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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에게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20
  • 조회수 903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안녕,H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 내가 처음 "엄마."라고 말하며 "응애."라 울때도 우린 늘 함께 와 있었잖아. 그래서 난 너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줄 알았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오늘은 너에게 사과하면서 요즘 지쳐보이는 널 위해 부끄럽지만 조언의 말을 보내기 위해  너 없이 내 외면의 의지로만 쓸거야. 그러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마.


 앞에서 말했듯 우린 태어날 때 부터 한 몸을 공유하며 자랐잖아. 그래서 우린 항상 같은 위기에 놓였어. 아빠 사업이 어려워 졌을 때도 가족끼리 불화가 일어났을 때도 우리는 늘 함께 이겨냈지. 정확히는 이겨낸 것이 아니라 참아가며 너를 내가 때렸던거야. 그 때는 이 사실을 미쳐 몰랐어. 그래서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것이지. 그런데 갑자기 네가 이 폭력에대한 아픔을 기침으로 표현했잖아. 나는 처음에 있어서 이 기침을 하게 만든 너에게 엄청난 비난을 했어. 왜냐 기침이 시작한 시기가 너도 알다시피 중2로 중3 교육과정과 고등 교육에 대한 사교육을 멈추게 했으니까. 그 것으로 가뜩이나 낮았던 영어와 수학 성적은 더 나빠져서 이제는 뭐 영어는 모르겠고 수학은 바닥을 기게 되서 정말 네가 미웠어. 속으로 "조금만 더 참지. 왜? 하필 지금이야?"라는 생각마저 들었어. 이 생각은 중3이 되니 더 심각해 졌지. 근데 다행히도 내 기침을 유심히 본 담임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 덕분에 너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괜찮아졌어. 상담 선생님이 심리 검사를 해 주셨는데 우울 수치와 불안 수치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데.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희찬아, 기침에 고마워 해야해. 이 기침 덕분에 이런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이셨어. 그래서 난 너가 선물?이라고 하긴 힘들겠지만 네기 표현한 기침 덕분에 내 심리에 대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 그 점은 정말 고맙워. 그리고 너를 원망 한 것은 진짜 미안해. 그리고 버텨줘서 고마워. 


 나는 지금 많이 다쳐서 기침이 나오는 너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과 다니고 있어. 특히 너를 치료하기 위해서 난 너에게 많은 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시작한게 내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인 시 쓰기, 소설 쓰기등 문학 활동이었어. 그러면서 점차 네가 밝아지는 모습이 보여지고 평생 독할 것 같던 상처가 아물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그런 모습을 보느까 내 죄책감은 좀 줄어들게 되더라. 며칠전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생신 파티 때 만났던 영곤이 삼촌이 했던 말 기억하니? "글을 쓰는게 상처를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어"라는 말. 난 그 말을 믿을려고.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방식이 네가 달라지고 나도 달라지게 된 것을 내 두 눈으로 확인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요즘 글을 쓰는데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 네 모습이 보여. 아마 11월달에 본 틱을 조롱하는 영상이 지금 네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 그리고 며칠전에 버스에서 눈치를 준 아줌마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있겠지. 그리고 거기다 이제 중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새 고등학교에 가서 새 친구들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오니 그런 것이겠지. 이런 네게 내가 부끄럽지만 조언 하나 해줄게. 우리 한번 이기적으로 굴어보는 것은 어때? 남의 시선은 생각하지 말고. 우리 지금까지 가족이며 친구들이며 눈치 보지 않고 산 적이 없잖아. 항상 남이 먼저였고 나는 뒤였잖아. 이제 나도 바뀔게. 내가 먼저 이기적으로 굴어볼게.  그리고 너 지금까지 잘했잖아.  앞으로도 잘할거고. 미리 걱정하지마. 너와 나 옆에는 내 편인 가족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도 이제 참는거로 너를 학대 하지 않을게. 너도 내 폭력에 당하고만 살지마. 너도 표현해. 그래야 네가 살고 나도 사는 길이니까.


 우리 힘들 때면 우리만의 비행을 또 떠나자. 지금은 매일이 힘들어 비행을 하지만 언젠가는 이 비행을 멈추고 남의 하늘에도 우리의 비행기를 선물할 날이 오겠지. 그러니까 힘내고. 난 널 응원할게 속에 있는 H야. 다음 번 비행 기약을 받으며.

-속의 H에게 보내는 겉의 H가 보낸 나를 위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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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3월에 다시 베어 문 한여름

글을 쓰는 모든 문우. 글티너 여러분들 모두 안녕한 계절을 보내고 있을까요? 저는 2026년 3월 대학교에서 캠퍼스의 봄을 맞이하며 지금까지 글틴에 남겼던, 흔적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특히 작년 수상집에 실었던 <시간 무빙워크>의 작가 노트를 <한여름을 베어물며>의 작가노트를 쓰기 위해 계속 바라봤답니다. 그런데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읽을 때마다 감정을 잡기가 힘들어지네요. 아마도, 위 소설의 일부가 제 삶의 이야기라 그런 거 같습니다. <한여름을 베어물며>는 제 꿈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고등학교 자퇴 이후 학교와 함께 물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아마도, 미련 때문이겠죠. 저는 기침 틱과 기관지염, 천식 등이 결합 된 기침이라는 문제로 고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기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기침과 더불어 이명과 같은 고통이 찾아왔으니까요. 이런 ‘나’라는 한 사람과 같은 반 친구들을 위해 담임 선생님은 자퇴를 권유했고 저는 그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 가는 마음과 함께 서운하고 미움의 감정도 함께 듭니다.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저 자체도 미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소복이 쌓여 왔고 결국 꿈으로 그 당시에 표출된 거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글에 녹아버린 감정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저 살아냈다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지나온 날들을 이겨내 보겠다는 오기가 글을 씀으로 어느 정도는 감정이 품은 감정을 표출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작가 자신이 쓰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제 글은 항상 '나'라는 사람을 담기에 저 역시 그런 감각을 매번 지니며 살아갑니다. 글을 통해서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쩌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한여름을 베어물며>를 쓰지 않고, 자퇴와 건강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짐작합니다. 한 발 짝 움직이는 오기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집에서 유튜브나 쇼츠 같은 것들로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자신이 담긴 글은 자신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계속 상처를 마주하고, ‘나’ 자신을 마주할 때, 힘들고 벅차고 아프겠지요. 그런데도, 끝까지 글을 쓰는 ‘나’를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한 발 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오기로 밀어붙여 보세요. 여러분에게 글틴은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힘든 일이 있거나, 살기 위해 쓴 단상들 혹은 문학들을 표출하고 알려주세요. 저 역시 글틴을 만나면서 저를 끝까지 붙들며 쓸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멘토님과 수많은 글틴 관계자, 글티너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손을 뻗어주세요. 형식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언제나 뒤에서 늘 응원하겠습니다. <작가 노트>로 진심을 적어 내릴 수 있게

  • 송희찬
  • 2026-04-29
나를 안아주는 날

19살이 되기 전까지 살아줘서 고마워.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 내줄 나날이 고마워. 3월 27일이날 삼이 총 네 개가 존재한다. 3월의 3은 하나. 27일의 3은 셋 {3x3x3} 총 합해서 네 개. 나는 2008년 3월 27일 3과 4가 교차하는 날에 태어났다. 찡얼거리며 울부짖으며 내 존재를 세상으로 내밀며. 우량아가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날만 되면 나와 거리를 둔다. 찡얼거리는 내가 미워져서. 나에게 생일은 이런 날이다. 우리 가족은 생일에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최근 명예 권사를 받은 친할머니의 명령에 따라. 그녀는 다른 미신은 믿지 않아도, 선풍기를 켜고 문 닫고 자면, 죽는다는 것과 사업하는 집안에서 생일날 미역국을 먹으면 사업 말아 먹는다는 미신만큼은 믿었다. 그래서다. 할아버지가 자영업으로 재작년까지 카센터를 운영하셨고, 아빠 역시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사업이 나름 잘된 사업가 집안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날마다 쇠고기뭇국을 먹거나 아예 국을 먹지 않았다. 만약 할머니의 말에 반기를 들면 그녀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어져 갔기에. 생일날 우리 가족은 축하하는 기분을 전체로 느끼기보다는 할머니의 굳은 주름살이 더 신경이 쓰여 결국 할머니가 하자는 대로 최대한 장단을 맞춰줬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어린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이루려고 했다. 특히 생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태어남이라는 포상감이 있었기에, 나를 태어나게 해주고 이루게 해준 모두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요구했다. 터닝메카드 장난감 이라던지, 신비아파트 장난감 같은 것을. 그리고 원하는 음식을 생일날에는 모두 요구했다. 그러고는 맛있게 행복한 표정으로 먹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합가했기 때문이다. 같이 살지 않았을 때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내 생각보다 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기가 눌려 가정에 방관자였다. 한 가정에 삼 세대 이상이 살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특히 하루에 대다수를 집에서 함께 지내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의 갈등이 가장 많았다. 할머니의 생활 방식을 할머니가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강요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나는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항상 그녀의 걱정을 들어야 했다. “나쁜 친구 가까이하면 안돼.” “어디 놀러 갔다가 사람들 죽었단다.”라는 식으로 놀이터 갈 때도 친구 집으로 과제를 하러 갈 때도 매번 들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나를 지키려고 할머니를 말리 거나 “어머니.”라는 단어로 상황을 정리시켰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자주 반복되어 나타났다. 그러면서 점점 나는 보이지 않아도 할머니의 손에 있는 것, 같았고 숨이 조여왔다. 이가 계속 쌓이다가 가끔은 엄마의 화가 다스려지지 않고 폭발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우리 집안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내 방에 들어가 그를 안고 내 귀를 막으며 소리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온몸을 떨며. 그 순간의 공기를 나에게서

  • 송희찬
  • 2026-03-31
빛나는 영혼들의 품에서

2026 글틴 캠프가 끝나고, 1호선에 몸을 실었다. 원래라면, 서울역 동편에 있는 환승센터에서 판교 가는 버스를 타야 했지만, 나는 작년처럼 수원으로 향하는 1호선을 타 버렸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할머니가 있는 수원에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동생은 혼자 나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개학 한 달 전 2월에는 할머니네에서 데려와야 했기에, 1월 30일 나는 그들에게 향해 갔다. 2026 글틴 캠프는 2025 글틴 캠프처럼 파주 지지향에서 했다. 책과 글틴. 때려고 해도 땔 수 없는 운명이라 너무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작년에도 생각했었다. 그런 곳에 용기를 가지며 글을 쓰고, 본인의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하는 여러 명의 글티너. 그리고 위로를 전달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이 모든 것이, 2025년 1월 집결지인 서울역과 파주 지지향에서 느낀 관계들의 온기였다. 2025년 캠프에서는 활발하게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글티너는 아니었다. 그저, 글틴 비공식 단톡방과 개인 메일로 몇몇 글티너와 이야기 나누고 소통했을 뿐. 그 이상과 그 이하의 것은, 채우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랬던 작년의 나는 캠프의 시작이었던, 서울역 집결에서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고 관계자 주변만 돌았다. 스크린으로만 봤던 사람들의 얼굴을 실제로 봤을 때의 어색함. 그 어색함이 나를 그해 1월 서울역 동편에서 돌게 만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일부 사람들.“혹시 희찬님?”나지막하게 들려오고, 글틴에서 글로만 마주했던, 익숙한 이름들이 나를 알아봐 줬다. 그나자너 내 이름은 어떻게 알까? 얼굴을 보이며 활동했던 게, 2024년도에 했던 글틴 리딩클럽. 패널도 아닌, 그냥 일반 참가자로 고선경 시인을 만나러 간 것, 뿐인데. 그러나, 23년도에 활동했던, 선배님들. 23년도부터 25년도 2월까지 멘토셨던, 그해 나와 같은 합평 조였던, 김태선 평론가님과의 대화가 이 순간을 이해시켰다.“작년에는 영상으로 보고, 올해는 이렇게 보내요.” 2024년도 1월에 했던, 글틴 캠프는 고등학교 예비 소집이 있어 가질 못했다. 그렇기에, 작년까지 있던 다작 상이자 특별상 개념인 장려상 수상소감을 영상으로 보내야 했다. 어떤 말을 했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힘든 시간을 마주하면서 꾸준히 써나가겠다는 의지만 보였던 것, 같은데. 이를 60초라는 시간에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이 신기하면서도 감사하기도 했다. 25년도 합평 때, 김태선 멘토님 조에서 거의 유일하게 감상. 비평이었다. 이때도 그렇고, 26년도에도 그렇고. 글틴 캠프에서 감상. 비평의 합평을 희망하는 글티너는 적은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 감상. 비평 멘토였던 김태선 평론가님은 수필과 함께 내 감상. 비평에 대하여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다. 그러면서도 햄버거를 먹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즐겁고 피곤한 첫 글틴 캠프의 첫날이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글틴 캠프는 작년도 올해도 밤이 진짜였다. 2025년도 글틴 캠프

  • 송희찬
  • 20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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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서련

    글쓰기는 언제나 독자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면서 스스로의 내면과 대화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희찬님의 이번 글에서 그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되네요. 자신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 또한 글쓰기로 그것이 가능해질 거라는 믿음 등이 두루 느껴져 좋았습니다. 다만 이 글은 지금까지 희찬님의 글을 쭉 따라 읽어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약간은 의아한 마음으로 읽게 될 것 같아요. 긴 시리즈 드라마를 중간부터 감상하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매번 저자를 전혀 모르는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며 써야 합니다. 정말 어려운 부분은,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설명적이어선 안된다는 점이지요. 희찬님만의 절묘한 균형을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 2024-02-24 03:53:36
    박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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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박서련 멘토님 안녕하세요~ 다시 읽으니 지난 글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2024-02-24 05:21:27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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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엘

    글에 희망이 담겨 있어요. 점점 성장하고 단단해질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네요. 행복하시길 바라요. 응원할게요~

    • 2023-12-22 14:27:35
    가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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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가엘님 인녕하세요. 희망이 담겨 있다는 말이 너무 좋네요. 항상 건필하시길 저도 바랄게요~

      • 2023-12-22 16:02:12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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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제 시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여기서 H는 저를 의미합니다.

    • 2023-12-20 17:55:50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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