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 — 날개를 접은 현실의 꿈
- 작성자 사계마로
- 작성일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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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어.
아마 한 번 쯤은 이 역설적인 문장에 공감해봤으리라 믿는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하고싶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기분. 분명 평일에는 여러 일들에 치여 '기필코 주말에는 푹 쉬고 말겠어!' 라는 생각을 되뇌이면서도 정작 일요일 저녁을 먹으며 토요일을 돌아보면 진짜 재밌었던가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이런 기분에 자주 휩싸이고, 나와 같은 사람을 여럿 봐 왔기에 예삿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잠깐 딴소리지만, 혹시 이상의 <날개>를 읽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상이라는 작가 특유의 난해함과 그 사이에 있는 사회비판의 목소리가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는 그저 하나의 사소설(수필스러운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 근대소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나면 종종 읽어보는 작품이니 말이다.
어제도 시간이 나서 <날개>를 재독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날개>를 읽다가 문득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가 부러워졌다. 아내에게 좋은 취급을 받지도, 특출난 대인관계를 가진 것도, 부와 명예도 없는 그 인물이, 문득. 정말 문득. 부러워졌다.
그 감정을 처음으로 인식하자, 나는 곧바로 집중해서 보고 있던 웹사이트를 꺼버렸다. 그 어느 곳도 부러울 점이 없을텐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깊이 고민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한 문단에서 정답을 찾아버렸다. 아래는 내가 생각한 부러움의 근원이자, 질문의 정답이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 — 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 — 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 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 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은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자신에게 알맞게 아늑하고, 쾌적하며, 침침한 방을 좋아하는, 어찌보면 별 볼 일 없는 문단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내 부러움의 원인이라고 확신했다.
나에게도 내 방이 있다. 분명히. 내 집이 있고, '나'보다 훨씬 좋은 집과 가족이 있다. 대인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요만한 정도가 나에게는 알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즘따라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좀처럼 사라지질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집에 가고 싶었다. 방에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고 애착이불로 돌돌 말아 냉방비로 사치를 부리면서도 집에 가고 싶었다.
비단 이런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나이대도 다양했다. 중학생부터, 직장인까지. 거의 사흘에 한 번은 듣는 듯 했다. 물론, 내가 하는 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집에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헛소린가 싶으면서도, 앞에 적은 문장들을 생각해보면 무슨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에 간다는 건 단순히 어떤 장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쉬고 싶다"는 감정의 관용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걸까? 집에 돌아오면? 깨끗하게 씻고 저녁밥을 먹고서 배부르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면? 침대에 포근히 들어가서 밀린 웹툰을 정주행 하면? 우리 잠깐만 솔직해져보자. 집에 돌아오고 나서는 내일을 걱정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는 볼 것들이 차고 넘쳐버리는 바람에 볼거리가 없다. 정말 문득, 이어폰을 빼고 나서의 고요에 울컥해서 시계를 바라보면 새벽 2시쯤을 넘어가고 있는 날도 있을 것이다. 방 불을 끄고 잠에 들 준비를 하면 더 피곤해지는 경험도 있는가? 나는 그럴때마다 쉼에 대하여 생각해보고는 한다. 진짜로 쉬어봤던게 언제였을까. 아니,
어쩌면 우리는 쉬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나"를 뒤돌아볼 시간이 없어진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남을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한 번 자신에게 물어보자. 이번주에 몇 번이나 타인을 멸시하였으며, 몇 번이나 성찰하였는지. 이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보다 뭘 싫어하는 지 더 잘 알지 않는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 지 잘 모르는데 어떻게 잘 쉴 수 있을까.
우리는 남을 보는 시선에 익숙해져있다. 어쩌면 당연한 소리이다. 나를 보는 것은 자신의 뒷목에 있는 점을 보기 어려운 것처럼 어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거울 앞에 서보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곳에서 <날개>에 나오는 '나'를 향한 부러움이 보인다. '나'가 자신의 방에 대하여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는, 어쩌면 취향에 맞아서라기 보다 자신이 그 공간에 적당히 정이 들고, 그곳에서 보낸 자기 성찰과 연구, 창작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그에 반하여 나는, 혹은 당신은 '나'의 방 같은 곳이 있는가? 우리는 '방'이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꿈"을 찾길 바란다. 정말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린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꿈"은 단순한 장래희망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이룩하고 싶은 삶의 목표로 설명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런 "꿈"은 되도록이면 추상적이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예시로 들기 위하여 내 꿈을 소개하겠다. 나는 "내가 만든 결과물로 타인이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 꿈이다. 나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하여 중학생 때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남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에 사람은 많고,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꽤 빨리 나왔던 답변은 게임이었다.
그 이후로는 장래희망으로 게임 기획자를 생각했었다. 내 꿈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이 두번째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였다.) 그때부터 코딩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다가 벽을 만나는 계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고, 그 이후로 다시금 꿈에 대한 회의와 방황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만난 것이 '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날 감정이 격동하는 경험을 하고, 직감적으로 이 감정을 휘발시키면 안된다는 생각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날 문예창작과를 희망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서 꿈이 추상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내 장래희망이 중간에 바뀌었다 한들, 결코 "꿈"만은 바뀌지 않았다. 게임에서 문학으로 매체가 옮겼을 뿐, "남을 즐겁게 하고 싶다"는 의지는 여전히 내 마음에 깊숙히 박혀 삶의 의미가 되었다. 추상적인 꿈은, 역설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꿈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순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여태 느끼는 것은 굴곡진 인생에서 의미라는 것을 부여한다는 즐거움이었다. 당연히 나도 시간을 헛되게 보낸 적이 많다. 그럴때마다 오히려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도 일말의 의문이 들지도 모르는 당신에게 한 가지 당부하겠다. 삶의 이정표를 만드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다른 일에 쉽게 비교될 수 없었다. 짧은 내 삶에서 느낀 몇 안되는 나만의 지혜를 한 번쯤은 믿어보길 바란다.
마치며, 오늘 하루 10분이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을 의심해보길 바란다. 되도록이면 매일. 어느날 누군가가 꿈을 물었을 때, 문득 당신의 날개뼈가 조금은 가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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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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