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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계

  • 작성자 드시코
  • 작성일 2026-09-26
  • 조회수 90

 방금 전에, 햇빛이 조금씩 기울던 그 때에, 베란다에 나가 보았죠.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길쭉한 창을 끼울 수 있는 틈새를 발바닥으로 밟고 바깥으로 나가 보았어요. 맨발로 미적지근한 타일 바닥 위에 올랐더니 먼지가 발바닥에 달라붙는 느낌이 났어요. 아앗 슬리퍼도 신지 않고.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아요.

베란다는 거실 한쪽 벽면에 붙어 있어요. 화분 같은 것은 없고 옛날에 쓰던 물품들이 상자 안에 담겨 있고 그것들이 쌓여 있어 엄청 복잡스러웠어요.

 아, 중요한 건 베란다와 바깥 하늘을 이어주는, 그곳 창문틀에 끼워져 있던 유리창이 모두 빠져 있어서, 바깥이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보였다는 거. 먼지가 내려앉은 구리색 틀은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았고, 새털구름이나 옆 건물 벽돌 사이사이의 시멘트 자국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니, 그것보다도

 바닥에 매미가 떨어져 있었는데요. 베란다가 좁아서, 두 발짝 정도만 나아가면 그 움츠리고 있는 매미를 건드릴 수 있었어요. 살아있는 걸까. 궁금했고, 또 할일도 없었죠. 구월이면 매미는 죽는 건가? 하나 이 매미가 죽었다고 해서 다른 매미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뭐 없겠죠. 그리고 정말 죽은 건지도, 알 수 없었어요. 

 한때 새파랬던 하늘이 차츰 다른 색으로 변하고 있었어요. 매미 위에 노란 햇볕이 쏟아져, 움푹 파인 부분과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어요. 저는 조금 주저하면서, 다리를 앞으로 힘껏 빼고, 간신히 균형을 잡아 매미를 엄지발가락으로 톡, 쳤어요. (만약 매미가 날개를 털며 날아올랐다면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베란다에서 뛰쳐나왔겠죠.) 매미가 움직이면 곧장 거실로 몸을 피할 수 있게 반대쪽 발은 몸의 뒤쪽에 둔 채였어요.

 안 움직였어요. 그래서, 아아, 죽었구나. 생각하고 몸을 숙여서, 무릎을 굽히고 두 손가락으로 매미를 조심히 들어 올려 눈 가까이에 가져다 댔어요. 그때 제 옆얼굴로 무료한 저녁 바람이 솔솔 불었어요.

 투명한 날개는 맑고 그 속의 나뭇가지 모양의 선들은 세세해서, 눈을 찡그리고 살펴보았어요. 등은 곱게 자란 한때의 나무껍질 같고, 두 눈은 이름 모를 설익은 열매 같았는데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니 꽤 딱딱했어요. 눈을 만질 때도 조금 용기가 필요했어요. 하지만 매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어요.

두 손에 들린 매미는 이미 죽었어요. 매미가 살아있었다면 저는 이것을 부드러운 두 손바닥 위에 올릴 용기가 없었을 거예요.

 (판에 박힌 전개죠. 인간의 사고 전개가 이런 걸 어떻게 하라구요.) 저는 불현듯 생각이 났어요. 죽은 것의 눈. 살아있었다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만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동그란 보석 같은 눈. 그것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매미가 단지 죽어서, 그래서.

 매미의 사후 세계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피어올랐어요 연기처럼 으스스하게.

 하늘은 노란빛을 천천히 놓아주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오른편으로 내려다보이는 산의 이름 모를 잎들 사이에서 들려왔어요. 거무죽죽한 바람이 이따금 강하게 불어 죽은 매미의 다리를 나부끼게 했어요.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면 매미의 다리는 다시 늘어졌어요.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사람 없이 한적하고 마주본 지붕 끝과 맞닿은 하늘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비행기가 점처럼 떠 있고, 하늘은 점점 어둑어둑해지는데. 매미의 사후 세계는

바로 여기가 아닐까, 여기가 아닐까.

 

  제가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막연한 생각들이 잘못 불 붙인 폭죽처럼 흔들흔들거려요 그러나 한 사람은 하루에 수도 없이 죽고 나는 그들 이름 모를 그들의 사후 세계에서 숨을 쉬며 아직은 닳지 않은 폐로 꽤 숨을 쉬고 있는 거예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제가 늘 마주치는 지하철역의 표정 없는 사람들과 발걸음 구두 소리, 슬픈 표정의 얼굴들, 몸통에 줄을 매단 개, 선생님의 주름살 많은 얼굴, 두꺼운 알이 끼워진 안경, 움직이는 버스, 왁자지껄한 거리 -

인간을 볼 수 있는 건 제가 인간이 모여있는 곳에 살기

때문이었지요 동갑내기들이 있는 장소에 가기로 다 같이 모이기로 한 약속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어요

우주는 넓고 인간이 차지하는 공간은 무척 좁아요 살아있는 것이 움직이는 그곳에 가지 않으면 모든 건 죽어 있을 뿐이에요 우산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어요 돌도 대답 않아요 비는 내리는 게 아니라 지구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고 사실 모두 뒤집힌 채 살아가고 있어요 오늘의 밤이 다른 어떤 곳에서는 아침이나 이른 새벽이죠

있잖아요 어떤 동물은 말을 안 해요 조개나 홍합을 보세요 해마도 보세요 물고기도 말 안 해요 물고기가 우는 것 들으셨나요? 물고기랑 친해지려면 수영을 잘 해야겠지만 나무랑 친해지려면 옆에서 서 있으면 되어요

나무는 단지 아무 말 않는 것 아닐까요 말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입이 퇴화한 거죠 어쩌면 사람이 더 진화하면 나무가 될지도 몰라요 비가 내려도 울상이 되지 않고요 물론 나무라고 해서 싸우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음

그러면 이미 우리는 미래의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거예요 삼만 년이 더 지나면 손가락이 나뭇가지로 변하는 거죠 그래서 사람이 꽃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쓰나요

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요 말할 수 있지만 안 해요 말 안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무라고 안 될 게 어디 있는지

 말이란 건 어떤 때에는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천천히 나무가 되면 가끔씩 서로를 돌아보기만 해요

 아 있구나, 하고

 

한 사람은 두 번 살 필요가 없어요 사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있고

그럴 일은 없어요 노을을 돌려 보거나 같이 보는 우리 인간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죠

저는 또 정신병에 대해 생각해요 인간은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어긋나면 A 이렇게 어긋나면 B 저렇게 어긋나면 C

인간은 기계 같은 거라서 작용하는 방식이 거기서 거기예요 실수와 욕심이 한결같아요 저도 그래요 전 괴물 같은 거예요

 

베란다 밖으로 나오며 매미를 보고 아무나 놀라라고 창틀에 걸쳐 놓았어요 살아있다고 생각할 걸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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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읽기

어떤 행동은 글로 적힐 수 있다. 혹은 글로 적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렌지를 나무에서 딴 후 껍질을 까 입에 넣는다. 씹는다. 이것은 한 개인의 행위로 볼 수 있다. 주어가 없어도 문장이 된다. 규모가 큰 것을 적거나 역사를 기술할 때에는 반드시 관념적이게 되는 것일까? 예컨대 역사책들은 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혹은 'OO국이 쇠퇴했다', '성장했다'. '번영을 누렸다' 라고 쓰지만 도대체 누가 번영을 누렸다는 것인가.. 한 나라 안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쇠퇴'라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라고 쓴다면 그 '눈부신' 밝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한 거대한 공동체의 일대기를 쓸 때에 (그 공동체가 실은 개인들의 합이란 것을 감안하지 않고 주로 쓰인다.) 이런 '개인'의 행위를 서술하는 데에 적합한 단어들 말고 공동체 전용 단어는 없다. A나라가 번영했다는 사실은 어떤 한 개인( 아마 'A나라' 라는 이름을 가진)이 번영했다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쓰기도 어렵다. A나라에 세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씩 (동시에 세 줄을 읽을 순 없으니 순서대로) 써야 할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만연한 의인화는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가? 먼저 이것은 그 공동체가 실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 축구 팀은 단지 같은 유니폼을 입기로 약속한 것일 뿐이다. 만약 'A축구팀이 승리를 차지했다', 'A축구팀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라고 쓴다면 언어의 힘은 읽는 이에게 혹은 듣는 이에게 그 팀에 속해 있는 선수들을 'A축구팀'으로 단순화하게 한다. '우리 반', '우리 학교', '우리 나라'도 같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도대체 어디로 나는 '나아가고' 있단 말인가? 나는 강물 위를 떠다니는 나룻 사공이란 말인가?) '우리'라는 말마저 부정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정말 그러하다. 이것은 약속 혹은 확인이다. 우리는 언제라도 '그들' 혹은 '너와 나' 같은 다른 말로 바뀔 수 있다. 언어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과 어떤 것을 구별지어야만 한다. 두 원숭이가 언어를 처음 만드는 선사 시대 환경을 가정해 본다면 그것을 주로 야생 동물이나 식물의 '특성'을 묘사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성별' 그리고 대화의 주가 되는 '사람'과 '그 외'의 구별이다. 고유 명사는 제외하고 형용사를 보면, 도마뱀은 '빠르다', 거북이는 '느리다', 저 돌은 '크다'. 나무가 '높다' 등이 있다. 성격에 관련된 것도 그러하다. '교활한', '나쁜', '친절한', '아름다운' 등도 진화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유행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렇듯 언어가 단지 목청이 내는 소리의 조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유행하는 소리'는 같은 집단임을 확인하는 신호로 보인다. 오늘날 유행하는 '야르' (이것의 의미는 알지 못한다.)

  • 드시코
  • 2026-07-29
나는 술꾼

기말고사거든요 두 과목을 치고 도서관에 조금 있다가 왔죠 집에 두 과목은 화법과 작문이랑 사회문화였어요 도서관에서는 뭘 했더라 월간지를 읽었는데 여러 개를 읽었어요 집에 왔어요 빵이 식탁 위에 있어서요 먹었어요 하나를 먹었는데 제가 조금 예전과 달라졌어요 젤리가 먹고 싶어서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서 무인 아이스크림점으로 갔어요 거기 젤리가 있거든요 근데 저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애들 3명이 들어오길래 제가 뭘 사는지 볼까봐 그냥 나왔어요 앞에 있는 이마트24로 갔어요 거기서요 뭘 먹고는 싶은데 그리고 그게 몸에 별로 좋지 않다는 것도 아닌데 영양정보를 확인했어요 짱셔요가 당류 함량이 30g이었어요 당알코올 2g이었는데 먹으면 취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걸 사고 고개 숙이고 꾸벅 나왔어요 오르막길을 오르며 먹었어요 하나 둘 그런 기분만 좋게 만드는 것을 왜 먹나 싶었어요 할 게 없어서 이런 것도 먹어요 저는 집에 왔더니 허기가 진 건지 중독이 된 건지 모르겠어요 빵을 하나 더 먹고 예감이라는 과자를 뜯어 먹고 사과 주스를 마셨어요 저는 왜 이러는 거죠 너무 무책임한 듯했어요 그거 아세요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먹고 울면서 먹어요 먹기 싫어서 근데 뱉기는 싫어요 완전 어린왕자의 술꾼 같았어요 그 책을 중학생 때 읽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깨달으면 어떡하죠? 그래도 알고 있어 다행이에요 술꾼은 중독성이 있는 물질에 내성이 생겨 끊지 못하는 고착 상태를 표현한 인물이었어요 절 닮았어요 하하 빵을 먹기 싫은데도 입에 넣는 모습을 보면 어린왕자가 물을 거예요, 왜 빵을 드세요? 전 답하겠죠. 먹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지거든. 왜 나빠지는데요? 빵을 먹지 않으니까! 이것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맞게 쓴 건가요? 그걸 굳이 따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저는 지금 정확하지도 않고 말하자면 흐물거리는 상태예요 보기 싫죠 그리고 허영쟁이도 절 닮았어요 아니 모든 사람이 그럴지도 모르지만요 허영쟁이는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슬프지만 옆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타인을 찾고 있었던 거예요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요 별만 반짝이죠 위에서 그것은 아름답지만 그것만으로는 외로움을 떨쳐낼 수 없어요 왕도 저 같아요 저는 꼭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하니까요 머릿속에서 은연중에 명령을 하죠.. 상대방은 절 신경쓰지 않는데 저는 저를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별을 소유하는 사업가는 대부분 사람들 같아요 놓아 주면 좋겠어요 나도요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스스로를 구속하는 사람이에요 하나 그게 그에게는 더 행복할지도 몰라요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무목적의 우주 속에 떨어진 것보다는 보람 있는 (혹은 그렇게 믿는) 일을 하는 게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줄 테니까요 (그게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주위를 둘러싼 것 중 완벽하게 설명된 것은 많지 않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칸트를 꽤 좋아하나 봐요 사람은 너무 자주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니까요 칸트는 애초에 믿기로 한 거죠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마치 제사장처럼 지리학자는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있

  • 드시코
  • 2026-07-01
나무도 죽는지

독서실에서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문제집을 풀기 시작해야 하는데 계속 집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어 주저하던 참이었다. 의자가 삐걱댔다. 나는 한 장의 여백만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구겨지기 시작했다. 독서실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데 그 너머로 나무들과 풀잎들이 우거져 있어 옛 쥬라기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 햇살이 비추는 날이면, 나는 고작 작은 인간뿐인 것이 행복하고 더욱 그런 수풀과 동떨어진 문제집에 몰입해서 풀 수 있었다. 그런데 날이 흐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도서실과 완전히 유리된 바깥 공간에서는 나무들이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빗방울이 창문에 묻고 튄 모양이 역동적이었다. 그러나 가지가 끊어지거나 하지는 않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조용히 춤추고 있었다. 바닷가에 온 듯한 빗소리가 들리자 몇 학생들이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고 이내 다시 숙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고 쏟아지는 비가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기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이것이 과식한 후에 기름진 배를 가지고 화장실에서 흐르는 샤워기에 몸을 맞대고 가만히 선 나의 모습과 닮았다고 혹은 닮지 않았다고 운운할 것은 없다. 이런 비유는 때로 사실을 흐려 놓는다. 둘 사이의 관계는 말로 엮는 것이 아니다.) 나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 생각이 들었다. 비라는 건 나무에겐 좋은 일이구나, 사람에게만 비가 우산으로 막아야 하고 추운 것이지 나무에겐 바라는 것이겠구나. 나무는 사람처럼 고기, 채소, 과일, 곡식을 먹지 않고 오직 흙과 물, 따스한 햇빛을 먹고 버티며 도리어 사람보다 오래 산다. 흙의 맛은 어떨까, 나무가 물을 흡수할 때도 우리와 같이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일까. 그리고 가만히 끄덕이고 바람이 휘날려 가는 그 잎새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라기만 한다. 내가 저곳 나무들의 한가운데 쓰러져 죽는다면 나무들은 더욱 잘 자라겠지. 그리고 내가 앉아있는 의자는 어떤 슬픈 처지인지 몰라도 창 너머로 빗줄기도 맞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 한 사람의 엉덩이 밑에나 깔려 있다. 사람들은 유치하게도 '모더니즘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야- 난 참나무다. 사실 참나무도 아니다. 외계 생명체 지상의 산호다. 날 봐라 숨 쉬는 생명아, 나는 너희 말로 부대끼고 이렇게 비를 맞으며 고개를 숙인다. 좋다, 아아. 나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나는 시퍼렇게 그을음 얼룩이 묻은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여 본다. 나무는 가만히 서 있다. 조금 흔들리지만 그건 빗방울 때문이 아닌가? 죽었나?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체로 여기지 않는 나의 고질적인 사고를 의식하며 나는 나무의 죽음을 떠올려 보고 이내 이상함을 느꼈는데 그건 나무가 살아있을 때나 죽은 후나 한결같이 가만히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일차원적으로 본래 삶과 죽음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었다. 붉은코 코아티(너구리를 닮은 네발 포유류)가 홀씨가 날리는 들판을 있는 힘껏 네 발로 달리고 ‘죽을 것 같이

  • 드시코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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