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비집고 나온 정적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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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519
내 하품을 사람들은 슬픔이라 착각하지
조용한 천장을 바라볼 때 하품이 많다
동생은 맨날 코골이만 느끼고
엄마와 아빠는 멀리 안방에 산다
어떤 것을 설명하려면 백마디가 필요하다
난 한마디면 충분하다
하품이 나왔다
코골이의 권태와 벌레없는 겨울의 고요
생각하는 동상처럼 침대에 누워
맺힌 눈망울, 떨어진 물 하나
내 째진 눈에서 사슴을 본다면 좋을 텐데
다들 증오하는 얼굴을 본다
그대들의 눈은 검은 노른자처럼 둥글어서
나를 다트의 과녁으로 쓴다
내게는 한마디가 사는데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하품으로 나오고
어른들은 시식코너를 지나쳐 보지 못 한다
아무리 들끓어도 라면 넣을 타이밍을 놓쳤고
나는 지루해서 그만뒀다
이불을 꾹 눌러 씌어 어둠을 밀어내고
눈물이 나온다
아니다 하품을 했다
이 저녁이 조금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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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부고 전화는 아닙니다 고작 대학 합격 전화입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이 손톱만 한 총탄에 죽어갈 때 저는 전자신호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습겠지요 저도 제가 웃깁니다 타국의 아이들은 신발대신 총을 들고 가족을 지킬 때 저는 책상에 앉아있습니다 누군가의 가족이 에이즈나 에볼라로 죽어갈 때 학교를 째기 위해 진료 확인서를 받습니다 제게 슬플 권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 가족을 이끌고 목숨을 건 도피도 할아버지처럼 베트남 전쟁도 아버지처럼 경제 발전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마 공무원으로 살다 평범하게 죽을 듯싶습니다 어머니, 총탄이 되어버린 소년병들처럼 저희도 무언가 된 것 같습니다 똥 닦을 때 빼고 쓸모없는 종이들에 이름을 붙이어 그게 저희가 되었습니다 잔인합니다 제게 세상은 너무나 큰데 사람들은 지구를 작은 초록별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작은 초록별 속의 더 작디작은 것입니까? 어머니, 대학에 붙든 안 붙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궁금합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 백석
- 2025-12-23
책을 한 권 읽었어. 목욕 중이었지. 떨어뜨리고 싶었어. 첨벙, 정적, 물결 내 때에 회색이 된 물, 언제였지, 언젠간 익숙한 경험이야. 분명 나는 한 권의 책을 떨어뜨렸지. 젖었지. 깊은 것까지, 잉크는 번지고 종이는 흩어지지, 그 물 속 나는 어디에 있었지흰 욕조에 가지런히 누운 내 몸이 있다. 붕대를 감지 않은 살구색 미라. 젖었어, 비가 오지 않는데왜 세상은 흘러넘쳐? 불러 터진 내 손가락에서 썩은 내가 났다. 나를 빨아들인다. 검은색 블랙홀이. 근데 액체, 근데 흰 욕조였다. 나를 핥아. 푸르지 않은 물들이 내 꿈은 물이 되는 거야, 검은 해변은 저녁인 거지, 누런 모래, 모래를 핥던 파도들흰 거품, 따스해 보였지, 겨울의 새벽은 추웠으나사실 다 거짓말이야 우린 그 정도로 낭만적이지 않았잖아너는 비웃지. 파도가 어디에 있었냐고 언제 해변을 걸었냐고나는 침묵. 뜨거운 물을 부었다.타들어 가는지, 수증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많은 것들이 흐릿하다. 안경을 벗었거든.여긴 욕조, 아니 수족관, 물고기는 어디, 유리를 봐너의 얼굴을 봐, 은색의 비늘, 작은 아가미난 당신의 저녁이 될게, 식탁에 나온 내 뼈를 바르지 말아줘끝없는 비린내, 사타구니, 겨드랑이에서 뿜어진다잘라낼 거야. 나는 그렇게 말했고 너는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더러워, 사랑해, 이 세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바다는 아직도 미지야, 그럼 나도 미지야 그리고 너도파도가 될 게 아니야 바다가 되어끝없는 유리의 손자국, 우리의 흔적.생선에게 눈이 없는가. 팔, 다리를 잃었고 욕조가 수조가 되어버려 몸부림치고내 눈은 누군가의 젓가락 사이에 있어. 제발 먹어 너의 속을 보고 싶어, 심장부터 간과 대장까지. 일부가 되어 파도가 된다면 바다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강조차도 바다인가너가 내 목을 물어뜯으면 나는 너의 일부인가, 그래서 물어뜯지 않았다너의 하얀 목, 어떤 불량식품보다 더 단. 참았어. 일부가 되니까 너의 눈이 내 심장을 보면 안 돼 내가 끄적인 글들의 뜻을 알게 되면 네 속을 보지 못해검은 아스팔트, 야외의 냄새, 끝없는 달달한 냄새는 사실 못된 냄새지 너의 폐를 뜯어먹으니까. 안개를 만들었어. 너는빨고 뱉어서, 그럼 나도 빨고 뱉어? 그래서 여긴 바다야. 들어왔다 나갔다 모래 몇 개 남기고 가는 비정한 파도가 될게끝없는 고요는 사실 할 말이 없어. 말이 많아지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일단 사랑했다. 얼어붙은 강에 누워서 어떻게 영원한 사랑을 꿈꿔? 끝 음을 올렸다. 너가 웃도록. 벌써 내 욕조는 따뜻하다. 나를 끌어안은 것은 바디워시참을 수 없어서 사타구니를 긁었어, 파일 때까지. 문신을 지운 거지너와 같아지고 싶어서. 욕실의 전등은 내 눈같이 깜빡이고문장을 읽어야 해, 암호를 맞추는 강박증이 있다사실 직설화법이었어. 그 암호는, 그 문장은새기다 보니 잊혀졌어. 내가 물과 같은 색이 된다면 투명해지고물은 탁해져서 하수구로 빠져나가면, 추워온수를 틀어, 고기 냄새가 날 때까지, 난 지구 아래가 어울려넌 나보다 살짝 위 아니면 너의 알몸을 볼 수 있겠다.
- 백석
- 2025-03-21
쓰고 지우면 아무것도 쓰지 않은 건가요 그럼 전 흰백지가 되고 싶어요. 잉크 묻은 손가락을 죄다 자르고 아빠한테 물었어요. 언제쯤이면 내 까만 살들이 다시 하얘질까요. 하얘져도 까만 것은 사라지는 건가요. 아파요. 하얘지는 것도 까만 것도. 까만 것이 하얘지는 것도. 항상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거울을 보면 똑같은 거울이 눈앞에 있고 겹치고 겹쳐서 제가 너무나 많았어요.그러면 제비꽃 같던 아빠의 미소는 사라지고 작은 선인장 하나가 남아요. 선인장과 저는 맨날 같이 울었어요. 사막에선 시끄러운 노랠 틀어야 잠에 드나 봐요. 미안해요저의 수많은 얼굴들엔 바다가 살고많이도 죽어요.아빠와 엄마, 너와 너였던 너, 저와 나는 익사자 명단에 오르고 내려가고 근데 지워졌어요. 수많은 얼굴과 마주한 수많은 얼굴들은 다들 제 얼굴에 속고당신은 오늘도 제게 속아요. 저는 거짓말쟁입니다하얀 종이들이 휘날리면 당신의 눈은 눈물 덩어리가 되고 저에게 남은 선택지는 흰백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거였어요. 오늘, 눈 위를 걷고 넘어져 멈추고 싶었어요. 저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웃는 얼굴 안에 웃는 얼굴이 있고점차 작아지고 제 진심은 없어요. 웃는 얼굴은 사라져요. 눈이 와요. 하얘요.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얘지는 것빛이 밀려와 내 침대까지 닿으면 선크림을 발랐다 흰 천장에 실종되어 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저를 믿지 말며, 지나치는 것을 사랑하는 얼굴과 미련하게 붙잡는 얼굴둘 다 나이며, 내가 아니고, 눈이 내린다. 제 잠은 기도가 되고 오랜만에 오지 않는 꿈은 죄책감 때문일까. 고인 눈물은 새벽의 이슬이 되어얼굴에 하얀 페인트를 발라, 나는 거짓말쟁이, 선인장의 친구가진 거 없는 사람, 배곯지 않는 소파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는 눈과 널브러진 많은 얼굴들.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에는 얼굴이 없어 저는 그를 따르고발가락 사이에 치밀어 오르는 차가움과 종아리의 시큰거림을 기억하며당신이 제 얼굴에서 제비꽃 하나를 본다면 제 얼굴은 눈사람, 당신께 녹겠지.
- 백석
- 20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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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오입니다. 백석 님의 <틈을 비집고 나온 정적> 잘 읽었습니다. 하품을 소재로 오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개가 흥미로웠어요. 다만 자기고백적인 전개는 시를 한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 속에 가둘 수 있으니, 시를 어떻게 하면 보다 보편의 감각으로 넓힐 수 있을지 고민해보아도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