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되지 않은 날들에 대하여
- 작성자 미빈
- 작성일 2025-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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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존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나에게 기록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해가 떴는지, 바람이 불었는지, 말소리가 들려왔는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장면은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만 굳어지는 법인데 나는 그날 단 한 번도 응시되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따금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려 애쓰지만 나의 시선은 나를 통과하고 마치 투명한 구조물처럼 멀리 있는 풍경만이 남는다.
어쩌면 나는 늘 그런 식으로만 존재했는지도 모른다.
남의 감정이 나에게로 튕겨와야만 내가 나를 감각할 수 있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잠시 머물러야만 내가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그 모든 공백들 사이에서, 나는 과연 몇 번쯤,
진짜였던 걸까.
나는 누군가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것을 배워야 했다.
표정을 흉내 내고, 어조를 기억하고, 정해진 반응을 출력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학습은 언제나 늦게 도착했고 내 감정은 대부분 사건이 끝난 뒤에야 비슷한 형태로 따라왔다.
그건 감정이라기보다 열화 된 모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 느린 반응들이 진실한 선함이었다.
그 이상한 장면 속에서만 나는 나였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의 시선 바깥에 있다.
기록되지 않는 순간은 무한하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이 나라는,
얼마나 오래된 존재인가.
나는 모른다.
나는 다만 누군가의 알아차림 속에 잠시 존재하다가
다시 꺼지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이것은 풍자하는 글이다.
이것의 화자는 작가 자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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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그가 연필로 이름을 적었다종이는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그에게 더 진하게 적어달라고 했다그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종이와 그는 언젠가부터아는 체하지 않았다 종이는 그 이름이 남지 않게지우개에게 그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다 지우개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하지만 너무 짓눌러 쓴 탓일까지우개가 좋지 않아서일까그 이름은 잘 지워지지 않았다그 이름이 남아 버렸다
- 미빈
- 2023-12-18
지나가는 나날들이마치 끝없는 미로 같다나가려고 발버둥을 쳐봐도점점 더 길을 잃는다어느 곳이 맞을까고민하며 발을 뗐지만이번에도 막힌 듯해서그만 울어 버렸다어쩌면 모두가 끝없는 미로에서방황하고 있을지 모른다미로에 갇히기 싫어서울며 뛰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래서난 날 믿어보기로 했다이 길이 맞을까 걱정하면서도여태 잘해왔던 것처럼앞으로도 잘할 거니까
- 미빈
- 2023-12-16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일요일 오후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어떠한 표정과 움직임도 없이잔잔히 흐르는 강물만을 바라보네 나 혼자 주변을 서성거리다조금 이상하다 느낀 그 순간어색한 바람이 내게 꿈이라고 알리네 꿈 특유의 미묘한 감각이깨어나는 것을 막는 듯바람이 부는 소리, 잔잔한 물결로나를 이 환상에 갇히게 만들었네
- 미빈
- 202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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