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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4-10-04
  • 조회수 957

 밤은 구부러지는 터널처럼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폭설의 연속


 검은 눈발이 세상을 두드리듯 떨어졌고

 나는 기다란 열차 속에 있었다

 늙은 열차는 어둠의 가장자리를 걷지 않았다

 두터운 산의 가슴팍을 곧장

 온몸으로 밀고 나갈 뿐


 우리보다 일찍 출발한 열차는 눈에 발이 묶였고

 늦게 개통한 기종들 몇몇도 미끄러졌다 했지

 멋대로 늦춰지고 당겨지는 운행에 대한 방송

 깊게 파인 열차의 좌석에 앉아서 듣다가


 무릎 위의 채송화 화분을 꼭 쥐었다

 장미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이름을 알 수 있는 붉은 꽃

 그리고 옅게 금이 간 화분이었다


 차창 너머 몸집을 부풀리는 추위의 얼굴은

 내가 아는 모습이기도 

 때때로 처음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열차를 흔드는 비명 같은 바람 소리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만 같기도 했는데

 죄다 내 옷깃에 스몄다 


 그러니까 내게 채송화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나

 화분을 선물해 준 사람이

 나의 바깥으로 걸어 갔을 때 

 언젠가의 내가 엎드려 흘려둔 숨소리

 마치 눈물 방울처럼 창백하게 적셔왔다


 몸을 떨게 하는 추위처럼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고

 나는 웅크리거나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겹쳐 입은 옷과 딱딱하게 만져지는 빗장뼈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건 

 차갑게 흘러드는 밤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결코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손 안의 화분처럼 

 내가 쥐고 있는 믿음


 빨갛고 환한 채송화의 잎새처럼 웃으며 말해준

 그 사람의 말

 나의 가슴팍에도 뿌리를 내려 

 아주 깊숙한 곳까지 가로질렀다


 겨울밤 폭설이 벌어진 상처처럼 멎지 앉아도 

 언젠가 가닿을 종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이었지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


 그때 나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끝자락과

 멀미처럼 새카맣게 일렁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종점에 닿으면 화훼 시장에 가야지

 분갈이를 하자 겨우내 굵직해진 뿌리를 이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화분에게 속삭이면서


 발아래로 어둠을 떨어뜨리고

 나의 심장 박동처럼

 가슴께를 가로지르는 작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모모코

우린 너무 아름다워서 꼭 껴안고 살아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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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오

    안녕하세요, 김선오입니다. 모모코 님의 <나를 가로지르는 것이 있어> 잘 읽었습니다. 이 시의 풍경과 운동이 좋았는데,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의 움직임, 검은 눈이 내리는 기이한 창밖의 풍경이 채송화 화분을 꼭 쥔 화자의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 내가 몸을 맡긴 기차는 온몸으로 / 겨울밤을 밀고 지나갔다"와 같은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발견도 좋았습니다. 다만 지금은 시에 수식이 잦고 이미지의 밀도가 높아서 읽는 사람들이 독서의 시간 동안 소화해야 하는 정보들이 많은 느낌을 줍니다. 나무가 가지치기를 한 뒤에 가지 사이로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듯, 시에서도 어떤 부분들을 쳐내면 그 사이로 새로운 풍경이 스며들 거예요. 특히 운문시에서는 행갈이, 연갈이를 활용하는 만큼 침묵을 배분하고 배치하는 방식, 말을 리드미컬하게 운용하는 테크닉이 중요합니다. 전체적으로 시의 질량과 부피를 줄인다는 생각으로, 시를 좀더 음악적인 말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수정해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

    • 2024-11-12 17:40:18
    김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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