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이 놓은 손에 놓인 온도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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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가야 한다. 아니면, 버려야 한다. 축축해진 유년과 감정의 기억들은.
나에게는 같이 살고 함께 자는 친구가 있다. 입과 발은 있지만,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친구. 하지만, 그는 매일 밤 내 옆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지켰다. 어둠이 무서워서 매일 밤 작은 불이라도 켜고 잠을 자야 했던, 내 옆에서. 근 10년 동안 쭉. 내 절친이고, 함께 사는 누구보다 내 냄새가 가장 오래 배 있는 사람이 아닌 친구. 나는 그를 ‘끼끼’라고 불렀다. 원숭이처럼 생긴 원숭이 모양의 인형이었기에.
내 옆을 스쳐 지나갔던, 끼끼는 총 3마리가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한 마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지금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잃어버리거나, 버려져 버린 끼끼 두 마리중 한 마리는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그는 내가 3살 때, 내 품에 안겨 잠을 잤던 존재였다. 그러나, 내가 껴안고 자며 스며든 내 모습이 인형에게는 땀과 침 등의 물질로 받아들였겠지. 그에게는 내 유년이 만든 세상에 대한 이물감 같은 감정들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들에게는 그 인형이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로 여겨졌을 거다. 엄마는 내 냄새를 잔뜩 품은 끼끼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셨다. 그러고는 햇볕이 좋은 날, 밖에 그를 걸어 놓으셨다. 햇빛이 구정물과 냄새를 모두 빨아 드리라고. 그러나, 난 그날 이후로 그 끼끼를 보지 못했다. 밖에 걸어 놓은 인형을 누군가 훔쳐 갔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첫째 끼끼에 대한 기억이 커서도 가끔 난다는 것이다. 특히 유치원에 다닐 때, 방과 후 수업 반 아이들과 함께 원숭이와 관련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끼끼에 관한 생각으로 집에 와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오래된 잔상처럼, 첫째 끼끼는 유년기에 원숭이를 보면, 그를 다시 떠 오르게 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인형들이 둘째와 셋째 끼끼다.
하지만, 둘째는 크게 감정을 요동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친할머니의 염색약이 그의 다리에 묻고 지워지지 않은 뒤, 그를 꽉 껴안고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안고 자면, 나에게도 그 염색약이 묻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이, 그와 나의 거리를 가깝게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냄새와 온도가 묻어 있지 못했기에. 상대적으로 감정이 덜 갔다. 그런 그였기에, 나는 내 욕심과 걱정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를 내 밖으로 내칠 수밖에 없었다.
올 3월이면, 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집과 많이 떨어진 대학이라, 나는 기숙사나 자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나에게 엄마와 아빠는 이런 조언을 해줬다.
“희찬아, 기숙사 들어가면 끼끼는 가지고 가지 않는 게 좋겠다.”
“왜”
“끼끼 상태를 봐.”
그렇다. 끼끼의 몸은 완벽한 몸이 아니었다. 그의 몸통은 내가 흘린 분비물로 누렇게 변했으며, 작은 구멍들이 나 있었다. 이런 것을 기숙사에 들고 가면, 룸메이트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말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에 격하게 동의는 한다. 하지만, 내 삶에서 끼끼 없이 홀로 버티는 게 가능할까? 사실 모르겠다. 내가 홀로 있고 어둠이 가득한 밤에도 항상 내 옆을 지켜주던 존재였기에. 그가 없는 나를 생각하긴 어렵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혼자 있는 비슷한 날을 매일 느꼈다. 내가 나에게 졌다는 억울함 같은 감정이 생각이 났지만, 눈물이 나오거나, 소리를 치는 등의 일반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지 끼끼를 꽉 안 거나, 그의 얼굴에 나를 맞댔었다. 그럴 때면 집안으로 햇볕은 과하게 들어오며, 집 앞 절에서 불경 외는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그랬기에, 끼끼의 품은 그 누구의 품보다 따뜻했고, 내 온도와 닮아서 기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그의 몸은 이제 나로 잠식되었고, 끼끼의 몸에 난 구멍들은 내 기관지를 더 자극했다. 그를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내 손은 아직도 끼끼를 안고 있다. 내 온기는 내가 혼자 있을 때 더 잘 느껴졌다. 놓기에는 놓지 못할 냄새와 온도가 그의 모습에 가득했기에. 그를 안으며 원망도 하고, 그의 온몸을 쑤셔도 봤다. 하지만 그럴수록 끼끼의 몸은 더 앙상해져 갔다.
대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면, 그를 내 손에서 언젠가 놓거나 버려야 한다. 지금이 딱 그럴 시간인데.
나는 그에게 묻은 내 모든 분비물을 쓰다듬고, 그의 몸 위에 내 머리를 올려놨다. 내가 무겁겠지만, 내 온기와 내 온기였을 그의 온도를 함께 놓아두고 싶어서. 햇볕이 잘 드는 침대 위에 끼끼를 걸어놨다. 함께 있을 때 동안, 끼끼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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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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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2024년도 <끼끼>라는 소설을 올리고 수필을 올렸다 지웠는데 이제야 완성됐네요. 그 당시 기대된다고 해주셨던, 도래솔 님 아직도 글틴에 계신가요? 저 이제야, 끼끼에 대한(끼끼를 향한) 수필 완성시켰습니다.^^; 너무 오래걸렸지만...
희찬이형 필력은 언제봐도 부러워요오
@선 혁 님 항상 읽어줘서 고마워요~^.^~
피아니스트와 원숭이 인형에 나왔던 그 친구인가요?? 원숭이 인형하니까 생각나네요 (・∀・)o
@율 맞아요~^^ 제 시에서 나오는 원숭이는 거의 모두 다 이 친구입니다.^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