 유일하게 잔디운동장인 그곳에는 검거나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 종횡하는 중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축구한 게 언제였지, 생각했다. 올해 들어서는 없었던 것 같다. 막상 하면 힘들고 욕을 먹어 마냥 좋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나도 저 틈에 끼어있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저들처럼 발이 빠르고 힘이 강했더라면.
도서관 안에는 연세가 꽤 많아 보이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들은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데스크의 사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응시했다. 나만 집중하지 못한 채 책과 창밖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오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더웠다. 이제 봄도 지나 여름에 가까운 기온이었는데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창문이라도 열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더위에 취약한 나로서는 집중하기 퍽 힘든 환경이었다. 휴대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간신히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을 즈음에는 파리의 잉잉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내는 소리만큼이나 거대한 파리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것이다. 녀석은 자유로이 곡선을 그리며 비행했다. 소리에 신경을 뺏겨 눈알을 굴리면 녹색 잔디를 등지고 도서관에 갇힌 파리를 보는 것이었다. 왠지 비슷한 처지란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하다.
훌륭한 독서였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단편 하나를 읽은 후 책을 덮었다. 집에 돌아갈 차례였다. 집에서 나올 무렵으로부터 고작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언제부턴가 파리는 보이지 않았고, 창밖의 운동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숙제처럼 남은, 써야 될 소설이 생각났다. 암담한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오래간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 학교에서는 자주 떠들지만 학교 바깥에서 연락은 잘 않던 녀석인데, 다짜고짜 수행평가 내용을 물어왔다. 그런 학교의 일들에 무심경한 나였기에 곧장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니 사회문화 수행평가가 있었구나, 혼자 자각했다. 그 내용은 대략적으로 기억났지만 확신이 서질 않아, 같은 수업을 듣는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금방 수행평가 안내문 사진이 돌아왔다. 난 그 사진을 다시 친구에게 전달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또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엔 영어 수행평가가 내일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듣기라도 하는 사회문화와 달리 난 영어 시간이면 늘 딴 생각에 잠겨 있었으므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난 모른다 답했다. 그리고 또, 내일이야? 물었다. 내일이 아니었음은 내일에야 밝혀졌다. 어차피 준비는 안 했지만.
그날 난 소설을 다 썼던가, 목표를 이루지 못했던가. 아마 다 쓰지 못했으리라. 실패한 하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트북을 덮고, 두 시간이 넘도록 온라인을 방황하다 침대에 누우면 그날 하루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일에 충실해 보이고, 나 혼자만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기분.
파리 소리를 상기하면,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이 연상된다.
벌은 하루치의 삶에 몰두해 있고
죽은 자 앞에서 나는 벌겋게 삶에 취해 있고
결국 삶은 개인의 것이며 우린 각자의 삶에 몰두한 채로 살아간다.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가 죽었더라도, 나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숲이 생각나기도 하는 깨달음. 그러나 우리는 좁은 한 공간에서 살고,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래. 그렇게 산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척 산다. 그다지 바뀐 것도 없지. 소설은 다 썼지만 퇴고는 번을 거듭해도 만족스럽지 않다. 마감일은 벌써 곧이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휴대폰으로는 카톡을 켜두고, 읽다 만 책을 옆으로 치워놓은 채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백무산 <조문> 인용
추천 콘텐츠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노르웨이의 숲 읽다가 별로라서 못읽겠던데. 초반만 봐도 그런 뉘앙스긴 했지. 근데 또 넌 소설을 쓰는 재능이 있잖아. 공부 하는 아이들은 공부 하는 재능이 있는 거고. 훗날 자신의 재능을 찾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가르치는 건데 뭐. 넌 빨리 맞는 길을 찾은 거니 시간 아꼈네! 공부하라는 공간인 학교에서 있을 땐 그런 생각이 들지 몰라도, 글 좀 쓰라는 ㅋㅋ 이곳에서는 네가 우등생이잖아? ㅋㅋㅋㅋ 이 세상이 글 쓰는 능력을 최고로 쳐서, 글 쓰고 생각하는 학교/입시만 있고, 그곳에서 공부만 하고 싶어 방황하는 청소년 소설이 있다면 재밌겠다 ㅋㅋㅋㅋㅋ 걔도 너랑 똑같은 생각을 하겠지, 나는 새로운 지식, 더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좋은데 어떡하지 하면서
내가 동경할만한 삶을 사십니까?
@기능사 모르죠. 확실한 건 살고있다는 것밖에
공모전 많은 5월이 좀 정신없기는 해^^; 나도 글틴에 글 올리고 공모전 마감 때려야 하는데 쉽지 않네 암튼, 구포 화이팅!! 늘 뒤에서 응원하고 있어^^
@송희찬 미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