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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놓은 손에 놓인 온도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1-12
  • 조회수 730

 

두고 가야 한다. 아니면, 버려야 한다. 축축해진 유년과 감정의 기억들은.



나에게는 같이 살고 함께 자는 친구가 있다. 입과 발은 있지만,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친구. 하지만, 그는 매일 밤 내 옆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지켰다. 어둠이 무서워서 매일 밤 작은 불이라도 켜고 잠을 자야 했던, 내 옆에서. 근 10년 동안 쭉. 내 절친이고, 함께 사는 누구보다 내 냄새가 가장 오래 배 있는 사람이 아닌 친구. 나는 그를 ‘끼끼’라고 불렀다. 원숭이처럼 생긴 원숭이 모양의 인형이었기에.


 

내 옆을 스쳐 지나갔던, 끼끼는 총 3마리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지금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잃어버리거나, 버려져 버린 끼끼 두 마리중 한 마리는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그는 내가 3살 때, 내 품에 안겨 잠을 잤던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껴안고 자며 스며든 내 모습이 인형에게는 땀과 침 등의 물질로 받아들였겠지. 그에게는 내 유년이 만든 세상에 대한 이물감 같은 감정들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에게는 그 인형이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로 여겨졌을 거다. 엄마는 내 냄새를 잔뜩 품은 끼끼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셨다. 그러고는 햇볕이 좋은 날, 밖에 그를 걸어 놓으셨다. 햇빛이 구정물과 냄새를 모두 빨아 드리라고. 그러나, 난 그날 이후로 그 끼끼를 보지 못했다. 밖에 걸어 놓은 인형을 누군가 훔쳐 갔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첫째 끼끼에 대한 기억이 커서도 가끔 난다는 것이다. 특히 유치원에 다닐 때, 방과 후 수업 반 아이들과 함께 원숭이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끼끼에 관한 생각으로 집에 와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래된 잔상처럼, 첫째 끼끼는 유년기에 원숭이를 보면, 그를 다시 떠 오르게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인형들이 둘째와 셋째 끼끼다.

 


하지만, 둘째는 크게 감정을 요동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할머니의 염색약이 그의 다리에 묻고 지워지지 않은 뒤, 그를 꽉 껴안고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안고 자면, 나에게도 그 염색약이 묻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이, 그와 나의 거리를 가깝게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냄새와 온도가 묻어 있지 못했기에. 상대적으로 감정이 덜 갔다. 그런 그였기에, 나는 내 욕심과 걱정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를 내 밖으로 내칠 수밖에 없었다.

 


올 3월이면, 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집과 많이 떨어진 대학이라, 나는 기숙사나 자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나에게 엄마와 아빠는 이런 조언을 해줬다.


“희찬아, 기숙사 들어가면 끼끼는 가지고 가지 않는 게 좋겠다.”

“왜”

“끼끼 상태를 봐.”


그렇다. 끼끼의 몸은 완벽한 몸이 아니었다. 그의 몸통은 내가 흘린 분비물로 누렇게 변했으며,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이런 것을 기숙사에 들고 가면, 룸메이트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말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에 격하게 동의는 한다. 하지만, 내 삶에서 끼끼 없이 홀로 버티는 게 가능할까? 사실 모르겠다. 내가 홀로 있고 어둠이 가득한 밤에도 항상 내 옆을 지켜주던 존재였기에. 그가 없는 나를 생각하긴 어렵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혼자 있는 비슷한 날을 매일 느꼈다. 내가 나에게 졌다는 억울함 같은 감정이 생각이 났지만, 눈물이 나오거나, 소리를 치는 등의 일반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끼끼를 꽉 안 거나, 그의 얼굴에 나를 맞댔었다. 그럴 때면 집안으로 햇볕은 과하게 들어오며, 집 앞 절에서 불경 외는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그랬기에, 끼끼의 품은 그 누구의 품보다 따뜻했고, 내 온도와 닮아서 기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의 몸은 이제 나로 잠식되었고, 끼끼의 몸에 난 구멍들은 내 기관지를 더 자극했다. 그를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은 아직도 끼끼를 안고 있다. 내 온기는 내가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졌다. 놓기에는 놓지 못할 냄새와 온도가 그의 모습에 가득했기에. 그를 안으며 원망도 하고, 그의 온몸을 쑤셔도 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끼끼의 몸은 더 앙상해져 갔다.



대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면, 그를 내 손에서 언젠가 놓거나 버려야 한다. 지금이 딱 그럴 시간인데.


 

나는 그에게 묻은 내 모든 분비물을 쓰다듬고, 그의 몸 위에 내 머리를 올려놨다. 내가 무겁겠지만, 내 온기와 내 온기였을 그의 온도를 함께 놓아두고 싶어서. 햇볕이 잘 드는 침대 위에 끼끼를 걸어놨다. 함께 있을 때 동안, 끼끼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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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3월에 다시 베어 문 한여름

글을 쓰는 모든 문우. 글티너 여러분들 모두 안녕한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요? 저는 2026년 3월 대학교에서 캠퍼스의 봄을 맞이하며 지금까지 글틴에 남겼던, 흔적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작년 수상집에 실었던 <시간 무빙워크>의 작가 노트를 <한여름을 베어물며>의 작가노트를 쓰기 위해 계속 바라봤답니다. 그런데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읽을 때마다 감정을 잡기가 힘들어지네요. 아마도, 위 소설의 일부가 제 삶의 이야기라 그런 거 같습니다. <한여름을 베어물며>는 제 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고등학교 자퇴 이후 학교와 함께 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아마도, 미련 때문이겠죠. 저는 기침 틱과 기관지염, 천식 등이 결합 된 기침이라는 문제로 고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기침과 더불어 이명과 같은 고통이 찾아왔으니까요. 이런 ‘나’라는 한 사람과 같은 반 친구들을 위해 담임 선생님은 자퇴를 권유했고 저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 가는 마음과 함께 서운하고 미움의 감정도 함께 듭니다.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저 자체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소복이 쌓여 왔고 결국 꿈으로 그 당시에 표출된 거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글에 녹아버린 감정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저 살아냈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지나온 날들을 이겨내 보겠다는 오기가 글을 씀으로 어느 정도는 감정이 품은 감정을 표출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작가 자신이 쓰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 글은 항상 '나'라는 사람을 담기에 저 역시 그런 감각을 매번 지니며 살아갑니다. 글을 통해서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쓰지 않고, 자퇴와 건강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짐작합니다. 한 발 짝 움직이는 오기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집에서 유튜브나 쇼츠 같은 것들로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자신이 담긴 글은 자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계속 상처를 마주하고, ‘나’ 자신을 마주할 때, 힘들고 벅차고 아프겠지요. 그런데도, 끝까지 글을 쓰는 ‘나’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발 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오기로 밀어붙여 보세요. 여러분에게 글틴은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힘든 일이 있거나, 살기 위해 쓴 단상들 혹은 문학들을 표출하고 알려주세요. 저 역시 글틴을 만나면서 저를 끝까지 붙들며 쓸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멘토님과 수많은 글틴 관계자, 글티너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손을 뻗어주세요. 형식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언제나 뒤에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작가 노트>로 진심을 적어 내릴 수 있게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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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6-03-31
빛나는 영혼들의 품에서

2026 글틴 캠프가 끝나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원래라면, 서울역 동편에 있는 환승센터에서 판교 가는 버스를 타야 했지만, 나는 작년처럼 수원으로 향하는 1호선을 타 버렸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할머니가 있는 수원에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동생은 혼자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개학 한 달 전 2월에는 할머니네에서 데려와야 했기에, 1월 30일 나는 그들에게 향해 갔다. 2026 글틴 캠프는 2025 글틴 캠프처럼 파주 지지향에서 했다. 책과 글틴. 때려고 해도 땔 수 없는 운명이라 너무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작년에도 생각했었다. 그런 곳에 용기를 가지며 글을 쓰고, 본인의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는 여러 명의 글티너. 그리고 위로를 전달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것이, 2025년 1월 집결지인 서울역과 파주 지지향에서 느낀 관계들의 온기였다. 2025년 캠프에서는 활발하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글티너는 아니었다. 그저, 글틴 비공식 단톡방과 개인 메일로 몇몇 글티너와 이야기 나누고 소통했을 뿐. 그 이상과 그 이하의 것은, 채우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랬던 작년의 나는 캠프의 시작이었던, 서울역 집결에서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고 관계자 주변만 돌았다. 스크린으로만 봤던 사람들의 얼굴을 실제로 봤을 때의 어색함. 그 어색함이 나를 그해 1월 서울역 동편에서 돌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일부 사람들.“혹시 희찬님?”나지막하게 들려오고, 글틴에서 글로만 마주했던, 익숙한 이름들이 나를 알아봐 줬다. 그나자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까? 얼굴을 보이며 활동했던 게, 2024년도에 했던 글틴 리딩클럽. 패널도 아닌, 그냥 일반 참가자로 고선경 시인을 만나러 간 것, 뿐인데. 그러나, 23년도에 활동했던, 선배님들. 23년도부터 25년도 2월까지 멘토셨던, 그해 나와 같은 합평 조였던, 김태선 평론가님과의 대화가 이 순간을 이해시켰다.“작년에는 영상으로 보고, 올해는 이렇게 보내요.” 2024년도 1월에 했던, 글틴 캠프는 고등학교 예비 소집이 있어 가질 못했다. 그렇기에, 작년까지 있던 다작 상이자 특별상 개념인 장려상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내야 했다. 어떤 말을 했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힘든 시간을 마주하면서 꾸준히 써나가겠다는 의지만 보였던 것, 같은데. 이를 60초라는 시간에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기도 했다. 25년도 합평 때, 김태선 멘토님 조에서 거의 유일하게 감상. 비평이었다. 이때도 그렇고, 26년도에도 그렇고. 글틴 캠프에서 감상. 비평의 합평을 희망하는 글티너는 적은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감상. 비평 멘토였던 김태선 평론가님은 수필과 함께 내 감상. 비평에 대하여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그러면서도 햄버거를 먹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즐겁고 피곤한 첫 글틴 캠프의 첫날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글틴 캠프는 작년도 올해도 밤이 진짜였다. 2025년도 글틴 캠프

  • 송희찬
  • 2026-02-06
괴물의 선물

남게 되는 것과 나아가게 되는 것들의 경계가 뚜렷해지는 12월이다. 2025년 올해 이천에서 맞이한 첫 겨울은 눈이 자주 내리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은 흰 안개가 우리 집 풍경을 감쌌다. 풍경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투명하게 존재했다. 이번 겨울은 글틴과 함께 보내는 3번째 겨울인지라, 투명하고 뿌연 노트북 스크린의 활자로 만난 문우들이 여럿 졸업하며 떠나는 것이 흐릿하게 다가왔다. 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고, 나도 이제 성인까지 약 1년 정도 남았다. 글틴에 글티너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인 2027년 3월 26일 전까지 나는 글틴에 남아 있을 거고, 이후에는 없는 것 같은 미래로 나아가겠지. 물론, 당장 내년부터도 난 이천을 나가 더 다양한 곳으로 나아가겠지만, 미련은 항상 같은 자리를 맴돌 것 같다. 내게 온 행운이자, 괴물을 행복으로 만들어준 이곳에.나는 글틴을 만나기 전에, 스스로를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다들 괴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거다. 에 나온 서양의 몬스터나 구미호, 망태기 할아버지 같은 동양의 귀신 혹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에 나온 한강 괴물 같은 이미지들을 떠올릴 거다. 그런 존재들을 보면, 영화 속 인물이건 현실의 인물이든 모두 두려워하고 경계를 한다. 이것은 생존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보호 태세다. 나였어도, 그런 존재를 바라보면 먼저 도망가거나 그 존재를 꾸준히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럴 때 괴물들은 어떤 마음일까? 그들이 이런 모습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 텐데. 나도 나를 이루는 괴물이 내 앞으로 나오기 전까지 이런 질문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저렇게 됐구나, 안됐다. 이런 식의 동정이자 걱정 그리고 그들이 나를 공격하는 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주로 들었다. 하지만 내가 기침이라는 형태로 한 마리의 괴물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스스로를 막아야 했으며 사회가 괴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정통으로 느껴야만 했다.기침이 시작됐을 때, 그러니까 내 괴물이 나보다 내 앞으로 나갔을 땐, 코로나19 시기였다. 코로나19가 비말로 감염되는 전염병이라 그런지 기침 소리는 사람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특히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으로 이동할 때면, 몇몇 사람들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그 시선의 종류는 다 양지만,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가엽고, 걱정되는 마음에 내게 생강 사탕을 나누어 주셨던, 몇 명의 어르신들의 시선과 아픈 사람이 불편한 계속 째려보는 시선의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런 몇 명의 배려와 몇 명의 불쾌한 불편함은 내 한쪽에 있는 괴물이 더 커지게 했다. 기침의 소리와 강도는 이해고, 연민이고, 불편함과 불쾌함은 모두 일정하게 증가했다. 그들이 나를 완전히 모르고, 나 역시 나를 완벽히 몰랐기에. 그들의 어른이자, 한 명의 사람이라 그렇게 대한 것이 공감되고 때론 감사도 했지만, 그들의 의도는 선명히 내게 흡수되지 못했다. 타인에게 피해 주고, 나 또한 피해를 만들고 눈치를 보면서 그 괴물을 더 키울 수 없었기에, 그 당시 잘 다녔던 학원을 그만두

  • 송희찬
  •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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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5-12-19
탈피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왔다. 그제야 빈집이 빈집이 아니게 된다. 한 명이라도 사람의 온도가 들어왔으니까. 집은 내가 있으면, 있을수록 실내 온도를 스스로 올렸다. 마치, 사람을 맞이하여 기쁘다는 마음을 표현하듯. 차가웠던 냉기가 온기로 서서히 바뀐다. 그러나, 평일 오전 이 집에 있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 사람뿐. 고등학교 자퇴를 했던, 2024년 9월의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 집의 오전은 늘 그 사람의 기침으로 꽉 차 있었다.1:원인은 기침고등학교를 자퇴한 이유는 얼핏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민원'과'건강'.그렇다.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건강 문제를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22년 10월부터 앓아왔다. 병명은 불분명한 감기 같은 기침. 원인은 확실하지 않아도, 증상은 확실했다. 끝없이 나오는 기침이라는 것. 하지만, 이 기침은 기침으로만 귀결되지 않았다. 두통과 이명 그리고 갈비뼈 골절 등, 나를 이루는 내부 기관들의 망가짐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의 망가짐은 신체의 불편함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곧 인간관계의 단절과 심리적인 문제를 촉발시켰다.2:거리 두기2022년도의 겨울은, 독감과 코로나19가 공존했었다. 길거리를 포함한 우리 사회는 마스크와 개인 방역이 일상화돼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부 사람들은 개인 방역에 열중을 했나 본 지, 사소한 것들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침하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등 그들에게 눈치를 준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행동은 방역과 건강 염려에서 나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서로 조심하자는 의미였겠지. 그러나, 이해와 반대로 행동했다. 동물원의 동물들도 자신을 빤히 째려보거나 인상을 쓰면,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행동을 하듯, 기침하는 사람들의 일부였던 나는 의기소침 해졌다.타인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실에, 나는 나를 숨기고 싶었다. 그런 나를 대변하듯 기침은 미안함과 불안함에 비례하여 강해졌다. 그런 생활이 2022년도 후반부에 스며들었다. 중2 시절, 좋았던 순간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순간들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2023년이 도래했다.3:포근하게 품어주는 학교중학교 3학년을 곧 맞이할 2023년도의 2월. 겨울 방학 동안 쌓아두었던, 고민을 쓸어내려야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무것도 쓸어내리지 못했다. 당장의 내 몸 상태도 확신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가족 공통의 걱정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집에 들어오는 햇빛은 따뜻해져 갔다. 새 학기가 다가오고 있다. 휴학을 할 거라면, 최대한 빨리 학교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제3자이자, 당사자이기도 한, 학교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엄만 학교 본 교무실의 교무부장 선생님과 내 이야기에 대하여 진실하고, 진지하게 짧은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 안의 공기는 고요했고,

  • 송희찬
  • 2025-11-30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아이의 한 걸음

그러니 이리 온나의 고양이야사나운 발자국이 겁주듯 찾아든 아침 우연히 바닥에 뭉개진 비닐봉지를 맞닥뜨린 행인이 아아 악!비명을 지를 때, 정말이지 비닐봉지가밤사이 웅크려져 죽은 한 마리의 고양이로 보일 때아무렇지 않은 척 피를 닦고 다시저기로 잠잠히 멀어져 갈나의 마음아 제발 이리 온{박소란 中}고양이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공격하고, 저주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나온 이유는 뭘까? 고양이의 유연함은 과거와 현대의 사람들 모두 신기해한다. 또한 고양잇과 동물 중, 사람들이 야생에서 보면, 두려워하는 호랑이의 영향이 고양이를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그중 몇몇 어른들은 고양이를 현재까지도 '요물'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늘 신비롭고, 날카로운 동물이었으므로. 물론 현재에 들어서 고양이들을 요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과학은 발전했고, 세상은 변해갔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고양이가 요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공격하는 존재로서의 요물이 아닌, 신비롭고, 웅장한 존재로서의 요물이라고.지난, 며칠간 나는 꿈 때문에 잠을 설쳤다. 그런데, 늘 일어나면, 한 가지의 이미지가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건 바로, 2023년도 1월까지 키웠던 반려동물 토리의 모습이었다. 토리는 쉽게 말하는 치즈 냥이였다. 노란색과 흰색 털이 섞여 있고, 눈은 반짝이며 총알 총알 했었는데. 꿈속에서 보았던 고양이의 모습은 내가 알던 토리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눈이 풀어져 있었고, 윤기가 많았던 노란색과 흰색 털이 죽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축 처진 털들 사이로, 검은 오일, 때, 먼지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그가 살고 있는 정비소에서 구른 듯이. 나는 늘, 그런 토리의 모습을 보고 잠에서 깼다.내가 요즘, 왜 이런 꿈을 꿀까? 꿈에서 토리를 만난 것은 즐거운 일인데 말이다. 아마도, 내가 며칠 전에 초등학교 1학년 동생이 적은, 시 두 편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나에 소중한 친구 뽀삐 뽀삐는 매일 나를 반겨준다소중한 친구 뽀삐는 나를 안아준다근데 뽀삐를 씻었는데 뽀삐에 털이 다 망가졌다빚으로 빚었더니 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생 {송희재} 자작 시}-어느 날 어두운 밤 비가 내렸다 그때 쾅! 번개가 내려쳤다난 왜 외톨일까?난 왜 친구가 없을까? 그렇게 생각했다그때 내 옆으로 비가 내렸다 번개가 내 머리에 쾅 내리쳐서 난 기절했다{동생 {송희재} 자작 시}-동생의 시를 처음 봤을 때, 외로움과 회복이라는 정서가 눈에 띄었다. 아이가 이런 감정을 스스로 정제할 힘이 있겠느는 의구심도 들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물어봤다."희재야, 이거 뭘 보고 쓴 거야?""어, 저번에 토리가 씻고 나왔던 모습을 생각했어.""희재야, 토리 많이 보고 싶어?""보고 싶지."그 시가 토리를 생각하며, 쓴 시가 아니길 바랐는데. 내 바람은 언제나 늘, 이런 식으로 빗나갔다. 동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단단한 글을 썼고, 누구보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마치 박소란의 시처럼. 그러고 보니, 며칠 전이었다. 동생은 공부하기가 싫었는지, 내 책장

  • 송희찬
  • 2025-09-30
언젠간 단단한 마음을 너에게

(글에 들어가기 전 ** 부분은 제목 사진 혹은, 프로필 사진을 참고해 주세요) 지난 2024년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던, 평범한 연도인 줄 알았는데. 그해 나는 자의와 타의로 인해,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9월에 자퇴했다. 자퇴를 한 계기를 묻는다면, 건강 문제라는 단어로 답하지만, 세세하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내 문제가 하나의 사이클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2022년도 10월부터 원인 모를 기침을 앓아왔다. 끝없는 기침으로 동네 의원을 밥 먹듯 다녔다. 의사는 그런 나를 보고, 약한 약부터, 독한 약까지, 기침과 관련된 약을 모두 사용했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기침은 호전되지 않아, 대학 병원 소아 청소년과 교수들, 정신과 의사까지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진단을 했다. 소아 청소년과 교수 중 한 명은, 천식이라 보고, 다른 한 명은 기관지가 민감한 것, 정신과 의사는 기침 틱으로 내 병명을 진단했다. 그래서 나는 알레르기 약 {싱귤레어}, 기관지 확장제 {심비코트}, 틱 약을 모두 혼합해서 먹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기관지 한쪽에서 끙끙거리며, 내 생활을 조여왔다. 사실 고등학교 진학 및 졸업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침 때문에, 내가 수업을 듣기 힘들뿐더러, 반 친구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1학기까지는 반 친구들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대해줬다. 나 역시 친구들의 배려에 보답하고 싶어, 더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기침을 최대한 참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넘치는 물을 누르면 누를수록 물이 빠지는 게 아닌, 쌓이는 것처럼 기침 역시 해소되지 않고, 내 의식으로 눌려 쌓여갔다. 지난 8월 누르고 있었던 게 터진 걸까? 감기가 들어온 이후부터, 내 기침은 갈비뼈에도 금이 갔던, 2022년의 기침과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이명, 두통 등 자잘한 잔병들이 나를 학교 밖으로 몰아세웠다. 아무 도 나에게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가 내는 기침 소리 때문에 보이는 눈치가 보였고 이는 나를 조여왔다. 이를 본 담임 교사인 과학 선생님께서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나에게 자퇴를 권유했다. "선생님은 희찬이 한 명의 선생님이 아니니까. 2학년이 돼서도 이렇게 기침이 나오면, 자퇴해야 할 확률이 커질 거야?" 그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는 듯 보였다. 혹여나, 논리에 빈틈이 있더라도, 그 빈틈 역시 나를 감정적으로 조여왔기에, 빈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빈 곳이 없었기에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자퇴를 선택하는 방법밖에. 그렇기에 나는 9월 10일 오후, 자퇴 서류에 서명했다. 단지 미안함과 원망 그리고 이해만이 몸을 따라, 학교 밖을 나왔다. 자퇴하고 난 뒤, 9월과 10월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지 갑자기 속이 뜨거워지고, 기관지가 사람을 만나기를 거부하는 기침만 나 올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 소설, 수필,

  • 송희찬
  • 2025-08-21
따뜻한 기억 보존법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니던 문구점이 있다. 가게 이름은 '선물 백화점'. 간판에 써진 상호처럼 나에게는 선물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 가면 장난감부터 해서, 학용품, 각종 불량 식품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이 있었기에, 어린 시절 이곳을 좋아했었다. 문구점 이모님은 갈 때마다 인사를 하는 나를 보며, 예뻐해 주셨고, 동생이 태어난 시점부터, 가끔 나에게 사탕을 챙겨주셨다. 물론 그 사탕은 많이 딱딱하고 부셔 먹기 힘들었지만. 이모님의 마음이 너무 감사하여, 사탕을 아작 깨물어 먹었다.2018년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해이자, 동생이 태어난 해다. 그래서인지, 2017년도부터 엄마는 산부인과에 들락날락하셔야 했다. 그때 내 나이 초등학교 3학년. 10살. 10대로 들어가는 나이지만, 아직은 어리숙 한 게 많았다. 무엇인가 스스로 챙기는 나이야 하지만, 미숙한 게 많았다. 이를 엄마가 걱정했을까? 내가 학교 준비물을 깜빡하고, 본인도 까먹고 챙기지 않을까 봐. 그녀는 평소 친분이 있던, 선물 백화점 이모님께 부탁했다. "만약, 희찬이가 준비물을 급하게 사야 할 일 있으면, 먼저 주세요. 제가 애 아빠든, 제가 오든 해서 돈 드릴게요."라고.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급하게 준비물을 준비하지 않았다. 매번 며칠 전에 먼저 문구점을 가서 물건을 샀었다.아무튼, 동생이 태어나고, 우리는 안양으로 이사를 했지만, 2년 만에 옛날 살던 동네로 이사를 다시 오게 되었다. 하지만, 문구점이랑은 옛날 집보다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주변에도 문방구가 하나 있었고. 하지만, 우리는 집 주변에 있는 문방구에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선물 백화점'보다 더 비싸고, 사장님들이 불친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선물 백화점'을 가게 됐다. 다행히도, 이모님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잘 지내셨다. 변한 것이라고는, 그 당시 나와 동생. 그리고 옛날에 다녔던 초등학교, 그리고 엄마의 직업 정도겠지. 하지만, 이모님은 우리가 어떻게 변하든 그대로 우리를 대해 주셨다. 그녀는 엄마가 더 이상 어린이집 교사가 아닌데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줬고, 나와 동생에게는 "00 이와 형아"라고 불러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으로 내려가는 일이 생기면, 우리 가족은 '선물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거나, 동네에서 뵈면 인사를 했다.그렇게, 몇 년간. 우리는 그 동네에서 살았다. 그냥, 평소처럼. 하지만 지난 6월. 나에게 약 11년간의 추억이 잠긴 동네를 떠나야 했다. 이유라고는, 아빠 직장이 바뀌었고, 내 건강이 더 빨리 좋아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는.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지난 5월부터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5톤 트럭에 짐이 모두 들어갈 수 있게끔. 그렇기에 동생이 어린이집 다녔을 때 봤던, 책 가지고 놀던 장난감 등을 버려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많은 짐들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돈이 아까울 뿐 더러, 쓰레기가 많아지면 좋을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 우리 가족은 이 짐들을 동생이 다녔던 어린이집과 최근

  • 송희찬
  • 2025-08-08
우리의 여름은 어떤 소리일까

이번 여름에는 유난히 두통이 자주 온다. 아마도,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아서일 것이다. 하늘을 보면, 여름의 맑은 햇빛보다, 어두운 먹구름이 껴있고, 땡볕이라 불리는 태양 빛의 더위보다, 습기 찬 공기의 더위가 살을 만지는 듯했다. 이를 보고 있으면, 윤이안 작가의 소설 의 대사 한 줄이 떠오른다. "이 정도면 이제 아열대성 기후라고 해야 되지 않아요?" 이 소설의 짧은 문장이 올여름, 혹은 올봄의 기후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위 소설을 알게 된 작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여덟이 된 2025년도의 여름을 보면, 위 문장과 현 상황이 일치되는 것 같다. 단순, 농담으로 치부되던 말들이 당연하다시피 현실이 되는 것 같다.2025년도 6월이었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초여름의 더위가 내 살에 닿기를 거부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습기를 잔뜩 먹은 공기가 내 살에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공기 중에 수증기가 많아, 숨쉬기가 어려워졌고, 일방적으로 더운 것이 아닌 불쾌하다고 느낄 정도로 뜨거웠다. 그래서인지 사람들과 관계, 특히 동생과의 관계에서 짜증이 많아졌다. 방송에서는 "불쾌지수가 높아져"라는 말로 현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고, 이 원인이 자연이라고, 기후 변화라고 이야기했다. "그래, 날씨 때문에 그런 거야." "이사 해서 그런 거야." 이런 말들로 변화에서 오는 짜증을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계속 날씨 탓을 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날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자, 하나의 생명체니까.이런 생각을 가지고 지내던 7월 16일 밤, 가족들과 밤 산책을 끝내고, 잠을 자려고 했다. 아직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주밖에 안 돼서 그런지 잠에 들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계속 뒤척이고, 어둠 속에서 휴대폰만 보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아마, 새로운 곳이라 불안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어젯밤은 한 가지의 소음이 계속 내 귀를 맴돌았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였다. 그들은 뭐가 그리 좋아서, 비가 오는 날에 이렇게 울어 대는 것일까? 자신들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는 걸까? 개구리들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천적일 것인데 말이다. 그런 개구리들처럼 나 역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수면의 천적이라 생각했다.그러나 바람은 비바람처럼 강하게 불었고, 빗소리 역시 강하게 떨어져서 그런지, 집 안은 시원했다. 그래서 그럴까? 개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잠을 잡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단순 소음이 아닌, 그들의 소통 방식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언어로는 알아듣지 못하는, 동물들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일상적인 대화와 응급한 대화가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듯했다. "비 많이 오니까, 조심해." "이곳은 곧 있으면, 물이 불어나니까, 빨리 대피 하십시오." "도와주세요."와 같은 말들이 인간과 다른 동물, 그리고 개구리라는 한 종족에게 알리는 듯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기분과 위협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누워서 들어만 주었다. 짜증 내지

  • 송희찬
  • 202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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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2024년도 <끼끼>라는 소설을 올리고 수필을 올렸다 지웠는데 이제야 완성됐네요. 그 당시 기대된다고 해주셨던, 도래솔 님 아직도 글틴에 계신가요? 저 이제야, 끼끼에 대한(끼끼를 향한) 수필 완성시켰습니다.^^; 너무 오래걸렸지만...

    • 2026-01-14 21:26:37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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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 혁

    희찬이형 필력은 언제봐도 부러워요오

    • 2026-01-13 14:21:32
    선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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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선 혁 님 항상 읽어줘서 고마워요~^.^~

      • 2026-01-13 21:49:10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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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

    피아니스트와 원숭이 인형에 나왔던 그 친구인가요?? 원숭이 인형하니까 생각나네요 (・∀・)o

    • 2026-01-12 15:46:56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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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율 맞아요~^^ 제 시에서 나오는 원숭이는 거의 모두 다 이 친구입니다.^ㅅ^

      • 2026-01-12 16:33:06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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