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첫 일탈

  • 작성자 구운복어회
  • 작성일 2026-05-27
  • 조회수 109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10방에 속하신 분들이 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B와 A가 나를 싫어하나 생각했다. 놀자고 하면 피하진 않지만 유독 중학생 때와 비교하여  거는 횟수가 확실하게 줄어있었다. 하루에  번, 이틀에한 번. 나는 쉬는 시간 대부분을 자거나 개인용 노트북을 꺼내어 게임을 하며 보냈다. 점심시간에는 다른  절친들과 밥을 먹고 대화하며 놀았지만, 여자아이들이 7명뿐인 반에서는 거의 혼자 지냈다. 합리화일 수는 있겠지만, 그때부터 B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B가 그걸 느끼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체육대횟날 아침, 학교 커다란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잘못 잘랐다며 투덜대는 B와  옆에서 칭찬해주는 A가 보였다. 다른  친구들을 찾지 못한 나는 B와 A에게 끼어들었다. "앞머리 잘랐어?" "응" B는 앞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울만 바라보았다. 나는 A도 바라보았지만, A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휙휙 피하기 일쑤였다. 2반, 3반 아이들이 지나가고,   중에 절친 S와 D가 있었지만, 어차피  아이들과 서야 하기에 B를 기다리다가 늦을지도 모른다며 초조해진 마음에 먼저 운동장으로 향했다. 모래 운동장에서 찬바람과 함께 천천히 익어가다가 B와 A가 함께 오는 것을 봤다.  뒤로는 형식적인 인사와 선서식이 이어졌다. 겨울이 그리 지나지 않았는데도 구름 하나 없이 쨍쨍했다. 그리고 더웠다, 선서식이 끝나고  천막에 모이자마자 B와 A가 사라졌다. 처음은 내가 하는 50m 달리기인데, 봐주지 않는 B와 A에게 조금 서운해졌다. D와 S가 다른 반인데도 꼴등  나에게 위로해주었다. 다음은 여자 전체 줄넘기였다. 그때까지도 B와 A가 보이지 않아 아이들이 당황했다. 결국  명이 교실에 들어가 찾아낸 모양이었다. 우리 반은 줄넘기에서도 졌다. 상대 팀이 잘하기도 했고, 우리 팀이 조금 못하기도 했다. 끝나고도 서로 잘했다며 위로해주는 분위기였지만  옆에는 B도 A도 S도 D도 없었다. 나중에 보니 B와 A는  뒤에서 나란히 뛰었다. 둘이 같이 나오는     눈뿐이었지만.  후부터 확실하게 거리를 두었다. 체육대회의 하루가 끝났다. 우리 체육대회는 2일로 나누어 하기 때문에 하루가  남은 셈이었다.  후로는 계속 B와 A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말을 걸면 무시하고, 피했다. 말을 섞기만 하면 경계심이 누그러지는 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B와 A가 벽을 두던  나뿐이 아니었다.  학교에 같이 다니던 D와 S까지   피한 탓인지, S는 몰랐지만 D와 나는  둘이 우리를 피하는  같다는 것을 눈치챘다. D도 나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때부터 확신이  나는 B와의 절교를 준비해 왔다. 준비 없이 옅게 박아둔 인연을 빼내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다. 충분히 초등학생  겪어보았기 때문에  알았다.  번째 날이 끝나자 B는 손으로  편지를 찍어 보냈다.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를 도와주려 했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원래대로 돌아갔다.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그날 이후 A를 보기만 하면 불편했다. 기숙사에서 씻을  들려오는 B가 하는 A에 대한 말들도 풀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귀찮다거나 어디까지 가나 보자는 말들이었다. 그런 말들을 하고서도 다음  아침 학교에서 웃으며 A를 챙기는 B의 모습은 조금 무서웠다. 다른 면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섭지는 않았다.  말들에 은근슬쩍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을까 무서웠을 뿐이었다. B가  이야기를  후에도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A를 돕는 B는 항상 A와 함께 있었다.

 작은 서운함은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  배구 연습은 매번  혼자 했다. 쉬는 시간에는 찾아오는   친구들이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수업시간에는 D와 S가 오지 못했다.   B를 많이 좋아하니까, 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한번, 학교가 끝나고 종례시간에 B에게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연인도 아니고 무슨 시간인지, 내가 말하고도 조금 우스웠다. B가  그러냐고 이야기  하자고, 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교과서에 글을 적어 보냈다. 나는 오는  글들에 대꾸하며 글을 적었지만,  말들이 B에게 상처였을지는 몰랐다. 왼쪽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옆을 바라보지는 않았다. 나도 눈물이 나니까, 짜증 나는 눈물샘은  마음대로 껐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눈물은 금방 멎었다. 눈을 번쩍 뜨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서로 불편해지니까,  섞는  불편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캐릭터의 표정을 따라 한다고,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크게 웃어버렸다. 아무렇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느낌이었다.

 9교시에는 나갈 거야, 나갈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던  같다.   그림 노트를 펼치고, 왼쪽 옆자리 B를 등지며 낙서했다. 후문을 그리고, 선풍기를 그리고, 나갈 거야 라는 글씨도 적었다. 자꾸 흐르는 눈물이 짜증나 울퉁불퉁한 외투 소매로 벅벅 닦았다. 그림 그리는데 종이가 자꾸만 젖어들어 갔다. 시간이 갈수록 나가겠다는 생각이 사그라지는  같은 것도 짜증 났다. 지금 보면 약간은 격양되어 있었다. 평소 자주 나오는 친구들의 개그에도  크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돌렸다. 머리를 돌리며 보이는 B를 곁눈질했다. 9교시가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자 매점에서 에너지바   쫀득쿠키바   개를  쫀득쿠키바 두개를 먹고 남은 애너지바  개를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넣었다. 40%인 스마트폰 배터리가 60%가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교를 나섰다.

 후문으로 가는 길에는 학생들이 여럿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도로에서 걸었다. 역시 시골이라서 그런지 차가 지나가지 않았다. 오른쪽 주황색으로  산책길을 보기 전까진 도로로 걸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 무섭고 죄책감이  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처음  보는 일탈, 점심시간 종이  1분만 늦어도 안절부절못하다가 완전히 밖으로 나오니 여름 바람이  시원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길을 까먹었다. 충전해  핸드폰으로 지도를  집을 찾았다. 가는 데까지 9시간, 핸드폰을 껐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7시 6분, 삼촌네 집까지 가서 죽으려고 했다. 도보로 걸리는 시간을 보고서, 그냥 어디까지   있나 싶었다. 핸드폰에서 벌점 알림이 왔다. 핸드폰을 끄고 주황색 길을 걸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던 이어폰을 뺐다. 논밭 흔들리는 소리보다   풀벌레 소리가 났다. 주황색 길은 주민들이 다니는 산책로였다. 집은 산책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나오는  아니였다. 도로를 따라 걸었다. 제멋대로 달리는 차들에 휘청거리는  다가가 보았지만, 그것들은 하나같이 너무 빨랐다. 걷는 동안에는 발이 아픈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근육통으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밖에서 빠르게 걸으니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인터넷 지도는 다리  쓰레기장을 지나라고 말했다. 잔뜩 쌓인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위에는 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올려가 있었다.  위를 차들이 지날 때마다 울리는 커다란 소리에 쓰레기가 굴러떨어졌다. 전날 비가  바닥이 축축했다.  논밭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휘청거리며 조심조심 걸었다. 운동화를 축축하게 젖히는 진흙이  뒤꿈치에도 묻어 살을 간지럽혔다. 아직 태양이 지지 않아 날이 맑았다. 쓰레기 가득한 다리 아래를 지나자  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잠깐 서서 뒤를 돌아봤다가 오른쪽 발이 밭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됐다. 발을 빼고 마저 걸었다. 지도를 보고, 걷고,  걸었다. 걷다가 작은  위에 다리를 만났다.  위에는 얇은 빗줄기가 내렸다. 다리를 걷다가 중간에 서서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죽을까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추운 것도, 아픈 것도 싫다. 자동차가   지나갔다. 도로를 걷고 있는데도 어른들은  한번 세우지 않는다. 조금  웃음이 나왔다. 들고 있는 팔이 아파 핸드폰을 내렸다가 올리니 센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이가 울듯 하는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만화처럼 검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지붕이 내려앉은 파란 집을 지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센서가 잘못되었다는  알면서도 센서가 가리키는 곳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오른쪽으로 꺾어야 한다는 표시가 나왔다.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로 가득 채워진 논밭으로 향하라는 핸드폰 화살표가 보였다. 핸드폰을 끄고 고개를 들자 날이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약간 한기 도는 회백색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감싸는 하루살이가 얼굴에서 맴돌았다. 바닥에서 안개가 옅게 피어올랐다. 지도를 나갔다가 들어가자 센서가 보였다. 맞는 길을 표시하는 파란  위에 있어야   위치는  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후에는 계속 껐다 켰다 하며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잘못된 길을 벗어나자 익숙한 도로가 보였다.  오른쪽에  붙어 걸었다. 하늘에 구름이 개고 남색 빛으로 가득한 하늘이 보였다. 꿈에서 이런 풍경을   있었는데, 도로를 계속 걷고 싶었지만 손안에  지도는 나를 작은 마을 사이로 이끌었다. 집집이 커다란 개들이 대문에 막힌   향해 짖고 있었다. 밤이 어두워지고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손전등을  달렸다. 주머니에서  하나가 떨어졌지만 돌아서서 주울만한 자신은 없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자 또다시 도로가 보였다. 얼마나 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로를 감싼 논밭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풀벌레 소리는 들리는데 날벌레 하나 보이지 않는  무서웠다. 결국,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걸을때는 느껴지지 않았던 발가락 끝쪽의 통증이 조금씩 아려왔다. 전화할 생각에 숨이  막혔다. 차라리 아까 비가    젖을  있을 만큼 젖었었다면, 내가 엄청나게 걸어가   시에 통화를 걸었다면, 나는  기준에서 불쌍하지도 못했다. 전화를 걸려 하니 눈물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도 눈물을 흘리려고도  봤었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쩌지.. 혼날 생각을 하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말하려고 했는데 하필 그때 눈물이 나왔다. "딸,  울어?" 당황한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엄마 방금  갔다 왔을 텐데, 피곤할 텐데, "엄마, 미안해"  마디  마디 말하는데 자꾸 숨이 끊겼다. 흘리려고  때는  나오지도 않더니 자꾸 눈물이 났다. 지금 밖에 나와 있다고, 미안하다고 계속 웅얼거렸다. 엄마는 카카오톡에서  위치 공유를  달라고 했다. 시골이라 그런지 자꾸 데이터가 느려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에너지바  개를 만지작거렸다. 지금만 걱정하고 나중 가서 혼내면 어떡해,  생각을 뚫고 나오듯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은 먹었어?" "...응"   부드러운 말은 나오지도 못하고 덜덜 떨리는 까칠한 어투가 자꾸 튀어나왔다. 위치가 보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과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가 차에서 내려와 나를 껴안았다.  혼내는구나,  안에 타라는 엄마의 말에 잠깐 망설였다. 신발과 바지가 진흙투성이였다. 다행히 어두워서인지 보지 못한  같았다.  앞자리 시트에 앉았다. 밝은 가로등 아래보다 어두운  안이  따뜻했다. 삼촌이 히터를  세게 틀어주며  손을 잡아 중앙 히터에 가져다 댔다. 나를 태운  학교에  엄마가 가방과 캐리어를 가져왔다.  잠깐 비는 시간 동안 에너지바 하나를 삼촌에게 주었다.  때문에 괜히 일하고 바로 다음에 데리러   같았다. 집에 가는 동안에는 약간 졸았다.  들어가 몸을 씻고 방에 들어갔다.  한시 정도 되어갈  일이 끝난 아빠가 들어왔다. 잠깐 마중을 하고 나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와중에도 내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의 말에 편히 잠이 들었다. 다음날에 일찍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연휴는 그냥저냥 지나갔다. 먹고, 자고. 월요일까지 쉬었다가 학교에 가야  때가 왔다.

 아침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불러 상담했다.  나갔느냐고 물어보는 선생님에게 그냥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같았다. 솔직하게 말했다. "처음엔 죽으려고 나갔는데 지도를 보니까 아홉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선생님은 나에게 쉽게 흘러가는 일은 없고, 죽음은 더더욱 그렇다고 말해주셨다. 4교시 밥을 먹고 5교시가 되었다. 자습시간에 선생님이 들어와 조용히 나를 데려가셨다. 아빠를 불렀다고, 상담은 끝났고 정신과에 상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짐을 싸고 아빠에게 갔다. 캐리어를 가져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는 "가져와, 이제   없으니까" 라고 말했다. 캐리어까지 챙기고 아빠 차에 탔다. 학교에서 차를 타고 나오는 길에는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이 나고 슬픈지 모르겠다. 회색 울타리들이 도로 옆을 막고있다. 빠르게 지나가는 울타리들 사이사이 세로로 길게 표지판이 새워져 있다. 가끔은 길게 자란 나뭇잎이 보인다. 회색빛 하늘을 보며 차에서 내릴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지난날 밟았던 진흙이 굳어 신발에서 흙가루가 자꾸만 떠다녔다. 

 전에 다니던 정신과는 그리 새롭지 않았다.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전과 달랐던 건, 있던 일과 느낌을 말할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인지, 웃겨서 웃었다기엔 눈물이 자꾸만 나왔다. 처방받은 약은 전에 먹던 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조금 줄인 정도였다. 다음  토요일에 오라는 말과 함께 아빠와 병원에서 나왔다. 역시 전에 귀찮다고 약을 끊었으면  됐던 걸까,  먹었다면 빨리 나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자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나를 불러 이제부터는 통학할 것이라고 했다. 중간마다 귀찮아지겠다거나 어려움을 말하는 소리가 있었다. 물론 기숙사를 죽도록 싫어했던 나로서는 좋았다. 밤마다 잠꼬대할까 옅게만 자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추천 콘텐츠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방백

    엄마한테 전화하고, 걱정하고, 엄마가 와 안아주는 게 따뜻하네요. 아빠의 다정하고 든든한 태도도요. 생생하게 적으셔서 저도 함께 길을 벗어나 오래 걷는 기분이 들었어요. 돌아갈 때 데리러 와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구운복어회님, 힘든 시간이지만 함께 잘 버텨봐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끝은 있다더라고요. 저도 끝이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얀 빛을, 마음속으로 그려가면서 걷고 있어요. 끝까지 걸어가봐요 생생하고 또 진솔하고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6-05-31 05:12:08
    방백
    0 /1500
    • 구운복어회

      @방백 길고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 2026-06-01 07:19:17
      구운복어회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