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쓴 바다
- 작성자 백석
- 작성일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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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수 1
- 조회수 613
책을 한 권 읽었어. 목욕 중이었지.
떨어뜨리고 싶었어. 첨벙, 정적, 물결
내 때에 회색이 된 물, 언제였지, 언젠간 익숙한 경험이야.
분명 나는 한 권의 책을 떨어뜨렸지. 젖었지. 깊은 것까지, 잉크는 번지고
종이는 흩어지지, 그 물 속 나는 어디에 있었지
흰 욕조에 가지런히 누운 내 몸이 있다. 붕대를 감지 않은 살구색 미라.
젖었어, 비가 오지 않는데
왜 세상은 흘러넘쳐? 불러 터진 내 손가락에서 썩은 내가 났다.
나를 빨아들인다. 검은색 블랙홀이. 근데 액체, 근데 흰 욕조였다.
나를 핥아. 푸르지 않은 물들이
내 꿈은 물이 되는 거야, 검은 해변은 저녁인 거지, 누런 모래, 모래를 핥던 파도들
흰 거품, 따스해 보였지, 겨울의 새벽은 추웠으나
사실 다 거짓말이야 우린 그 정도로 낭만적이지 않았잖아
너는 비웃지. 파도가 어디에 있었냐고 언제 해변을 걸었냐고
나는 침묵.
뜨거운 물을 부었다.
타들어 가는지, 수증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많은 것들이 흐릿하다. 안경을 벗었거든.
여긴 욕조, 아니 수족관, 물고기는 어디, 유리를 봐
너의 얼굴을 봐, 은색의 비늘, 작은 아가미
난 당신의 저녁이 될게, 식탁에 나온 내 뼈를 바르지 말아줘
끝없는 비린내, 사타구니, 겨드랑이에서 뿜어진다
잘라낼 거야. 나는 그렇게 말했고 너는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더러워, 사랑해, 이 세상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아
바다는 아직도 미지야, 그럼 나도 미지야 그리고 너도
파도가 될 게 아니야 바다가 되어
끝없는 유리의 손자국, 우리의 흔적.
생선에게 눈이 없는가. 팔, 다리를 잃었고 욕조가 수조가 되어버려 몸부림치고
내 눈은 누군가의 젓가락 사이에 있어.
제발 먹어 너의 속을 보고 싶어, 심장부터 간과 대장까지.
일부가 되어 파도가 된다면 바다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강조차도 바다인가
너가 내 목을 물어뜯으면 나는 너의 일부인가, 그래서 물어뜯지 않았다
너의 하얀 목, 어떤 불량식품보다 더 단.
참았어. 일부가 되니까 너의 눈이 내 심장을 보면 안 돼
내가 끄적인 글들의 뜻을 알게 되면 네 속을 보지 못해
검은 아스팔트, 야외의 냄새, 끝없는 달달한 냄새는 사실 못된 냄새지
너의 폐를 뜯어먹으니까. 안개를 만들었어. 너는
빨고 뱉어서, 그럼 나도 빨고 뱉어?
그래서 여긴 바다야. 들어왔다 나갔다 모래 몇 개 남기고 가는 비정한 파도가 될게
끝없는 고요는 사실 할 말이 없어. 말이 많아지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일단 사랑했다.
얼어붙은 강에 누워서 어떻게 영원한 사랑을 꿈꿔? 끝 음을 올렸다. 너가 웃도록.
벌써 내 욕조는 따뜻하다. 나를 끌어안은 것은 바디워시
참을 수 없어서 사타구니를 긁었어, 파일 때까지. 문신을 지운 거지
너와 같아지고 싶어서. 욕실의 전등은 내 눈같이 깜빡이고
문장을 읽어야 해, 암호를 맞추는 강박증이 있다
사실 직설화법이었어. 그 암호는, 그 문장은
새기다 보니 잊혀졌어. 내가 물과 같은 색이 된다면 투명해지고
물은 탁해져서 하수구로 빠져나가면, 추워
온수를 틀어, 고기 냄새가 날 때까지, 난 지구 아래가 어울려
넌 나보다 살짝 위 아니면 너의 알몸을 볼 수 있겠다.
우린 같이 샤워하는 거야, 조금 비명을 지르며 끝없는 폭포로
물을 빼면 나는 없겠다. 그니까 계속 온수를 틀어줘.
욕조가 바다가 될 때까지 거실에서 파도가 칠 때까지.
그럼, 소파는 익사하고 책상은 부식되면 내 얼굴에 녹이 쓴다
그러면 유리를 못 봐. 부숴버릴 거야 그 유리를
근데 우리가 바다라면 바다로 된 어항이라면 넌 부술 수 없어
녹이 흘러넘쳐 따개비가 자랄 때까지 너의 피를 빨겠어
어디에도 문은 없고 문 밖에 서성거리는 너만 있어
너와 욕조와 침대와 소파 그리고 관.
대답할 수 없는 서술형 문제들이다
주전자 같은 웃음이 나오면 이곳이 바다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단 하나의 증언을 위해 깊은 잠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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