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우리의 여름은 어떤 소리일까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07-16
  • 조회수 774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두통이 자주 온다. 아마도,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서일 것이다. 하늘을 보면, 여름의 맑은 햇빛보다, 어두운 먹구름이 껴있고, 땡볕이라 불리는 태양 빛의 더위보다, 습기 찬 공기의 더위가 살을 만지는 듯했다. 이를 보고 있으면, 윤이안 작가의 소설 <온난한 날들>의 대사 한 줄이 떠오른다. 

"이 정도면 이제 아열대성 기후라고 해야 되지 않아요?" 

이 소설의 짧은 문장이 올여름, 혹은 올봄의 기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위 소설을 알게 된 작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여덟이 된 2025년도의 여름을 보면, 위 문장과 현 상황이 일치되는 것 같다. 단순, 농담으로 치부되던 말들이 당연하다시피 현실이 되는 것 같다.


2025년도 6월이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초여름의 더위가 내 살에 닿기를 거부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습기를 잔뜩 먹은 공기가 내 살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 숨쉬기가 어려워졌고, 일방적으로 더운 것이 아닌 불쾌하다고 느낄 정도로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관계, 특히 동생과의 관계에서 짜증이 많아졌다. 방송에서는 "불쾌지수가 높아져"라는 말로 현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 원인이 자연이라고, 기후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날씨 때문에 그런 거야."

 "이사 해서 그런 거야." 

이런 말들로 변화에서 오는 짜증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계속 날씨 탓을 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날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자, 하나의 생명체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내던 7월 16일 밤, 가족들과 밤 산책을 끝내고, 잠을 자려고 했다. 아직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주밖에 안 돼서 그런지 잠에 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계속 뒤척이고, 어둠 속에서 휴대폰만 보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아마, 새로운 곳이라 불안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젯밤은 한 가지의 소음이 계속 내 귀를 맴돌았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였다. 그들은 뭐가 그리 좋아서, 비가 오는 날에 이렇게 울어 대는 것일까? 자신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는 걸까? 개구리들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천적일 것인데 말이다. 그런 개구리들처럼 나 역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수면의 천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람은 비바람처럼 강하게 불었고, 빗소리 역시 강하게 떨어져서 그런지, 집 안은 시원했다. 그래서 그럴까?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잠을 잡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단순 소음이 아닌, 그들의 소통 방식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언어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들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일상적인 대화와 응급한 대화가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했다.

 "비 많이 오니까, 조심해."

 "이곳은 곧 있으면, 물이 불어나니까, 빨리 대피 하십시오." 

"도와주세요."

와 같은 말들이 인간과 다른 동물, 그리고 개구리라는 한 종족에게 알리는 듯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기분과 위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누워서 들어만 주었다. 짜증 내지 않고 바람에 살갗을 스치며 잠에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오전 7시였다. 평소보다 오래 잤다. 특히 여름 들어서는 제일 늦게 일어난 것 같다. 아마도, 비가 와서 시원하게 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몸은 개운했지만, 머리는 아팠고, 아침 시간의 루틴은 깨졌다. 정신없이 아침을 준비했다. 그러던 중 동생이 한마디를 했다. "오늘은 짹짹이가 이 시간에 울지 않네." 그렇다. 매일 같은 시간 울었던 동네 잡새가 오늘은 울지 않았다. 어제 내리던 비를 피해 다른 곳으로 날아간 것 같지만, 잡아먹혔거나, 얼어 죽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비슷한 하루에서 존재 하나가 지워졌다. 뜨거운 수증기는 하늘에서 물이 되어 내리지만, 공기는 차가웠다.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내 하루에도, 기후에도.


 며칠 전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제는 장마가 아니고, 장마철이라고 하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2025의 여름에는 장마는 없고, 장마철이 있다. 그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불쾌지수는 일상이 되어 갔다. 생물은 많은 진화를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인간도 그렇고, 동물들도 그렇고. 우리는 지금도 바뀌어 가는 자연 속에서, 끝없이 진화하고, 퇴화하고 있다. 이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개구리가 어제저녁에 운 걸까? 변화가 무섭지만, 변화해야 하는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생명들의 의지이자, 책임이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생긴다.


누구의 잘못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단지, 한 초등학생의 형이자,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서, 묘한 책임감이 생긴다. 물론 나는 환경적 변화에서 자유로운 존재도 아닌 인간이자, 이 변화를 만든 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른 생멍들과 함께 책임지며,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단순한 농담이었던 상상을 다시 현실로 보고 싶다.

추천 콘텐츠

*후배에게-3월에 다시 베어 문 한여름

글을 쓰는 모든 문우. 글티너 여러분들 모두 안녕한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요? 저는 2026년 3월 대학교에서 캠퍼스의 봄을 맞이하며 지금까지 글틴에 남겼던, 흔적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작년 수상집에 실었던 <시간 무빙워크>의 작가 노트를 <한여름을 베어물며>의 작가노트를 쓰기 위해 계속 바라봤답니다. 그런데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읽을 때마다 감정을 잡기가 힘들어지네요. 아마도, 위 소설의 일부가 제 삶의 이야기라 그런 거 같습니다. <한여름을 베어물며>는 제 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고등학교 자퇴 이후 학교와 함께 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아마도, 미련 때문이겠죠. 저는 기침 틱과 기관지염, 천식 등이 결합 된 기침이라는 문제로 고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기침과 더불어 이명과 같은 고통이 찾아왔으니까요. 이런 ‘나’라는 한 사람과 같은 반 친구들을 위해 담임 선생님은 자퇴를 권유했고 저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 가는 마음과 함께 서운하고 미움의 감정도 함께 듭니다.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저 자체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소복이 쌓여 왔고 결국 꿈으로 그 당시에 표출된 거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글에 녹아버린 감정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저 살아냈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지나온 날들을 이겨내 보겠다는 오기가 글을 씀으로 어느 정도는 감정이 품은 감정을 표출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작가 자신이 쓰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 글은 항상 '나'라는 사람을 담기에 저 역시 그런 감각을 매번 지니며 살아갑니다. 글을 통해서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쓰지 않고, 자퇴와 건강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짐작합니다. 한 발 짝 움직이는 오기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집에서 유튜브나 쇼츠 같은 것들로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자신이 담긴 글은 자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계속 상처를 마주하고, ‘나’ 자신을 마주할 때, 힘들고 벅차고 아프겠지요. 그런데도, 끝까지 글을 쓰는 ‘나’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발 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오기로 밀어붙여 보세요. 여러분에게 글틴은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힘든 일이 있거나, 살기 위해 쓴 단상들 혹은 문학들을 표출하고 알려주세요. 저 역시 글틴을 만나면서 저를 끝까지 붙들며 쓸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멘토님과 수많은 글틴 관계자, 글티너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손을 뻗어주세요. 형식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언제나 뒤에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작가 노트>로 진심을 적어 내릴 수 있게

  • 송희찬
  • 2026-04-29
나를 안아주는 날

19살이 되기 전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 내줄 나날이 고마워. 3월 27일이날 삼이 총 네 개가 존재한다. 3월의 3은 하나. 27일의 3은 셋 {3x3x3} 총 합해서 네 개. 나는 2008년 3월 27일 3과 4가 교차하는 날에 태어났다. 찡얼거리며 울부짖으며 내 존재를 세상으로 내밀며. 우량아가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날만 되면 나와 거리를 둔다. 찡얼거리는 내가 미워져서. 나에게 생일은 이런 날이다. 우리 가족은 생일에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최근 명예 권사를 받은 친할머니의 명령에 따라. 그녀는 다른 미신은 믿지 않아도, 선풍기를 켜고 문 닫고 자면, 죽는다는 것과 사업하는 집안에서 생일날 미역국을 먹으면 사업 말아 먹는다는 미신만큼은 믿었다. 그래서다. 할아버지가 자영업으로 재작년까지 카센터를 운영하셨고, 아빠 역시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사업이 나름 잘된 사업가 집안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날마다 쇠고기뭇국을 먹거나 아예 국을 먹지 않았다. 만약 할머니의 말에 반기를 들면 그녀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어져 갔기에. 생일날 우리 가족은 축하하는 기분을 전체로 느끼기보다는 할머니의 굳은 주름살이 더 신경이 쓰여 결국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 최대한 장단을 맞춰줬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어린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이루려고 했다. 특히 생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태어남이라는 포상감이 있었기에, 나를 태어나게 해주고 이루게 해준 모두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요구했다. 터닝메카드 장난감 이라던지, 신비아파트 장난감 같은 것을. 그리고 원하는 음식을 생일날에는 모두 요구했다. 그러고는 맛있게 행복한 표정으로 먹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합가했기 때문이다. 같이 살지 않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기가 눌려 가정에 방관자였다. 한 가정에 삼 세대 이상이 살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특히 하루에 대다수를 집에서 함께 지내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갈등이 가장 많았다. 할머니의 생활 방식을 할머니가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강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항상 그녀의 걱정을 들어야 했다. “나쁜 친구 가까이하면 안돼.” “어디 놀러 갔다가 사람들 죽었단다.”라는 식으로 놀이터 갈 때도 친구 집으로 과제를 하러 갈 때도 매번 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지키려고 할머니를 말리 거나 “어머니.”라는 단어로 상황을 정리시켰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자주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보이지 않아도 할머니의 손에 있는 것, 같았고 숨이 조여왔다. 이가 계속 쌓이다가 가끔은 엄마의 화가 다스려지지 않고 폭발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우리 집안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내 방에 들어가 그를 안고 내 귀를 막으며 소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온몸을 떨며. 그 순간의 공기를 나에게서

  • 송희찬
  • 2026-03-31
빛나는 영혼들의 품에서

2026 글틴 캠프가 끝나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원래라면, 서울역 동편에 있는 환승센터에서 판교 가는 버스를 타야 했지만, 나는 작년처럼 수원으로 향하는 1호선을 타 버렸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할머니가 있는 수원에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동생은 혼자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개학 한 달 전 2월에는 할머니네에서 데려와야 했기에, 1월 30일 나는 그들에게 향해 갔다. 2026 글틴 캠프는 2025 글틴 캠프처럼 파주 지지향에서 했다. 책과 글틴. 때려고 해도 땔 수 없는 운명이라 너무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작년에도 생각했었다. 그런 곳에 용기를 가지며 글을 쓰고, 본인의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는 여러 명의 글티너. 그리고 위로를 전달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것이, 2025년 1월 집결지인 서울역과 파주 지지향에서 느낀 관계들의 온기였다. 2025년 캠프에서는 활발하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글티너는 아니었다. 그저, 글틴 비공식 단톡방과 개인 메일로 몇몇 글티너와 이야기 나누고 소통했을 뿐. 그 이상과 그 이하의 것은, 채우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랬던 작년의 나는 캠프의 시작이었던, 서울역 집결에서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고 관계자 주변만 돌았다. 스크린으로만 봤던 사람들의 얼굴을 실제로 봤을 때의 어색함. 그 어색함이 나를 그해 1월 서울역 동편에서 돌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일부 사람들.“혹시 희찬님?”나지막하게 들려오고, 글틴에서 글로만 마주했던, 익숙한 이름들이 나를 알아봐 줬다. 그나자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까? 얼굴을 보이며 활동했던 게, 2024년도에 했던 글틴 리딩클럽. 패널도 아닌, 그냥 일반 참가자로 고선경 시인을 만나러 간 것, 뿐인데. 그러나, 23년도에 활동했던, 선배님들. 23년도부터 25년도 2월까지 멘토셨던, 그해 나와 같은 합평 조였던, 김태선 평론가님과의 대화가 이 순간을 이해시켰다.“작년에는 영상으로 보고, 올해는 이렇게 보내요.” 2024년도 1월에 했던, 글틴 캠프는 고등학교 예비 소집이 있어 가질 못했다. 그렇기에, 작년까지 있던 다작 상이자 특별상 개념인 장려상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내야 했다. 어떤 말을 했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힘든 시간을 마주하면서 꾸준히 써나가겠다는 의지만 보였던 것, 같은데. 이를 60초라는 시간에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기도 했다. 25년도 합평 때, 김태선 멘토님 조에서 거의 유일하게 감상. 비평이었다. 이때도 그렇고, 26년도에도 그렇고. 글틴 캠프에서 감상. 비평의 합평을 희망하는 글티너는 적은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감상. 비평 멘토였던 김태선 평론가님은 수필과 함께 내 감상. 비평에 대하여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그러면서도 햄버거를 먹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즐겁고 피곤한 첫 글틴 캠프의 첫날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글틴 캠프는 작년도 올해도 밤이 진짜였다. 2025년도 글틴 캠프

  • 송희찬
  • 2026-02-06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송희찬

    수필은 올 1월 이후 오랜만에 올리네요^^; 어제 생각한 단상에서 여기까지 뻗었네요.ㅎㅎ 아무튼 다시 글 써야겠어요.^^

    • 2025-07-16 16:11:28
    송희찬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