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4-10-05
- 좋아요 1
- 댓글수 7
- 조회수 2,074
하루 종일 잠만 잤더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잠들었던 금요일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그쳤고 약속은 취소되었고 거리의 배수구를 따라 고인 빗물이 빠져나갔는데 그동안 나는
꿈을 꾸는 중이었다
지난한 여름이었다
나는 잠들지 않고 잠시 죽었다 살아날 뿐이라고
그런 구절의 시를 쓴 적도 있었고
침대와
속눈썹과
이십 년째 버리지 못하는 이불과
그 옆의 협탁에 놓인 편지들을 모조리 적실 만큼
가득히 우중충한 마음
풀어둘 곳이 없어서 누워만 있는 내 위로 쏟아부었다
침대처럼 가만히 깊이를 더해가던 날들
꿈에서 나는 늘 낡은 자판기 앞에 있었다 뒷걸음 치지도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붉은 우산을 들고서 서 있으면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소리를 내지는 못한 채 눈에 띌 색의 우산만 골라 날아가지 않게 꽉 쥐는 일 내가 기다리던 당신의 얼굴은 때때로 바뀌었으나 모두 상자 속 천천히 바스라지는 편지의 모퉁이 같은 구석을 가졌다
슬펐다는 말을 적어두면 적어두면
더는 슬픈 감정이 퍼져나가지 못하는 글처럼
빗속에서 조용히 슬펐어 슬펐어 슬펐어 중얼거렸다
내가 적지 않은 문장들을 모아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이 지새우던 시간
긴긴 잠을 잤다 빗소리를 들으면 열어두고 잠든 창문 너머의 것인지 내가 서 있는 이곳의 비인지 알 수 없었고
장화도 없이 버티고 있는 발
금이 간 발톱 조각이 영영 떠내려가는 걸 봤다
우산이 날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죽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살아났다 그렇게 믿었다 그때는 정말 슬펐어 슬펐어 슬펐어 눈을 뜨기 힘든 건 속눈썹 사이로 너무 많은 물기가 치밀어 올라서였는지
생각하는 동안
방 안의 초침은 달리고 창밖의 구름은 건너가고
베개를 끌어안으며......
전부 괜찮을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서
비 오는 내내 슬펐어 말하던 시간을 붙잡아다 책상에 앉았다 빈 편지지 위에 실컷 썼다 죽었다 살아난 만큼 써 내려갔다 눈물 자국이 새겨진 볼을 쓸고 젖은 엄지로 봉투 입구를 붙여두었다
침대 옆 협탁에 가득 쌓인 러브 레터들
가장 위에 나의 편지를 올려두면
오늘을 지나 일요일이 왔다 무사하게도
또 이상하게도
정말로 지난한 여름이었다 꿈결같고 바보 같았던
그러나 이제 그런 계절은
아주 아득히 먼
전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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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오입니다. 모모코 님의 <20> 잘 읽었습니다. '슬펐어'라는 말이 반복될 때 발생하는 어떤 울림이 이 시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듯했고 그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쓰는 사람으로서의 모모코 님이 느껴져서 이 시에 유독 마음이 가네요.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죽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살아났다'와 같은 과감한 문장들도 좋고요. '가득히 우중충한 마음' '지난한 여름이었다'처럼 한 대상을 단언하는 방식의 표현은 시를 다소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으니 다르게 바꾸어보아도 좋겠어요.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
이미 읽었던 시지만, 이 시를 글틴에서 다시 보니 마음이 좀 이상하고 괜히 슬퍼지기도 하고...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네요. 이제 글티너 모모코 님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많이 슬퍼요. 그렇지만 계속 저랑 인연을 이어나가주실 거지요?! ㅎㅎ모모코 님의 글틴 졸업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었으면 좋겠어요. 굳이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미 그렇게 하실 것 같지만! 모모코 님의 다음 시들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댓글창을 보니, 오래간만에 보는 이름들도 있고, 처음보는 이름들도 있고 해서 그런지 마지막 동창회를 하는 느낌이드네요. 그런데 또 마지막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아련한 느낌? 평소 모모코님 글이 좋아서, 비평 게시판의 <글틴일지> 같은 글이나 (5월 비평) 월장원 공지함에도 모모코님에 대해 즐겁게 말하고는 했는데요, 이렇게 가신다니 왠지 친우가 떠나는 기분입니다.언젠가 필명이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여주인공에서 따온 거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모모코님도 부디 불량공주처럼 특별함(?)을 간직해나가는 삶을 사시기를 바래봅니다. 그럼 이만. 제 글틴 시절을 지탱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모코님의 글을 꾸준히 애독하고 있던 글티너입니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제가 모모코님의 시를 읽으며 더 나은 글을 고민하고 써오기를 거듭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시라니 그냥 안녕하고 모모코님을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ㅠㅠ 그래서 실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규모 SNS도 지난 수필에서 언급해주신 메일링 서비스도 어느 것이든 괜찮으니 글틴을 대신해서 모모코님의 글을 볼 수 있는 소통창구가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쭉 건필하시기를 바랍니다. 생일 축하드려요!
@을유 안녕하세요! 저도 연장자 글티너들의 글을 보며 많은 용기를 얻었고, 또 문인의 꿈을 확고히 굳힐 수 있었으므로 이 댓글이 얼마나 감사히 다가왔는지 몰라요.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인연을 이어나가는 법에 대해선 고민하다가 자유게시판인 뒹글뒹굴에 게시글 하나 올려두었어요.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주셔요 (ㅎ.ㅎ) 을유님도 건필하시길 바라요.
모모코님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옛날 시도 좋았지만 최근 시는 제게 많은 위로를 주는 것 같아요. 글틴 시작할 때 매일 모모코님의 시를 기대했던 사람으로서 졸업하신다니 많이 아쉽네요. 앞으로 나이가실 모모코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송희찬 늘 고맙습니다 희찬님 ㅎㅎ... ! 동경하던 이들이 글틴을 졸업하고, 대신 제가 용기 내어 글을 올린 이 기나긴 활동의 시작이었는데요. 또다시 바톤 터치의 현장이네요. 저도 희찬님이 걸어나갈 모든 미래를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