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생각
- 작성자 구포대교
- 작성일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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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적들은 주기적으로 침공한다. 학교에서는 그저 오작동이라 말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 주기적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 그것은 내가, 우리가, 이 학교라는 곳에서 영원히 문제집이나 들여다볼 것 같지만 실은 금방이고 죽을 수 있는 존재임을 환기한다. 그러한 보이지 않는 적을 사이렌은 그 붉은 빛과 소리로 비춰주는 것이다. 아, 나는 언제든지 학교에 불이 나서-미사일이 떨어져서-운석이 떨어져서-누군가가 총기난사를 해서 죽을 수 있는 존재구나.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다만 문제는, 점점 사이렌 소리마저 식상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의 꾀에 다 넘어가서 뭐야 오작동이잖아, 하고 눈 하나 안 껌뻑거린다. 어쩌면 선생님들도 누군가의 꾀에 속아 넘어간 걸지 모르겠다. 보아하니 나 혼자만 제대로 된 생각으로 사이렌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결국 남들과 다른 점은 없어서 또 스스로가 답답할 때가 있다. 나는 생각하는 존재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철학적으로 사고하는데 행동은 똑같이 사각사각 펜만 끄적이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나란 사람은 늘 생각이 행동보다 커다란 사람이었다. 머릿속의 나는 수만 가지 모습으로 수만 가지 행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가만히 누워 있고. 흘러가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어, 수없이 되뇌며 기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난 의지라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돌이켜보면 한심하다.
어쩌면 남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지라거나 생각이란 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타인이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 세상에는 생각이 큰 사람이 있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 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생각들은 물고기떼처럼 마음 속 공허를 빙글빙글 회오리친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내고 행동하기란 상당히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생각이 큰 사람이 부럽다. 생각이 큰 사람의 머릿속은 고요하다. 하나의, 구슬처럼 매끄럽고 반짝이는 것이 단단하다. 커다란 생각은 어지럽지 않고 커지기를 거듭한다. 큰 생각의 사람들은 행동이 명료하고 자신이 뜻하는 바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난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이 큰 사람이란 게 실재하는지 알지 못한다. 생각이 큰 사람에 대한 생각은 한 마리의 물고기로서 회오리의 일부가 될 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선망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선망하는 사람은 닮아 있지 않을까. 나 혼자만 특별한 생각을 한다는 오해는 오래 전에 깨졌으니까. 예를 들자면 가방의 끈을 돌돌돌 말거나, 실내화 주머니를 발로 툭툭 차며 걷거나, 한 번 쓴 숟가락을 손잡이와 입에 넣는 부분이 어딘가에 닿지 않도록 싱크대에 걸쳐놓는 방법이라거나. 인스타그램은 내가 그저 전세계인들 중 하나, 전세계인들의 사고체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러는 동시에 세계의 슈퍼스타들의 일상을 모두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나는 그저 학생일 뿐이야, 저건 역사 속 인물,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 같은 거지. 천연히 생각하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내 안의 나는 곧 다면체로 변하면서 내가 리오넬 메시일 수도 있었어, 깨닫는다. 다시 말하지만 저것은 오작동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평면화시켜 지구를 일종의 기계장치로 만들려는 세계정부에 맞서 싸우는, 반군의 기습 같은 것이 아닐까.
난 그 반군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소설을 쓴다. 그야 보통의 학생 같으면...소설 안 쓰잖아?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몇 자 끄적여보기나 하겠지. 하지만 세계정부는 그것마저도 불안했는지 chat GPT라는 녀석을 필두로 무수한 에이아이를 학생들에게 선물상자 주듯 던져줘 버렸다. 그럴수록 난 더 열심히 글을 쓴다. 난 소설을 써, 나는 특별해, 나는 비주류야, 킥킥. 흰 백지가 까만 선들로 채워져 갈수록 나는 더욱 견고해지는 소속감을 느낀다. 나는 주류와는 동떨어진 반군의 일원. 다 똑같이 연필을 들고 문제집을 펼치는 너희와는 조금 다른 존재. 그런 나날들.
언젠가 편지가 한 장 날아왔다. 내용이 이르기를, 문예창작과라는 이름의 정예부대가 존재하며 그 시험의 관문에 나를 초대한단다. 난 내가 더욱더 나아갈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격에 가까운 감정이 벅차오른다. 별다른 고민이 있을 리가 전무하다. 그리고 며칠 뒤, 몇 가지 교재가 배송됐다. 창작 이론서다. 수백 페이지짜리의 책들이 여러 권. 난 소설 아니면 읽기 싫은데. 읽으라고 한다. 정예에 선발되는 것도 경쟁이라고. 난 문장들을 암기한다. 글 쓰는 시간은 줄어들고. 이게 무슨. 몇 달간 이론서들을 읽고 있자니 미칠 지경이다. 다른 애들이 공부할 시간에 소설을 쓴다는 자부심은 이제 없다. 난 그들과 나란히 도서관에 앉아 메모를 끄적이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사이렌이 울린다. 난 평상시보다 더욱 깜짝 놀랐는데 도서관에서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인 탓이다. 게다가 학교보다 도서관이 평상시 더 고요한 탓이기도 하고. 하여, 나는 정말이지 불이 난 줄 알고 다급하게 짐들을 갈무리했다. 도서관 1층으로 내려가서야 오작동이라는 사람들의 말을 주워들었다. 사람들은 흥분과 함께 맴도는 허탈함을 느끼며 제자리로 돌아갔지만 난 1층에 그대로 서 있다. 어두워진 바깥에서 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고. 나는 쿵 쿵 쿵 심장의 박동을 느낀다. 그것은 3층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는 반군의 드럼 소리다. 난 도서관 건물을 걸어 나오며 짙은 희열을 느낀다. 난 반군조차 거부하는 진정한 비주류가 되는 것이다. 도서관 앞에서 문제집을 꺼내고, 찢는다. 종이는 제법 단단하고 그만큼 찢어지는 소리는 통렬하다. 마구마구 찢으며 길거리에 조각을 흩뿌린다. 그러자 누군가 나타난다. 검은 정장의 한 사람이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 어둑한 곳에서 다가와 말한다. 테스트 통과다. 자네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정예라고 할 수 있겠어. 난 기분이 좋다. 그런 상상을 했다.
나는 도서관 3층으로 돌아가 다시 문제집을 펼치고 몽상의 회오리에 빠져들었다. 그런 회오리 속에서 나는 갖가지 방법으로 테스트를 통과하여 정예로 선발되지만, 현실은 가만히, 앉아 있다. 언제 성공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 성공은 미래에만 안주해 있고 인스타그램에는 또래의 사람들이 벌써부터 유명해지고 있다. 저들은 자기들만 특별한 줄 알겠지. 아니야, 아니라고. 나도 특별한 사람이라고. 난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있을 사람이 아닌데.
도서관에서 다시 사이렌이 울리는 일은 없었다.
나는 종종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적들이 침투해와 내가 그들과 동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난 동화에 대한 갈망이 옛날부터 있었다. 저 잘 나가는 무리의 일원이 되어 놀고 싶다거나, 나도 같이 게임하고 싶다, 나도 저들이 씹는 사람에 대해 알아서 같이 뒷담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학교는 친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나는 유튜브나 책만 읽고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 가는 것이 이 학교의 클리셰가 되어 아무도 내게 개입하지 않는다. 쟨 당연히 혼자 도서관에 가겠지, 하고 슬쩍슬쩍 소외한다. 소외한다의 주체는 소외받는 사람이다. 나는 소외감의 응어리를 숨겨둔 사람이고 그것을 비주류로, 멋있는 것으로 치환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집에서 말이 많다. 가족, 혹은 절친한 몇 친구들 앞에서는 말이 정말 많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선, 말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말이 많은 사람이자 말이 없는 사람. 아마 본질은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절친하지 않은 사람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하지만 입을 열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을 해도 될까, 몇 차례의 검열과정을 거친 후에는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 그러면 하지 못한 말은 속으로 삼키고, 삼킨 말은 기도인지 혈관인지 무엇인지 모를 호스를 타고 머릿속으로 이동하여 한 마리의 생각이 된다. 그것이 생각이 많아지는 과정이다. 글을 쓰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오래도록 글을 쓰지 않으면 어딘가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 방출해야 될 에너지 같은 것들이 속으로 쌓이는 것일지도. 그리고 또, 오래도록 책을 읽지 못하면 답답해지는 부분도 있다. 책은 다른 작가들도 답답해져 배출해낸 결과일까.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또 다른 사람을 추체험할 수 있다. 그것 역시 무수한 생각들로 변환되어 회오리로 합류한다. 회오리가 커질수록 써야 될 글도 많아진다. 비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비가 되는 것처럼, 하나의 순환 과정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데 남들과 비슷한 삶과 생활, 주류라는 것에 가깝게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쓰는 소설이란, 결국 다른 사람이 읽어줄 때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아직은 가족과 글틴 뿐이지만, 언젠가는 대중들이 읽어야 될 테니. 그들과 하나의 공감대라는 것을 형성하는 것은 어쩌면 소설가에게 있어 필수적인 덕목일 수도 있겠다. 남들처럼 도서관에 앉아 공부를 하는 생활이란 것이 꼭, 창작활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물론 보통의 친구들은 경험하지 못해본 체험들도 퍽이나 중요하겠지만.
이러나저러나
글을 쓰는 수밖에 없겠다고, 하교하며, 도서관에서 나오며, 생각한다. 생각을 멈출 방법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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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부터 바빴다. 할 일을 미루고 미뤄 발등에 불이 떨어질 때야 움직이는 것이 천성인지라 내 1년은 자주 지루하다가 자주 바쁘다. 5월은 바쁜 달이었다. 5월내로 대회에 제출할 소설을 마감해야 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타자 속도가 빠른 편임에도 소설은 잘 써지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과 손가락의 움직임이 자꾸만 엇나가는 느낌. 가끔씩 그런 날이 있다. 영 소설이 손에 안 붙는 날. 난 두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끙끙대다가, 그러니까 휴대폰을 수시로 만지작거리다가 노트북을 덮었다. 도서관에 갈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읽을 책을 손으로 들고.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건 일일과제다. 우리 동네에 이런 도서관이 있음은 큰 행운이다. 비록 오르막을 꽤 올라야하지만 4층짜리 도서관은 부족하지 않은 서적과 많은 의자를 가지고 있다. 평일에는 보통 3층의 열림배움터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2층의 문적원에서 주로 독서를 한다. 둘 다 안 할 때도 많지만. 그날은 아마 김멜라의 단편을 읽었던 것 같다. 6인석 테이블이 네 개가 있었고 사람은 여섯 명이 채 안 됐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왼편엔 서가였고 오른편은 창가였다. 도서관 옆에는 두 개의 중학교와 하나의 고등학교가 나란히 배열돼 있었는데, 창가로는 한 중학교의 운동장이 훤히 보였다. 근처 학교 중 유일하게 잔디운동장인 그곳에는 검거나 흰 옷을 입은 아이들이 종횡하는 중이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축구한 게 언제였지, 생각했다. 올해 들어서는 없었던 것 같다. 막상 하면 힘들고 욕을 먹어 마냥 좋지는 않았지만, 위에서 운동장을 내려다보니 나도 저 틈에 끼어있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저들처럼 발이 빠르고 힘이 강했더라면. 도서관 안에는 연세가 꽤 많아 보이는 어른들이 많았다. 그들은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데스크의 사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응시했다. 나만 집중하지 못한 채 책과 창밖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오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더웠다. 이제 봄도 지나 여름에 가까운 기온이었는데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창문이라도 열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더위에 취약한 나로서는 집중하기 퍽 힘든 환경이었다. 휴대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간신히 이야기에 몰입이 되었을 즈음에는 파리의 잉잉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까지 했다. 내는 소리만큼이나 거대한 파리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던 것이다. 녀석은 자유로이 곡선을 그리며 비행했다. 소리에 신경을 뺏겨 눈알을 굴리면 녹색 잔디를 등지고 도서관에 갇힌 파리를 보는 것이었다. 왠지 비슷한 처지란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하다. 훌륭한 독서였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단편 하나를 읽은 후 책을 덮었다. 집에 돌아갈 차례였다. 집에서 나올 무렵으로부터 고작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언제부턴가 파리는 보이지 않았고, 창밖의 운동장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숙제처럼 남은, 써야 될 소설이 생각났다. 암담한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오래간만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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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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