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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거장을 지나며

  • 작성자 금안백
  • 작성일 2026-07-25
  • 조회수 287


 이 글을 쓰는 게 2026년 7월 25일이다내일이면 내가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고글틴을 떠나게 된다글틴이란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창작 공간이다나는 이런 글틴에서 2023년 말부터 운문과 산문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써왔다그리고 이제 글틴을 떠날 날을 목전에 둔 지금나는 글틴에서 활동한 전후로 얻은 경험을 정리하고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

 

 글틴을 접하기 한참 전중학생 시기에 나는 삶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살아갔다그때가 코로나 시기여서 학교는 뜨문뜨문 격주제로 등교했었다그땐 성격도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가 사귀기는 무척 어려웠다그런데 공업지역인 우리 집 주위엔 내 또래도 적었고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초등학교 친구 중에 중학교에 진학한 애들도 없었다외톨이가 되기 알맞은 환경이었다.

 중학교 시기 내내 공부는 안 하고집에 가선 게임만 하고꿈도 없는 채로 살다기 고등학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문학을 접한 것도 중학교 때다한창 집 사정이 안 좋았을 때라부모님과 같은 방을 써야 했다예나 지금이나 아빠는 TV를 보며 잠드는 습관을 갖고 계셨다여느 때처럼 저녁에 아빠가 TV를 틀었다그날 잘 기억은 안 나지만부모님이 자주 보던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이 새로 시작했었다아빠는 어차피 달리 볼 것도 없는데 이거나 한번 봐보자고 말하고는 나와 같이 그 프로를 시청했다그 프로그램은 매회 책 한 권을 강사가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플롯이었는데쉽고 재밌었다평소 책이라곤 멀리하던 나도 그 첫 회를 나름대로 재밌게 봤다아빠도 맘에 들었는지 매주 그 프로를 챙겨보셨다.

 초등학교 막 학기 어느 날독후감 쓰기 활동이 있었다일정량 이상 써내야 했는데내가 읽은 책 양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었다그렇다고 백설공주’ 같은 작품들을 주제로 쓰면 혼난 기억이다마감일은 코앞이라 책을 더 읽기에도 무리였다결국 고민 끝에 나는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봤던 단테의 <신곡>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리처드 탈러의 <넛지>를 각각 주제로 해서 세 편의 감상문을 냈다책 내용과 느낀 점은 패널들이나 강사가 말한 바를 내가 이해한 대로 적었다.

 독후감을 내고 얼마 안 있어서 담임 선생님이 날 불렀다이런 책들은 어떻게 읽게 된 거냐고 물었다나는 얼버무리며 말했다그러나 선생님은,

 우리 건웅이책 잘 읽는데?”

하면서 도리어 날 칭찬해주시는 것이었다분명 내가 직접 읽지 않은 건 아셨을 텐데물론 당시 어렸던 나는 선생님이 속아 넘어간 줄로 알았지만 말이다.

 이후로 나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생겼다어려운 책을 안다는’ 자부심이었다.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책을 읽기 시작했단 것이다그 계기는 별것이 아니었다어느 날내가 종일 게임만 하는 걸 못마땅했던 아빠가 하루에 삼십 분이라도 책을 읽으면 게임 2시간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갑작스레 제한을 걸었다나는 책장에 있던 어린이용 책 중 아무거나 뽑아 읽는 둥 마는 둥 할 생각으로 책을 들었는데그게 어린이판으로 나온 셰익스피어 5대 희극이었다예상외로 정말 재밌었다. 30분을 넘겨 그 자리서 한 시간이나 넘게 그 책을 붙들고 있었다.

 이후로 나는 집에 있던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을(셰익스피어 5대 희극도 그 시리즈였다전부 읽어나갔다이로써 나는 문학을 안다는 걸 넘어 즐긴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후엔 더 높은 수준의 책도 읽었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폭풍의 언덕>이 기억에 남는다사실 둘 다 내가 독서 능력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소설이었지만나는 꾸역꾸역 읽어나갔다물론 <호밀밭의 파수꾼>을 하나 읽는 데에만 두 달 넘게 걸릴 정도로 고역이었지만.

 

 이제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말해보겠다나는 중학생 때부터 글을 썼었다그러나 그때는 진지하게 글쓰기를 대하지는 않았고단지 내가 재밌게 읽은 문학 작품을 나도 창작해 내고 싶다는 맘으로 재밌게 글을 썼었다실제로 스스로 기억하는 내 첫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의 뒷이야기였다일종의 팬픽을 쓴 셈이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글쓰기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해보려 했다그 까닭은 그저 학업으로 대학을 갈 자신이 없어서였다그래서 당시 내 학급의 국어 선생님이셨던 이채윤 선생님을 붙잡고 내 글을 보여드리기도 했다이때 온라인 백일장도 나가고 했었지만사실 별로 중요하진 않고저 이채윤 선생님과의 일이 내 생에서 큰 변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심지어 쉬는 시간에도선생님을 찾아가 내가 쓴 시를 보여드렸다솔직히 좀 귀찮으실 법도 한데당신께서는 내 시를 하나하나 다 보고는 감상도 남기는 정성까지 보이셨다감상도 단순한 칭찬만이 아니라어디가 안 좋고 왜 이런 것은 고쳐야 하는지도 밑줄을 그어가며 설명해 주셨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데사실 내가 그분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선생님은 내 1학기 성적을 아시고는 날 따로 교무실에 부르셨다날 혼내시려는 건가 싶었는데뜻밖에도 내 평소 독서 습관을 물으셨다하지만 나는 솔직하지 못했다당시 나는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읽었다그러면서 문학을 하겠다책을 잘 안다 떠드는 것이 내심 부끄러웠다그래서 많이 읽으려는 한다는 어중간한 대답을 뱉은 것이다선생님은 내 답을 듣더니,

 건웅이는(내 본명이다문학을 하고 싶다고 했지그런데 내 생각엔 그러기 위해선 건웅이가 책을 더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해물론 지금도 또래 애들보단 확실히 더 나은 것 같지만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많이 써봐야 해솔직히 말하자면지금 건웅이 글 수준으로 가고 싶다던 문창과 갈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아큰 글짓기 대회 같은 데엔 전국에서 글 잘 쓰는 애들이 다 올 텐데선생님 눈에는 건웅이가 한참 모자라 보여.”

 선생님은 또 내가 아직 너무 애기라며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문학이 하고 싶은지하고 싶다면 차근차근 무엇을 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이후로 나는 공부도 해가면서 문학에 대해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했다다양한 책을 수준에 맞춰서 읽어나가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나갔고사회나 사람에 대해서 나름의 견해를 가져보기도 했다.

 

 글틴을 안 건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문창과 입시생들을 위해 관련 백일장이나 대회 소식을 모아놓는 사이트에서 글틴이 주최하는 문학상인 문장청소년문학상의 공고를 우연히 접한 게 계기였다.

 알고 보니그 문학상은 일반적인 대회가 아니라 일 년동안 글틴이란 사이트에 올라온 많은 글 중 우수한 글에 선정하는 것에 더 가까웠고사이트에 글을 올리면 현직 작가분들이 멘토가 되어 피드백을 해준다는 게 그 동기 요소였다나는 그 사실에 실망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뻐했다방학이라 내가 쓴 습작을 보여줄 곳도 없어 고민이 많던 참이었다그래서 호기롭게 여태 내가 쓴 글 중 추려서 글틴에 업로드를 했다.

 처음 업로드한 작품들의 평가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멘토님들의 의견을 읽는 게 힘겨웠다그래도 나는 진심으로 글을 잘 써보고 싶었다꾸역꾸역 멘토님들의 댓글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여러 피드백을 바탕으로 평소 가지고 있던 교육에 관한 생각을 소설로 표현한 것이 <땡이 아저씨>라는 습작이다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종일 집필에만 몰두했고그 노력이 첫 월장원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월장원이란글틴에서 한 달 동안 올라온 글 중 분야별 우수 글을 한두 개 선정하는 것이다월장원으로 선정되면소정의 상금도 받고작품은 문장청소년문학상의 심사 대상이 된다)

 여담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이 경험의 가장 큰 가치는 뭐든 처음엔 어리숙하다는 걸 배운 것이다한번 부딪혀보고 개선점을 찾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이 교훈은 당시 나에게 운동이나 학업을 시작하는 데에 큰 용기를 주었다.

 

 이 시기부터 나는 인간을 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이유는 단순했다더 나은 문학 작품을 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고민하다 나온 대답이 인간을 보다 잘 아는 것이었다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해오던 대로 책을 읽고사람을 만나고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웠다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론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이해했지만막상 사람을 대하는 법을 나는 잘 알지 못했다중학교 땐 사람을 잘 못 만났고고등학교에 들어오고선 학업과 글쓰기독서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학교에 친구가 몇 없었다.

 지금은 이미 아는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다양한 면이 있어서굳이 억지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지만그땐 아니었다그래서 2학년이 되고부터는 글쓰기보다는 학교라는 사회에 더 잘 녹아들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성공적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입시도 있었고이런저런 글을 글틴에 올리고가끔은 월장원에 선정되기도 했다그중에서 제일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면 문장청소년문학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이겠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라는 수필로 받았는데이 일이 특별한 이유가 단순히 상을 받은 것 때문만은 아니다내가 문학을 계속해서 써야 하는 이유를 찾은 까닭이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는 내가 2025년에 열린 글틴캠프에 참여한 전후로 느낀 것들을 표현한 수필이다글틴캠프는 글틴에서 주최하는 오프라인 행사인데다양한 글티너(글틴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모인다. 2025 글틴캠프 이후로 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당연한 사실과 그 가치를 알게 됐다그것을 글로 가볍게 표현했는데그게 우수상을 안겨준 것이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왔을 때내가 뭘 듣고 있는 건가 싶었다이 뜻밖의 수상은 나한테 내 경험을 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걸 실감한 사례가 됐다올해 2026 글틴캠프 때 (문장청소년문학상 시상식은 글틴캠프 중에 열린다다른 글티너들의 감상을 들으며 그것을 실감했다글이 가진 가치와 힘을 저자 입장에서 처음으로 몸소 느껴본 것이다이 경험은 내가 사회에 나간 이후로도 글쓰기를 계속할 원동력이 됐다.

 내 <오답 노트>란 수필도 마찬가지다대학 입시 중 겪은 바를 적었는데이 글은 입시라는 학생들이 공감하기 쉬운 소재를 다룬 터인지 많은 글티너가 내게 감상과 자신의 사연까지도 내게 공유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 됐다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는데비단 대학 사람들뿐 아니라글틴에서의 인연도 더 넓어졌다. 2026 글틴캠프 이후로 글티너들이 모이는 디스코드 채널을 알게 됐는데그 덕에 문학이나 다른 예술 분야시사종교 등에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대학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접하고 얘기하는 것이 즐겁다.

 그러나 조금은 방황하는 면도 있다다양한 생각을 만나게 되니 뭐가 옳고 그른 건지그걸 나누는 게 의미가 있는 건지내가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고 어디부턴 상대가 잘못된 건지내가 그걸 바로잡을 권리가 있는지그뿐만 아니라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든가사랑과 이별성 정체성가족사 같은 것들 때문에도 나는 조금은 혼란스럽고 갈피를 못 잡고 있기도 하다좀 더 고민해 보는 시간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나의 글을 쓰겠다는 의지는 여전하다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고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됐으면 한다생각을 공유한다는 건 즐겁고 이로운 일이라고 여긴다이런 의지를 가지고 이제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나를 찾아가고자 한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언젠간 다시 글로 만났으면 한다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말이다만나기까지가 짧을 수도 있고길 수도 있겠지만다시 만나게 됐을 땐 더 깊고 넓은 생각을 내가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더 좋은 작품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까지 문학을 사랑하고 인간의 삶을 탐구하고자 하는 학생그것에 대해선 영원히 학생일 금안백이었습니다여태껏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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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한 기다림

잠시 카페에서 쉬는데, 불현듯 회상되는 어떤 기억이 있다. 어릴 적 그 일을 떠올릴 때면 화나기도 하면서도 금세 애달픈 생각에 빠져 맘은 울적해진다.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중국집 배달이 평소보다 일찍 왔다. 만화영화를 보던 나는 잔뜩 신이 난 채 거실로 나갔다. 짬뽕 왔다-, 하면서. 그러자 갑자기 엄마가 고함을 치며, “나오지 마. 나오지 말라고. 엄마가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때 내가 겁먹었던 건, 당장 방으로 들어가, 하는 고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대체 내가 뭘 또 잘못했지, 하는 당혹감과 날 보는 엄마의 눈빛도 그 이유였다. 당황과 다급함 그리고 경멸이 뒤섞여있던 그 눈을 일 초도 더 바라볼 수 없었다. 시선을 마구 다른 곳으로 굴렸다. 낯선 눈빛이 보였다. 배달 아저씨였다. 그 순간에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그 눈빛만은 선명하다. 놀란 채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의도가 서려 있었다. 아마 내 표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저씨는 급하게 계산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면서 현관문 바로 옆에 있던 창문으로 날 잠깐 바라봤다. 자리에 남은 건 나와 엄마뿐. 배달 온 음식을 정리하는 엄마를 앞에 두고, 나는 움직이질 못했다. 입도 안 떨어졌다. 줄곧 눈을 아래에 떨구고 있었는데, 바닥은 안 보이고 내 살덩어리만 보였다. 당시는 한여름이었고, 나는 웃통 없이 반바지만 입고 있었다. 어딘가서 쉰내가 났다. 이 기억은 내가 일상을 살아가다 그 사이로 끼어들곤 한다. 12살 때의 일이었고, 당시엔 엄마가 왜 화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마저 만화영화를 보면서 짬뽕을 먹는 내 옆에, 엄마는 또 뭐라고 말하셨다.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짬뽕 국물이 내 뱃살과 가슴팍에 튀었다. 가슴살과 뱃살 사이 땀띠가 났었는데, 원래라면 여간 따가운 게 아니었겠지만, 그땐 별 느낌도 안 들었다. 중학생 때 이 일을 떠올리면 엄마가 마냥 미웠지만, 이제는 그저 내가 그리도 부끄러웠구나, 짐작한다. 나로서는 납득가지 않는 지점이 너무 많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 기억 때문에 더 이상 끙끙거리기 싫다. 단지 언젠가, 살찐 자식이 그렇게도 부끄러웠냐고 묻고 싶다. 엄마와 내 사이는 그리 나쁘지가 않다. 좋은 것들 많이 해드리고 싶고, 같이 있어 행복했던 기억도 많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흉터로 남은 기억들이 있다. 떠오를 때마다 혼란스럽다. 나는 좋은 엄마를 둔 것인가. 나는 행복하게 자란 것일까. 남들도 조금씩은 이런 상처가 있을까. 자식이 돼서 이런 생각을 해도 옳을까. 내가 한창 살이 쪘을 때도 엄마는 날 사랑하셨다. 내가 살을 뺀 뒤엔 내게 멋지다고 해주셨다. 어릴 적부터 외삼촌을 닮아 잘생겼다고 날 아끼셨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러셨을까. 이해가 안 된다. 꽤 오래 이해를 해보려 하다 포기했다. 내가 고1이었을 때, 한창 이사 문제로 이혼 얘기까지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맘때 나는 엄마를 이해하는 걸 손에서 놨다. 부모님은 서로 새집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다가 다투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 금안백
  • 2026-06-30
오답 노트

대한민국의 고3들이 다 그렇듯이, 나 또한 대학 진학과 관련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내 고민은 흔한 성적이나 수시 경쟁률, 최저학력기준에 대한 것과 같은 고민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부탁하셨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더라도 가지 말아 달라고. 아버지 좀 살려주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동안의 내 노력은 다 무엇이었나.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사실 아버지의 저런 말씀은 고3이 되고 대학 입시에 관해 대화하며 몇 번은 들었다. 내가 늦둥이인지라, 어머니는 곧 정년퇴직하시고, 아버지는 2년 남았다. 어머니 퇴직금과 국민연금은 매우 적을 것이다. 나 낳으시기 전까지 사업을 하셨으나 잘 안됐고, 그 후 여러 사정 때문에 공직자가 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직하시는 것이니 몇 푼 안 되는 게 당연하다. 설상가상 요 몇 년 사이 몸이 쇠약해지고 심지어는 입원 수술까지 해야 할 상태까지 되셔서, 아버지 말씀으론, 큰돈 나가는 게 불가피하다. 누나는 취직 때문에 서울로 올라갔는데 적어도 몇 개월은 부모님 손을 안 빌릴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상경하여 대학까지 다닌다면 아무리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하더라도 힘에 부칠 것이며, 부모님 도움을 안 바랄 수 없을 테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버지께 들은 서울의 대학을 가면 안 되는 이유였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일단 원서만 넣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아버지의 애원을 듣기 전까지는. 환상 속에 살고 있던 모양이다. 물론 이해는 갔다. 집안 경제뿐 아니라 요새 불경기인 점과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면 상경하는 게 오히려 손해였다. 그러나 내겐 여태까지의 노력이 아른거렸고, 문학을 깊이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서울의 대학을 고려할 땐, 꽤 유망한 대학이나 국립대를 주로 살펴봤던 것인데. 속상했다. 원래 나는 대학 입시에 관심이 크지 않았었다. 그러나 문학을 접하고, 나름대로 글을 쓰면서부터 언젠가 문단에까지 진출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됐을 때, 중학생 때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백일장에 나가면서 특기자 전형을 노릴 수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불안해하셨고, 굳이 선택의 폭을 문예창작학과로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특기자 전형 말고도 다양한 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성적을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국어나 사회, 한국사 같은 과목은 한 학기면 1등급이나 2등급으로(9등급이 최하위 성적이다) 올리기 충분했지만, 영어와 수학은 힘들었다. 내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영어와 수학은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애초에 등급 상승이 어렵다고 친구들이 위로해 줬던 기억이다. 암튼 이렇게 해서 끝내 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를 기준으로 서울권 대학 진학이 가능한 성적이 나왔다. 그 사실에 나는 더욱 의지가 북돋아졌고 수능 준비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올해 처음 대학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아버지한테 간곡히 부탁드렸다. 서울로 가고 싶다고. 나름대로 근거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의 인프라가 다른

  • 금안백
  • 2025-10-12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시인이다

1. 선물은 증표이다. 지난 1월 20일 글틴 캠프 참여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날, 대전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보았다, 성심당 앞에 죽 늘어선 대기 줄을. 역 안을 오가면서도 사람들 양손에 쥐어진 성심당 종이가방이 보였다. 대전인으로서 의문이었다. 성심당 빵이 값싸고 맛있긴 하다. 그래도 저렇게 한 시간 동안 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닌데. 그리고 이 의문은 뜻밖이게도 지지향에서의 경험으로 풀렸다. 지지향은 글틴 캠프가 열리는 장소다. 글틴이란 것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으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 작품을 올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글틴을 운영하는 한국문화예술 위원회는 매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 캠프를 개최하는데 그것이 글틴 캠프다. 지지향에서 맞는 두 번째 밤, 나는 1층에서 다른 애들과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고 있었다. 글틴에 올린 내 글을 보여줄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이상했다. 어떤 애도 그랬는지 나보고 왜 그렇게 긴장했냐고 웃으며 물었다.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던 기억이다. 하지만 감상을 기다리면서 왜 긴장이 됐는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었다. 그날 새벽, 침대에 누워 그것을 생각했다. 전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나? 저녁에 괜히 커피를 마셔 잠이 안 온 턱에 온갖 기억이 떠올랐다. 예상외로 내겐 그런 경험이 많았다. 오래간 준비한 과제를 발표하거나, 기말고사가 끝나고 성적표를 받았을 때가 대표적이겠다. 그러나 저 두 경험보다 이 글과 화제에 더욱 알맞을 경험이 있다. 바로 사랑 편지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마음을 고백하는 사랑 편지 말이다. 재작년에 처음으로 사랑 편지를 쓰고 짝사랑했던 애한테 전해줬다. 전해주며 나는 바로 앞에 있던 그 아이의 눈을 마주 보지도 못했다. 그랬다면 아마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결과는 안 좋았다. 친구들은 모르는 사이서 냉큼 고백부터 하기보다는 말부터 걸고 친해지는 게 우선이 아니겠냐고, 뇌는 비상식량이냐고 놀려댔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 얘기를 하자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들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연필로 편지를 썼던 시간뿐 아니라 어떻게 적어야 할까, 애타다가도 징그럽게 헤벌쭉 웃었던 시간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지지향서 다른 애들에게 보여줬던 글도 마찬가지다. 쓰기까지 고민했던 시간, 그리고 썼던 시간 그 정성의 시간이 글 하나하나에 담겨있었기에 보여주면서 나는 긴장했던 것이었다. 편지를 건네며 그리 떨었듯이 말이다. 다시 대전역으로 돌아왔던 날, 마찬가지로 성심당 앞은 긴 줄이 늘어섰고, 사람들 양손에는 빵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때도 잠깐 들었던 의문, 왜 저걸 사려고 한 시간씩이나 기다릴까?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나름의 해답을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사가는 빵에는 마음과 함께 기다렸던 한 시간이 같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 한 시간이 사람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 선물을 받을 사람에게는 어떤 보석보다 귀하리라 믿는다. 또한 그렇기에 그 선물은 증표이기도 하다. 나는 너를 위해 내

  • 금안백
  •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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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백

    ㅠㅠㅠ 가지마 아무도 졸업하지마... 금안백님 졸업이라니 ...... 그냥 믿기지가 않는다 으악 진짜 이상하다 글은 또 왜이렇게 벅차오르게쓴거람 짜증나 애들 빽빽한 하교 버스에서 한 손으로 금안백님 비평 읽고 소설 읽으면서 글틴 시작했는데... 졸업이라니

    • 2026-07-29 05:58:17
    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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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
  • 구포대교

    늦었지만 졸업과 생일 축하하고..앞으로도 함께~하길바랍니다

    • 2026-07-27 15:12:50
    구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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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틴지기

    금안백 님, 생일 축하드려요. 글틴 졸업도 축하해요! 금안백 님처럼 열렬히 활동해 주신 분들 덕에 글틴이 더욱 풍요로운 문학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깊이 감사드려요. 앞으로의 창작 활동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파이팅!!

    • 2026-07-27 09:12:02
    글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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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1500
  • 아이오딘
    훈훈해요

    음. 뽜이팅.

    • 2026-07-27 09:04:18
    아이오딘 훈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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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유레

    오빠 생축쓰 오빤 누군가의 보물이야

    • 2026-07-26 23:23:33
    시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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