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의 사계절에게
- 작성자 박하윤
- 작성일 2025-07-05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18
봄
기대라는 이름의 떨림 열여섯의 봄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벚꽃은 어김없이 피었고,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나도 그런 봄의 흐름에 맞춰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웃었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 교실 문을 열었다. 어쩌면 이번엔 다를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이 많아지고, 내 자리가 생기고, 조금은 덜 외로워질지도 모른다고. 그래서인지 그 봄은 유난히 따뜻했고, 햇살이 닿는 벤치에 앉아, 괜히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해보았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피지도, 쉽게 녹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곧 알게 되었다.
여름
숨 막히는 열기 속에서 봄이 지나고, 교복 셔츠가 얇아질수록 내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친구들 틈에 껴 있는 것 같아도, 어딘가 나는 혼자였다. "왜 아무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땀처럼, 불안이 이마에 맺히고 나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활발한 성격’이라고 나를 소개했지만, 사실 나는 점점 안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차라리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런 날에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면 나는 마음속에서 아주 작게 웃었다. ‘괜찮아, 아직은.’ 그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여름을 견뎠다.
가을
익어가는 마음, 그리고 외로움 가을이 왔다. 운동장엔 낙엽이 쌓였고, 시험지는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공부에 매달려야만 했다. 혼자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 바쁘다는 핑계를 붙잡기 위해. 책상 위엔 형광펜이 늘어났고, 마음엔 물음표가 늘어났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나는 뭘 위해 살고 있지?"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철학이 자꾸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럴수록 나는 내 안에 있는 감정들을 꺼내지 못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나조차 나를 몰랐던 계절.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괜히 쓸쓸해졌고, 그 쓸쓸함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겨울
멈춘 시간 속에서 열여섯의 겨울은 조용히 찾아왔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나는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추워진 공기만큼 차가워진 마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지금 이 삶은, 나다운 걸까?”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그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계절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안에서 천천히 얼음이 녹고 있었던 거다. 자책하던 기억을 내려놓고, 혼자 울던 밤을 껴안고, 나는 나와 화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피어나는 봄을 기다리며 열여섯의 네 계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웃는 날도 있었고, 무너지는 날도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끝내 멈추지 않았다. 지금 나는 열일곱. 그리고 다섯 달 뒤면 열여덟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 ‘어른’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전에 내가 먼저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열여섯의 사계절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계절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나로 자랐다. 그래서 이제는 말해주고 싶다. 그 계절을 견딘 너, 정말 수고했다고. 그리고 참, 고맙다고.
추천 콘텐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게 언제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가 무너지는 소리만 들렸다. 숨 쉬는 게 괴롭고, 사람들 속에서 웃고 있는 내 얼굴이 더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도 몰랐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내가 지금, 옥상 난간에 앉아 있다는 걸. 밤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딱 한 발만 내디디면 이 고통도, 내 존재도 끝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발을 떼지 못했다.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진심으로 안아줄 누군가가 딱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 작은 희망 하나가 내 몸을 붙잡았다.나는 결국 난간에서 내려왔다.그날 이후로 완벽하게 괜찮아진 건 아니다.여전히 불쑥불쑥 텅 빈 마음에 갇히고, 사소한 말에 울컥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넘긴 내가 가끔은 참 기특하다. 살아 있는 게 용기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선택이었다는 것도.죽기엔 너무 무서웠고, 살기엔 너무 벅찼던 삶. 그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냥 살기로 했다. 어쩌면 그건 가장 나다운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한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조심스러웠고, 무서웠다. 그날 밤 옥상에 있었던 일, 내가 얼마나 끝을 생각했는지를 말하는 건 마치 마음을 찢어 내어 주는 일 같았다.하지만 그 친구는 조용히,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살아줘서 고마워.”나는 그 말을 듣고 울었다. 그 한 문장이 내가 살아낸 모든 시간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걸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토록 큰 위로일 줄 몰랐다.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지금은 너무 힘들어도, 나중에는 정말 괜찮아질 거예요.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시간은 아주 조금씩 당신이 살아갈 이유를 데려다줄 거예요.당신이 얼마나 버텼는지 나는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여기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살아줘서 고마워요. 정말, 진심으로.
- 박하윤
- 2025-06-26
두 번째 시험은 첫 번째보다 낫기를 바랐다.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과목 수도 많고, 시험 범위도 끝이 없었다. 그때는 그냥 버티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두 번째는 달랐다. 익숙해졌으니, 이제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따라붙었다. “너 지난번보다 나아야지?” “이번엔 등수 좀 올라야지?” 말들은 가볍지만, 마음에는 무겁게 쌓였다.지난 시험의 실수들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수학의 그 한 문제, 영어 듣기의 마지막 선택.전부 다시 만난 것처럼 내 앞에 나타났다.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달라진 건 집중력만이 아니었다.초조함, 자책, 그리고 그 사이에서 꿋꿋이 버텨야 하는 내 의지.하루하루 쌓아 올린 공부는 마치 모래성 같아서, 조금만 방심하면 무너질 것 같았다.하지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아니, 그런 생각이 들 겨를이 없었다.너무 바쁘게, 치열하게 살고 있었으니까.이번 시험에서 꼭 전교 5등 안에 들고 싶다.성적표에 적힌 숫자 때문만은 아니다.지난 시험이 나를 시험했다면, 이번 시험은 내가 나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묻는 시간.시험이 끝나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겠지.친구들과 웃고, 바람 쐬며 걷고, 평범한 하루가 돌아오겠지.하지만 그전까진,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전쟁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지금 나는 나를 이기고 있는 중이다.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싸움이다.
- 박하윤
- 2025-06-16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