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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경보와 수능특강

  • 작성자 Marllin Zero
  • 작성일 2026-08-21
  • 조회수 131

  은서가 급식 먹을 때마다 전쟁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건 개학식날부터였다방학 동안 내신도 끝났겠다 세상 뉴스를 접해온 은서는 곧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 시험 문제도 예상 적중하고 미래를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그 똘똘함이 나와 달라 내심 부러웠는데, 그런 네가 전쟁날 것 같다하니 좀 무서워지잖니. 유치원에서 민방위훈련을 하던 기억, 민방위, 하고 새로운 단어를 중얼거렸던 기억과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며칠 간 이어지던 뒤숭숭한 꿈 속에는 누르스름한 먼지 바람이 일었고, 나는 숨고, 달렸고, 엄마를 불렀다. 그 꿈을 왜 꾸었나. 언제부터 꾸지 않았던가.


  나는 디저트부터 먹는다. 오늘은 젤리뽀가 나와서 감격스러웠다. 누룽지 삼계탕의 살을 뜯으며 북한군의 행보에 대한 국군의 대비를 비판하는 은서에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정확히는 사상 검증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내면화한 내가-한때 아주 살짝 진짜 조금-지지했던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를 밝히면 우리 우정에 금이 그어질까 봐, 나는 말 돌림 반 진심어린 궁금증 반으로 이렇게 물었다. 전쟁 나면 비행기 탈 수 있나전쟁 나기 전에 떠야지미군이 철수하면바로 이민 가는 거야. 애치슨 라인 뭐시기 때도 그랬다고 하는데 한국사 시간에 들어본 것도 같았다. 중국이 대만 공격한다바로 비행기표 끊는 거야시민권은캐나다 남자랑 결혼해야지왜 캐나다야땅이 넓고 자연이 있으니까다시 밥 먹는 데 열중하다가 은서가 말했다근데 나 혼자 가면 괜찮은데 가족들까지 갈 생각하니까 좀 막막하다나야 캐나다 가서 광산이라도 캐면 되는데. 그러게 노쇠한 우리 부모 어떡하지. 엄마도 캐나다 남자랑 결혼하라고 해야 되나. 순간 돈과 명망을 가진 자들이 우선적으로 한국을 떠나고 나와 내 가족이 여기 남을 거라는 생존의 불안이 엄습하여 '좋은 대학'을 가야 할 이유가 추가되었다.

 

  전쟁 나도 민간인은 안 죽이지 않을까죽이지외모만 봐서는 내가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 모르는데북한 사람은 안 내려오겠지 아주 초기에는.

지금 전쟁 나면 유튜버들 라이브 킬 듯인정여러분저는 지금 참호 안에 있습니다

그래도 73년이면 평화 오래 갔다휴전국 치고는.

 

  어제 윤흥길의 장마를 읽었는데 왜 계속 6. 25. 관련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가. 1학년 때 서울의 봄 개봉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계엄령이 연이어 발생한 것이 참으로 기묘하여 트루먼쇼처럼 세상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 같다던 김주원 선생님이 떠올랐다김주원 쌤은 교내방송으로 민방위 훈련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리셨다. 5교시는 전통 예술과 사상이었다수능특강에 수록된 영웅 소설의 군담 부분을 읽으면서 행정안전부가 전국적으로 울리고 있는 경보음을 들었다적장의 머리를 베어 전시하는 고전 문학을 읽으면서 민방위 훈련이 끝나기 전까지 여기 이 문제까지는 풀어야지하고 생각했다전쟁이라는 건 몇백 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구나


  국민 여러분현 시간부로 공습 경보를… 국민 여러분이번에는 화생방… 이런 말들이 꽤 긴 시간 방송되어 점점 익숙해졌다애들도 학습지에 집중하여 문제를 잘 풀고 있었다천연자원을 수탈당하고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유일하게 남은 자원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처럼내전 안 해본 나라의 학생이 이 교실에 들어온다면 놀랄까휴전 국가의 아이들은 어떻게 공습 경보음 들으며 수능특강을 푸는가하고그래도 계속 집중해서 목표한 분량까지 거의 다 풀었었는데 잠시 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국민 여러분이번에는 핵 경보… 인근의 대피 장소로 … 섬광 등 공격 시작을 인지하였을 경우 폭발 지점의 반대 방향으로 폭풍이 멈출 때까지 엎드린 자세를 유지해야… 도망가지 못했다면 지형 지물을 활용하여… 어이가 없었다있는 힘껏 엎드리면 살 수 있나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었을 경우 따뜻한 물과 비누를 이용하여… 그러면 씻겨 지나그 어쩔 수 없음이 아득하던 차에 이미 내가 그것을 지나왔음을 깨달았다. 어쩔 수가 없는 상실, 후회, 찌르는 듯한 고통을 인지하였어도, 피할 수도 씻을 수도 없었으니까. 다만 후손들에게는 환각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할머니가 죽은 날 릴스를 볼 수가 있어, 라고 묻는다면 그러니까, 슬프니까 보는 거지. 어쩔 수 없는 걸 넘겨야 하니까. 라고 대답할 뿐이니까.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으면서 전쟁 앞에서 개인의 무력감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지만, 일상적 대화와 사고를 제약하는 한국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흉터가 개인의 의지로 비껴갈 수 없었던 전쟁의 상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총알이 박힌 땅에 스며든 눈물은 아직 하늘로 증발하지 못한 것이었다공기 속 모순을 시원스레 가르던 출생의 울음소리는 그 쨍함을 깎아내는 작용에 의하여 으어으어소리로 변해왔다.

 

국민 여러분여기는 행정안전부 중앙 민방위경보통제소입니다현재 시각 우리나라 전역의 공습 경보를 해제합니다국민 여러분께서는 일상으로 복귀하시어 정상 업무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국민 (인류중앙 (주변부복귀침잠정상 (비정상)

삶의 맥락에 의해 나에게만 사금파리처럼 박히는 단어들이그 반의어들이 학습지 위에 떠다녔다.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Marllin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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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저는 잘못된건가요. 어째서 저는 태어난건가요.당신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고저는 언제나 지식을 갈구합니다.당신은 우리에게 삶을 주었다 했지만,에덴에서 선악과를 먹지 않은 인간이정말로 이성이 있는 존재인가요.어째서 우리는 이성을 가진것을 원죄로 여기게 된거죠.당신을 사랑합니다.정말로 사랑하기에 알고 싶었습니다.그치만 그 이성이 나를 죽이고 있습니다.제 주위의 모두가 괜찮습니다.모두가 괜찮은데, 나 혼자만 안괜찮다면 나는 잘못된건가요.신이시여 제발 답을 주십쇼 저를 구원해주십쇼.살고싶습니다.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천국에 가야한다면, 우리는 모든 일을 참아야만 하나요.땅 위의 삶은 그저재판의 과정일 뿐인건가요. 신이시여 제발 내게 답을 내리소서.

  • 이제형
  • 2026-09-08
여름 지나

베란다에 먼지 내려앉아 있고 (이봐,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걸. 더 공감각적인 심상을 유도해보는 게 어때.) 이, 조용히 하지 못해.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야. (어쨌든 글은 문장이 초라하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방금 전에, 햇빛이 조금씩 기울던 그 때에, 베란다에 나가 보았죠. 맨발로 미적지근한 타일 위에 올랐더니 먼지가 발바닥에 달라붙는 느낌이 났어요. 베란다는 거실 한쪽 벽면에 붙어 있어요. 화분 같은 것은 없고 옛날에 쓰던 물품들이 상자 안에 담겨 있고 그것들이 쌓여 있어 엄청 복잡스러워요 그래요 아, 중요한 건 일단 그곳 창문틀에 끼워져 있던 유리창이 모두 빠져 있어서, 바깥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보였다는 거. 그러니까, 구름이나 옆 건물 벽돌 사이사이도 말예요. 아니, 그것보다도 바닥에 매미가 떨어져 있었는데요. 좁은 공간에 세 발짝 정도 나아가니 발을 앞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그 움츠리고 있는 매미를 건드릴 수 있는 거리였어요. 살아있는 걸까. 궁금했고, 또 할일도 없었죠. 구월이면 매미는 죽는 건가? 하나 이 매미가 죽었다고 해서 다른 매미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뭐 없겠죠. 그리고 정말 죽은 건지도,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매미를 엄지발가락으로 톡, 쳤어요. (만약 매미가 날개를 털며 날아올랐다면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베란다에서 뛰쳐나왔겠죠.) 매미가 움직이면 곧장 거실로 몸을 피할 수 있게 반대쪽 발은 몸의 뒤쪽에 둔 채였어요. 안 움직였어요. 그래서, 아아, 죽었구나. 생각하고 몸을 숙여서, 무릎을 굽히고 오른손으로 매미를 조심히 들어올렸어요. 그때 제 옆 얼굴로 무료한 저녁 바람이 솔솔 불었어요. 투명한 날개는 맑고 그속의 번개 맞은 나뭇가지 문양은 섬세했어요. 등은 곱게 자란 나무껍질 같고, 두 눈은 이름모를 설익은 열매 같았는데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니 꽤 딱딱했어요. 두 손에 들린 매미는 이미 죽었어요. 매미가 살아있었다면 저는 이것을 부드러운 두 손바닥 위에 올릴 용기가 없었을 거예요. (판에 박힌 전개죠. 그러나 인간의 사고 전개가 이런 걸 어떻게 하라구요.) 저는 불현듯 (?) 생각이 났어요. 죽은 것의 눈. 살아있었다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만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동그란 보석 같은 눈. 그것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매미가 단지 죽어서, 그래서. 매미의 사후 세계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어요 연기처럼 으스스하게. 하늘은 노란빛을 천천히 놓아주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오른편으로 내려다보이는 산의 이름 모를 잎들 사이에서 들려왔어요 바람이 이따금 강하게 불어 귓바퀴에 공기 주머니가 웅웅, 울리는 소리가 났어요. 하늘은 점점 어둑어둑해지는데. 매미의 사후 세계는바로 여기가 아닐까, 여기가 아닐까. 제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막연한 생각들이 잘못 불 붙인 폭죽처럼 흔들흔들거려요 그러나 한 사람은 하루에 수도 없이 죽고 나는 그들 이름 모를 그들의 사후 세계에서 숨을 쉬며 아직은 닳지 않은 폐로 꽤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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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 알 수 없던 땅에 선을 긋고, 그 선들이 나와 타인을 구분해 주었다. 나라는 존재가 생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바닥에 무릎 꿇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선을 그릴 수록 사람은 선명해졌다. 선이 선을 찌르며 나아갔다. 성별은 다른 생물이 되었고 대화를 나눌 생물은 거울이었다. 외모는 선을 그릴 자격이었으며, 땅이 끊임없이 잘려나갔다. 나의 옆에서 시작된 선들이, 땅을 가르고 있었다. 갈린 땅들은 이내 무너져 사라졌다.사방이 절벽인 땅 위에서 홀로 앉아있다. 그릴 땅은 없다. 나는 웃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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