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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 작성자 양현서
  • 작성일 2026-08-31
  • 조회수 105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요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가 학교에 감돈다. 손절치는 친구들도 많고, 험담을 하는 친구들도 많다. 원래도 많았지만, 복도에서 당당하게 뒷말을 하는 게 조금 신기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망가져버린 걸까.


중3 2학기에는 모든 학생이 서로의 안녕을 빌어줄 줄 알았다. 기쁜 친구들이 많은 만큼 외로운 친구들도 많다.


최근 한 친구가 내게 꺼낸 이야기가 많이 무겁다. 다른 친구와 대화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였다. 3학년 들어가면서 2명과 손절했던 친구였다. 의지할 곳이 나밖에 없다는 친구. 그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나는 그만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너무 미안했다. 뭐 그 이후로도 별일 없이 지내는 걸 보면 상관없나. 이런 식의 합리화도 참 오래된 것 같다.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만이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는 무지가 주는 기쁨의 약속'이라는 다음 구절도 슬펐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영원히 쓸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사물의 그림자로 그 사물을 이해하듯, 서로를 이해할지 모른다. 그리고 불필요한 상처. 상처. 상처...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시로 쓸 수 있을까?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이 상황을 시로 쓰지 못한다. 자꾸만 핸드폰으로 도망친다. 숙제도 자주 밀린다. 행복한 것도 떠올려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8월이 끝났다. 9월, 10월... 원서를 넣고 시험을 보고 낙엽이 떨어지는 동안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서로를 오독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그저 꽃다발로 탁자에 놓아두고 싶다. 내 모든 추억들과 선물들, 친구들과 선생님... 우리는 잘못한 것 없이도 많이 잘못된 것 같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로 둘러싸였으니 행복해질 가능성도 가득 차 있다고 믿는다. 믿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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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짝사랑

수필은 문학의 다른 갈래보다도 작가의 경험이나 생각에서 비롯되어 쓰인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오래 고민했다. 작가인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그러나 매시간을 바라만 본다면 그건 내 인생엔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나는 확신한다. 일상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건 마치 게임 중독처럼 사람의 정신을 망친다. 그래도 나는 최선의 형태도 아닌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이쯤 되면 슬슬(제목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수필에서 관찰당하는 대상이 누구일지 궁금해질 것이다. 작년 10월, 운명처럼 어떤 사이트를 만났다.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사이트 글틴이었다. 나는 주변인들에게 들키면 겪은 수치심(너 시 써?라는 질문은 나를 고상한 시인으로 만들어서 조금 부끄럽다. 내가 예민하다는 건 너무나 잘 안다.)을 이겨내고 계정을 만들었다. 그것도 몇 번의 고민을 하여 정했다. 필명은 그래도 공식적인 방향성을 추구하고 싶었기에 본명으로 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끝내주는 작명을 해보고 싶다.) 닉네임으로 가득 찬 화면이 보였다. 그때의 나는 월장원 선정작을 모두 읽었다. 가장 흥분에 젖어 감상했던 첫 월장원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 이해하지 못해도 내 마음이 이미 열려 있었던 것이었다. 몇 개월 뒤 홀린 듯이 글틴 오픈 채팅방에 입장했다. 평소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큰 거리낌이 없지만 채팅으로 만나면 쭈뼛대는 나를 잘 알았다. 그때는 내가 그 방에 있다는 사실조차 너무나 더러운 일 같았고, 그래서 아무 활동도 못 한 채로 채팅방을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글로 쓰면서도 볼이 달아오른다. 소극적인 활동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건 내 작품이 월장원 후보에 거론되던 시기였다. 글틴 유저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키보드를 타닥, 타닥 치면서 안경을 척하고 치켜드는 상상. 또 커피를 홀짝 마시며 넥타이를 고쳐 매고 수상소감문을 작성하는 상상. 따지고 보면 그건 사랑이었다. 나는 내 마음을 글틴에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런 마음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여름방학 독서활동(비평문 쓰기)과 시 합평을 나란히 하고 있는 이 주말이 너무나 좋다. 문학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는 게 참을 수 없이 짜릿했다. 그래서 어제 특히 댓글을 많이 달고 다녔다고 나는 짐작한다. 또 최근 들어 받는 응원의 말들도 가슴 깊숙이 박혔다. 예상치 못하게... 내가 그렇게나 칭찬을 고파했는지 몰랐다. □님은 내가 쓰는 시를 좋아해 주신다. ■■■■님은 본인이 더 견고한 문학 성취를 이뤘음에도 나를 고평가(기분 좋은) 해주신다. ○○님은 내가 장원을 받는 글을 좋아해 주셨다. 이제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제야 멘토님들의 의견까지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짝사랑인 이유는 아직 꿈의 장소 '글틴캠프'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글티너들과 멘토님들을 실제로 만나는 그곳.

  • 양현서
  • 2026-07-27
학의 선물

생일이 오늘 날짜로부터 멀어진 지는 꽤 되었다. 기쁜 날인 만큼 제대로 된 완결이 필요했다. 초도 불고 몇 안 되는 기프티콘도 받았으나 그 생일이 끝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남아버렸다.생일의 여백은 언제나 나에게 지난날을 그려내도록 한다. 한 살을 더 자라냈다는 실감. 그런 실감이 언제나 보이지도 않는 젊은 나날의 주름을 더욱 깊게 만든다. 그래, 젊은 나는 시간의 부자이니 조금은 사치를 부리며 살아도 된다. 철없는 생각을 하던 나에게 디엠 하나가 왔다. "내가 내일 학 갔다 줄게ᅲᅲ" 학? 내가 내 입으로 종이학을 언급한 적이 있었나? 나는 고개를 젖히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디엠인데도 생일이라 그런가 더 성의 있는 답변을 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번 생일의 지루함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벅차오르는 헐거워진 나의 가슴을 느끼며, 할 수 없이 메시지를 두 번 눌러 공감만을 표시했다. 무의식적으로 내 입에서 학들이 튀어나온 데에는 그 나름의 짧은 역사가 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천 마리의 종이학이 유리병 안에 곱게 쌓여 있는 장면을 보았다. 반짝거리듯, 전화를 받고 사랑을 나누는 학생. 그것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었다면그 안에 담긴 마음을 보고 감동했겠지만 그때는 그 압도적인 수량에 놀라기만 했다.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남의 기쁨을 위해 쓰이다니! 주황에 가까운 조명이 그 유리병을 비출 때 아마 나는 작은 탄식을 뱉었을 것이다. 평소 유치원에서 어버이날에 접는 카네이션도 꼬깃꼬깃 대충 접던 나였다. 또한 그 속 편지의 내용은 항상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였던 상상력이라곤 하나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티브이 화면 밖으로까지 전해지는 감사의 마음이 내 가슴속에서 스노볼을 굴리듯 했다. 기억은 생일이 지날수록 몰래 커져가며 눈사람처럼 생명을 얻어낸 듯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내 손엔 종이학 아홉 마리가 들려 있었다. 원래는 열 마리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나는 다른 반 아이가 가져갔다. 쿨한 척, 별로 내키지 않는 척 파란 종이학을 주었으나 사실은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색까지 기억하는 줄은 몰랐는데... 한 손 가득 종이 뭉치를 들고 3층 교실로 갔다. 담임선생님이 주신 간이 스터디 플래너도 구겨서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습성 덕에, 내 작은 학들도 주머니에 담았다. 그런데 이 종이학들 너무 이뻤다. 작은 종이로 만든 학인데, 등 부분은 일관적으로 하얗고 삼각형 패턴의 그러데이션이 날개 쪽으로 퍼진다. 머리는 자꾸만 펴졌지만 여러 번 누르고 나니 다물어졌다. 여럿이 모여 수다를 떨듯, 나는 명화를 감상하는 마음으로 종이학의 구조를 눈에 담았다. 학교에서 종이학들을 들고 다니면 모두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비좁은 필통에 종이학들을 넣어 다녔다. 자꾸만 펜촉에 쓸리고 컴퍼스에 닿아도 결국 녀석들의 겉모습이 보존되었다면 그걸로 된 것이었다. 그렇게 사흘간 종이학들을 필통에 넣어 두었다. 부모의 마음은 어디 가고 몇 초 필통 꺼내기가

  • 양현서
  •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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