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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 작성자 이제형
  • 작성일 2026-09-27
  • 조회수 75

어떻게 살지도, 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불안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에게 신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려주는 일종의 믿음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성이 존재하기에 사고하고 의심할 수 있다.

그런 인간에게 절대적이라는 개념의 상징인 신은 불안정하다.


인간은 신의 절대성을 의심할 수 있고,

신의 절대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질서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에덴에서 우리는 옷도 안 입고 다녔지만, 선악과를 먹은 순간 옷을 입었다.

선악과 이후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벗어나, 그것을 판단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의 의심을 신의 규칙을 어겨 생겨났다고 설명하면, 인간의 의심 자체를 신앙 체계 안에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논리라면, 사람은 의심이 들어도 죄로 생각하며 계속 신의 질서 안에서 살게 될 거다.


그럼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왜 살아가는지가 설명되어 고통에 이유가 생기고,

사람은 의심이 들어도 계속해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신의 말씀을 어떻게 따르는 거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글은 죽는다.


사람은 죽고 시대는 변해 간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의도를 시대상에 맞게 고쳐 나갈 수 없다.


과거의 문헌은 저자가 사라진 뒤 새로운 시대의 독자들이 해석해야 한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전지전능한 신의 말씀이라며 따르는 것조차 해석의 일종이고,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여 완전한 성경을 이해하려 생각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성경의 불완전성이 아닌 자신의 불완전성에 대한 의심이고,

의심조차 믿음 위에서 피어나게 되겠지.


자신의 해석을 절대화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는 것은 좋다.

그런데 불완전하다는 건 어떻게 발견하는 거지?


의심이잖아.

신학자를 비롯한 신도들이 계속해서 해석해 나가고, 틀렸다고 생각되는 해석이 있으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교체하는 것도 결국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신의 뜻을 알아가는 거잖아.


우리는 지금 선악과를 먹은 원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겨나 지상이란 신의 재판 속에서 죄를 판단받으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신을 알아갈 수 있는 거지?


역설이다.

신의 규칙을 어겨 의심이 생겼지만, 그 의심이 신의 말이 시대가 지나도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니.

인간의 원죄가 신을 이해시키고 있다니.


인간의 의심이 신의 질서를 부정할 가능성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그 의심이 신의 질서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니.


대체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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