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 club
- 작성자 이형규
- 작성일 202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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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489
바닐라, 인텐스 연기를 머금은 향
바닥은 물에 약간 잠긴 곳에서
빌 에반스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블랙 그랜드 피아노
포마드를 잔뜩 손에 얹고
머리를 쓸어 넘긴다
빗질 한번에도 여러개 길이 생기고
나는 그 길을 좋아했다
여기 사람들은 전부 담배를 태워
온더락 잔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조금 따른 위스키를 곁들이며 담배를 태운다
담배 연기와 위스키 위스키 달콤한 바닐라 베이스
떠드는 소리 위로는 늘 재즈가 흐른다
나는 신이 나서 발을 막 구르는데
전부 물 위에서 찰박거린다
오 재즈!
얼마 남지 않은 위스키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건배
누구를 위해서?
다시 재즈 연주가 시작되고
건너편 연인들이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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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끼던 시집을 주고 누군가에게 받은 시집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누워 시집을 펼쳐본다 물이 흘러넘치면 나는 관객 없는 무대 위에서 방백을 한다 에코는 어딘지 모르게 무기력하고 심장이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시집이 습기를 먹어 운다 다시는 책을 들고 욕조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한참 시집을 들고 욕조에 누워있다가 빨리 씼고 나가야지 생각한다아무래도 몸은 말을 듣지 않고 필사적으로 욕조에 남는다 시집은 점점 더 눅눅해지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저 바닥 까지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린다 울고있는 시집을 쌓인 책 사이에 꽂아두었다 당신이 한 말 정말 그래요이마에 손을 짚고 살짝씩 쓰다듬으면서 기억을 떠올리고 나는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누군가의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
- 이형규
- 2025-12-12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문방구에 들어간다조용한 발걸음으로 문방구를 둘러본다 오래된 물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색이 바랜 미키마우스 볼펜 포장이 반쯤 뜯긴 파스텔 색연필 그 사이를 걸어 다니면 박스에 물건을 담는 소리 박스가 뒹구는 소리 학생들이 온라인 방송을 보며 떠드는 소리어려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엄마를 위해 파스텔 색연필을 사볼까 0.5가 아닌 샤프심을 사볼까 색이 바랜 미키마우스 볼펜을 전리품처럼 내 책상 위에 올려둘까 그러면 가끔 문구점을 떠올리겠지 마지막이라는 말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형광펜 몇 개랑 항상 먼저 닳아 자주 갈아주어야 했던 빨간 볼펜의 심을 몇 개를 챙겨 문구점을 나온다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할까?나는 폐업하는 사장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고 집에 들어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면 가볍게 맥주캔 한 손으로 들고 걷는 중년의 남자가 아주 느린 걸음으로 멀어진다 풍경이 먼저 그를 지나간다풍경이 지나간 자리 나는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해가 지고 있다 박스 뒹구는 소리를 내며그렇게 누군가의 마지막이 된다
- 이형규
- 2025-11-02
열대야의 밤을 지나카드를 찍고 무인 편의점에 입장한다 온도가 습도가 적당하다 모두가 나를 반기는 것 같고나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기로 한다 가판대에는 손에 잡히는 물건들이 있고그것들은 대부분 나를 지나간 것들 누구도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지 않는 곳 혼자 모든 고민을 해결해야할 때 주인을 모르는 카드가 바닥에 놓여있다 어제는 신라면에 핫바 하나를 먹었는데오늘은 사리곰탕을 먹어볼까약간의 사치를 부려 음료수도 하나 살까 키오스크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한다고민 끝에 영수증은 괜찮다고 대답한다 편의점을 나오면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고밖은 습하고 덥고 에어컨이 없고 전자레인지가 없다 가볍게 왼쪽으로 기운 편의점 테이블 위에 오늘의 저녁이,한쪽으로 쏠린 마음이 있다 혼자 내 선택을 지지해 본다왠지 좋은 저녁이 될 것 같다 기울어진 테이블에 맞춰 몸을 기울인다 약간 비뚤어진 풍경에무인편의점이 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가판대가 있다 기울이면 전부 쏟아져야 하는데아무것도 쏟아지지 않는다 기울어진 상태의 테이블과 나 우리는 이인삼각을 한다무엇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스스로를 지지한다
- 이형규
- 202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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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리윤입니다. 이형규 님의 <Jazz Club> 잘 읽었습니다. 재즈 클럽의 풍경을 따라가며 담백하게 서술하는 것만으로 시를 이끌어가는 과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어요. 다만 이렇게 담백한 풍경을 문득 시적 순간으로 길어올리기 위한 장치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수명, 안태운 시인을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응원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