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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십호 병실

  • 작성자 무녀리
  • 작성일 2024-07-22
  • 조회수 330

더는 못해먹겠습니다.

땅의 끝에서 죄를 달던 저승사자가

검게 시든 손에 질겁하며 떠난 이후로

사람들은 해 지는 곳으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초로의 노인은 젊은 시절 사진과 딸의 영정을 포대기에 싸들고

어린 아이들은 풀꽃으로 손목 발목을 얽은 채 달려나섰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납작하게 남았고

사랑한다는 말은 공기더미와 한몸 되었다.

은방울꽃이 졸린 고개를 툭툭 떨구고

그 위를 이슬방울이 질주하는데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가로세로 찢어지는 다리 위에

끝과 끝이 속절없이 봉제되어 타오르기도 했다.

 

교량과 교량을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잇던 고리들이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땅 아래로 파고들 때

 

마침내

이백십호 병실에도 해는 저물고.

 

사촌이 주고 떠난 유리병 사탕은 시간의 입속으로 대신 들어갔고

창가에 줄줄 늘어놓은 화분의 변명만 늘어갈 때

새카만 세상 아래 두 손 맞잡은 자매는

그저 조금 울적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울었던 시간은 별자리가 되었고

지난 밤은 길고 긴 전생의 나열.

고작이 되려고 그들에게로 간 불운이 할말을 잃고

보호자의 보호자가 실족한 등을 끌어안을 때

이백십호 병실에도 새 볕이 쏟아지고.

 

죽어 저승사자가 된대도 당신을 찾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약한 눈들의 지층이 왈칵 융기하고

병자들의 염원이 숨죽인 화산처럼 애달프게 끓어올랐다.

무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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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녀리
  • 2024-10-30
지난 겨울

두고 올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에는그해 겨울을 잊었다고 쓴다모로 누운 등도 곧게 뻗은 척추도모두 잊었다고 쓴다 겨울을 마시면 배탈이 날지도 모르지그해의 당신을 잊었다고 쓴다사랑하고 싶던 운명과악몽 사이의 애틋함을이제야 모두 잊었다고 쓴다 꿈의 낯처럼 옅은 십이월의 거리나는 문득 멈춰서서풍선을 놓친 아이처럼둥실둥실 돌아가는 회전문을 바라보다가눈덩이처럼 덜컥 얼어붙는다겨울 바람이 세상을 울리고두고 온 사람의 목소리에 코끝이 시리다 돌아가지 않을돌이키지 못할아 늦어버렸어문득 후회하는 겨울이 있다

  • 무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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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사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전생처럼 너를 만나고 싶어 잃는다는 건, 아프지 않고 발음할 수 있는 단어가 사라진다는 뜻약속이나 청춘 같은, 숨가쁘게 약속하고 벅차게 마주하는그런 말들은 비행기의 꼬리를 따라 떠나버렸지만 열대야 습기를 머금은 베개맡에 사랑한다는 말을 넣어두고내 세상을 파고드는 묫자리의 꿈을 피해혀뿌리 아래 숨기며 있는 힘껏 되뇌고 있어뒤집힌 땅에서도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게 사랑하는 이름이 세기를 넘어 다닥다닥 달라붙은 지구돌아 떨어져도 이내 똑바로 서게 될 곳백야의 바다를 지키는 등대지기는별빛에도 눈이 머는 영혼들을 위해 바닷길을 내어준다지 이토록 빚을 진 세상에서다만 영원의 부질없음을 사건이 너의 손을 놓고 시간마저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했을 때베어내지 못하는 순간을 어항 속 금붕어의 일대기라 생각한 적이 있어나는 외로운 것을 만지는 일에는 자신이 있어서 목덜미에 비늘처럼 박힌 미련을 보면 너의 이름을 수천번도 더 부를 수 있을 것만 같고 들숨을 벗어난 사람을 만나러 가려거든심해 아래 물거품 찾아 반쪽 나눠가진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는데그리운 미래와 머니먼 어제를 방에 가둬두고나는 영영 물결마저 너를 놓쳐버릴까 두려워 사는 이유는 삶의 반대편에 있다 말했지하늘이 바다 되고 바다가 하늘 되는 세계에서전생처럼 너를 만나고 싶어 다시 곁에 없는 사람의 얼굴로 네가 웃을 때서툰 사랑이 단잠을 깨울까 잘게 부서지는 모래톱 앞에서검은 치마에 머리칼 감싼 꽃의 외로움을 모두 풀어 놓기로 했어늙은 단어가 쇠숟가락처럼 폐부를 파내려갈 때차가운 손이 유서로 쌓아올린 세계에서 맞잡을 손을 찾을 때 기별도 없는 영원, 작별도 없는 추락 내 사랑유성우의 모습으로 낙하할거라 약속했지

  • 무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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