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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려된 부끄러움

  • 작성자 이예서
  • 작성일 2026-07-25
  • 조회수 139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아니, 4학년 때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전일 수도.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리스트 중에서 하나를 골라 독후감을 써야 했던 것.

 학년 동안 모든 책을 읽어야 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은  권뿐이었다.


  또한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헬렌 켈러와 그녀의 은사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였다는 것뿐.


나는 당시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당시 읽었던  중에서 나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밖에  읽긴 했지만 말이다.


인간은 다섯 가지 감각이 있다.

하지만 헬렌 켈러는 그중  가지가 없었다.

그것은 시각과 청각.

인간이 삶을 사는데 가장 의지하는  가지 감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촉각은 둘째 치고 후각과 미각이 없어도 현대 사회에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각과 청각은 세상을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감각을 잃는 것은 세상을 잃는 것.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실은 피부를 통해서 느껴지는 무언가뿐이다.


그녀는 그녀의 은사와 그것을 극복해 냈고,

  인류애적인 족적을 남겼다.

이에 관해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그녀의 극복과 상관없이, 나는 세상을 잃는다는 것을 상상할  없었다.

 끝없는 고독을 상상하기만 해도 나는 가만히 있을  없었다.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독후감을 쓰라 하며 종이를 주었을 때,

나는 나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을 쏟아냈다.

그와 더불어 그녀에 대한 감사, 그녀의 삶에 대한 감사, 설리번 선생님에 대한 감사, 그리고 감각의 존재가 너무나 당연한 나의 삶에 대한 감사까지.

감사로 점철된 나의 독후감은  안에 있는 무언가를 처음 밖으로 꺼내주었다.


해방감과 동시에  생각은 상을 받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을 따라 학생들은 강당에 가게 되었다.

상을 받는 거냐는 긴장감과 함께 나는 기다렸다.


결과는 장려상.

확신에  있던 나를 선생님은 장려했다.

약간의 실망이 있었지만 기뻤다.

어법과 글씨체의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것이 내가 글을 써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상이었다.


이것은 내가 어느 정도 글쓰기에 자신을 얻은 계기가 되었다.

 후에  글이 칭찬받는 일은 있었지만  정도의 주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많은 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확신은  실망이 되었다.

나의 예감은 맞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기억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헬렌 켈러는 사회주의자이자 여성주의자였다.

그리고  사상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을 개진했다.

이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보다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 자신 없이 확신한다.


 사실을 알게  것은 내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여성주의  내가 사는 세상이 배척하는 사상들에 관심을 가지면서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책에는 분명히 적혀있지 않았다.

읽었더라도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향은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더라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논쟁을 즐기지 않았을 것이다.

헬렌 켈러의 이름 뒤에 무엇이 지워졌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날 내가 골랐던 책이 헬렌 켈러가 아닌 다른 책이었다면,

현재에 가려진 부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헬렌 켈러를 알게 되어 그녀의 업적에 평범하게 감격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우연일까?


사실  책으로부터  불편함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독후감을  당시에도 불편함을 느꼈다.

 불편함은 부끄러운 불편함이었다.

부끄러워서 차마 독후감에 적지 못한 나의 불편함.


그녀의 고통으로 나의 삶에 감사한 죄책감 같은  아니었다.

 생각은 있긴 했지만, 상을 받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헬렌 켈러는 장애를 겪지 않았다면 위인이   있었을까?

내가 장애를 겪었다면 위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불행, 아니 불편에 대한 비겁하고도 부끄러운 질투였다.


그녀에 대한, 그녀와 관련된 모든 감사는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낯부끄러운 질투 위에 올려진 얕은 층위에 불과했다.


나는 세상이 가리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자부했다.

하지만 정작  안에 가린 것은 끝내 종이에 적지 못했다.


나는   상이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다는 부끄러움으로 나의 장려상을 헬렌 켈러에게 바치고 싶다.


아니, 이것조차 부끄러워 다시 거두고 싶다.

이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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