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언젠가¹
- 작성자 아기호랑이
- 작성일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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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너의 눈 속에 담긴 내게 듣고 싶어 한 그 말을 난 알고 있었어 말하진 못했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내게로 돌아올 너를 또다시 혼자이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내 품에 안기어 눈을 감을 때 너를 지켜줄 거야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²
실은 오래전부터 신해철에 관한 비평 혹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곡과 가사가 너무 많아서 주제를 잡지 못하고 감상만 늘어놓을까 봐 비평을 쓰지 못했고. 또 신해철이 살아 돌아온다거나 그의 시대로 되돌아간다는 설정은 환상처럼 느껴졌기에 소설 구상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렴 소설에 사심이 가미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없지만 나의 손으로 그의 모습을 그리는 일이란 아직 두렵고 준비되지 않은 듯했기에. 신해철을 묘사하기에 앞서 신해철에게 영향받은 나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 훗날 그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신해철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거듭하며 그가 남긴 음악을 듣는다.
모든 불을 끄고 음량을 높이며 이어폰에서 온갖 악기가 쏟아져나오는 광경을 지켜본다. 왠지 삼 년 전 내가 떠오르면서 나는 조금 울적해진다. 당시 내가 속으로만 삼켰던 눈물을 끄집어내기 위해 노래를 따라 부르지만 이번에도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진성으로 노래를 불러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어릴 적 나는 시끄럽지 않아도 할 말 다 하는 아이였는데. 지금 들으면 불분명한 발음으로 비문을 내뱉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는 말없이 적막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분명 원하는 방안이 있고 목표하는 바가 뚜렷했지만 그것을 나의 입으로 발화하지 않는 사람. 애써 입을 열더라도 가늘고 작은 소리밖에 흘러나오지 않아 소음에 묻히고 전달에 실패하는 사람. 상황이 알아서 흘러가도록 지켜보고 있을 때가 많았고 나의 신념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사건이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럴수록 문장을 삼켰고 부서진 단어의 잔해들만 입안을 맴돌았다.
나의 소리가 사라진 시점에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를 몰아세우고 지적하며 때로는 무시로 일관하는 이들의 폭언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따뜻한 울림이 절실했다. 그 시점부터 신해철을 듣기 시작했던가. 그러나 이상하지. 그는 나를 위해서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닌데. 어째서 신해철의 목소리가 그토록 힘이 되었을까. 그의 가사가 미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네가 흘린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 거야³. 이렇게 말해주는 신해철이 고마웠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만일 어디서라든 신해철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나는 당신의 노랫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고백을 전하고 싶다.
나 거친 삶 속에서 너와 마주친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었어 나 표현 못해도 내가 못 가진 그 따뜻함 싫지는 않았어 감추고 싶은 나의 지난날들 기억하기 싫은 내 삶의 흔적을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¹
나는 눈물에 둔감한 편이었고 마법의 주문 같은 것도 다룰 줄 몰랐지만 지금 겪는 고통을 모두 극복하면 훗날 조금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당시에는 홀로 그 과정을 견뎌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내 주위에는 언제나 존재만으로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에게는 친구들이 너무 소중했기에 나의 고민을 덜어내느라 그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고통을 말하는 사이 친구들이 멀어지는 것을 걱정했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 못된 아이들이 내게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나만 꾹 참고 기다리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태가 종료될 것이라고 믿었다. 비록 해가 바뀌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상황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갔고. 다만 마음속에 작은 응어리 하나가 남아 간헐적으로 당시의 기억을 글에 풀어내야 할 때가 있다. 그렇게 나는 죽음을 달리는 열차(2023), 이번 장마철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아(2025)에 이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자꾸만 아픈 과거를 들춰보는 것에도 싫증이 난다. 이제 좋은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순하고 배려심이 깊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둘은 단짝으로 보였는데 그들은 나와 함께 지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 년 가까이 나를 괴롭혔던 친구가 같은 반에 있더라도 너희와 대화하거나 그저 둘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든 게 괜찮아졌는데. 내가 중학교에서 나누었던 담소의 대부분이 너희 덕분에 가능했다고 뒤늦게 고백한다. 졸업식 날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 전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던 두 친구를 학원가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짧고 갑작스러운 만남이라 잠깐 인사만 하고 헤어졌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자주 마주칠 줄 알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조금 달라진 얼굴을 다시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서 행복했지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먼 훗날 언젠가 내가 너희와 다시 만난다면 이런 말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넌 내가 잊어버린 마음을 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줬어 넌 내가 포기했던 일상 속의 행복을 내게 돌려줬어 좀 더 다정하게 말하려 해도 그럴 재주 없는 이런 나지만¹
다정한 말로 불러들이고 싶은 또 한 명의 친구가 있다. 내가 아는 한 너는 초등학교에서 나를 제외하고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 유일한 아이였고. 나도 너처럼 무척이나 조용한 아이였기에 말을 자주 걸지 못했다. 중학교에서도 너는 책을 펼쳤지만 그건 주로 문제집이었다. 나 역시 성적을 중요시했기에 전만큼 독서에 열중할 수 없었기에 그런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네가 오래도록 문학을 향유하길 바랐는데. 사실 네가 어떤 책을 좋아했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관념적인 말로 너를 대하는 것이 미안해진다. 그보다는 이런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네 옆에 붙어서 줄을 섰고 나란히 앉아 급식을 먹었다. 곁에 네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힘을 얻고 살아갈 용기를 키웠다. 너는 아마 나보다 공부를 잘해서 결국 일반고가 아닌 곳에 진학했을 텐데. 앞으로 너를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적해져서 네 품에 안겨있는 귀여운 햄스터 프로필 사진을 오래도록 보았던 기억이 난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지금에서야 이 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네게 이런 부탁을 청해본다.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¹.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조금 더 많은 친구와 두루두루 친근하게 지냈다. 착한 아이들이 많은 학교라 그런지 추억을 떠올리다 보면 일찌감치 도래하지도 않은 작별부터 걱정하던 날이 잦았다. 롤링 페이퍼에는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아이들의 아쉬움이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일 학년 마지막 날에 신해철을 좋아하는 친구가 틀어놓은 015B의 이젠 안녕(1991)을 듣고 우는 아이도 있었을 만큼 애틋한 반이었는데. 내게 연말은 항상 울적한 기분으로 남는 듯하다. 그럴 때면 많은 가수들 사이에서 신해철은 나에게 속삭인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⁴.
좀 더 밝아졌다고 생각한 고등학교 생활도 이전과 같이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조금만 더 주위를 둘러보고 대화를 시도했다면 좋았을 텐데. 어쩌면 과거의 나처럼 고민이 많은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까. 뒤늦은 다짐이 애석하게도 마지막 학기가 이미 도래한 후였다. 주변의 친구들과 어릴 적 친구들이 모두 입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텐데. 많은 이들이 수능을 바라보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제 면접 준비만이 남아 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목소리가 작은 나는 모의 면접에서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를 기점으로 동생은 발성 연습을 구실로 나와 함께 노래방에 가야 한다는 주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면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노래방으로 향했다. 나는 처음부터 신해철을 부르고 싶었지만 동생은 이십세기 음악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우리가 모두 아는 잔나비와 검정치마 노래로 선곡했다. 스피커에서 쏟아져나오는 사운드가 몸을 진동시켰고 음향이 풍부한 신해철의 음악에 제법 어울리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노래방을 나오며 문득 동생도 그대에게(1988)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자주 들려줘서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1989),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1995) 정도는 알 텐데. 다음에 노래방에 가자고 할 때에는 이 곡들을 부르자고 할 작정이다.
이쯤 되면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노래방에서도 내 소리는 동생과 악기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마이크를 들었지만 아직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 동생은 이런 나에게 자신의 친구와 함께 노래방에 가자고 부추긴다. 물론 그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단독으로 불러야 한다는 단서 조항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나는 또다시 뒤에 숨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말하기보다는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을 좋아한다고 오래전부터 밝혀왔다. 노래도 부르는 것보다 감상하기를 즐겼고. 밤늦게까지 신해철을 듣다가 잠드는 나날이 쌓여갔다. 한동안 음악을 멀리하며 학업에 집중하다가 다시금 신해철의 음악을 하나씩 들어보고 있다. 자신의 상태도 명확하게 진단하지 못한 시기를 지나 이제 대면하지 못하는 이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려 한다. 영원한 만남은 불가능에 가깝고 때로 잊히는 것들도 있겠지만. 그들이 내게 남긴 무언가를 자꾸만 들춰보려는 데에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하고 내게 주었던 희망을 오래도록 간직해야지. 음악만으로는 부족해서 신해철의 유고집 『마왕 신해철』을 찾아 읽고 이십 년 지난 고스트스테이션을 통해 그의 말투를 체득하는 법. 그러한 순간을 소설에 녹여내면서 신해철의 등장에 조금의 핍진성이라도 부여하고 싶다.
오늘 밤 나는 어느 새벽에 전파되던 고스트스테이션을 다시 들을 것이다. 평소 라디오에서 후배들의 노래를 주로 틀었던 그가 간만에 자신의 음악을 재생해주기를. 그리고 그것이 하필이면 먼 훗날 언젠가(1997)이기를 바란다. 먼 훗날 언젠가 당신이 살아 돌아와서 나와 같은 공간에 자리할 때. 어떤 곡을 가장 좋아하냐는 물음에 차마 내가 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을 때. 말주변이 없는 내가 용기를 내어 당신을 위해 쓴 소설을 건네고 운명적인 일화를 들려주기까지.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당신이 나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나는 마이크를 들고 당신에게 이 노래를 불러줄 것이다.
네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너의 머리맡을 나 항상 지킬 게 네가 무서운 꿈을 깨어나 내 이름 부를 땐 나 언제나 말하지 않아도 넌 그저 눈빛만으로 날 편안하게 해 먼 훗날 언젠가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시련이 끝나면 내 곁에 있어 줘 먼 훗날 언젠가 먼 훗날 언젠가¹
¹ N.EX.T (1997) 먼 훗날 언젠가
² 신해철 (1991)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³ N.EX.T (1997) 해에게서 소년에게
⁴ 015B (1991)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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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창래 開新創來 — 새로운 길을 열어 미래를 창조하다나는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소극적인 아이였다. 친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해서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잠식하는 날이 많았는데. 그런 나는 언젠가부터 문학을 도피처 삼아 지내왔던 것 같다. 사람이 많지 않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무언가 쓰고 싶다고. 나도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까. 한동안 동화 같은 이야기를 쓰다가 사람이 등장하는 문학적인 소설을 처음 시도했던 시기도 그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알게 모르게 외로웠지만. 나는 글쓰기의 사적인 측면에 기대는 사람이었고. 학교에서는 아마 말 없는 아이로 통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도리어 새로운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어색하기만 했는데. 나는 학업과 문학을 병행하고 싶었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노트에 소설을 적겠다는 다짐은 얼마 가지 못하고. 대신 수행평가와 시험을 준비하는 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시기에 다른 아이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무렵 담임선생님께서는 야심 차게 기획하신 학급 일기 프로젝트의 첫 주자를 내가 맡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떻게 보면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일간지의 지면이 내게 할당된 것이었는데. 학기 초에 내가 문학적인 아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모두가 돌려보는 일기를 어떻게 일기라고 부를 수 있겠어. 허상에 숨어서 소설만 써오던 나에게는 아직 낯선 친구들에게 내밀한 속사정까지 들어낼 용기가 없었고. 대신 나는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기웃거리며 글감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무엇을 하면서 웃고 떠들었는지. 내 앞가림만 하다가 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스크랩된 학급 일기 속에서 그날 나의 글을 찾아 읽으면 당시 내가 목도했던 새로운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늘은 그러니까 이번 주의 첫 순간은 책을 읽으며 시작했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지. 다짐과는 달리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일주일의 여정은 느긋함과 거리가 먼 듯하다. 밤이 찾아오면 내가 한 것을 돌이키기보다 남은 것을 걱정하는 시간.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가끔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떨쳐내길 바라기도 한다. 단숨에 색과 모양을 바꾸는 카드 마술을 보면서 마술사의 능력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마술하는 모습을 측면에서 보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완벽해 보였던 마술은 사실 누군가의 환상이 반영된 결과였음을. 그것이 관객뿐만 아니라 마술사에게도 해당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지금까지 마술사의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환상이 깨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콜라주로 멸종위기 동물의 개체수를 늘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퀄리티를 스스로에게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가위질은 어설펐고 보이지 않는 윤곽이 답답했다. 옷감의 층을 쌓아 올리는 것은 그만한 숙련도가 요구됐고. 아직 나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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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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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호랑이
-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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