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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요즘 애들은 뭐가 힘든 건데?

  • 작성자 Marllin Zero
  • 작성일 2026-10-01
  • 조회수 118

  이곳은 10대의 문학 공간이다. 훈계, 교화, 교정(이곳의 어른들은 우리의 글만을 교정한다), 교훈적 시선이 닿지 않는 공간이므로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진심으로 궁금한 어른이라면 한 번쯤 들어와보지 않겠나. 들어오셨다면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여기서는 저희가 주인이라 감히 환대합니다.

  올해 수시 가이드북을 살펴보면 여러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출결이 미흡한 지원자들이 늘어났다. 등교는 학생의 본분이고, 우리 대학은 성실함과 공동체가 정한 규칙의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 들어" 라는 말이 눈에 띈다. '요즘 애들은 나약해. 우리 때는 죽어도 학교 가서 죽으라 그랬어. 근데 요즘 애들은 학교 가기 싫다고 땡땡이 치잖아. 병결? 우리 때는 열이 펄펄 오르고 교통 사고 난 다음에도 학교는 가야 했었어.' 이런 인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듯하다. '왜 요즘 들어 학생들이 학교를 잘 안 가게 되었을까?'에 관해 사회문화적 탐구를 진행키로 한 어른도 있을까? 아직은 없는 것 같다. 10대에게는 자신들의 집단적 고통에 이름을 붙일 학문적 권위가 없다. 어른의 고통은 경기침체, 구조조정, 주거 문제 등으로 언어화되고, 파업은 정치적 행위로 인정되며 담론화로 이어지지만,  10대가 "학교 가기 싫어"라고 하는 것은 사춘기, 정신질환, 의지 부족, 학교 부적응으로 설명된다. 그리하여 현대 한국 사회의 10대는 "도대체 뭐가 힘들다고 징징대나?"하는 질문에 관해 쉽게 답하기 어렵다. 복에 겨웠지. 너희 세대는 일제강점기, 전쟁, 이데올로기적 억압, 독재, 후진국을 운좋게 비켜가 문화강국, 산업화와 정보화와 민주화를 충실히 이행한, 광장에서 감동적인 혁명의 역사를 이어온 선진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가. 글쎄요.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도 저의 고통을 믿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말 나약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확산된 능력주의 사회,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10대로 살아가는 고통은 실재합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해 오로지 자신만을 탓하게 되거든요. 거리에 나가 한 목소리로 뚜렷하게 외칠 고통의 원인이 없거든요. 학교에서 비정상적 학생으로 선별되면 사회가 병리적이라기 보다는 그 학생의 정신건강이 병리적인 것이고, 고통의 원인은 이 아름다운 대한민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학생의 뇌에 생화학적 결함이 있는 것이어서 신경전달물질을 처방받으라고 정신과 치료를 권유해야 하는 것이 제도교육의 메뉴얼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삐삐 밴드 등 20세기의 노래 가사가 사회비판적인 반면, 지금의 가사들은 재력을 과시하거나 역경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여 좋은 집, 좋은 차, 비행기 타고 다닌다는 가사들이 많지요. 교실 이데아 같은 노래는 이제 나오지 않고, 아이돌 산업계의 금수저 마케팅에 대중은 열광하지요. 

그렇게 우리의 고통은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맥락 아래 개인화, 의료화, 탈정치화되어 왔습니다. 너무 추상적인 설명이라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타자화했던 인간의 구체적 삶을 알게 된다면 갈등의 간격이 좁혀질 수 있을까요? 한 10대의 그나마 솔직한 일기를 공개합니다.


  어제 딱 한 시간만 책을 읽지 않고 공부했다면, 샤워를 조금 빨리 했다면, 석식 시간에 후배들과 빨리 헤어졌다면 오늘 수학, 영어 시험은 다 풀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문제들이 쉽게 나와서 더 아쉽다. 계속 후회하고, 이때 그 선택을 해서 그런 거야, 그 전날에 그래서 그런 거야, 그 전전날에 … 불행의 원인을 소급하다 보면 한때는 죽어버려야지 싶었던 적도 있었다. 어째서 모두가 착실하게 이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 건지, 급식을 점점 빨리 먹는 친구들을 보며, 누군가 뛰어내리는 것을 말려주기를 바라고 간 서강대교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비애를 느꼈었다. ‘사회구조적 문제’, ‘근본적 문제 해결’이 공허한 외침인 이유는 모두의 바쁨과 경계와 피로가 얽혀 서로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소설은 엘리베이터, 관료제, 자본주의, 통신망 같은 현대 사회의 표상들 사이에 ‘끼여’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을 그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삶을 원한다. 죽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뻔뻔해지고 사회적 관계를 다시 맺기 시작해서 그런 거라고 짐작 중이다. 어제 허송세월을 보낸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은 건데 뭐 그리 잘못된 건가? 생산성 측면에서도 면접 준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약간 뻔뻔한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밥 친구도 필요한 것 같다. 4교시 영어 시험 끝나고 습관적으로 자책을 했는데, K와 급식을 먹으며 대학에서 잘생긴 남자를 쟁취할 전략을 수립하다 보니 금방 잊었다. 한때는 인간이 정말 사회적 동물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었다. 내 곁의 인간들은 은둔하는 동물이기도 했으니까. 24시간 타인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야하는 기숙사 학교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층 침대에 커튼을 치고, 룸메와 자신의 책상을 가르는 칸막이를 사오고,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인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야자 시간에 탈의실에 들어가 있다가 발견되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 같다. 시험지를 걷으며 왜 나만 빈칸이 많을까 자책하던 무거운 마음이, 급식 먹으며 남자 얘기 하는 걸로 금세 풀리는 걸 보면.

  그래도 어제 영어 실전 모의고사 두 개 풀었고-비록 시간이 많이 오버되긴 했지만-김영하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잊었던 감정들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국어 공부 차원에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것은 아니다. 기숙사 문을 열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덕질을 시작했으니까. 우리 엄마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아저씨를 덕질하는 나에게 나도 놀랐다. 이래 놓고 오늘 시험 결과에 심각한 표정을 짓는 내가 우습다. 그래도 고3을 덕질로 버티고 서울대 간 언니도 있으니 죄책감을 덜기로 했다.)

  1교시 체육 논술은 잘 써봤자 쓸모없다고들 하지만 어디엔가 말하고 싶었던 경험과 단상들을 표현하고픈 욕구를 이기지 못해 그것들을 정리해서 작성했다. < 혹자는 지금의 사회를 ‘경험의 멸종’ 시대라 칭한다. 기술이 발달하며 몸으로 직접 세계를 느끼고 체험하는 경험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내가 체감하는 것은 ‘문제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변화다. 세기말『비상구』, '또하나의문화' 학술지 등 문제아를 다룬 문학, 비문학 서적들을 보면 문제아들은 가출하고, 경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등 역동적인 반항성을 보이는 반면, 지금의 ‘문제아’는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릴스를 보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담론 속에서 구체화되고 문학 속에서 형상화되는 문제아의 모습이 시대에 따라 다르다면, 문제아의 문제를 과연 그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 인터넷 기술의 발달과 거대 미디어 기업의 성장이 청소년에게 미친 영향이라든지, 전통적 규범의 위력이 약화되면서 사회적 혼란이 생긴다든지 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제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아의 반항성조차 거세된 사회에서 요즘의 패러 글라이딩, 번지 점프 등 모험 스포츠 시장의 성장과 러닝 등 야외 체육 활동의 증가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네 한계를 뛰어넘어라”라는 신자유주의적 메시지의 내면화, SNS 난이도 입증 문화, 실내에서 야외로의 장소 전환 경향,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고 참여자의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의 논리, 국민체육활동 장려에만 몰두함으로써 효율적 노동자를 양성하는 정부로 인하여 안전 의식과 안전 메뉴얼의 미비라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먼저 마라톤 사업의 수익성을 포착한 기업이 폭염주의보에도 마라톤을 강행하여 수십 명이 앰뷸런스에 실려간 사례”(후략) > 이렇게 썼던 것 같은데 어제 읽은 책들의 흔적이 보여서 아예 의미 없는 짓은 아니었다고 공부 안 한 나를 정당화해본다. 2교시 수학도 4문제 중에 3문제는 풀었고 논술형은 부분점수는 받을 것 같고(아 아닌가?ㅜㅜ), 4교시 영어는 단어 시험의 경우 살면서 본 시험 중 가장 못 봤으나, 독해와 작문은 반타작은 했겠다. 6교시가 시험인 줄 알고 3교시 문학 시간에 온전하게 집중한 것도 잘한 선택이었다.

  교과우수상 그거 받아서 뭐해. 지금까지 받은 상장들 다 잊어버리고 집구석에 처박아 놓지 않았나. 대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감정이 섞여 있는 것들이다. 그래도 수능 완성에 나오는 단어들은 바로바로 뜻을 떠올릴 수 있도록 틈틈이 봐둬야겠다. 성인이 되어 단어를 봤을 때 알 듯 말 듯 하면 기분이 나쁠 것 같으니까. 과거의 나를 연상하게 되는 모든 장치로부터 뿌듯함만을 느끼고 싶단 말이다. 실모 4, 5는 지필평가+수능 연계 대비해서 여러 번 보고. 오늘 본 거 환산 점수로 치면 나쁘지 않으려나? 대학이 정말 중요하긴 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내가 못 가거든. 최근 읽은 소설집의 책날개에는 작가 6명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형식은 출생 지역-학력으로 시작한다. 순서대로 연세대,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연세대, 연세대. 글 쓰는 데는 어느 정도 문예적 소양이 필요하고 수능을 잘 본 사람이 그런 소양을 갖출 지식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수능에 반기를 들지 않은 모범생들이 어른이 되어 순응하지 않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정 기간 동안은 수능을 하고, 일어나는 불씨들을 가만 꺼두고, 어른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러니까 한국 사회에서 고3이라는 문화적 관념은 그토록 삐딱한 작가들마저 ‘순응해야 하는 기간’으로 합의한 사회적 구성물인 것인가?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망했네. 근데 연세대 나오신 분이 계산은 왜 틀렸담? 제시된 계산법에 따르면 1찰나는 1/75초가 아니라 0.8초인데. 24시간은 86400초인데 1440초로 계산해서 틀린 거 같다. 나는 앞으로 대학 나온 사람보다 내가 나은 점을 조금이라도 찾으려 인정투쟁하고 기어이 찾으면 좋아하겠지. 경제자본은 없으면서. 대학 나온 사람보다 낫네, 하는 스쳐 지나가는 말들에서 존재가치를 정립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겠지. 상징자본은 없으면서. 부르디외씨 말해보세요, 사회자본과 문화자본만 있는 삶은 아무것도 없는 삶보다 못한 거 아닐까요. 내가 이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시간에 상위권 애들은 공부하고 있다. 아아아아아아앍ㄱ아라알;ㅁ니ᅟᅡᆼ러..

  3교시에 읽은 불신시대와 잉여잉간은 각각 실존주의, 허무주의계열 소설이다. 나에게는 생명이 있다.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에코 페미니즘이나 실존주의의 개념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이것들을 이론화, 개념화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으면서, 나에게 정말 인문학적 통찰력이 있는 것일까, 하며 나의 존재가치를 찾으려 했었다. 이과의 영재들이 자기가 발견한 것들을 수학시간에 배웠을 때, 아, 이미 있는 공식이었어? 하는 느낌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문과의 영재가 아닐까 위안삼았던 적도 있다.

  우선 몸을 챙겨야겠다. 8교시에 저번에 갔던 병원에 가서 잔기침이 난다고 하고 약을 받아와야지. 졸릴까 봐 안 먹지 말고 이 지긋지긋한 기침을 끊어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점호 전까지 책을 읽고, 12시쯤에 씻고 머리도 말리고 로션도 바를 거다. 그리고 소등되기 전에 자야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던 어젯밤, 기숙사 복도의 창 너머로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체육관의 옥상을 봤다. 체육관은 기숙사보다 높지 않아서 아무것도 없는 민숭한 옥상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저 자리에 기필코 옥상정원을 만들겠다며 교장선생님은 옥상정원이 있는 부천의 한 학교에 다녀오셨다지. 당신의 삶이 남긴 것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방에 돌아와 적분을 했다. 언제부터 폭발적인 공부, 글쓰기, 읽기가 잘 안 되었던 걸까 생각하다가 그냥 자기로 했다. 코 고는 소리와 잠꼬대들 속에서 이미 잠들 타이밍을 놓쳤다. 2층 침대에 누우면 흰 도화지 같은 천장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머릿속에 내재하는지도 몰랐던 기억들이 펼쳐진다. 점심시간마다 뒷짐을 지고 학교 한 바퀴를 산책하셨던 교장선생님에 대해 생각했다. 사회과학자든 자연과학자든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왜곡될 수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런 것 같아, 라는 당신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는 나를 왜곡해왔다. 죽어 마땅한 존재로 만들거나 세상이 몰라주는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오늘 틀린 단어는 hostility다. hospitality와 착각했다. 적대과 환대는 한 끗 차이다. 아, 수능 D-50 깨졌는데 영어를 너무 안 한 거 아니냐. 영어는 그래도 절대평가니까 최저를 맞추려면 영어를 해야 하는데 실모 풀어야 할 시간에 일기나 쓰고 앉아 있고. 그래도

  오늘은 환대와 다정과 위로를 택하기로 한다. 논리와 이성과 합리와 효율, 상경계열 지망생들 특유의 똑부러짐을 선택하려고 아등바등 해왔고 방금 전까지도 그랬으나 내 안에는 그것들이 없었다. 그 사실은 오래도록 자아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했다. 그러한 근대적 가치들은 단선적인 방향으로, 더 열심히 성실히 폭발적으로 집중할수록 획득할 수 있는 반면에 위로는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천문학에서는 인간이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사실로부터 거시적 관점의 위로를, 문학에서는 미시적 관점에서 인간 사회의 세밀한 의미들을 확대하고 조명하면서, 이런 대립되는 두 방식의 위로가 가능하다.

실존주의적으로 자아와 타자를 위로할 때가 있다. 필요한 것은 생이다. 삶이다. 오로지 생명이다. 생명의 감각을 잊게 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듯한 것들에 짓눌릴 때면. 그런데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말들 하는 시기에 떠밀려 왔을 때, 그러니까 생존의 불안을 느끼거나 떨릴 때는 허무주의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편.


불안과 무기력함과 피로와 체념은 10대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게으르다", "사회 탓 한다", "나약하다"라는 납작한 말들을 걷어내면 청소년의 고통에 작용하는 사회구조적 힘이 보이고, 그것은 기성세대의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결국 '알아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성세대의 노고를 알아주고, 요즘 세대의 고통을 알아주는 것.

Marllin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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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llin Zero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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