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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와 역지사지(易地思之)

  • 작성자 앩옭
  • 작성일 2026-10-02
  • 조회수 88

인류세(Anthropocene)

인류세(Anthropocene)란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본래의 사람은 나약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털이 적고 무리 지어 다니는 나약한 생물이었죠. 특별한 것도 없었습니다. 여느 동물처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겁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지구의 정점에 서있습니다.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지금까지 지구의 최강자였던 공룡, 곰, 사자, 메갈로돈 같은 포식자들은 어떻게 정점에 올랐을까요? 그들은 우월했습니다. 유전자 변이었을지 초월적 존재의 설계일지 확실히 아는 것은 없지만, 그들은 그들 주변의 생물보다 우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나 잘났다면. 죄다 잡아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왜 그들은 그러지 못했을까요? 이건 피식자의 적응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피식자들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열을 다해 뛰고 도망쳤습니다. 영리해지고 빨라졌죠. 그 템포에 맞춰 포식자들도 굶지 않기 위해 적응하고 뛰어나진 피식자들과 대등할 입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연은 오랜 시간 그 구조를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안정적이고도 오래된 규칙을 깨버리는 동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 즉 인간이죠. 


역지사지(易地思之)

인간은 많은 불문율을 깨왔습니다. 다른 생물들은 지금껏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을 이뤄왔죠. 돌을 쪼개고 나무막대를 구부려 도구를 만드는 생물은 있었지만, 지금껏 그 둘을 묶어서 사용한 생물은 없었습니다. 센세이션 하죠. 인간은 그런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급속도로 성장했습니다. 겨우 30만 년 만에요.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죠. 무엇 때문에 급속도로 성장했는지 우리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라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역사는 대부분 지워진 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사촌의 마지막도 알지 못합니다. 종교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이었을까요? 인간은 무엇이 그렇게 잘났기에 정점에 섰을까요? 이 궁금증은 잠시 넣어두고 오늘의 주제 중 하나인 역지사지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빠르게 정점에 섰습니다. 자연이 적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로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대응하지 못한 자연은 인간에게 짓눌렸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허를 찌른 인간은 모든 지구생물의 정점 위에 섰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풍요의 시대를 비교적 꽤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이 역지사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짓눌린 자연이 되고 있죠. 우리는 자연 안의 생태계 교란종중 가장 거대한 부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사회 안에 새로운 생태계교란종이 나타났죠. 그것이 바로 AI입니다. 

우리가 급속도로 정점에 서며 많은 생물을 멸종시킨 것이 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직업이 AI의 급진적인 성장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죠. AI는 인간보다 똑똑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진법코드가 인간의 밥줄을 매일 새롭게 뚝뚝 끊어대고 있습니다. 업보는 돌아오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 안심인 것은, AI는 사용하는 인간이 없다면 사라지는 것이라는 거죠. 하지만 인간은 편리한 걸 좋아합니다. 그렇게도 게으른 인간이 고작 남의 밥줄을 위해 수고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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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보고

사람들은 때론 본 걸 계속 보죠. 오늘 저도 오디세이라는 영화를 두 번째 보고 왔습니다. 사람들은 왜 굳이 같은 걸 계속 볼까요? 기억이 나지 않아서? 글쎄요, 딱히 기억한다고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닌 매체를 볼 때도 있던데요. 그냥 재밌어서? 글쎄요, 재밌는걸 한 번만 보고 마는 사람도 있던데요. 어째서 일까요? 사람마다 이유는 제각각일 수 있지만, 제가 오늘 오디세이를 다시 본 이유는 영화를 다시 한번 경험하고 또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그 장면이 뭐길래 그랬을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어째서 그 장면을 다시 보기를 그토록 원했을까? 그리고 저는 생각했죠. 마음이 동한 것이 아닐까? 그 장면은 저에게 여운을 남겨줬었습니다. 가끔씩 생각이 났죠. 어쩌면 사람은 여운에 취해 그걸 다시 경험하고자 반복적인 선택을 하는 게 아닐까요? 제 생각은 일단 이렇습니다. 어쩌면 단순히 멋있어서 다시 보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멋있지 않은 것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건 왜일까요? 저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라는 소설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힐링소설류라서 오디세이에서 볼법한 멋진 장면은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왜 이 책을 다시 봤을까요? 저는 그 소설에 나오는 공간을 상상하며 읽는걸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고 몇 달이 지나니, 그 공간을 다시 상상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주기적으로 그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설 속 공간을 생상하며 읽고 난 뒤, 제가 그 여운을 느끼고 다시 그 소설을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이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전혀 다른 류의 작품입니다. 매체도, 내용도, 장르도 확연히 다르죠. 그런데 왜일까요? 저는 그 두 작품을 다시 봤습니다. 여운이라는 똑같은 감정 때문에요. 그럼, 도대체 이 여운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운 (餘韻) 1. 명사 아직 가시지 않고 남아 있는 운치. 2. 명사 떠난 사람이 남겨 놓은 좋은 영향. 3. 명사 소리가 그치거나 거의 사라진 뒤에도 아직 남아 있는 음향.]* 여운은 운치 즉 [고상한 멋]이 남아있거나 남겨진 좋은 영향을 받았을 때를 주로 의미합니다. 그럼 우리가 여운을 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인간이 여운을 느끼는 것은 예술적인 것 혹은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보겠습니다. 예술 작품은 여운이 남아야 좋은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여운을 남긴 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되도록이면 좋은 쪽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여운을 남기는, 즉 다시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 가장 좋은 것이지 않을까요? 일단 저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전 문학도 많은 사람이 여운에 빠져 또 보고 또 보게 만들어 오래도록 기억되니까요. 예술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듯 여운을 느끼는 데에도 정답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언제나 만날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어떤

  • 앩옭
  • 2026-09-19
움직임과 자전

그래도 움직입니다.해는 계속 움직입니다. 지구가 움직여서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해도 돕니다. 움직입니다. 계속해서 말이에요. 달도 움직입니다. 지구가 움직인다고 다른 것들이 멈춰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멋지지 않나요? 누가 지켜보든, 지켜보지 않든. 묵묵히 할 일을 해내고 있잖아요. 저는 우리 주변에서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자신의 관점만으로 판단하고 탓하지 말아요. 그 탓은 언젠가 돌고 돌아 다시 당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거든요. 우리는 우리대로, 스스로의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죠. 누군가가 아니꼬워도 몇 번 정도는 봐주세요. 각자의 사정이 있고 서로의 입장이 있는 법이니까요. 해는 돕니다. 달도 돕니다. 하지만 지구도 돕니다. 스스로가 최선을 다 한다면, 어느샌가 그 주변의 모두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자전. 해와 달도 돌고 다른 행성들도 돌지만, 지구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지구가 잠깐 멈춘다고 생각해 볼까요? 당장 세상이 초토화될 겁니다. 이 처럼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하나 멈춰서 다른 누군가의 세상이 파괴될지도 모르니까요. 나비효과는 조금 비현실 적이지만, 틀린 말도 아닙니다. 당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재앙이 일어날 수도,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해야 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죠. 하지만 신중을 핑계로 게을러지면 안 됩니다. 시간이 맞지 않다는 것을 핑계로 할 일을 미뤄서도 안됩니다. 만약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그래서 미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 게으름은 반드시 당신에게 아직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돌아갈 겁니다. 지구가 자전을 쉬지 않듯이. 우리도 최소한의 최선만큼은 해야 합니다.

  • 앩옭
  • 2026-09-14
그림자의 색

그림자는 과연 까만색뿐일까요? 사물이 빛을 가려 광원의 이면에 어둠이 생기는 현상을 그림자라고 하지요. 그런데, 어둠이라는 건 과연 검은색일까요? 저는 '그림자'라고 하면 주로 어두운 이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하루의 끝을 알리는 역할으로도, 어딘가 섬뜩한 역할으로도 자주 생각되곤 하죠. 하지만, 해가지는 방의 그림자는 검지 않습니다. 오히려 쨍한 푸른빛이죠. 또한 그림자는 완전한 어둠이 아닌, 사물의 색과 그 주변의 색을 그늘지게 하는 것 이죠.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사실 그건 정의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그림자는 주변의 원래 빛깔에 따라 색이 바뀌거든요! 조명의 강도에 따라서도, 빛의 색에 따라서도. 자유자재로 바뀝니다. 멋지지 않나요? 제가 생각하는 그림자는 시원하고 옅은 먹색을 기본으로 둔 일종의 필터 같습니다. 아무리 그림자가 져도, 원래 그 주변의 색을 암흑으로 물들일 순 없죠. 갑자기 그림자에 대해 얘기하는 게 지루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삶에 그림자가 져도. 아무리 우울해지고, 힘든 상황에 놓여도. 당신이란 사람의 빛은 결코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잠시 옅어지는 거죠. 알고 있습니다. 빛이 옅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울한 것을요.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곧 해가 뜰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밝은 새로운 날은 당신을 더 눈부시게 비춰줄 거예요. 그야, 당신의 빛은 원래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잠시 옅어진 색은 곧 선명해질 거예요.

  • 앩옭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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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앩옭

    3일 정도 생각해 왔던 것을 쓰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어서 1일 1글이 깨져버렸군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이따 밤에 하나 더 쓸 테니 흐린눈 해주세용...

    • 2026-10-02 00:44:20
    앩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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