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생도(史官生徒)
- 작성자 여희랑
- 작성일 202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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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할아버지는 딱히 좋은 분이 아니셨다. 적어도 내 어머니껜 그랬을 터다. 젊었을 적 툭하면 화부터 내는 다혈질에 매질도 빈번했다 했으니 더욱이. 어머니의 입으로 할아버지를 배운 나는 자연히 그분에 대한 정이 쌓일 리 없었다.
그 탓이었던 것 같다. 동생을 말리지 않은 건. 아무런 유감이 없어서.
어머니 눈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숨소리는 쌕쌕거렸으며 벌벌 떨리는 손을 어떻게든 갈무리하고 계셨다. 당장 내일이 시험이기에, 고등학생으로서의 첫 내신 시험 이었던 탓에 장례식장을 하루만 지키겠다는 소리가 어머님의 입장에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던 변명이었나 보다.
“너희가 어떻게 그러고도 사람이니. 내가 정말 너희를 잘못 키웠나 보구나.”
날 선 말에 상처를 입거나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보단 조금 짜증이 났을 뿐이다.
남아있는 할아버지와의 첫 기억은 내 머리가 여타 어른들의 허리깨에 닿았을 무렵이었다. 외가댁 작은 방 문 사이로 들려오는 고성, 차마 입에도 담기 힘든 언행 사이로 들려오는 누군가의 울음소리. 지지부진한 말싸움 끝에 깨지는 소리를 도화선으로 난 밖으로 끌려 나왔다. 상황을 살필 틈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다시금 점화될 것 같은 분위기 탓에 차마 머리를 들지 못하고, 어머니의 발걸음에 맞춰 바닥의 유리 조각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악의의 도가니 같던 집을 지나 차량의 조수석, 나는 잔뜩 화가 난 어머니가 무서워 자는 척을 했다. 집 가는 내내 어머니께서 중얼거리던 다시는 보나 봐라는 말은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있다.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렀다. 내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사이도 나름 봉합된 것처럼 보였다. 구미에 살던 할아버지를 부산에 모셔 관광을 시켜드릴 정도로 말이다. 시간은 시간이었는지 안 본 사이 그분은 많이 수척해지셨다. 목에는 영문모를 깁스가, 허리아래는 또 무엇이 불편한지 휠체어가 위치했으니까. 그럼에도 어머님은 그리 즐거우신지 휠체어를 끌며 웃었다.
“왜 그리 둘째 아들만 예뻐하셨어요. 아빠, 앞으로 우리 종종 놀러 다녀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일주일 뒤 의식을 잃으셨다. 그럴 분이 왜 꼬박꼬박 웃으며 대답을 했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날밤 조금의 실마리를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만은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후회는 언제나 늦다. 이젠 이유를 영영 알 수가 없다. 때아닌 두통에 먼저 집에 갔으니까.
장례식은 참 시끄러웠다. 항상 유리조각을 치우시던 할머님은 바닥을 부여잡고 통곡하고 계셨다. 일찍이 내놓았던 장남은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 그리 아끼던 둘째 아들은 가장 늦게 도착했다. 어머니의 행색은 기억에 없다. 애초에 보질 않았다. 어머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기 싫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들리는 비명은 1년 사이 쌓인 마음치고는 처절했다.
어머니를 보기 힘든 이유가 슬픔에 동화되어 함께 무너지는 게 두려웠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기엔 너무나 슬펐던 건지, 그때까지 슬프지 않다면 정말 패륜아가 될 것 같아서인지, 고민은 지금까지도 결론짓지 못했다.
그놈의 혈연이 뭐기에 이리 질긴 겁니까? 어머니는 십 년을 넘게 연을 끊었건만 그의 십 분의 일도 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고 아파하십니까? 답이 나오지 않을 질문을 곱씹었다. 머리가 아팠다. 자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흘려보내는 건 정말 안될 일 같았다. 잠시 학생이기를 벗어던진 채 소주를 연거푸 마셨다. 달아오르는 취기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지금까지 눈감았기에 눌린다. 무심코 지나친 과거가 태풍으로 돌아왔다. 소주는 밍밍했다.
삼일째가 돼서야 문 밖으로 나왔다. 제 발로 걸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에 휩쓸린 것 같기도 하다. 추모의 장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날이 좋아 산으로 향했다. 운구는 네 분이서 하셨다. 내 손을 빌릴 바에는 차라리 부족한 게 낫다는 소리로 들렸다. 하릴없이 어머니의 어깨를 끌어안고 길을 나섰다. 아마 한걸음정도는 더 빠르지 않았나 한다. 유골함을 안치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했다. 과거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럴 테다. 일이 다 끝나고 잠시 잔디에 앉아 낙동강 상류를 바라봤다. 아직까지 말은 나오지 않았다. 때아닌 꽃가루에 자꾸만 눈을 비볐다. 한겨울 칼바람은 상기된 코를 스쳤다. 흔들리는 배롱나무가 참 예뻤다.
나는 지금 기록하고 있다. 비록 문자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시간을 내게 담았다. 장례식 기간 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수술의 여파로 두개골이 선반에 굴러다녀도, 또 그 몸뚱이를 입관할 때에도 말이다. 만약 흘렸더래도 남은이들을 위한 애도일뿐, 넘치는 감정에 눈이 흐려진 게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악몽이었던 사람이 말라있는 걸 담았다. 몇 안 되는 밝은 기억이 눈물로 화하는 걸 담았다. 그리고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없도록 가슴에 새긴다.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 아니셨다. 하지만 끝까지 좋은 분이 아니 신건 분명 나의 탓이다. 항상 나쁜 건 없다. 사실은 고칠 도리가 없지만 바라보는 시야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양면을 주시하고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사람이 되었든 세상이 되었든 말이다. 그것이 내 나름의 추모고 천륜을 다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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