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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 인형

  • 작성자 효명
  • 작성일 2010-07-25
  • 조회수 825

동생은 수련회, 아빠는 회사, 할아버지는 꿈 속,

할머니는 고모 댁, 엄마와 나는...어디지?

꼭 할 일 없을 때의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덥기까지한 날씨다. 집에있으나 밖에 있으나

흘리는 땀은 같다는 걸 깨닫고, 엄마와 나는 최근 신문을 뒤졌고

입술을 오므리고 있는 둥그런 인형 옆에 '김영희 닥종이 인형 전시회'

라고 적혀있었다. 여기다! 감온 모녀는 대충 옷을 입고 출발했다.

눈, 코, 피부까지 닮은 모녀여서 그런지 둘다 대단한 길치여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걷다 물어물어 찾아내었다. 

전시회에 들어서자 보이는 중앙에 단발을하고 검은 정장치마에

나는 사진 한번도 본적 없건만 '이 분이 김영희 선생님?' 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게 하는 분이 앉아계셨다.

건방지지만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여서 그런지

사인받을 생각은 접어두고 그냥 천천히 작품을 보기로 했다.

첫 작품 앞에 섰고 그 와 동시에

금방이라도 그 짤막하고 통통한 팔을 흔들며

바람을 넣은 것 같은 통통한 볼 때문인지 모를

한껏 작은 그 앙증맞고 새빨간 입술로

내게 '안녕 누나'라고 말할것

같은 고 귀여운 닥종이 인형, 아니 닥종이 꼬마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꾸깃꾸깃한 닥종이로 만들었는데

나는 입을수 없는

저 금방이라도 빨면 꿀물이 나올 것 같은

사루비아색 다홍치마를 입고있는 저 귀여운 소녀를

질투도 해보고, 누나를 뒤에두고 큰 눈덩이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벌써 겨울에 동생이랑 눈놀이를 할 생각도 해보고,

거위를 품에 안듯이 들고 있는 소년을 보면서 '저 거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서

저렇게 소중하게 안고 있는 건가'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다 문득

그러고 보면 닥종이 꼬마들이 하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는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요 닥종이 꼬마들은 별 5개 짜리 호텔에서

스테이크를 썰고 있지도 않고, 리무진을 타고 있지도, 레드카펫을 밟고 있지도

않다. 그냥 어딘가 저 두메마을의 아이들이 놀고있는 모습, 그 거였다.

어느 새 낯설어져 바로 느끼지 못한 것일 뿐..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이 닿는 왼쪽부터 오른 쪽 까지 둘러보았다(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잘 보였다)

 왠지, 그들의 일상생활이 그려지는 듯 했다.

옆을보니 엄마가(엄마는 소흑산도라는 섬에서 나고 자라셨다)

물고기를 들고 있는 소년을 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꼬마를 보고있었다.

이제 돌아가기 힘든 그래서 더 그리워지는 그 어느날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과 함께한 날을 꼬마를 통해 보고있었다.

비록 배경은 다를 지 모르지만, 그들의 일상이 다를 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추억에 배어있는 냄새가 구수한 된장냄새가 아닌 비릿한 생선냄새일지도 모르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도

그들을 보고있노라면

서울이 아닌 저기 어딘가 지도에 나와있지도 않은

좁은 마을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데

엄마의 눈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은 오늘 하루는

들추지말고 모른척 그냥..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작품 밑 같은 글씨체로 같은 크기로 배열되있는 저 검은 글씨,

제목도 내게는 닥종이 인형 못지 않은 매력적인 요소였다. 

어쩌면 제목이 있기에 작품이 존재하는 것 같은

작품을 압도하는 제목의 존재감 또한 대단했다.

'호! 민들레 꽃씨가 나르네' '꽃 종소리' '아! 푸른하늘 하늘보기'

'가을을 먹여주는 엄마' 제목 한문장 한문장이 작품을, 그리고

이제 70세를 바라보고 계시는 소녀 김영희 선생님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전시회를 다 돌고,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처음 작품을

정신없이 가만히 보다보니 날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아보니 김영희 선생님이 날 보고 한번 웃으시고는 고개를 돌리셨다.

처음 들어왔을 때 엄마에게 들은 김영희 선생님과

나갈 때 내가 느낀 김영희 선생님은

내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엄마에게 들은 김영희 선생님은 책도 쓰시고

그림도 그리시고, 닥종이 인형을 유행시킨 분이 었고,

내가 느낀 김영희 선생님은

소녀 김영희 선생님, 저 푸근한 어머니와 저 귀여운 꼬마를 만든 분,

오늘은 어떤 모습을 만들까 닥종이 한장을 들고 괜히 조물딱 조물딱하는 예술가

그 자체였다.

이래서 예술가는 작품으로 인정받아야 하나보다.

누가 사인을 받아올 것인지 엄마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종이도 없어서 입장권을 들고 쪼르르 선생님 옆에서서는 

'선생님,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내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경심을 느끼셨는지 (안 느끼셨어도 해주셨겠지만, 나는 믿고싶다.)

웃으면서 사인을 해주셨다.

저 손으로 저 꿈틀거리는 빨간입술을 가진 꼬마들을 만드셨겠지 하는 생각에

'김 영 희' 라는 짧은 사인을 하는 동안

선생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마는 전시회를 나오자마자 셋째 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전시회장에서 엄마와 별로 나눈 말은 없지만,

왠지 엄마와 보이지 않는 어떤 무언가로 조금 더 단단히

엮여진것 같아 괜히 한번 씨익 웃어본다.

항상 느끼지만 오늘 또 새삼스레 느껴지는 사실..

무언가 다른 사람을 움직 일 수 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인 것 같다.

그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그렇게 남들과는 다르게 빛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내 머리든 손이든 발이든 이 가슴이든 언제까지나

빛나는,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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